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임태형의 이 마지막 동작은, 하은철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적나라한 도발이었다.하은철은 주먹을 꽉 쥐고, 자기가 아끼던 보물을 빼앗긴듯한 분노를 참으며, 차 문을 쾅 닫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슝’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쏜살처럼 날아갔다.차가 멀리 떠나고서야 구경꾼들도 제정신이 돌아왔다.그들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방금…… 꿈이야 생시야?”“나 빨리 꼬집어 봐! 빨리 꼬집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윤이서가 글쎄 하은철을 쌩까고 다른 남자 차에 탔어!”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장지완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는듯 웃었다.강수지는 상황을 보고 알랑거렸다.“언니, 방금 그 건장한 근육남이 이서 남편이죠? 겉보기에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은 같지 않던데.”“어쩐지 남편의 정체를 줄곧 숨기더라니, 창피해서 그런 거였네.”어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런데 방금 기세로 봐서는 분명히 하은철이 윤이서에게 대시하는 거 같던데…… 이서는 왜 못이기는 척 하은철과 재결합하지 않을까?”“모르는 소리…….” 강수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우선, 윤이서 이미 결혼했잖아. 재결합하고 싶어도 이혼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랬다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그리고 하은철이 설마 정말 윤이서를 쫓아 왔겠어? 정말 윤이서를 좋아했다면, 둘이 벌써 결혼했겠지…….”“그럼 하은철은 왜 여기 온 거야? 도련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누가 협박할 수 있다고?”강수지는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장지완에게 도움의 눈길을 청했다.장지완은 고개를 들어 차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야. 남자의 소유욕이 얼마나 강한 지 너희들도 알지? 전에는 윤이서가 줄곧 하은철 주위를 맴돌았는데, 갑자기 그런 추종자가 사라지니 익숙하지 않은 거지. 시간이 지나서도, 하은철이 계속 이서를 찾아온다면 내가 성을 간다.”장지완의 얘기를 듣고 모두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역시 지완 언니! 세상사를 훤히 꿰뚫고 있다니까.”장지완은 입을 열었
이서는 임하나의 맞은편에 앉았다.“지금 뭐하시…….”이서는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 몇 장을 꺼냈다.“사장님, 영업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돈을 받은 사장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가게에 다른 손님이 없으니, 그의 휴식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아예 카운터에 틀어박혀 휴대전화를 보기 시작했다.“너 취했구나?” 이서는 임하나를 툭 쳤다.힘겹게 눈을 치켜 뜬 임하나는 이서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얘기했다.“이서야, 우리 이서 왔구나.”평소와 별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이서는 한눈에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무슨 일이야?” 이서가 친절하게 물었다.임하나는 코끝이 시큰거리더니 곧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오늘 아침 커피를 사다가 이상언과 어떤 여자가 액세사리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이서는 임하나가 얘기하지 않자, 굳이 따져 묻지도 않고 곧장 냉장고에서 술 몇 병을 꺼내 왔다.“더 마시고 싶어? 내가 같이 마셔 줄게.”임하나는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괴로움이 이서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흘러나왔다.“이서야, 역시 너밖에 없다. 네가 최고야.”이서가 술병을 따자 냉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그녀의 갸름한 얼굴을 가렸다.이서는 자신에게 한 잔 따르고 임하나에게도 한 잔 따라 주었다.술이 몇 잔 들어가자, 임하나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이서야,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요상하지 않니?” 그녀는 술잔을 든 채 갈색 액체를 사이에 두고 이서를 보았다.“내 친구 얘긴데, 그 친구가 어떤 남자와…… 술 먹고 잤어, 다들 성인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니 기분 나쁘고 짜증이 나는 거야. 네가 봤을 때, 그 여자 문제 있는 거 맞지? 딸꾹…….”임하나는 딸꾹질을 했다. 그러고는 도둑이 제발 저린 듯 한 마디 덧붙였다.“내가 말한 이 친구…… 내가 아니야. 나 절대 아니다.”이서는 빙그레
