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지환은 2층으로 올라갔다.그가 박예솔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이미연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기가 서렸다. 그녀는 박기태에게 말했다.“여보, 내가 뭐랬어? 지환이 솔이에게 마음 있다니까? 다만 본인도 아직 자기 마음을 모르는 거 일 뿐이야.”박기태가 펼쳐 보던 신문을 다시 접었다.“아쉽지만 지환은 이미 결혼했잖는가? 이렇게 좋은 사위를 누가 눈독 안 들이겠어?”이미연은 입을 삐죽거렸다.“결혼했으면 뭐 어때? 지금 이혼율이 얼마나 높은데, 이혼한 사람들도 비일비재야. 그리고 그 여자, 지환에게 어울리기나 해? 집안도 형편없지, 학력도 그럭저럭, 얼굴 하나 반반한 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잖아. 얼굴이 밥 먹여 주나, 보다 보면 질려버리지.”남자로서 박기태도 이미연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그렇다면 우리 솔이도 아직 기회가 있는 거네.”그러나 지금 2층에서 지환과 박예솔은 박씨 부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지어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돌았다.“내 뒷조사했어?” 박예솔을 악이 받칠 대로 받쳤다.지환은 컴퓨터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꼬꼬 박예솔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인정하는 건가?”“인정하긴 뭘 인정해, 박예담이 현장에 데려간 걸 왜 나한테 난리야?”“네가 전화하기로 했다고 예담이가 얘기하던데?”전화는 했지……. 통화 중이어서 연결이 안 됐을 뿐이야…….”박예솔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지환은 늘씬한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일어섰다.“박예솔, 내가 오늘 여긴 온 건 따지러 온 게 아니라 마지막 경고하러 온 거야!”박예솔의 온몸이 휘청거렸다.“오늘 이후로, 너 H국에 발 들이지 말고, 다시는 이서 앞에 나타날 생각하지 마. 약속 위반 시 어떤 결과가 뒤따르는 지 잘 알지?”말이 마치고, 지환은 문 쪽으로 걸어갔다.지환이 문 손잡이를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박예솔이 갑자기 몸을 돌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럼 앞으로 이서가 있는 곳이라면, 가면 안된다는 거지?”지환은 침묵하며 고
이틀 뒤 귀국일정이 잡혔다.하경수와 박씨 일가족이 배웅하러 왔다.박예담과 하경수는 이서와 지환이 떠나는 걸 진심으로 아쉬워했다.박기태와 이미연은 체면 때문에 온 것이었다.“이서 누나.”박예담은 이서를 다른 쪽으로 끌고 갔다.“우리 누나가 누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하면서, 나더러 전해달라고 했어요. 지환 형한테 들키면 안 된다고 …….”이서도 박예솔이 나타나지 않은 걸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굳이 묻어보기도 그랬다. 마침 박예담이 언급하자 이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네 누나는 직접 오지 않고?”박예담은 머리를 긁적였다.“나도 물어봤는데, 이서 누나 앞에 나타나면 안 된대요. 저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그는 포장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선물세트를 이서에게 건네주었다.“누나, 제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이서가 받아보니, 묵직한 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분명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이서 누나…….” 박예담이 귀를 붉히며 물었다.“언제 또 올 거예요?”“잘 모르겠어. 하지만 기회 봐서 또 올게. 너도 시간 나면 H국에 놀러 와.”“정말요? 네, 꼭 갈게요. 그 때 저 반겨주실 거죠?”웃고 떠드는 두 사람을 보며 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지난 번 카톡 이후로 그는 줄곧 이서와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이천을 한 번 흘겨보았다.이심전심, 이천은 바로 이서 곁으로 걸어갔다.“사모님,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 됐습니다.”이서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았어요.”이천은 헛웃음을 지었다.“비싼 돈 주고 비즈니스석 샀는데 일찍 탑승하셔서 제대로 즐겨야 돈이 안 아깝죠.” 그 말에 드디어 이서의 맘이 움직였다. 박예담과 또 몇 마디 더하고는 하경수와 작별 인사를 하고 탑승 통로로 들어갔다. 그 때까지 지환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지환은 이서의 뒷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곧 이서의 뒤를 따라 출국장으로 걸어갔다.기내에서
