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사람을 품에 꼬옥 안았다.“아니, 많이 안 기다렸어, 배고파?”“아니요. 당신은?”“난 조금…….”아까 호텔에서 별로 먹지 않았다.“그럼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이서는 지환이 자기를 안도록 내버려두었다. 심지어 몸을 슬쩍 움직여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그의 품은 너무 따뜻했다.“너는?”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난 괜찮아요. 벌써 잊어버렸어요?”“어떠한 순간에도, 당신의 요구가 최우선이라는 것만 기억해.”이서는 멍해지더니 곧 자조하며 웃었다.“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 아닌데……. 그나저나 뭐 먹고 싶어요?”지환은 이서의 어깨를 바로잡고 엄숙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당신은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야! 당신이 있어서 살 맛이 나, 당신이 없으면 난 죽은 목숨이야.”이서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녀는 지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의 두 눈은 바다처럼 깊고 맑았다.“나…… 정말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에요?”이서를 꼭 껴안은 지환의 몸은 약간 떨렸다. 아득한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더없이 미묘하면서도 공허했다.“응, 아주 중요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지 마, 알았지?”지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서는, 옷 속에 가려진 그의 탄탄한 복근과 쿵쾅거리며 미친 듯이 뛰는 그의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지환을 꽉 안았다. 마치 세상 전부를 안은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잠시 뒤, 지환의 품에서 고개를 든 이서가 물었다.“자, 이제 우리 뭐 먹으러 갈까요? 나보고 정하라고 하지 말고…….”지환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그럼 자기가 추천하는 걸로 먹으면 되겠네.”이서는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보쌈은 어때요?”길 건너편의 보쌈집에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문전성시를 이루니 틀림없이 맛이 좋을 것이다.두 사람은 곧 식당으로 향했다.대부분 포장하는 손님들이라 가게 안에는 빈 자리가 몇 곳
이서는 연거푸 물을 몇 모금 들이키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열을 꺾었다.지환은 그녀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일부러 물었다.“왜 그래?” 이서는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그를 힐끗 보았다.“나 바람 좀 쐬고 올게요.”말이 끝나자, 얼른 지환의 마수에서 벗어나 식당 밖으로 나와 임하나와 어디로 갈지 이야기를 나누었다.하지만 ‘딸기’를 얘기할 때마다 이서는 왠지 모르게 온몸이 꺼림칙했다. 지환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바로 이때 이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회장님, 민씨 가문에서 이서정 씨 뒷조사를 하고 있습니다.]지환은 눈동자를 약간 움츠리고 긴 손가락으로 답장을 보냈다.[조사하라고 해.]약 5분이 지나자, 이천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하경철 어르신 쪽도 이서정 씨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조사하고 있는데다 민씨 집안에서 사모님에 대한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 우리 쪽의 일손이 부족할까 염려됩니다.]잠깐 고민하던 지환은 곧 답장을 했다.[걱정 마, 곧 민씨 집안에서 더 이상 이서를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문자를 보내고, 지환은 휴대전화를 식탁에 엎어 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이 집의 보쌈 맛은 확실히 괜찮았다. 야들야들한 고기에 구수한 고기향이 더해지면서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게 맛이 좋았다.예전의 지환이라면 절대 먹지 않았을 음식이었다.이천은 지환이 보내온 문자를 보고 아리송했다.‘민예지가 정신 이상장애를 보이면서 민호일이 사모님의 정보를 캐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특히 회장님을 찾으려고……. 아직 하나도 캐낸 게 없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임하나와 통화를 마친 이서는 문밖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나서야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마침 지환이 배불리 먹고, 우아하게 입을 닦고 있었다.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서는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지환의 집에 한번 다녀온 게 아니라면, 그녀도 임하나가 얘기한 것처럼 그가 정말 귀공자가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다 드셨어요? 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도둑이 제발 저린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는 걸 잘 알 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이서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저…… 저분은 여기 어떻게 왔어?”이서는 입술을 오므리고 옅게 웃었다.“이상언 씨 국내에 친구가 별로 없잖아. 그래서 같이 놀러 가면 재미 있을 거 같아서…….”말을 마치고 임하나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하나야, 너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니?”켕기는 게 있는 임하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아, 아니야. 없어.”“그래? 그런데 난 왜 자꾸 너희 두 사람 이상한 거 같지?!”“아니야!”임하나는 극력 부인하였다. 곁눈질로 이상언이 다가오는 걸 본 그녀는 온 몸이 경직되었다.이상언은 몸을 숙여 임하나의 손에 든 캐리어를 건네받으려 했다.“주세요.”“아니에요…….”임하나는 감전된 것처럼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곧 자신의 행동이 너무 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말을 덧붙였다.“나 혼자 들 수 있어요…….”이서는 웃으며 난처해하는 임하나를 보았다.“하나야, 너 상언 씨 차 타고 가. 나 먼저 간다.”“…….”이서가 차에 타자, 임하나와 이상언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겨졌다.이상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임하나의 캐리어를 들었다.“타세요.”임하나는 제자리에 서서 타기도 뭐하고, 안 타기도 뭐하고 난처하기 그지없었다.이상언은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잘 생긴 이목구비는 이 동작으로 인해 더욱 얼굴이 환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피곤이 역력했던 기색마저 말끔히 사라진 듯했다.“왜 그래요?”임하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했다.“우리…….”“하나 씨가 말했잖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자고. 아무 일도 없었으니, 우리는 여전히 친구잖아요……. 하나 씨는 친구랑 있을 때 어색한가요?”임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우리……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할 수 있을까요?”“뭐…
