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뭔 생각하는 거야? 난 단지 예를 든거지. 나와 지환 씨 결혼한 지도 몇 달 됐고, 가족도 만났 봤지만, 왠지 모르겠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환 씨가, 진짜 그의 모습이 맞는지, 아니라 내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인 지는 잘 모르겠어…….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아마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거야.”“그럴지도 모르지.” 이서는 머리를 대충 묶었다. “자, 이런 얘기 그만하고, 우리 술이나 마시자!”술잔을 들어 이서와 잔을 부딪치려던 임하나의 눈빛이 이서의 목에 떨어졌다.“이서야, 너 목…… 왜 이래?”키스 마크처럼 보이진 않고, 누군가에게 목 조른 손자국 같아 보였다.이서는 곧 머리를 다시 풀어헤쳤다.“별거 아니야.”“지환 씨, 설마 가정폭력 하니!?” 임하나는 말하면서 일어섰다.“내가 오늘 그 자식 죽여버린다!”“진정해.”이서는 임하나를 붙잡았다.“지환 씨가 그런 거 아냐. 하은철이야.”“내가 그 새끼 찾아 갈거야!” 임하나는 술병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이서는 얼른 그녀를 가로막았다.“하나야, 난 괜찮아. 너 취했어. 우선 진정해.”임하나는 정말 좀 취하긴 했다. 휘청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잠시 뒤 화장실로 가서 오바이트 하기 시작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는 그녀가 토하기를 기다렸다가 휴지와 물을 건넸다.찬바람이 쐬자 임하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보았다. 무척 괴로운 듯했다.“그 X발 쌍놈 개새X는 왜 또 널 찾아 갔대?”“잘 모르겠어.” 이서가 그녀를 한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집까지 바래다 줄게.”임하나는 이서의 어깨에 엎드려 오열했다.“이서야, 나의 불쌍한 친구야, 지환 씨가 감히 너한테 미안한 짓 했다가는 내가 절대 가만 안 둘거야.”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롱 다리 소유자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그녀의 귓가에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한참이 지나서야 이서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었다. 말투가 많이 수그러들었다.“다리가 저려요.”뒤로 물러선 지환은 허리를 굽혀 사람을 번쩍 안았다.“집에 가자.”이서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의 지환을 모습을 살펴보았다.우물처럼 깊은 눈동자, 탄탄한 바디라인,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만약 지환을 먼저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8년 전처럼, 후회 없이 사랑하고 헌신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아니야.’‘더 이상 8년 전의 물불 안 가리고 사랑에 목 메던 소녀가 아니야.’그녀는 지환의 품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남자의 강력한 심장 박동 소리를 조용히 들으며, 더 이상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짜이니까.술을 마신 이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지환은 2층 안방에다 사람을 눕혔다.이불을 덮어주며, 목덜미의 붉은 자국을 본 지환의 심장이 찌릿하게 아파왔다.그는 곧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은철 손봐줄 사람 좀 찾아봐.”[……?][회장님 조카 얘기하는 거 맞죠?]“음.”이천은 잠깐 멈칫 했다가 곧바로 대답했다.[네.]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않는 게 좋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찾으라고 한 사람은 찾았어?”지환은 베란다에 서서 달빛을 만끽하고 있었다.우뚝 솟은 그림자가 달그림자를 따라 흔들렸다.이천은 곧바로 대답했다.[이미 찾았고, 훈련 중에 있습니다.]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또 물었다.“그 몇몇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인수합병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진행 중에 있으며 늦어도 다음 달이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장문을 발표할 듯합니다.]“알았다.”지환은 전화를 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달빛 아래, 소녀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찌푸렸던 미간이 어느 정도 펴졌다. 지환은 입술을 올리며, 몸을 숙여 소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같은 시각.이상언에게 끌려 그의 집에 간