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뭔 생각하는 거야? 난 단지 예를 든거지. 나와 지환 씨 결혼한 지도 몇 달 됐고, 가족도 만났 봤지만, 왠지 모르겠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환 씨가, 진짜 그의 모습이 맞는지, 아니라 내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인 지는 잘 모르겠어…….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아마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거야.”“그럴지도 모르지.” 이서는 머리를 대충 묶었다. “자, 이런 얘기 그만하고, 우리 술이나 마시자!”술잔을 들어 이서와 잔을 부딪치려던 임하나의 눈빛이 이서의 목에 떨어졌다.“이서야, 너 목…… 왜 이래?”키스 마크처럼 보이진 않고, 누군가에게 목 조른 손자국 같아 보였다.이서는 곧 머리를 다시 풀어헤쳤다.“별거 아니야.”“지환 씨, 설마 가정폭력 하니!?” 임하나는 말하면서 일어섰다.“내가 오늘 그 자식 죽여버린다!”“진정해.”이서는 임하나를 붙잡았다.“지환 씨가 그런 거 아냐. 하은철이야.”“내가 그 새끼 찾아 갈거야!” 임하나는 술병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이서는 얼른 그녀를 가로막았다.“하나야, 난 괜찮아. 너 취했어. 우선 진정해.”임하나는 정말 좀 취하긴 했다. 휘청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잠시 뒤 화장실로 가서 오바이트 하기 시작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는 그녀가 토하기를 기다렸다가 휴지와 물을 건넸다.찬바람이 쐬자 임하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보았다. 무척 괴로운 듯했다.“그 X발 쌍놈 개새X는 왜 또 널 찾아 갔대?”“잘 모르겠어.” 이서가 그녀를 한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집까지 바래다 줄게.”임하나는 이서의 어깨에 엎드려 오열했다.“이서야, 나의 불쌍한 친구야, 지환 씨가 감히 너한테 미안한 짓 했다가는 내가 절대 가만 안 둘거야.”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롱 다리 소유자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그녀의 귓가에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한참이 지나서야 이서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었다. 말투가 많이 수그러들었다.“다리가 저려요.”뒤로 물러선 지환은 허리를 굽혀 사람을 번쩍 안았다.“집에 가자.”이서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의 지환을 모습을 살펴보았다.우물처럼 깊은 눈동자, 탄탄한 바디라인,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만약 지환을 먼저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8년 전처럼, 후회 없이 사랑하고 헌신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아니야.’‘더 이상 8년 전의 물불 안 가리고 사랑에 목 메던 소녀가 아니야.’그녀는 지환의 품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남자의 강력한 심장 박동 소리를 조용히 들으며, 더 이상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짜이니까.술을 마신 이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지환은 2층 안방에다 사람을 눕혔다.이불을 덮어주며, 목덜미의 붉은 자국을 본 지환의 심장이 찌릿하게 아파왔다.그는 곧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은철 손봐줄 사람 좀 찾아봐.”[……?][회장님 조카 얘기하는 거 맞죠?]“음.”이천은 잠깐 멈칫 했다가 곧바로 대답했다.[네.]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않는 게 좋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찾으라고 한 사람은 찾았어?”지환은 베란다에 서서 달빛을 만끽하고 있었다.우뚝 솟은 그림자가 달그림자를 따라 흔들렸다.이천은 곧바로 대답했다.[이미 찾았고, 훈련 중에 있습니다.]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또 물었다.“그 몇몇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인수합병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진행 중에 있으며 늦어도 다음 달이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장문을 발표할 듯합니다.]“알았다.”지환은 전화를 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달빛 아래, 소녀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찌푸렸던 미간이 어느 정도 펴졌다. 지환은 입술을 올리며, 몸을 숙여 소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같은 시각.이상언에게 끌려 그의 집에 간
