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성연은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목현수의 별장에서 묵었다.이곳은 목현수가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성연이 혼자 이곳에서 지내기에도 편리했다.그리고 걔도 안 무서워할 거야.목욕을 하고 나온 성연은 무진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가기 무섭게 무진이 전화를 받았다.성연의 전화를 혹여 놓치기라도 할까 봐 성연의 전화나 메시지에 별도의 알람을 설정해 놓은 것.그래서 성연의 전화라는 걸 화면을 보지 않고도 알았다.“오늘 업무는 끝났어요?” 화면에 보이는 무진의 뒷배경을 보니 서재가 아니라 집의 침실이었다.“거의. 요즘 좀 피곤해서 쉬면서 게으름을 좀 피우려 했지.” 무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사실 최근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이 정상 궤도에 올라서면서 당분간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터였다.“그러는 게 당연히 맞죠. 일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에요. 쉬어가며 일하는 게 건강에도 좋아요.” 성연은 무진이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젠 혼자 쉴 생각도 하고 말이지.’“당연히 네 말이 옳아. 뭐든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무진이 성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지금부터 무진 씨에게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어요. 그렇지만 무진 씨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성연이 먼저 무진을 안심시키기 위한 언질을 주었다.무진이 자신의 말을 듣자마자 회사 일도 내팽개치고 당장 날아올까 걱정이 된 것.성연의 말을 들은 무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무슨 일인데?”성연은 오늘 송아연이 자신에게 말도 안되는 약을 먹이려 했던 일과 블레이크 교수가 자신을 모함하려 했던 일을 무진에게 모두 말했다.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사주한 이가 소지연이라는 것 상상할 수 있겠어요?”무진의 눈이 충격과 분노의 빛으로 가득 찼다.지난 번에 비서 손건호에게 유럽에 가서 소지연의 상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했었다.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을뿐더러 소지연이 도대체
성연은 있었던 일을 무진에게 말했다.“송아연은 지금 강제 귀국시켰어요.”앞으로 학교에서 못된 짓을 할 송아연이 없으니 성연은? 지내는 게 훨씬 좋아질 것이다.고개를 끄덕이던 무진은 다시 생각해 봐도 성연을 유럽에 두는 것이 안심이 되지 않았다.“내가 가서 너를 좀 봐야겠어.”성연이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무진 씨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요. 그냥 북성에 있어요. 왔다갔다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데, 무진 씨 몸이 감당하기 힘들어요. 나는 이미 괜찮아요.”“나중에 또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 내가 최선을 다해 해결할 테니.”무진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유럽에서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북성에서보다는 못하지만, 유럽에도 당연히 그의 수하들이 있어서 성연이 나쁜 일을 당하게 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알았어요. 이번 일은 너무 갑자기 일어난 거였어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무진 씨에게 전화를 할게요.” 성연이 웃으며 무진을 달랬다.‘오늘은 확실히 좀 위험하긴 했어.’성연도 그다지 자신이 없었던 차에 목현수가 별안간 들이닥쳤던 것이었다.“나도 유럽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진의 말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그래도 마찬가지니까 더 이상 걱정하지 말아요. 나 지금 별일 없잖아요? 그리고 내가 무진 씨에게 모든 걸 다 말했고요?” 성연은 무진이 마음속으로 자책하고 있음을 잘 알았다.그러나 이 일은 무진과는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더군다나 무진을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연애의 감정은 대등한 것. 성연은 무진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길 바라지 않았다.“내가 생각이 짧았어.” 화면으로 성연을 보던 무진은 갑자기 성연이 먼 유럽으로 대학 진학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지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안고 싶어도 안을 수가 없질 않은가? 무슨 일이 생겨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잘 지내고 있어요. 방학이 되면 나도 무진 씨 보러 갈게요. 지금 송아연이
