30분이 넘어서야 이서는 이상언이 말한 그 술집에 도착했다. 한적한 곳이라고 하기에는 주위의 차량 통행량이 너무 많았다. 이서는 순간 깊은 의심에 빠졌다.‘……여기는 번화가인데?’‘왜 대리를 못 부른다는 거지?’그녀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멀리서 그녀를 향해 손짓하는 이상언을 보았다.“여기요!”이서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멀지 않은 곳의 기둥에 기대어 서있는 지환을 보았다.가로등이 멀리 있어 이서는 그의 이목구비를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몇 걸음 다가서야 그가 눈을 살짝 감고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에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정말 많이 마신 것 같았다.“지환 씨!”그녀는 지환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지환이 눈을 뜨자 약간 빨간 눈동자가 이서의 시야에 들어왔다.이서는 깜짝 놀랐다. 마치 다친 새끼 고양이 보듯 동작도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졌다.“집에 가요.”지환은 가만히 서 있었다.이서가 그를 잡아당기자, 그의 몸은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이서의 어깨에 기대였다.이서는 그의 몸을 받치며 밀어내려고 했지만 지환의 몸은 ‘돌부처’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지환의 허리를 안고 안깐힘을 써서 겨우 차에 태웠다.이상언은 비틀거리며 걷는 지환의 걸음걸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연기천재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러고는 곧 이서 차 주위를 눈빛으로 ‘스윽’ 살피며, 함께 온 차량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마음이 서늘해진 그는 차 옆으로 몇 걸음 다가가 무심한 척 물었다.“혼자 왔어요?”겨우 지환을 차에 밀어 넣은 이서는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다.“아니요, 상언 씨 픽업할 사람도 곧 도착할 거예요.”이상언의 마음속에는 또다시 희망이 불꽃이 타오르며 온화하게 웃었다.“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귀찮기는요.”이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멀지 않은 곳에서 차 한 대가 오는 것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저기 왔네요.”이상언은 이서의 시선을 따라 가보았다.차가 천천히 이쪽으
이서는 아침 내내 마음이 뒤숭숭했다. 머릿속에는 어제 저녁 지환의 복근을 살살 매만지며 유혹하던 장면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순간 지환이 미남계를 써서 정욕에 눈이 멀게 한 다음, 본질을 흐려 부부싸움을 얼렁뚱땅 넘기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그의 이 작전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그녀는 더는 못 버틸 것 같았다.이서가 이런저런 헛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령처럼 지나가는 심소희를 보았다.처음에 눈치 못 챘다가 그녀가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이상함을 깨달았다.“소희 씨.”몇 초 뒤, 심소희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문 앞에 나타났다.눈시울이 빨갛고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볼에 달라붙어 있었다.“무슨 일이에요?”심소희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오므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서는 일어서서 책상을 받치고는 말했다.“말해!”이서의 몸에서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놀란 심소희는 부들부들 떨며 더듬더듬 말했다.“제…… 제가 방금 탕비실에 물 마시러 갔다가 뒤에서 총괄님 뒷담화 하는 거 듣고…… 한 마디 했더니, 강수지가 들고 있던 커피를 내 얼굴에 뿌렸어요. 총괄님이…….”“뭐라는데?”“총괄님 그 정도 실력 가지고는 절대 케빈 선생의 인정을 못 받을 거라고……. 이번 디자인 경합에서 틀림없이 질 거라고……, 총괄님이 회사의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여기까지 말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이서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담담하게 말했다.“울지 마! 따라와!”심소희는 영문도 모른 채 이서를 따라 장지완의 사무실로 갔다.강수지가 한창 신나게 심소희에게 커피를 뿌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주인이 능력 없으니 밑에 사람들이 고생할 수밖에…….”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이 ‘쾅’하고 열렸다.강수지는 놀라서 몸을 곧게 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이 윤이서와 훌쩍거리는 심소희라는 것을 보고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언니, 나 먼저 갈게요.”“잠깐.”이서는 차가운 얼굴로 의자 옆에 가서 앉았다.강수지는 장지완을 한 번 보고
갑작스럽게 봉변을 당한 장지완은 30초 뒤에야 정신이 되돌아왔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얼굴의 물방울을 훑어냈다.그리고 손을 들어 이서의 뺨을 한 대 후려치려 했다.이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차가운 소리로 그녀에게 따지고 들었다.“부총괄님이 말했잖아요, 사소한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고!?”앞서 한 얘기가 있다 보니, 장지완은 화를 억누르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속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윤이서!”이서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는 몸을 돌려 모든 구경꾼들에게 말했다.“내가 디자인팀에 있는 한 직장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알아서 짐 싸서 나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동종업계에 퇴사이유를 다 뿌릴 테니까요!”말을 마치고, 심소희를 보았다.“가자.”심소희는 존경심 듬뿍 담은 눈으로 이서를 바라보다가, 이서가 저 멀리 가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총총걸음으로 이서를 따라갔다.사무실에 들어서자, 심소희는 우상을 보는 듯 말했다.“언니, 방금 짱 멋있었어요.”이서는 살짝 웃었다.“소희 씨, 앞으로 이런 일 당하면 되갚아 주는 걸 배워야 해. 사람이 착하면 괴롭힘 당해. 정글의 법칙 같은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더 모질어야 해. 알겠어?”심소희는 이서를 몸에서 발산되는 아우라를 느꼈다. 그녀는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 언니, 언니가 한 말 잘 기억해 둘게요.”“그래, 가서 일봐.”……장지완의 사무실.이서가 나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강수지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얼른 문을 닫고 아직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장지완에게 말했다.“언니, 괜찮아요?”장지완은 얼굴의 물을 훔치며 말했다.“윤이서! 이번 경합이 끝나면, 내가 널 반드시 서우에서 쫓아 버린다!”강수지는 급히 각티슈 몇 장을 뽑아 장지완에게 건네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래요, 언니, 윤이서 정말 해도 너무해요.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