임하나는 이상언이 조심스럽게 자기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며, 마음이 언짢았다.“나 그렇게 까탈스러운 여자 아니에요.”말을 하며 그녀는 알약 몇 개를 입에 털어 넣고는 컵을 들고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이상언은 그녀가 약을 삼키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이부자리는 이미 깔아 놨는데…….”“잠깐!”임하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극히 부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이상언 씨, 지난번 일은 우발적 사고였을 뿐이에요. 당신은 지환 씨 친구이고, 나는 이서 친구입니다. 앞으로 우리 틀림없이 자주 볼 텐데……, 우리 오늘 얘기 터놓고 합시다.”이상언은 멍해졌다.“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그냥 없었던 일로 합시다.”이상언은 순간 멍해졌다. 임하나는 능글맞게 이상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설마 나더러 책임지라는 건 아니겠죠?”말을 마치자,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임하나는 당황하여 재빨리 시선을 옮기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발요,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냥 하루 밤 같이 잔 거잖아요. 뭐가 그리 대수롭다고?”“그러니까…… 이 일은 하나 씨한테는 별일이 아니라는 거네요?” 이상언은 담담하게 말했다.임하나는 그의 말 속에서 약간의 애절함이 느껴졌다.그녀는 재빨리 눈을 깜박거렸다.“아니면요? 지금 남녀가 원나잇 하는 거, 다 서로 원해서 하는 거잖아요, 설마 다들 사랑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이상언은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하나 씨는 그런 거군요. 그래요, 하나 씨 뜻은 잘 이해했어요.”임하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왠지 초조해졌다.“그……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그녀는 인사를 하고 쏜살같이 나갔다.아래층에 도착할 때까지 그 초조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다 까놓고 얘기했는데도 이렇게 불안한 거지?’……이튿날 아침.이서는 일어나서 침대 옆에 둔 꿀물을 보았다.“일어났어?”지환의 훤칠한 그림자가 침대 머
지환은 이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턱을 들어올렸다.“차가 왔네.”이서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미 9시가 넘었다.그녀는 부리나케 입에 빵 한 조각을 밀어 넣고 집을 나섰다. “나 먼저 출근해요.”차에 오른 이서는 지환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케빈이 요 며칠 정통 이탈리아 피자를 미친 듯이 찾고 있다고?’그녀는 입술을 오므렸다.이서는 디자인부에 도착하자마자,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느꼈다.하나같이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며 남몰래 기뻐하는 시선들이었다.뭔가 큰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이서는 사무실로 들어가 심소희를 불렀다.심소희는 들어오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언니, 어떡해요?”“왜?”“방금 케빈이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어?” 이서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럼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 거야?”“방금 갔대요. 부총괄님이 모셔왔다고 하던데, 게다가 부총괄님 디자인 시안 보고, 크게 칭찬하고 매우 만족하셨다고 하더라고요…….”말할수록 심소희의 목소리는 작아졌다.“언니……. 이제 어떡해요?”이서는 잠깐 침묵을 하다가 곧 웃으며 물었다.“케빈 씨가 장지완의 디자인 시안을 채택하기로 확정했어?”“아직요, 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그런 것 같아요.”이서는 여전히 웃었다.“그럼, 아직 최종 결단을 내린 건 아니잖아.”“윤 총괄님은 정말 갈 데까지 가봐야 납득할 건 가봐요.” 케빈을 막 배웅하고 돌아오던 장지완은 이서 사무실을 지나다가, 마침 둘의 대화를 듣고 참지 못하고 조롱하듯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장지완을 바라보았다.“내 유일한 장점이 인내심이 있다는 거예요.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장지완은 몸을 곧게 펴고 비꼬듯 말했다.“또 이런 ‘존버정신’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보니 하은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물 건너 간 거 같은데?”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장지완은 이서에게 몇 걸음 다가가서