성연이 방문을 열었다. 역시 목현수였다.목현수는 성연을 혼자 이곳에 두는 게 여전히 불안했다. 오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니 자연히 성연의 상황이 걱정된 것.“너 오늘 괜찮아? 마음이 진정됐어?” 목현수가 건네는 말에 깊은 걱정과 애정이 담겼다.성연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괜찮아요.”불쑥 뭔가 생각났는지 성연이 말했다.“사형, 잠깐만요.”방금 목현수에게 문을 열어 주는 동안 무진이 휴대폰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았다.급하게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간 성연은 무진이 이미 전화를 끊은 것을 보았다.성연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보다 하고 추측할 뿐.‘그러니 무진 씨를 더 이상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다시 거실로 돌아온 성연은 목현수의 건너편에 앉았다.“왜 그래?” 목현수가 물었다.“별일 아니에요.” 성연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무진과 목현수, 두 사람이 왜 서로 잘 안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마다 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그리고 사형도 무진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것 같고.그래서 되도록 두 사람 앞에서는 서로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차 마셔.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야?” 목현수는 성연의 생각을 물어보고 싶었다.그리고 어떻게든 성연을 도와줄 생각이었다.“송아연 쪽은 됐어요. 그에 맞는 벌을 받을 거예요. 그러나 소지연은 반드시 찾아내야 해요!” 성연은 당연히 소지연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소지연이 있는 한 위험이 항상 자신을 따를 것이기에.“내가 너를 위해 방법을 찾아 볼게.”목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잠시 생각하던 성연은 그간의 모든 일을 목현수에게 알려주었다.소지연은 줄곧 자신을 상대해왔다. 지난번의 차량 충돌, MS가문의 추격, 심지어 송아연의 음모, 블레이크 교수의 모함 등을 전부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마음속에 억눌러 두고 있던 여러 가지들을 말해 버리자 성연도 마음이 후련했다.지금은 목현수만
“어찌 되었든 사형에게 감사인사를 해야겠네요. 아직 시간이 이른데, 사형, 제가 밥 살게요.” 성연은 목현수가 이런 것들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렇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목현수에게 감사를 표시해야 할 터.때로는 자신 때문에 목현수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그러나 이미 많은 일들을 처리해 온 목현수는 신경 쓰지 않을 게 뻔하다.그래서 성연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래, 살면서 여동생이 사주는 밥을 먹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는 걸.”목현수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성연도 따라서 실소를 터뜨렸다.“사형, 그렇게 과장하지 말아 줄래요?”목현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두 사람은 목현수의 차를 타고 함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레스토랑은 당연히 성연이 알아서 고른 곳이다.예전에 앨리스와 같이 밥 먹으러 나왔다가 우연히 이 레스토랑을 발견했는데 아주 맛있었다.성연은 유럽의 환경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하지만 미식가인 앨리스는 주변 맛있는 음식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자연히 성연도 앨리스를 따라다니며 맛으로 유명한 음식점들 문을 꽤나 두드렸다.두 사람은 금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도 무척이나 아름다운데 반해 가격도 아주 높지는 않은 중간 정도.비교적 양심적인 식당인 셈이다.입구에 도착하자 종업원이 그들을 안내해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두 분 고객님 따라오시죠.”성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갔다.종업원이 그들을 안내한 자리는 2층의 창가 쪽 자리. 바깥의 조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로 성연이 선택한 자리였다.목현수는 성연이 처음 자신을 데리고 식사하러 온 곳을 이렇게 잘 선택한 것에 다소 놀랐다.“장소를 잘 골랐네.”목현수가 칭찬했다.“룸메이트 따라서 왔었어요.” 성연이 으쓱거림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네 룸메이트 취향이 꽤 괜찮은 것 같네.”목현수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당연하죠, 사형, 메뉴를 골라보세요. 뭘 드시고 싶으세요?” 성연은 목현수에게