이서가 김청용의 맞대결 한판 승부 제안을 흔쾌이 받아들인 건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미 절반 완성한 디자인 시안을 정리하며, 이서는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퇴근할 시간이다.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6시 정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퇴근카드를 찍었다.입구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눈빛은 어제와 완전히 달랐다.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는 듯한 눈치였다.다음 순간, 이서는 회사 입구에 세워진 페라리를 보았다.빨간 색의 차가 등장하자마자, 만인이 주목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차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차 옆에 기대어 있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온 몸에 나름 카리스마를 풍기는 하은철이었다.이서를 본 그는 활보하며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퇴근하지? 내가 픽업하러 왔어.”이서는 마치 하은철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무시하고 그를 에돌아 임현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하은철이 이서를 잡아당겼다.“타.”이서는 고개를 숙여 손목을 잡고 있는 하은철의 손가락을 보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자중 좀 하지. 나 이미 결혼했거든. 이런 스킨십은 우리 둘 다에게 좋지 않을 텐데. 우리 남편도 싫어할 테고.”“싫어한다고?” 하은철은 입술을 비틀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 말의 뜻을 음미하는 듯했다.“아닐걸? 아마 나랑 관계 있기를 간절히 바랄 텐데?”이서는 이 말을 듣고 손을 들어 하은철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하은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서가 손에 온 힘을 다 해 때리다 보니, 하은철은 맞고 무려 3초 동안 무리가 공백이 되었다. 곧 정신을 차린 그는 고개를 돌려 음산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깜짝 놀라긴 이서도 마찬가지였다. 뺨을 때리고 나서야 눈앞의 사람이 하씨 집안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말 가려 해, 우리 남편……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
그러나 임태형의 이 마지막 동작은, 하은철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적나라한 도발이었다.하은철은 주먹을 꽉 쥐고, 자기가 아끼던 보물을 빼앗긴듯한 분노를 참으며, 차 문을 쾅 닫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슝’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쏜살처럼 날아갔다.차가 멀리 떠나고서야 구경꾼들도 제정신이 돌아왔다.그들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방금…… 꿈이야 생시야?”“나 빨리 꼬집어 봐! 빨리 꼬집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윤이서가 글쎄 하은철을 쌩까고 다른 남자 차에 탔어!”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장지완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는듯 웃었다.강수지는 상황을 보고 알랑거렸다.“언니, 방금 그 건장한 근육남이 이서 남편이죠? 겉보기에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은 같지 않던데.”“어쩐지 남편의 정체를 줄곧 숨기더라니, 창피해서 그런 거였네.”어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런데 방금 기세로 봐서는 분명히 하은철이 윤이서에게 대시하는 거 같던데…… 이서는 왜 못이기는 척 하은철과 재결합하지 않을까?”“모르는 소리…….” 강수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우선, 윤이서 이미 결혼했잖아. 재결합하고 싶어도 이혼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랬다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그리고 하은철이 설마 정말 윤이서를 쫓아 왔겠어? 정말 윤이서를 좋아했다면, 둘이 벌써 결혼했겠지…….”“그럼 하은철은 왜 여기 온 거야? 도련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누가 협박할 수 있다고?”강수지는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장지완에게 도움의 눈길을 청했다.장지완은 고개를 들어 차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야. 남자의 소유욕이 얼마나 강한 지 너희들도 알지? 전에는 윤이서가 줄곧 하은철 주위를 맴돌았는데, 갑자기 그런 추종자가 사라지니 익숙하지 않은 거지. 시간이 지나서도, 하은철이 계속 이서를 찾아온다면 내가 성을 간다.”장지완의 얘기를 듣고 모두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역시 지완 언니! 세상사를 훤히 꿰뚫고 있다니까.”장지완은 입을 열었