지환이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안방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미간을 찡그렸다.보아하니, 이번에는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다음날.임하나는 점심 시간에 잠깐 별장에 들렸다.“네가 주소를 알려주었을 때, 난 또 네가 본가로 들어간 줄 알았잖아.”임하나는 눈앞의 별장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이 집, 정말 지환 씨가 산 거야?”“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이서는 임하나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난 네가 지환 씨의 몸매와 얼굴에 홀랑 넘어가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퍼주고, 소녀가장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임하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지환 씨의 능력으로 봤을 때 회사 그만 두고 사업하면, 한 달 만에 중산층에서 고소득층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 같은데…….”이서의 머릿속에는 지환의 완벽한 몸매가 떠올랐고 곧 얼굴이 붉어졌다.“너 요즘 하는 일 없이 좀 한가한가 보구나. 말도 안 돼는 소리를…….”이서는 그녀를 게스트 룸으로 데려갔다.“잠깐만 기다려. 핸드폰을 갖고 올게.”임하나는 침대에 베개가 하나인 걸 보았다. 게다가 새로 베개……. 그녀는 의아해하며 이서에게 물었다.“너, 지금 지환 씨랑 각방 써?”이서는 핸드폰을 꺼냈다.“핸드폰 할 거야? 말거야?”임하나는 헤헤 웃으며“해해해, 빨리 줘봐. 기다리다가 눈 빠지는 줄.”이서는 휴대폰을 임하나에게 건넸다.임하나는 받자마자 박스를 개봉하여 핸드폰 설치하면서 싱글벙글 신났다.“자기, 설마 아직 지환 씨랑 손만 잡고 자는 거 아니지?”이서의 얼굴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빨개졌다.“하나야, 너 파파라치 됐어야 하는데, 그 재능 썩히는 게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말해봐.”임하나의 오지랖이 또 발동되었다. 그녀는 오히려 당당했다.“난 내 친구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지…….”이서는 손에 쿠션을 들어 임하나의 어깨를 살짝 쳤다.“그 사람 얘기 꺼내지 마. 미워 죽겠어.”“왜, 너희들 싸웠어?”이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몹시 불쾌하게 ‘응’ 소리
아침 햇살이 소리 없이 대지를 스치며 창문 틈새를 투과해 그들의 몸에 떨어지며 아름다운 유화 한 폭을 만들어 냈다.한참이 지나서야 걸음을 멈춘 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이서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머리가 잠시 다운됐다가 드디어 이성을 되찾은 이서가 두다리로 발버둥 쳤다.“지환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는 오늘 출근해야 된다 말이야…….”지환은 이서를 욕실로 안고 들어갔다.“알지, 하지만 너도 이렇게 출근하고 싶지는 않을 거 같은데…….”말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마침 욕실 거울 앞에 와 있었다.발그스름한 얼굴, 흐리멍덩한 눈빛……, 이서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지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을 욕조에 넣었다.“먼저 목욕이나 하자.”이서는 지환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순순히 며칠간 쌓였던 정욕을 깨끗이 비워냈다.다시 나왔을 때, 그녀는 다른 검정색 정장으로 갈아입었다.지환은 실눈을 떴다.이서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말했다.“저 출근할 거예요.”말을 마치고는,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서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서가 나오자 운전기사는 즉시 차에서 내렸다.“윤이서 님…….”이서는 멍해졌다.“누구시죠?”“회사에서 보내서 왔습니다. 앞으로 제가 총괄 디렉터님의 출퇴근을 책임지게 됩니다. 임현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회사에 이런 복지도 있어요?”‘왜 지금까지 몰랐지?’기사는 웃으며 차문을 열었다.이서는 시간을 보고는 곧 늦을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고 차안으로 들어갔다.차가 떠나는 것을 본 지환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전화를 받았다.[회장님…….]이천이 말을 이었다.[민씨 집안에서 줄곧 회장님의 개인정보를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경고를 주어야 할까요?]지환은 창턱에 놓인, 이서가 심은 화초를 만지작거렸다. 목소리에 유쾌함이 묻어났다.“그럴 필요 없어.”[예.]이천은 오늘 지환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단번에
