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이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턱을 들어올렸다.“차가 왔네.”이서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미 9시가 넘었다.그녀는 부리나케 입에 빵 한 조각을 밀어 넣고 집을 나섰다. “나 먼저 출근해요.”차에 오른 이서는 지환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케빈이 요 며칠 정통 이탈리아 피자를 미친 듯이 찾고 있다고?’그녀는 입술을 오므렸다.이서는 디자인부에 도착하자마자,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느꼈다.하나같이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며 남몰래 기뻐하는 시선들이었다.뭔가 큰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이서는 사무실로 들어가 심소희를 불렀다.심소희는 들어오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언니, 어떡해요?”“왜?”“방금 케빈이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어?” 이서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럼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 거야?”“방금 갔대요. 부총괄님이 모셔왔다고 하던데, 게다가 부총괄님 디자인 시안 보고, 크게 칭찬하고 매우 만족하셨다고 하더라고요…….”말할수록 심소희의 목소리는 작아졌다.“언니……. 이제 어떡해요?”이서는 잠깐 침묵을 하다가 곧 웃으며 물었다.“케빈 씨가 장지완의 디자인 시안을 채택하기로 확정했어?”“아직요, 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그런 것 같아요.”이서는 여전히 웃었다.“그럼, 아직 최종 결단을 내린 건 아니잖아.”“윤 총괄님은 정말 갈 데까지 가봐야 납득할 건 가봐요.” 케빈을 막 배웅하고 돌아오던 장지완은 이서 사무실을 지나다가, 마침 둘의 대화를 듣고 참지 못하고 조롱하듯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장지완을 바라보았다.“내 유일한 장점이 인내심이 있다는 거예요.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장지완은 몸을 곧게 펴고 비꼬듯 말했다.“또 이런 ‘존버정신’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보니 하은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물 건너 간 거 같은데?”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장지완은 이서에게 몇 걸음 다가가서
그는 이번 대결에서 이서가 지면, 보스가 기분 상할까 봐 염려되었다.“윤 총괄 내 뜻은…….”[저는 괜찮습니다, 별일 없으면 저는 구내식당 주방으로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이서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이미 끊긴 전화를 붙잡고, 김청용은 뜨거운 감자가 될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왜 윤이서와 장지완이 경쟁하도록 이런 구도를 만들었을까? 괜한 짓 했어.’‘만약 이번 대결에서 윤이서가 진다면, 나도 사장자리에서 내려올 각오해야겠군…….’……이서가 회사 구내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회사 전체에 퍼졌다.그녀는 곧 회사 전체의 조롱거리가 되었다.“자기가 대결에서 승산이 없는 걸 뻔히 알고 자포자기하는 건가?”“정말 어이없네. 대체 회사는 왜 나오는 거야? 그렇게 밥하는 게 좋으면 집에서나 실컷 할 것이지……. 아님 아예 처음부터 식당 보조자리나 지원하던가…….”“본래부터 능력 없고 연애에만 목메던 여자가, 갑자기 운 좋게 콘테스트에서 수상 한 번 한 거 가지고, 자기가 정말 무슨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줄 아나 봐. 실전에서 진짜 승부를 겨뤄봐야 자기 분수를 아는 거지.”“내일 좋은 구경거리나 기다려보자고.”“…….”한쪽에 서서 밀가루 반죽하고 있는 이서를 바라보던 심소희는 자기도 나서서 돕고 싶었지만 이서가 정중히 거절했다.“먼저 들어가.” 이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심소희는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사무실에는 온통 이서를 비웃는 얘기들뿐이라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너무 괴로웠다.“언니, 나 그냥 여기서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뭘 만드실 거예요? 만두, 아니면 칼국수? 저도 반죽 잘해요.”이서는 눈을 들어 다소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반죽할 줄 알아?”“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혼자서 밥도 해먹고, 만두도 해먹고 그렇게 학교 다녔어요.”이서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그래, 그럼 토핑 만드는 거 좀 도와줘.”심소희는 앞에 놓인 치즈, 토마토, 바질 등을 보고서야