이서는 임하나의 맞은편에 앉았다.“지금 뭐하시…….”이서는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 몇 장을 꺼냈다.“사장님, 영업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돈을 받은 사장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가게에 다른 손님이 없으니, 그의 휴식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아예 카운터에 틀어박혀 휴대전화를 보기 시작했다.“너 취했구나?” 이서는 임하나를 툭 쳤다.힘겹게 눈을 치켜 뜬 임하나는 이서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얘기했다.“이서야, 우리 이서 왔구나.”평소와 별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이서는 한눈에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무슨 일이야?” 이서가 친절하게 물었다.임하나는 코끝이 시큰거리더니 곧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오늘 아침 커피를 사다가 이상언과 어떤 여자가 액세사리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이서는 임하나가 얘기하지 않자, 굳이 따져 묻지도 않고 곧장 냉장고에서 술 몇 병을 꺼내 왔다.“더 마시고 싶어? 내가 같이 마셔 줄게.”임하나는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괴로움이 이서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흘러나왔다.“이서야, 역시 너밖에 없다. 네가 최고야.”이서가 술병을 따자 냉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그녀의 갸름한 얼굴을 가렸다.이서는 자신에게 한 잔 따르고 임하나에게도 한 잔 따라 주었다.술이 몇 잔 들어가자, 임하나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이서야,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요상하지 않니?” 그녀는 술잔을 든 채 갈색 액체를 사이에 두고 이서를 보았다.“내 친구 얘긴데, 그 친구가 어떤 남자와…… 술 먹고 잤어, 다들 성인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니 기분 나쁘고 짜증이 나는 거야. 네가 봤을 때, 그 여자 문제 있는 거 맞지? 딸꾹…….”임하나는 딸꾹질을 했다. 그러고는 도둑이 제발 저린 듯 한 마디 덧붙였다.“내가 말한 이 친구…… 내가 아니야. 나 절대 아니다.”이서는 빙그레
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뭔 생각하는 거야? 난 단지 예를 든거지. 나와 지환 씨 결혼한 지도 몇 달 됐고, 가족도 만났 봤지만, 왠지 모르겠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환 씨가, 진짜 그의 모습이 맞는지, 아니라 내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인 지는 잘 모르겠어…….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아마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거야.”“그럴지도 모르지.” 이서는 머리를 대충 묶었다. “자, 이런 얘기 그만하고, 우리 술이나 마시자!”술잔을 들어 이서와 잔을 부딪치려던 임하나의 눈빛이 이서의 목에 떨어졌다.“이서야, 너 목…… 왜 이래?”키스 마크처럼 보이진 않고, 누군가에게 목 조른 손자국 같아 보였다.이서는 곧 머리를 다시 풀어헤쳤다.“별거 아니야.”“지환 씨, 설마 가정폭력 하니!?” 임하나는 말하면서 일어섰다.“내가 오늘 그 자식 죽여버린다!”“진정해.”이서는 임하나를 붙잡았다.“지환 씨가 그런 거 아냐. 하은철이야.”“내가 그 새끼 찾아 갈거야!” 임하나는 술병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이서는 얼른 그녀를 가로막았다.“하나야, 난 괜찮아. 너 취했어. 우선 진정해.”임하나는 정말 좀 취하긴 했다. 휘청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잠시 뒤 화장실로 가서 오바이트 하기 시작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는 그녀가 토하기를 기다렸다가 휴지와 물을 건넸다.찬바람이 쐬자 임하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보았다. 무척 괴로운 듯했다.“그 X발 쌍놈 개새X는 왜 또 널 찾아 갔대?”“잘 모르겠어.” 이서가 그녀를 한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집까지 바래다 줄게.”임하나는 이서의 어깨에 엎드려 오열했다.“이서야, 나의 불쌍한 친구야, 지환 씨가 감히 너한테 미안한 짓 했다가는 내가 절대 가만 안 둘거야.”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롱 다리 소유자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그녀의 귓가에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한참이 지나서야 이서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었다. 말투가 많이 수그러들었다.“다리가 저려요.”뒤로 물러선 지환은 허리를 굽혀 사람을 번쩍 안았다.“집에 가자.”이서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의 지환을 모습을 살펴보았다.우물처럼 깊은 눈동자, 탄탄한 바디라인,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만약 지환을 먼저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8년 전처럼, 후회 없이 사랑하고 헌신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아니야.’‘더 이상 8년 전의 물불 안 가리고 사랑에 목 메던 소녀가 아니야.’그녀는 지환의 품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남자의 강력한 심장 박동 소리를 조용히 들으며, 더 이상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짜이니까.술을 마신 이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지환은 2층 안방에다 사람을 눕혔다.이불을 덮어주며, 목덜미의 붉은 자국을 본 지환의 심장이 찌릿하게 아파왔다.그는 곧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은철 손봐줄 사람 좀 찾아봐.”[……?][회장님 조카 얘기하는 거 맞죠?]“음.”이천은 잠깐 멈칫 했다가 곧바로 대답했다.[네.]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않는 게 좋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찾으라고 한 사람은 찾았어?”지환은 베란다에 서서 달빛을 만끽하고 있었다.우뚝 솟은 그림자가 달그림자를 따라 흔들렸다.이천은 곧바로 대답했다.[이미 찾았고, 훈련 중에 있습니다.]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또 물었다.“그 몇몇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인수합병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진행 중에 있으며 늦어도 다음 달이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장문을 발표할 듯합니다.]“알았다.”지환은 전화를 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달빛 아래, 소녀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찌푸렸던 미간이 어느 정도 펴졌다. 지환은 입술을 올리며, 몸을 숙여 소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같은 시각.이상언에게 끌려 그의 집에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