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완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이서 씨, 졌으면 깔끔하게 승복해야지, 왜 남의 작품을 헐뜯는 거죠? 당신의 인품은 작품처럼 졸렬하네요! 이제야 왜 당신이 운전기사랑 결혼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가네…….”케빈은 이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이서와 지환 두 사람 사이에 섬싱이 있는 줄 알았는데,윤이서는 이미 결혼한 유부녀라니…….그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귓가에 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스킨 케어 업계에서 덕망이 높으신 대가라는 사실에 대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선생님과 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님께서는 상업화된 디자인, 즉 상업적 미학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이것이 바로 선생님의 상품이 훌륭한 데 비해 판매량이 따라주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다들, 덕망이 높은 대선배 앞에서 직설적으로 말을 뱉는 이서가 너무 오만방자하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편으로, 케빈이 계약을 번복할까 봐 조마조마했다.김청용조차도 이서가 너무 무례했다고 느꼈다.그러나 잠시 뒤, 회의실에서 케빈의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하하하, 재미있네. 사실은 나도 오랜 시간 줄곧 이 문제를 고민해 왔어. 왜 내 제품이 십여 년 전보다 판매량이 훨씬 감소했을까……. 처음에는, 나같은 노인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다시 생각해 보니, 스킨 케어 분야는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시대에 상관없이 제품의 효능만 좋다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출시하고 보니 판매량이 매년 급감하고 있더군? 홍보가 제대로 안 된 건지, 판매 경로가 잘못된 건지 정말 고민 많이 했는데……, 오늘, 윤 총괄이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어. 허허, 족집게가 따로 없네. 내 문제점을 단번에 콕 집어내다니. 십여 년 전, 내가 만든 수분 마스크 팩이 인기를 끌면서 운 좋게 이 업계에서
“세상에, 나 소름 돋았어!”“어머나, 미쳤어! 정말 기가 막히네! 10년 이하 짬밥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건데!”“허허, 미대 가봐, 10년 배웠다고 이런 작품 만들어낼 수 있는지? 대박이다, 이게 어디 단순한 상업디자인이야,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미학과 상업을 겸비한 신의 작품이지!”다시, 비교해보니 장지완의 12화 시리지가 더없이 평범해 보였다.케빈은 이서의 작품에서 시선을 떼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결정했어. 윤 총괄 시안으로 하겠네!”케빈의 말을 듣고, 장지완은 화가 나서 얼굴 전체가 일그러졌다.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케빈이 말을 이었다.“지완 씨 작품도 좋지만, 윤 총괄의 시안에 비하면, 음…… 뭐라고 할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천양지차, 그래 천양지차야. 지완 씨, 보아하니 앞으로 윤 총괄에게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네.”마지막 한마디에 장지완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10년 넘게 이 바닥에서 버틴 나더러 초짜한테 배우라고!?’모두들 안색이 제각각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김청용은 오히려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이서가 장지완에게 지면, 어떻게 보스에게 보고해야 하나 난처했다.계약을 마친 케빈은 이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윤 총괄, 다음에 우리 꼭 다시 보게나.”“네. 저도 선생님이랑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차에 올라타서 케빈은 이서와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차가 일정한 거리를 달린 뒤에서 그는 개탄했다. “윤 총괄…… 보통내기 아니야. 이미 결혼했다니 아쉽군. 그렇지 않으면 지환에게 소개해주고 싶은데…….”앞 좌석의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저도 두 분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케빈은 고개를 저었다.“아쉽다, 아쉬워!”이때 케빈을 배웅하러 나온 각 팀의 팀장과 부팀장들은 모두 흐름을 바꾸어 이서를 에워싸고 한바탕 칭찬을 해댔다.“윤 총괄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까다롭기도 유명한 캐빈 씨를 한 방에 설득시키다