이서는 이 모든 상황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마음이 착잡해진 그녀는 지환을 보며 말했다.“우리 이제 올라가요.”이 말은 지환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상언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기도 했다.“응.” 지환이는 믹서기를 들고 말했다.“가자.”임하나는 앞장서서 맨 앞에서 걸었다.이서와 지환이 그 뒤를 이었다.맨 뒤에 있는 사람은 이상언이었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귓가에 울리는 카톡 소리를 들으며 임하나는 짜증을 냈다.“요즘 여학생들, 정말 적극적이네.”말을 내뱉고서야 그녀는 자기 말에 질투의 냄새가 따분하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이서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래, 우리 때랑은 완전히 다르지. 그들이 받은 교육이 우리 때와는 다르니, 다를 수 밖에…….”임하나는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이서를 한 번 보았다.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다행히 방이 3층에 있어서 곧 도착했다.네 사람이 갈라섰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지환은 이서를 손목을 잡고 문에 기대어 키스를 퍼부었다.오늘 그의 키스는 평소에 없던 인내심과 부드러움이 더해졌다.5분 뒤.지환은 이서를 놓아주며 자기 이마를 이서의 이마에 대고, 그윽한 눈으로 이서의 정욕에 가득 찬 눈빛을 보며 못된 웃음을 지었다.“원해?”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지만 눈동자 속의 욕망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등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었다.“언행 불일치는 좋은 품성이 아닌데…….”이서는 지환이 다음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밖으로 그는 큰 손을 거두고 허리를 약간 굽혀 이서의 눈 밑에 다가갔다.“이것은 전채일 뿐이야. 먼저 딸기 주스 만들어 줄게.”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수도꼭지를 틀어 딸기를 씻었다.이서는 여유만만하게 딸기 주스를 준비하고 있는 지환을 바라보며 빨간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그럼 하나한테 좀 다녀올 게요.”말을 마
하나의 엄마는, 남편이 사흘이 멀다 하고 밖에서 바람을 피워도 남편과 이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전통적 가치관의 소유자였다.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불륜-발각-이혼 제기-부결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매번 쫓아다니던 잘 생긴 남자가 자기에게 넘어왔다 싶으면, 그녀는 상대방과 연락을 끊거나 잠수를 타고 헤어지는 루틴을 반복했다. 임하나는 쓴웃음을 지었다.“너도 확실하지는 않잖아. 난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 아니야. 게다가, 누군가에게 구속당하는 것도 싫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을 쫓아다니는 게 더 좋아.”이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임하나는 애써 밝은 척했다.“내 얘기는 그만하고, 너랑 지환 씨는 어때? 이제 진짜 화해한 거야?”이서는 가볍게 대답했다.“응, 나도 한번 잘 해 보려고…….”임하나는 부러워하며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야, 넌 나보다 훨씬 용감하고 씩씩해.”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용감한 게 아니라, 상처를 받는 것보다 그를 잃는 게 더 두려운 거야…….”임하나는 순간 멍해졌다. “너…… 정말 지환 씨 사랑하는구나?”이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예전에는 하은철에 대한 내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최면 같은 거였어.모든 사람들이 나와 하은철은 결혼할 운명이라고 얘기했어. 그래서 내가 처음 하은철을 만났을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 사람이 내 미래의 남편이니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었어.8년 동안 나는 두려움도 없었고, 미래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물론 사랑의 즐거움도, 고통도 느껴본 적이 없었어.나는 마치 결혼이라는 임무를 완수하는 위한 기계처럼, 매일 실제행동으로 하은철을 사랑하는 임무를 완수했어.근데 지환 씨랑 함께 하면서, 모든 게 다 변했어.지환 씨를 잃을 까봐 노심초사하고 걱정돼. 심지어 작은 달콤함이 나를 세상 행복하게 만들고, 작은 응어리가 나를 오래동안 신경
지환의 안색이 어둡고 침울해지자, 이상언은 자기가 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수습에 나섰다.“그러나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이서도 언젠가는 너의 진심에 감동하여, 네가 하씨 집안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야.”지환의 안색은 상언의 위로로 인해 좋아지지는 않았다.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는 한 대 얻어 맞을 것 같은 분위기라 이상언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나 먼저 간다.”말을 마치고 얼른 빠져나왔다.마침 옆방에서 나온 이서는 이상언의 뒷모습을 보며 지환에게 물었다.“방금 상언 씨 왔었어요?”지환은 딸기 주스를 쳐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이서가 가까이 다가와서야 그의 몸에서 차갑다 못해 싸늘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지환은 눈을 들어 이서를 보자 눈 밑의 난폭한 기운이 물안개처럼 흩어졌다.“딸기 주스 다 됐다.”이서는 그를 자세히 살폈다.“정말 괜찮아요?”지환은 딸기 주스를 컵에 부었다.“응, 괜찮아.”이서는 그제야 걱정하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시 물었다.“상언 씨 왜 왔어요?”지환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이서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이서는 몸이 움찔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아니야.” 지환시는 딸기 주스를 이서에게 건네며 말했다.“먹어봐.”이서가 입을 오므리고 한 모금 마셨다.선홍색의 주스 거품이 입술에 남아 있었다.지환은 눈동자가 흐려지며 침이 입안을 구르다 목젖을 지나 식도로 내려갔다.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갑작스럽게 닥친 폭풍우 같은 약탈에 이서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으로 지환의 목을 껴안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지환은 비로소 이서를 놓아주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스쳤다.“이렇게 먹으니까 주스가 몇 백배는 더 맛있네.”이서는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지환은 이서의 허리를 감고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더 먹고 싶어?”이서는 다소곳하게 말을 더듬었다.