그는 이번 대결에서 이서가 지면, 보스가 기분 상할까 봐 염려되었다.“윤 총괄 내 뜻은…….”[저는 괜찮습니다, 별일 없으면 저는 구내식당 주방으로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이서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이미 끊긴 전화를 붙잡고, 김청용은 뜨거운 감자가 될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왜 윤이서와 장지완이 경쟁하도록 이런 구도를 만들었을까? 괜한 짓 했어.’‘만약 이번 대결에서 윤이서가 진다면, 나도 사장자리에서 내려올 각오해야겠군…….’……이서가 회사 구내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회사 전체에 퍼졌다.그녀는 곧 회사 전체의 조롱거리가 되었다.“자기가 대결에서 승산이 없는 걸 뻔히 알고 자포자기하는 건가?”“정말 어이없네. 대체 회사는 왜 나오는 거야? 그렇게 밥하는 게 좋으면 집에서나 실컷 할 것이지……. 아님 아예 처음부터 식당 보조자리나 지원하던가…….”“본래부터 능력 없고 연애에만 목메던 여자가, 갑자기 운 좋게 콘테스트에서 수상 한 번 한 거 가지고, 자기가 정말 무슨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줄 아나 봐. 실전에서 진짜 승부를 겨뤄봐야 자기 분수를 아는 거지.”“내일 좋은 구경거리나 기다려보자고.”“…….”한쪽에 서서 밀가루 반죽하고 있는 이서를 바라보던 심소희는 자기도 나서서 돕고 싶었지만 이서가 정중히 거절했다.“먼저 들어가.” 이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심소희는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사무실에는 온통 이서를 비웃는 얘기들뿐이라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너무 괴로웠다.“언니, 나 그냥 여기서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뭘 만드실 거예요? 만두, 아니면 칼국수? 저도 반죽 잘해요.”이서는 눈을 들어 다소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반죽할 줄 알아?”“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혼자서 밥도 해먹고, 만두도 해먹고 그렇게 학교 다녔어요.”이서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그래, 그럼 토핑 만드는 거 좀 도와줘.”심소희는 앞에 놓인 치즈, 토마토, 바질 등을 보고서야
이서는 남자 셰프의 과장된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요?”“네, 저는 절대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이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피자 한 판을 예쁘게 포장하고 나머지는 구내식당 직원들에게 드렸다.이서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식당 직원들은 남자 쉐프의 곁으로 다가갔다.“쉐프님, 이 총괄 디렉터라는 사람, 다른 사람들 얘기처럼 그렇게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닌 듯한데요. 적어도 요리 면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네요.”남자 쉐프는 이서의 뒷모습을 보며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하은철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사람이 어찌 보통사람이겠어요?”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이서는 포장한 피자를 챙겨서 케빈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호텔은 회사가 제공한 것으로, 신분을 밝히자, 막힘없이 다이랙트로 룸 앞까지 갈 수 있었다.그녀는 노크했다.곧 문이 열렸다.안에 서 있는 사람이 뜻밖에도 지환이라는 것을 보고 이서는 순간 놀라서 멍해졌다.그녀는 다시 한번 방 번호를 확인하고, 착오가 없다는 것을 반복 확인한 후에야 지환을 보며 말했다.“당신이…… 왜 여기 있죠?”지환은 눈가에 옅은 웃음을 띠며 몸을 옆으로 돌려 이서를 들여보냈다.그때서야 이서는 지환 뒤에 ‘아담한’ 노인 한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175센티미터 정도 되 보이는 노인은, 결코 작은 키는 아닌데 지환 옆에 서 있으니 상대적으로 아담해 보였다.이서를 본 노인은 지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지환, 자네 정말 대단하군. 오늘 방문할 손님이 있다는 것도 알고…….”이서가 눈썹을 치켜 뜨고 지환을 보았다.지환은 가볍게 웃었다.두 사람은 소리 없이 교류했고, 노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바로 서우 디자인부 총괄 디렉터, 윤이서 씨?”이서는 그제야 노인을 보고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케빈 씨.”“들어와요.”이서는 고개를