디자인팀으로 돌아온 이서는 사무실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달라졌다.더 이상 이전의 경멸과 무시가 아닌,놀라움과 경외의 눈빛이었다.이서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 명씩 훑어보며 말했다.“앞으로 디자인팀은 팀원들 간에 펼쳐지는 선의의 경쟁은 적극 권장하는 바이지만 팀원들을 비방하고 훼방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자신의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주기시 바랍니다. 우리 잘 해봅시다.”이 말은 장지완을 따랐던 무리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한 거였다.이서는 말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이서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온 심소희는 우상을 바라보듯, 얼굴에 존경심이 묻어났다.“언니, 리스팩해요, 이전부터 알아봤지만…… 언니, 나 오늘부터 언니 1호팬 할래요! 그리고 언니, 그 눈…… 어떻게 그렸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이서는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SNS에 팔로워 수가 기화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각 부서 직원들이 그녀를 팔로우했기 때문이다.그녀는 한 명씩 맞팔했다.방금 핸드폰을 내려놓았는데, 또 카톡이 들어왔다. 확인해보니 회사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우리 그러고 보니, 아직 윤 총괄님 환영식을 하지 않았네요, 오늘 저녁에 하는 건 어떨까요?]아래에는 모두 찬성한다는 얘기들이었다.이서는 사람들이 건네는 선의를 느끼며 문득 한 마디 생각이 났다. ‘강한 사람 주위에는 선의의 사람들이 따르는구나…….’ [그래요.]그녀도 답장을 하고는 핸드폰을 한쪽에 두었다.옆 사무실.장지완은 또 컵 하나를 박살냈다.옆에 있던 강수지도 하마터면 다칠 뻔했다. 장지완이 책상 위에 놓인 비싼 필통을 들고 화풀이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바삐 달려가서 장지완의 손을 잡았다.“언니, 진정하세요. 나는 언니 디자인이 윤이서보다 몇 백배나 낫다고 생각해요. 언니가 부족한 건 디자인 실력이 아니라…….”강수지는 장지완의 귀에 대
지환은 곧 전화를 받았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우리 자기가 어쩐 일일까나?]전류에서 가늘게 들려오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막에서 메아리 치자, 이서는 자기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오늘 밤, 회사에서 환영 파티 하는데……, 저랑 같이 갈래요?”지환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당신 회사 환영 파티인데, 내가 가서 뭐해? 난 자기 회사 사람도 아닌데……?”“…….”그녀는 왠지 지환이 일부러 이런다고 생각했다.“당연히…….”[뭔데?] 지환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안이 벙벙해진 부하 직원을 뒤로하고, 낮은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뭐긴…… 가족이지! 맞지?]이서는 어이가 없었다.지환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고, 남자다운 중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오늘 드디어 나를 가족으로 인정한 셈인가?]“암튼 올 건가요? 말 건가요?” 이서의 얼굴이 달아올랐다.[이렇게 좋은 기회에, 나도 당연히 가고 싶은데……, 오늘 선약이 있어 갈 수가 없네.]지환은 아쉬움을 내뱉었다.지환의 못 온다는 말에 이서는 살짝 실망감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답했다.“응, 알겠어요.”전화를 끊고, 지환은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설정한 이서의 사진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이천…….”그는 일어나서 양복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가며 물었다.“사람 왔어?”“네, 이미 밑에 와있습니다. 지금 약속 장소로 가실 겁니까?”“응.” 지환은 긴 다리를 활보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이천은 바로 2층 버튼을 눌렀다.“하경철 어르신 쪽도 출발했다고 합니다.”지환은 속눈썹을 내리고 가볍게 ‘응’ 소리를 냈다.오늘 밤 하경철과 만나기로 했다.그의 아내를 보여줄 시간이다.환영 파티 장소는 사무실 반대편의 술집으로 정했다. 퇴근 후 이서와 심소희는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전에 이서를 멀리하던 때와 달리 오늘은 동료들이 하나 둘씩 열정적으로 이서의 곁에 둘러서서