미스 샤넬은 성연과 목현수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이전에 성연은 끝까지 목현수와 별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다.그러나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모습은 무어란 말인가?어떤 친구가 저녁에 같이 밥을 먹으러 나와? 그것도 단둘이서?‘이건 분명 날 바보 취급한 거야?’미스 샤넬이 성연에게 곧장 경고의 말을 날렸다.“내가 당신에게 목현수와 함께 있지 말라고 말했죠? 그때 당신 나에게 뭐라고 말했어요? 그 뒤로 얼마나 지났다고 태도를 바꾸는 거죠? 단둘이서 식사를 하다니, 누구 엿 먹으라는 거예요?”성연도 성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혼나니 얼굴을 찡그렸다.성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미스 샤넬은 자신이 성연의 약점을 찔렀다고 생각하며 목현수에게 경고하기 시작했다.“이 여자 절대 좋은 사람 아니에요. 앞으로 이 여자와 교류하지 말아요!”미스 샤넬은 아무런 돈도 영향력도 없다고 생각한 성연이 목현수와 함께 있는 이유는 바로 목현수의 돈을 노린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무슨 선배, 후배 사이야, 완전히 핑계지.’그러나 모욕당하고 얼굴이 굳어진 성연을 본 목현수는 미스 샤넬에게 딱딱한 음성으로 경고했다.“내가 말했을 텐데? 성연은 그냥 내 여동생 같은 후배일 뿐이라고.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줄도 모르나?”지난번에 미스 샤넬이 성연을 찾아갔었다. 그때 성연이 자신에게 한 대답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됐다.그러니 그녀가 어떻게 목현수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미스 샤넬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질투심이 폭발한 그녀는 레스토랑 한가운데에서 목현수를 몰아세웠다.“나와 이 여자 중에서 오늘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 당신과 끝장을 보고 말테니!”목현수는 머리가 아팠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어떻게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매번 이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하필 자신과 미스 샤넬의 관계 또한 좀 복잡했다.목현수 자신도 분명하게 말할 수
미스 샤넬은 순간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다.그동안 목현수에게 엄청나게 많은 구애자가 있었지만 모두 자신이 다 쫓아냈다.그리고 목현수도 자신의 방법을 묵인해 왔다.외부적으로 그는 줄곧 자신을 존중해 왔다.그러나 지금 목현수가 생각지도 못한 여자 때문에 자신을 거역하고 있다니!과연, 송성연이 목현수의 마음속에 항상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미스 샤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러나 연적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명문귀족 가문의 아가씨인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들도 무척 많았다.그녀는 여전히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결국 분노한 미스 샤넬은 테이블 위의 와인을 들고 목현수의 얼굴에 뿌렸다.“목현수, 이 나쁜 놈!”와인을 뿌린 후 미스 샤넬은 하이힐 소리를 딱딱 내며 레스토랑을 떠났다.성연은 속으로 좀 놀랐다.미스 샤넬이 이렇게 불 같은 성질인 줄은 몰랐다.성연은 즉시 휴지를 꺼내 목현수에게 건네주었다.“사형, 빨리 좀 닦으세요.”목현수는 휴지를 받아 얼굴에 묻은 와인을 닦았다.오늘 밤 입고 있던 흰색 셔츠는 와인 세례를 받아 시뻘건 얼룩이 생기며 그 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갑작스러운 사태에 종업원이 달려와 성연에게 말했다.“고객님, 저희 레스토랑 옆에 상점이 있으니 대신 옷을 사드릴 수 있습니다. 고객님이 돈을 지불하신다면요.”성연은 목현수의 낭패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바로 카드를 꺼내 주었다.“네, 한 벌 좀 사다 주시죠.”종업원은 카드를 받고 목현수에게 말했다.“고객님,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는지요.”목현수가 사이즈를 말하자 종업원은 돌아서 나갔다.종업원이 옷을 사러 가는 틈을 타서 성연이 물었다.“사형, 도대체 왜 미스 샤넬을 건드렸어요?”미스 샤넬이 목현수에 대한 감정이 없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단순한 소유욕이 아니야. 그 여자의 눈에 담긴 건 애정이야.’성연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미스 샤넬을 언급하자 목현수는 불쑥 씁