장지완은 손톱을 세게 쥐고, 한참이 지나서야 허리를 비틀며 사무실로 돌아왔다.강수지도 얼른 졸졸 뒤꽁무니 따라갔다.그들이 떠나자, 심소희는 눈을 반짝이며 이서를 바라보았다.“윤 총괄님, 정말 대단하네요! 짱 멋져요.”그녀는 이틀 전에 채용되었다. 신입이라 강수지 등 일행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어제, 그녀는 다른 직원들이 수군거리를 걸 들었다. 새로 부임할 윤이서는 업무 경험도 없고, 하씨 집안 백으로 총괄 디렉터 자리에 앉은 허수아비라며, 틀림없이 장지완에게 눌려서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자신의 직속 상사도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심소희는 자신의 앞날이 암울함을 느꼈다. 그래서 오늘 출근하고, 며칠 뒤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사직하려고 했다.그런데, 윤이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리고 그들이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전혀 경험이 없는 초짜 같지도 않았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빨리 장미 좀 치워줘요.”“네.” 심소희는 바로 청소 담당부서를 찾아가 장미를 치워달라고 했다.곧 직원들이 와서 방을 깨끗이 치웠다.이서는 들어가서 책상 위에 놓인 목걸이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 역시 하은철이 보낸 선물이었다. 케이스 위에 카드도 한 장 있었다. [이서야, 네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이제야 깨달았어. 돌아와줘, 나에게로!]카드에 적힌 메모를 읽으면서, 이서는 하은철의 콧대 높은 자태를 상상했다.그녀는 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목걸이를 가방에 넣었다. 저녁에 하경철을 만나러 가서 직접 하은철에게 돌려주고자 했다.눈에 거슬리는 물건들을 처리한 후 이서는 심소희를 불러 ‘드래곤’을 주고는, 나머지는 심소희가 알아서 나눠 주라고 했다.“여기 총 41개인데, 디자인팀 동료들에게 한 개씩…….”“디자인팀 소속 직원이 총 44명인데요…….”심소희는 뒤늦게 깨달았다.“아, 부총괄님과 강수지 언니를 빼면…….”이서는 가볍게 ‘응’하고 대답했다.“직원들에게 이 핸드폰은 내가 해외 다녀오면서 준비
다가오는 사람이 장지완인 걸 본 ‘추종자1’은 아첨의 웃음을 지으며 장지완에게 다가갔다. 마치 칭찬에 고픈 강아지처럼.“언니, 윤이서가 우리 비위를 맞추려고 짝퉁 ‘드래곤’을 선물로 사왔지 뭐예요, 정말 웃겨 죽겠어.”장지완도 ‘드래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도 ‘드래곤’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출시 계획이 없는 데다 해외에서도 사전 예약으로만 구매할 수 있어 귀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일 열심히 할 생각은 안하고, 더러운 수단으로 지름길을 가려고 하지…….”말이 떨어지자, 이서 사무실 문이 열렸다.그녀는 아직 나눠주지 않은 핸드폰을 보고는 심소희에게 물었다.“왜, 다들 싫대요?”화가 난 심소희는 흐느끼며 말했다.“총괄님,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이 이 휴대폰…… 짝퉁이래요.”‘이 사람들, 총괄 디렉터에 대한 악의가 너무 강하다.’이서는 눈썹을 비틀며 장지완을 쳐다보고는, 대략 어떤 상황인지 감이 왔다. 그녀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선물이예요. 싫다면, 그냥 둬요.”이서의 침착한 모습을 본 심소희도 마음을 다잡고 얼굴의 눈물을 닦았다.“받고 싶은 분들은 줄 서주세요.”적잖은 사람들이 장지완의 체면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가 말했다.“모두가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그냥 가져와요.”이제 그녀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바로 이때 문이 밖에서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김청용은 푸른색 양복을 입고 우아하게 웃었다.“왜 다들 서 있어? 새 팀장을 환영하는 건가?”장지완은 입술을 꼬며 말했다. 말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아니 글쎄 총괄 디렉터님께서 우리에게 짝퉁 핸드폰을 선물로 준비했지 뭐예요…….”김청용의 관자놀이가 벌떡벌떡 뛰었다. 이서가 정식 출근하기 전에 그는 장지완을 단독으로 불러, 이서가 하는 일을 밀어주라고, 그럼 그녀에게 백해무익할 거라고 귀띔해줬었다. 그런데 오늘 상황을 보니, 장지