하경철은 어두운 얼굴로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지환이 결혼한 지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이제야 여자 측에 집을 사줬을까? 저기 주 집사, 설마 그 여자 짝퉁 아닐까?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그런데…… 왜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하경철은 지팡이를 잡고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켰다“왜냐면, 진짜 아내가 이서이기 때문이지!”주경모는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어르신,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서 아씨와 큰집 도련님은 만난 적도 없는데…….”하경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내 추측이 틀렸으면 하네.”“어르신, 큰집 도련님이 정말 이서 아씨와 결혼한 거 라면, 직접 아가씨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안돼!” 하경철은 한마디로 거절하셨다.지난번 만남은 이미 경솔했다.만약 이서에게 직접 물었다면 분명히 지환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하경철은 매섭게 눈을 감았다.활옷을 입고 화관을 쓰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소녀는 이서와 닮았다.소녀의 옆에는 사모 관대한 젊고 잘생긴 소년이 서있었다. 소년의 눈매는 지환과 매우 비슷했다.이 장면을 본 하경철은 눈을 번쩍 뜨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주경모는 상황을 살피고 얼른 하경철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가슴을 쓸어주었다.“어르신, 가정의를 불러오겠습니다.”“아니다…….” 하경철은 손을 흔들어 막았다.“인과응보야, 전부다 인과응보야, 주 집사, 가…… 가서 언론홍보 담당자 불러와!”주경모는 의아한 눈빛으로 하경철을 바라보았다.하경철은 은퇴한 후로, 지금까지 회사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이건…….’“빨리 안 가?!”“네!”……유채 꽃밭은 민박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도보로 십여 분만에 바로 도착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이서는 고개를 돌려 몇 미터 뒤떨어져서 걸어오고 있는 이상언과…… 민박집 딸래미를 보았다.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여자는 싱글벙글 웃었다.계획에 없던 여자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더욱 어색
이상언은 다시 한번 소녀의 뇌회로에 심하게 놀라, 손을 빼는 것조차 깡그리 잊어버렸다.“나연아, 진짜 도와줄 거야? 어떻게 도와줄 건데?”“쉿!” 나연이 이상언에게로 몇 걸음 다가갔다.“오빠, 지금 언니가 이쪽 보고 있어요.”이상언은 미간이 올라가며 놀라워했다.“정말?”“음.”“그럼 지금 무슨 표정이야, 기분이 안 좋아?”“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어요.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그렇다면, 지금 효과가 있는 거네?”“그렇죠.” 나연은 이상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수줍게 웃었다.이서는 눈썹을 비틀어 다정하게 얘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고, 또 한쪽으로 혼자서 멀리 앞서 가는 임하나를 보며, 옆에 있는 지환에게 물었다.“상언 씨 지금 대체 뭐하는 거예요?”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고 간만에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기분 좋게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서의 입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들자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설사 그 사람이 둘도 없는 절친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내가 어찌 알겠어?”“그럼 가서 좀 물어봐 줘요. 네?”지환은 고개를 숙여 이서를 쳐다보며 약간 거친 손으로 이서의 작은 손을 가볍게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었다.“그래, 그런데 조건이 있어.”“조건이요?” 이서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고 직감했다.“여보, 자기라고 한 번 불러봐.”“…….”지환은 손을 들어 이서의 부드러운 귓불을 어루만지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얘기했다.“아님 애기를 가져도 좋고…….”이서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이서의 상황을 살핀 지환은, 가슴 한 쪽이 순식간에 당황했다. 막 입을 열어 농담이라고, 장난이라고 막 설명하려는데 이서가 고개를 들었다. 맑은 눈동자는 지환의 당황한 눈동자를 마주했다.“나 생각해 봤는데, 아이 안 낳을 거예요.”지환은 심장이 바닥으로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빛은 더없이 어둡고 무거웠다.“나와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거야?”이서는 이 말의 핵심이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