이서는 남자 셰프의 과장된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요?”“네, 저는 절대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이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피자 한 판을 예쁘게 포장하고 나머지는 구내식당 직원들에게 드렸다.이서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식당 직원들은 남자 쉐프의 곁으로 다가갔다.“쉐프님, 이 총괄 디렉터라는 사람, 다른 사람들 얘기처럼 그렇게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닌 듯한데요. 적어도 요리 면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네요.”남자 쉐프는 이서의 뒷모습을 보며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하은철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사람이 어찌 보통사람이겠어요?”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이서는 포장한 피자를 챙겨서 케빈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호텔은 회사가 제공한 것으로, 신분을 밝히자, 막힘없이 다이랙트로 룸 앞까지 갈 수 있었다.그녀는 노크했다.곧 문이 열렸다.안에 서 있는 사람이 뜻밖에도 지환이라는 것을 보고 이서는 순간 놀라서 멍해졌다.그녀는 다시 한번 방 번호를 확인하고, 착오가 없다는 것을 반복 확인한 후에야 지환을 보며 말했다.“당신이…… 왜 여기 있죠?”지환은 눈가에 옅은 웃음을 띠며 몸을 옆으로 돌려 이서를 들여보냈다.그때서야 이서는 지환 뒤에 ‘아담한’ 노인 한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175센티미터 정도 되 보이는 노인은, 결코 작은 키는 아닌데 지환 옆에 서 있으니 상대적으로 아담해 보였다.이서를 본 노인은 지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지환, 자네 정말 대단하군. 오늘 방문할 손님이 있다는 것도 알고…….”이서가 눈썹을 치켜 뜨고 지환을 보았다.지환은 가볍게 웃었다.두 사람은 소리 없이 교류했고, 노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바로 서우 디자인부 총괄 디렉터, 윤이서 씨?”이서는 그제야 노인을 보고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케빈 씨.”“들어와요.”이서는 고개를
케빈은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되물었다. “방금 그 여자랑 정말 모르는 사이야?”지환은 휴대전화를 한 바퀴 돌리더니 다시 앉아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네가 그녀를 보는 눈빛이 남달랐어. 솔직히 말해봐, 둘이 사귀고 있는 거지? 오늘 네가 나를 찾아온 것도 그녀 대신 사정하러 온 거지? 우리 오랜 지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분명히 해야겠네. 내가 친구의 체면을 안 봐주는 게 아니라, 자네도 알듯이 난 공사가 분명한 사람이네. 네가 그녀를 위해 왔다고 해고,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어. 봐주지 없네.”지환은 웃으며 말했다.“내일 건에 대해 난 한 마디도 안 했는데…….”“정말 아까 그 여자 때문에 온 거 아니야?”“아닌데요.”케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둘이 정말 생판 모르는 사이?”지환은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케빈은 그가 묵인했다고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난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네. 하긴, 너처럼 일에 미쳐 사는 녀석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됐어, 이제 가 봐도 돼.”지환은 외투를 팔뚝에 걸치고 케빈과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총총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 도착했는데 이서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지환이 씨익 웃었다.‘이 녀석, 아직도 화가 나 있나 보군.’이서에게 막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이천의 전화가 먼저 들어왔다.[회장님, 전에 사모님을 메리아트 호텔로 데려간 사람을 알아냈습니다.]지환은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야?”[그게…….]이천은 자료를 보며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사모님의 어머님이 보낸 사람들입니다.]지환은 온몸의 피가 거구로 솟는 것 같았다.“확실해?!”[사람은 이미 잡았고, 그 놈들의 은행 계좌에 찍힌 송금자 이름이 성지영이었습니다…….]이천은 망설이다 물었다.[회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사모님도 참 안 됐다.’‘그녀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이 글쎄 친 엄마라니…….’