곧 정품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등록 절차가 화면에 떴다. 이를 본 장지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다른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진 건 마찬가지였다. 심장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드래곤’이 현재 해외에서 3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으니, 국내에서도 최소한 수천만 원 할 텐데, 장지완에게 밉보일 까봐 거금을 잃다니…….모두가 원망하는 눈빛으로 장지완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심소희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총괄님, 이 핸드폰들은 모두 갖고 들어가겠습니다.”“네, 그래요.”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사람들도 심소희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아가는 것을 보며, 한을 머금은 눈빛으로 장지완과 핸드폰 박스를 번갈아 보았다.이를 본 김청용은 저도 모르게 이서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이서를 디자인팀 총괄 디렉터, 그것도 평생직원으로 발탁한 것은 윗선의 결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그도 이서의 능력을 다소 의심했다. 비록 디자인 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업무 경험이 없으므로, 장지완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장지완을 불러서 특히 당부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기우였다. 그녀는 장지완의 갑질에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있었다.게다가 핸드폰 한 대로 장지완 위수로 똘똘 뭉친 세력들을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정말 고단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이서는 김청용이 서서 가지 않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사장님, 혹시 다른 볼일이 있으십니까?”“아……,” 김청용은 휴대전화를 들고 이서에 대한 태도가 더욱 공손했다.“내 정신 좀 봐라……. 깜빡했네요. 오후 2시에 회의가 있으니 꼭 참석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청용이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김청용이 떠난 후 자신의 사무실 문어귀에 서 있던 장지완은 이서를 노려보고 갑자기 몸을 돌려 문을 ‘꽝’ 닫았다.소리가 커서 디자인팀 전체가 다 들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고개를 들어 기웃거리지 않았다.오후 두 시.이서는 하이힐을 신고 회
이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지완 씨가 이전에 케빈 선생과 합작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장지완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득의양양했다.“네, 맞아요, 3년 전에 제가 외국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을 때 케빈 선생님이 개발하신 안티에이징 마스크 팩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생각났어요. 캐빈 선생님께서 지완 씨 디자인 작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추후 계속 계약관계를 지속하고 싶다고 했다던데……, 근데 왜 나중에 흐지부지되었어요?”“그 때 집에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귀국했어요.”모두들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때 또 누군가가 제안했다.“지완 씨가 이미 3년전에 케빈 선생님과 합작한적이 있으니, 내가 보기에 이 일은 지완 씨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케빈 선생님이 필히 지완 씨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할 테니까.”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김청용의 시선은 이서에게 떨어졌다.“윤 총괄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그제야 사람들은 이서가 디자인 총괄 디렉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하지만 그 누구도 이서를 인식하지 못한 것에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장지완에 비해 경험도 능력도 떨어진다고 생각했으니.윗선에서 뭔 생각으로 경험이 없는 사람을 총괄 디렉터로 임명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이렇게 중대한 사안인 이상, 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서는 이 또한 그녀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 그만하죠.”장지완은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턱을 들어 눈을 아래로 깔고 얘기했다.“디자인은 매우 사적인 작업입니다. 저는 혼자서 하는 걸 비교적 즐기는 편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지완의 말이 이서를 겨냥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윤 총괄님, 아니 윤팀장님, 지완 씨는 이미 오래 전에 캐빈 선생님과 합작한 경험도 있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