성지영은 정곡을 찔린 듯 갑자기 손을 들어 이서의 얼굴을 때렸다.“내가 네 엄마라고,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말 함부로 했어?!”떠들썩한 주위 소리에 ‘찰싹’하고 뺨을 후려 소리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자갈처럼 소리가 묻혀버렸다.갑작스러운 성지영의 손찌검에 이서도 당황했다. 그녀는 혀끝을 입천장에 올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성지영을 째려보았다.성지영은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그녀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마치 한 대 후려 맞은 사람이 그녀인 것 같았다.이서는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성지연을 바라보았다.“내 엄마라고요, 그럼 물어 볼게, 내 생일은 기억해요?”성지영은 깜짝 놀란 듯 한참이 지나서야 오물거리며 말했다.“물론…… 당연히 알고 있지.”이서는 한눈에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예전에는 매년 생일 때, 국내건 외국이건 상관없이 성지영과 윤재하가 해외까지 날아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던 그때가 생각났다.그러나 부모의 바람대로 하은철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은 모두 잊어버렸다.‘마치…… 친자식이 아닌, 그냥 1+1 덤으로 딸려온 존재처럼…….’‘쓸모가 있을 때에야 모든 걸 기억하고 챙길 가치가 있는 존재…….’이서는 문득 지환이 생각났다.갑자기 그의 품이 너무 그리웠다.그녀는 몸을 곧게 펴고, 아직도 주절주절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성지영을 보며 몸을 돌려 망망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성지영은 쫓아가려 했지만 망망한 인파 속에서 이서의 뒷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메이아트 호텔.“할아버지…….”하은철은 밤새 마음이 불안했다.“삼촌 아직 안 오셨어요?”하경철은 하은철을 흘겨보며 가볍게 질책했다.“침착 좀 해라. 숙모 만나는 자리인데 뭔 그리 호들갑이냐?”하은철은 앉아서 웃었다.“할아버지, 저 정말, 정말 궁금해 미치겠어요. 도대체 어떤 마력을 가진 여자길래 삼촌이 기꺼이 결혼까지 했는지…….”하경철은 눈썹을 찌
하지만 보통 성형녀 느낌에 지적인 분위기가 더했다.“이쪽은…….”하경철이 떠보듯 물었다. “작은 아버님, 안녕하세요!” 여자의 눈동자에는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제가 바로 지환 씨의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드디어 만나 뵙게 되었네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은철을 보고는, 놀라움은 더욱 감출 수 없었다.“도련님도 계셨었네요!”하은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어리둥절해서 지환을 바라보았다.이 여자는 상상 속의 숙모, 작은 엄마의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우아함도, 단아함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하경철도 이 여자가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이서가 아니면 됐어.’“앉으세요.”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하게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이서정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정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지환은 그녀를 흘겨보았다.이서정은 감전된 듯 책상 밑에 놓인 손가락은 불안한 듯 꼬며 말을 아꼈다.하은철과 하경철은 모두 이 작은 동작에 주의하지 않았다.“정이라고 했나?” 하경철은 주 집사에게 공용 젓가락을 가지고 이서정에게 음식 한 점을 집어 주라고 했다.“지환과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3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하경철은 내색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 해댔다. 이서정도 잘 받아 넘겼다. 하경철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은철을 바라보았다.“은철아, 봐봐, 네 삼촌도 이제 가정을 이루었어. 너와 이서도 이제 사랑싸움 그만하고 빨리 혼사 치르자. 삼촌과 동반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좋고……. 안 그러냐? 지환아…….”하경철은 이서를 언급하며 지환을 뚫어지게 보았다.지환은 별 반응 없이, 눈 밑에 가벼운 웃음기가 떠올랐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서정을 보고 모든 흥미를 잃어버린 하은철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섰다.“할아버지, 삼촌,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먼저 일어나 봐야겠습니다.”지환은 눈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래, 가봐.”그가