”죄송합니다. 일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시간을 깜빡했어요.”임현태는 바로 손사레를 쳤다.“아가씨, 그런 말씀 마세요. 제 일입니다. 얼른 타세요.”심소희는 옆에서 임현태가 이서에게 차 문을 열어주고, 다양한 옵션과 차내 기능들을 보면서 부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이서에게 말했다.“언니, 본가에서 많이 지원해 주나 봐요. 이렇게 출퇴근 전용 차량도 준비해주고…….”‘본가’라는 두 글자는, 마치 한 자루의 칼처럼 소리 없이 이서의 심장을 후벼 팠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눈동자 속에 비친 아픔을 애써 숨겼다.“본가 차량이 아니라 회사에서 제공한 출퇴근용 차량이야.”심소희는 깜짝 놀랐다.“회사요? 그럼 왜 다른 팀장들은 이런 대우가 없어요?”다른 부서 팀장들은 다 스스로 운전하고 다녔다.이서는 멍해졌다.“뭐라고?”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앞좌석에서 운정 중인 임현태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그게…… 다른 팀장들은 다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거 같아서요…….”이서는 눈을 들어 임현태를 한 번 보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언니, 내가 말실수했나 봐요……?”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별말 하지 않았다.임현태는 먼저 심소희를 엘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방향을 바꿔 별장으로 향했다.차안에서 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멈추고 임현태가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에야 이서는 입을 열었다.“임현태 씨.”타고난 직업적 경각성으로 인해 임현태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네, 아가씨.”“왜 회사 다른 부서의 팀장들은 전용차량이 제공되지 않습니까?”임현태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그는 무의식중에 별장을 보려고 했었다.하지만 억지로 참았다.“현태 씨!” 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이게 그렇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가요?”임현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전광화석 사이에 지환이 분부했던 얘기가 번쩍 떠올랐다.“네, 그렇습니다. 아가씨는 회사의 평생 총괄 디렉터입
지환은 이서의 쇄골에 코를 파묻고 그녀의 익숙한 향기를 맡으며, 머리속에는 성지영과 윤재하가 딸 이서에 대해 저지른 종종 만행이 스쳐지나 갔다.이렇게 연약한 몸으로 그동안 어떻게 부모의 배신을 견디고 버텨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그는 더욱 힘껏 이서를 안았다.“괜찮아, 그냥 안아주고 싶어.”이서의 심장은, 손으로 꽃잎을 튕기듯 가볍게 떨렸다.그녀는 지환이 안도록 내버려 두었다.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 멀리 떨어진 두 심장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았다.지환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이서의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갑자기 쇄골에서 서늘한 기운이 번졌다.그녀는 깜짝 놀랐다. 순간 쏟아지던 잠도 온데 간데없이 달아났다.눈을 떠보니 지환이 쇄골에 키스하며 가볍게 깨물고 있었다.“개띠에요? 왜 물어요?”이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지환은 눈을 들어 쇄골 부위 새겨진 예쁜 빨간색을 쓰다듬었다.“앞으로 너는 내 것이야.”이서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를 밀었다.“나 배고파요.”지환은 일어나서 주방에 가서 음식을 내왔다.이서는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지환은 이서 맞은편에 앉아 말없이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이서야, 우리 아이 갖자.”이서에게 아이 얘기를 꺼낸 건 벌써 두 번째다.지금의 심경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잠깐 멈칫 하더니 계속 밥을 먹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지환의 눈동자가 굳어졌다.“당신은 분명히 좋은 엄마가 될 거야.”입안의 음식이 모래알 같이 느껴졌다. 이서는 코가 시큰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슬그머니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그건 모르는 거예요. 사람은 변하잖아요. 엄마가 된다는 것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인데…… 아마도 처음에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거예요. 그러나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삶에 회의감이 느껴지고 후회하고 포기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지환은 이서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눈꺼풀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서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실로 불려갔다.