임하나는 이상언이 조심스럽게 자기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며, 마음이 언짢았다.“나 그렇게 까탈스러운 여자 아니에요.”말을 하며 그녀는 알약 몇 개를 입에 털어 넣고는 컵을 들고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이상언은 그녀가 약을 삼키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이부자리는 이미 깔아 놨는데…….”“잠깐!”임하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극히 부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이상언 씨, 지난번 일은 우발적 사고였을 뿐이에요. 당신은 지환 씨 친구이고, 나는 이서 친구입니다. 앞으로 우리 틀림없이 자주 볼 텐데……, 우리 오늘 얘기 터놓고 합시다.”이상언은 멍해졌다.“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그냥 없었던 일로 합시다.”이상언은 순간 멍해졌다. 임하나는 능글맞게 이상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설마 나더러 책임지라는 건 아니겠죠?”말을 마치자,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임하나는 당황하여 재빨리 시선을 옮기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발요,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냥 하루 밤 같이 잔 거잖아요. 뭐가 그리 대수롭다고?”“그러니까…… 이 일은 하나 씨한테는 별일이 아니라는 거네요?” 이상언은 담담하게 말했다.임하나는 그의 말 속에서 약간의 애절함이 느껴졌다.그녀는 재빨리 눈을 깜박거렸다.“아니면요? 지금 남녀가 원나잇 하는 거, 다 서로 원해서 하는 거잖아요, 설마 다들 사랑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이상언은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하나 씨는 그런 거군요. 그래요, 하나 씨 뜻은 잘 이해했어요.”임하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왠지 초조해졌다.“그……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그녀는 인사를 하고 쏜살같이 나갔다.아래층에 도착할 때까지 그 초조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다 까놓고 얘기했는데도 이렇게 불안한 거지?’……이튿날 아침.이서는 일어나서 침대 옆에 둔 꿀물을 보았다.“일어났어?”지환의 훤칠한 그림자가 침대 머
지환은 이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턱을 들어올렸다.“차가 왔네.”이서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미 9시가 넘었다.그녀는 부리나케 입에 빵 한 조각을 밀어 넣고 집을 나섰다. “나 먼저 출근해요.”차에 오른 이서는 지환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케빈이 요 며칠 정통 이탈리아 피자를 미친 듯이 찾고 있다고?’그녀는 입술을 오므렸다.이서는 디자인부에 도착하자마자,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느꼈다.하나같이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며 남몰래 기뻐하는 시선들이었다.뭔가 큰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이서는 사무실로 들어가 심소희를 불렀다.심소희는 들어오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언니, 어떡해요?”“왜?”“방금 케빈이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어?” 이서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럼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 거야?”“방금 갔대요. 부총괄님이 모셔왔다고 하던데, 게다가 부총괄님 디자인 시안 보고, 크게 칭찬하고 매우 만족하셨다고 하더라고요…….”말할수록 심소희의 목소리는 작아졌다.“언니……. 이제 어떡해요?”이서는 잠깐 침묵을 하다가 곧 웃으며 물었다.“케빈 씨가 장지완의 디자인 시안을 채택하기로 확정했어?”“아직요, 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그런 것 같아요.”이서는 여전히 웃었다.“그럼, 아직 최종 결단을 내린 건 아니잖아.”“윤 총괄님은 정말 갈 데까지 가봐야 납득할 건 가봐요.” 케빈을 막 배웅하고 돌아오던 장지완은 이서 사무실을 지나다가, 마침 둘의 대화를 듣고 참지 못하고 조롱하듯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장지완을 바라보았다.“내 유일한 장점이 인내심이 있다는 거예요.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장지완은 몸을 곧게 펴고 비꼬듯 말했다.“또 이런 ‘존버정신’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보니 하은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물 건너 간 거 같은데?”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장지완은 이서에게 몇 걸음 다가가서