요 며칠 그녀는 대스타가 되는 꿈을 매일 꾸었다.오늘 저녁 하은철과 하경철을 만난 뒤, 이서정은 그녀의 꿈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지환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하은철의 삼촌인 건 확실했다!하씨 가문은 국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다. 삼류 무명배우가 뿐만 아니라 무명감독을 유명한 대 스타, 대감독으로 치켜세우는 것도 말 한 마디에 불과했다.지환은 흥분해서 들떠 있는 이서정에게 차가운 찬물을 끼얹었다.“하지만…… 네 신분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생기면 이번 생에 좋은 날은 끝날 줄 알아.”이서정은 몸이 으스스 떨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바삐 대답했다.“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들어가.”지환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고급 차량 한 대가 그들 앞에 섰다.이서정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랐다.이천은 차가 멀리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아갔다.“회장님, 마음에 드십니까?”“괜찮아, 아주 영리해. 하경철한테 정체를 들키지만 않으면, 어떤 요구사항도 다 충족시켜 줘.”“네.” 이천은 말을 마치고는, 지환을 바라보며 뭔가를 얘기하려다 멈추었다.그러고는 한참 뒤에야 물었다.“회장님, 왜 사모님께 회장님 신분을 직접 말씀드리지 않습니까?”지환은 그를 흘겨보았다.이천은 곧 바삐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지환은 그를 질책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그는 드디어 두려움이라는 게 뭔지 알기 시작했을 뿐이다.그래서 모험을 할 수 없었다.……같은 시각 민씨 집안.여전히 이서의 거처를 찾지 못한 경호원들을 앞에 두고, 민호일은 더는 욕설을 퍼부을 힘도 없었다.“꺼져, 꺼져, 멍청이 새끼들 싹 다 꺼져.”부하들은 서로 쳐다보며 방을 나갔다.실내가 잠깐 조용해지나 싶다니 곧 문 밖에서 황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좋은 소식입니다!”민호일은 용수철이 튀어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윤이서 거처를 알아냈어?”“아니요!” 들어
지환은 사람을 품에 꼬옥 안았다.“아니, 많이 안 기다렸어, 배고파?”“아니요. 당신은?”“난 조금…….”아까 호텔에서 별로 먹지 않았다.“그럼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이서는 지환이 자기를 안도록 내버려두었다. 심지어 몸을 슬쩍 움직여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그의 품은 너무 따뜻했다.“너는?”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난 괜찮아요. 벌써 잊어버렸어요?”“어떠한 순간에도, 당신의 요구가 최우선이라는 것만 기억해.”이서는 멍해지더니 곧 자조하며 웃었다.“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 아닌데……. 그나저나 뭐 먹고 싶어요?”지환은 이서의 어깨를 바로잡고 엄숙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당신은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야! 당신이 있어서 살 맛이 나, 당신이 없으면 난 죽은 목숨이야.”이서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녀는 지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의 두 눈은 바다처럼 깊고 맑았다.“나…… 정말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에요?”이서를 꼭 껴안은 지환의 몸은 약간 떨렸다. 아득한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더없이 미묘하면서도 공허했다.“응, 아주 중요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지 마, 알았지?”지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서는, 옷 속에 가려진 그의 탄탄한 복근과 쿵쾅거리며 미친 듯이 뛰는 그의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지환을 꽉 안았다. 마치 세상 전부를 안은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잠시 뒤, 지환의 품에서 고개를 든 이서가 물었다.“자, 이제 우리 뭐 먹으러 갈까요? 나보고 정하라고 하지 말고…….”지환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그럼 자기가 추천하는 걸로 먹으면 되겠네.”이서는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보쌈은 어때요?”길 건너편의 보쌈집에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문전성시를 이루니 틀림없이 맛이 좋을 것이다.두 사람은 곧 식당으로 향했다.대부분 포장하는 손님들이라 가게 안에는 빈 자리가 몇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