모두들 숙연한 표정이었다.그러나 이서를 보는 순간, 다들 좋은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장지완.조소와 멸시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김청용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한 어투로 이서에게 말했다.“윤 총괄님,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오늘 아침에 케빈 씨의 수행비서가 연락 왔습니다. 우리와 합작하는데 동의하셨고 합니다!”이서는 입술을 오므리고 옅게 웃었다.“잘 됐네요.”“그런데…….”김청용은 이서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케빈 씨 쪽에서는 장지완 씨의 디자인 시안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웃고 있던 이서의 표정이 잠깐 경직되었다가 곧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케빈 씨가 제 시안을 보셨나요? …… 안 보셨죠? 보실 생각이 없대요?”“네……. 그런 것 같습니다.”이서는 살짝 웃었다.“그래도 한번 보여 드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어디서 나온 배짱일까?” 장지완은 경멸하며 웃었다.“케빈 씨가 그렇게 한가한 분이신 줄 아나 봐요. 당신이 뭐라고, 그 분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 참나 원…….”이서는 차분한 표정으로 장지완을 바라보았다.“그분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패키지 디자인에 대해 진심인 사람입니다. 저도 이번 시안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완성했습니다.”장지완은 냉소하였다.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윤 총괄님, 그렇게 안 봤는데, 근자감이 넘치는 분이셨군요. 혹시 그거 아세요? 자신감이 지나치면 교만입니다…….”재무팀 팀장도 무시하는 어투로 말했다.“이런 자신감은 ‘뷰티 페이스’ 입상하면서 생긴 거겠죠? 그러나 그걸 아셔야지, ‘뷰티 페이스’는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콘테스트였다면,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장지완 씨 디자인 업계에서 10년 동안 몸담고 있으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사람이에요, 연공서열을 따져도, 아마 선배라고 불러야 할 텐데요. 그러니까 장지완 씨에게 졌다고 해서 X 팔려 할 필요 없어요. 이
현재…….장지완의 안색이 백지장이 되었다가, 곧 정상으로 회복되었다.“선생님, 우리 계약서에 사인부터 할까요?” 그녀는 앞으로 나가서 낮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그래, 그래요, 계약부터 해야지. 윤 총괄 얼굴 보니 너무 반가워서 오늘 온 목적을 깜빡했네.”말하면서 몸을 돌려 자리로 가려고 했지만 이서가 불려갔다.“선생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그럼요.”“이번 디자인 시안, 제 것…… 아직 안 보셨죠? 혹시 잠깐 시간을 내셔서 제 시안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케빈은 머뭇거렸다.“그런데…… 지완 씨의 시안이 이미 만족스러운데,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캐빈의 말을 듣고 장지완은 득의양양했다.“들었죠, 굳이 뭐 하러 봅니까? 윤 총괄, 내가 아무리 그래도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몸담은 디자이너인데, 굳이 나와 비교하겠다는 건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 격이지, 뭐 하러 굳이 굴욕을 자초할까요?”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지완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뭐 하러 굳이 시간 낭비해? 빨리 계약서에 사인이나 하지.”“내 말이! 질질 끌다가 변고가 생기면 윤 총괄이 책임 질 수 있겠어?”“그러게, 자기가 회사 오너야 뭐야? 칫!”많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이서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저는 그래도 선생님께서 한번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입니다.”케빈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작은 목소리도 말했다.“그러세, 나도 윤 총괄의 실력을 한 번 보고 싶네.”이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회의실에서 나와 디자인 시안을 사무실로 가지러 갔다.이서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장지완은 참지 못하고 케빈에게 말했다.“선생님, 사실 윤 총괄은 이쪽 관련 업무 경험이 전무한 초보 디자이너입니다. 만약 이번 콘테스트에서 실수가 없었더라면 윤이서 씨가 어떻게 우승을 하고 디자인 총괄 디렉터 자리를 꿰찰 수 있겠어요? 아마 윤이서 시안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일 거예요.”케빈은 손을 흔들었다.“괜찮아, 봐도 시간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