그는 이번 대결에서 이서가 지면, 보스가 기분 상할까 봐 염려되었다.“윤 총괄 내 뜻은…….”[저는 괜찮습니다, 별일 없으면 저는 구내식당 주방으로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이서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이미 끊긴 전화를 붙잡고, 김청용은 뜨거운 감자가 될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왜 윤이서와 장지완이 경쟁하도록 이런 구도를 만들었을까? 괜한 짓 했어.’‘만약 이번 대결에서 윤이서가 진다면, 나도 사장자리에서 내려올 각오해야겠군…….’……이서가 회사 구내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회사 전체에 퍼졌다.그녀는 곧 회사 전체의 조롱거리가 되었다.“자기가 대결에서 승산이 없는 걸 뻔히 알고 자포자기하는 건가?”“정말 어이없네. 대체 회사는 왜 나오는 거야? 그렇게 밥하는 게 좋으면 집에서나 실컷 할 것이지……. 아님 아예 처음부터 식당 보조자리나 지원하던가…….”“본래부터 능력 없고 연애에만 목메던 여자가, 갑자기 운 좋게 콘테스트에서 수상 한 번 한 거 가지고, 자기가 정말 무슨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줄 아나 봐. 실전에서 진짜 승부를 겨뤄봐야 자기 분수를 아는 거지.”“내일 좋은 구경거리나 기다려보자고.”“…….”한쪽에 서서 밀가루 반죽하고 있는 이서를 바라보던 심소희는 자기도 나서서 돕고 싶었지만 이서가 정중히 거절했다.“먼저 들어가.” 이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심소희는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사무실에는 온통 이서를 비웃는 얘기들뿐이라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너무 괴로웠다.“언니, 나 그냥 여기서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뭘 만드실 거예요? 만두, 아니면 칼국수? 저도 반죽 잘해요.”이서는 눈을 들어 다소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반죽할 줄 알아?”“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혼자서 밥도 해먹고, 만두도 해먹고 그렇게 학교 다녔어요.”이서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그래, 그럼 토핑 만드는 거 좀 도와줘.”심소희는 앞에 놓인 치즈, 토마토, 바질 등을 보고서야
이서는 남자 셰프의 과장된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요?”“네, 저는 절대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이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피자 한 판을 예쁘게 포장하고 나머지는 구내식당 직원들에게 드렸다.이서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식당 직원들은 남자 쉐프의 곁으로 다가갔다.“쉐프님, 이 총괄 디렉터라는 사람, 다른 사람들 얘기처럼 그렇게 쓸모 없는 사람은 아닌 듯한데요. 적어도 요리 면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네요.”남자 쉐프는 이서의 뒷모습을 보며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하은철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사람이 어찌 보통사람이겠어요?”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이서는 포장한 피자를 챙겨서 케빈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호텔은 회사가 제공한 것으로, 신분을 밝히자, 막힘없이 다이랙트로 룸 앞까지 갈 수 있었다.그녀는 노크했다.곧 문이 열렸다.안에 서 있는 사람이 뜻밖에도 지환이라는 것을 보고 이서는 순간 놀라서 멍해졌다.그녀는 다시 한번 방 번호를 확인하고, 착오가 없다는 것을 반복 확인한 후에야 지환을 보며 말했다.“당신이…… 왜 여기 있죠?”지환은 눈가에 옅은 웃음을 띠며 몸을 옆으로 돌려 이서를 들여보냈다.그때서야 이서는 지환 뒤에 ‘아담한’ 노인 한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175센티미터 정도 되 보이는 노인은, 결코 작은 키는 아닌데 지환 옆에 서 있으니 상대적으로 아담해 보였다.이서를 본 노인은 지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지환, 자네 정말 대단하군. 오늘 방문할 손님이 있다는 것도 알고…….”이서가 눈썹을 치켜 뜨고 지환을 보았다.지환은 가볍게 웃었다.두 사람은 소리 없이 교류했고, 노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바로 서우 디자인부 총괄 디렉터, 윤이서 씨?”이서는 그제야 노인을 보고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케빈 씨.”“들어와요.”이서는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