케빈은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되물었다. “방금 그 여자랑 정말 모르는 사이야?”지환은 휴대전화를 한 바퀴 돌리더니 다시 앉아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네가 그녀를 보는 눈빛이 남달랐어. 솔직히 말해봐, 둘이 사귀고 있는 거지? 오늘 네가 나를 찾아온 것도 그녀 대신 사정하러 온 거지? 우리 오랜 지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분명히 해야겠네. 내가 친구의 체면을 안 봐주는 게 아니라, 자네도 알듯이 난 공사가 분명한 사람이네. 네가 그녀를 위해 왔다고 해고,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어. 봐주지 없네.”지환은 웃으며 말했다.“내일 건에 대해 난 한 마디도 안 했는데…….”“정말 아까 그 여자 때문에 온 거 아니야?”“아닌데요.”케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둘이 정말 생판 모르는 사이?”지환은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케빈은 그가 묵인했다고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난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네. 하긴, 너처럼 일에 미쳐 사는 녀석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됐어, 이제 가 봐도 돼.”지환은 외투를 팔뚝에 걸치고 케빈과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총총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 도착했는데 이서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지환이 씨익 웃었다.‘이 녀석, 아직도 화가 나 있나 보군.’이서에게 막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이천의 전화가 먼저 들어왔다.[회장님, 전에 사모님을 메리아트 호텔로 데려간 사람을 알아냈습니다.]지환은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야?”[그게…….]이천은 자료를 보며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사모님의 어머님이 보낸 사람들입니다.]지환은 온몸의 피가 거구로 솟는 것 같았다.“확실해?!”[사람은 이미 잡았고, 그 놈들의 은행 계좌에 찍힌 송금자 이름이 성지영이었습니다…….]이천은 망설이다 물었다.[회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사모님도 참 안 됐다.’‘그녀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이 글쎄 친 엄마라니…….’
”죄송합니다. 일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시간을 깜빡했어요.”임현태는 바로 손사레를 쳤다.“아가씨, 그런 말씀 마세요. 제 일입니다. 얼른 타세요.”심소희는 옆에서 임현태가 이서에게 차 문을 열어주고, 다양한 옵션과 차내 기능들을 보면서 부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이서에게 말했다.“언니, 본가에서 많이 지원해 주나 봐요. 이렇게 출퇴근 전용 차량도 준비해주고…….”‘본가’라는 두 글자는, 마치 한 자루의 칼처럼 소리 없이 이서의 심장을 후벼 팠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눈동자 속에 비친 아픔을 애써 숨겼다.“본가 차량이 아니라 회사에서 제공한 출퇴근용 차량이야.”심소희는 깜짝 놀랐다.“회사요? 그럼 왜 다른 팀장들은 이런 대우가 없어요?”다른 부서 팀장들은 다 스스로 운전하고 다녔다.이서는 멍해졌다.“뭐라고?”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앞좌석에서 운정 중인 임현태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그게…… 다른 팀장들은 다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거 같아서요…….”이서는 눈을 들어 임현태를 한 번 보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언니, 내가 말실수했나 봐요……?”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별말 하지 않았다.임현태는 먼저 심소희를 엘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방향을 바꿔 별장으로 향했다.차안에서 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멈추고 임현태가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에야 이서는 입을 열었다.“임현태 씨.”타고난 직업적 경각성으로 인해 임현태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네, 아가씨.”“왜 회사 다른 부서의 팀장들은 전용차량이 제공되지 않습니까?”임현태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그는 무의식중에 별장을 보려고 했었다.하지만 억지로 참았다.“현태 씨!” 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이게 그렇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가요?”임현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전광화석 사이에 지환이 분부했던 얘기가 번쩍 떠올랐다.“네, 그렇습니다. 아가씨는 회사의 평생 총괄 디렉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