목현수는 곧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성연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보았다.“사형, 내 생각이 어때요?”목현수가 되물었다.“무슨 생각?”“바로 미스 샤넬을 선택하는 거요. 가문도 뛰어나고 또 예쁘잖아요. 사형이 더 이상 따질 게 뭐가 있어요?” 성연의 생각에 미스 샤넬은 아주 완벽한 여성이었다.‘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미스 샤넬도 아주 예의 바르게 행동하겠지.’‘다만 사형 때문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정신을 잃고 잠시 예의를 잊었을 뿐이야.’그러자 목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나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내 성격이 도대체 어떤지, 또 내가 어떤 유형을 좋아하는지. 나와 미스 샤넬 사이에 좋은 기억도 있어. 하지만 내심 그녀는 내가 완전히 정착할 만한 여성은 아닌 것 같아.”목현수의 말을 해석하자면 자신과 미스 샤넬의 관계는 이미 과거이며, 그의 미래는 미스 샤넬이 아니라는 의미.그 뜻을 알아들은 성연은 바로 웃으며 비난했다.“사형, 진짜 쓰레기 같은 남자야!”목현수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자신은 확실히 못된 남자였다.그가 대답했다.“그래, 그런데 예전에는 바람둥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왜 쓰레기야?”성연은 바로 그를 폭로했다.“바람둥이는 나름 멋있기라도 하죠. 쓰레기 같은 남자는 한 마디로 욕이에요. 미스 샤넬이 이런 사형의 모습을 보고도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목현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관없다는 모습.“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 안 그래도 그녀 때문에 무척 귀찮았는데. 안 나타나는 데가 없는 것 같아. 미스 샤넬이 내 행적을 어떻게 알아내는지 정말 궁금해.”“됐어요, 두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끼어들지 않을 테니 사형이 직접 미스 샤넬에게 잘 설명해요.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요.” 미스 샤넬은 여전히 무섭다. 성연도 귀찮은 일에 대처하는 것을 가장 싫었다.‘맨날 욕먹기는 싫다고.’“돌아가서 내가 그녀에게 잘 말할게.”목현수는 오만한 미스 샤넬이 자신에게 큰
무진은 회의실에서 막 나온 참이다.최근 소지연이 회사 기밀을 누설한 데 따른 문제점들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마침내 좀 좋은 일이 생겼다.다음 순간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무진이 핸드폰을 꺼내 보니 조수경의 전화였다.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전화를 받았다.“수경 씨, 무슨 일이야?”무진이 부른 호칭에 조수경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초조한 음성으로 말했다.“무진 오빠, 할머니가 갑자기 감기에 걸리셨는데 상태가 좀 심각하세요. 지금 고모와 같이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왔어요.”무진은 입을 꽉 다물었다.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지금 어느 병원이니?”조수경이 주소를 하나 불렀다.무진이 곧 말했다. “거기서 기다려. 바로 곧 갈 테니.”조수경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사이에 무진이 전화를 끊었다.무진은 모든 일을 미루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병실로 들어가자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안금여의 얼굴이 창백했다.보아하니 정신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그러나 안금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진은 마음이 불안했다.“할머니, 괜찮으세요?”안금여는 무진을 보고는 바로 타박을 했다.“그렇게 놀라지 마. 그냥 감기에 걸렸을 뿐이야.”지금 안금여는 자신의 몸이 아직 정정하다고 생각한다.병상에 누워 있는 것도 별것 아니었다.강운경도 옆에서 말했다.“무진아, 너는 일이 바쁘잖아. 요즘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들도 많은데. 여기엔 나와 수경이만 있으면 돼. 너는 회사로 돌아가서 바쁜 일부터 해.”이렇게 왔다갔다하다 무진의 건강이 나빠질까 강운경은 걱정이 되었다.원래 무진의 몸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무진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사도 안정되기 시작했고.할머니 안금여가 또 아프시니 그도 안심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무진은 안금여의 병상 옆에 앉았다.“회사가 할머니보다 더 중요하겠어요? 괜찮아요.”“그런 소리 말아. 회사가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게 모두 회사를 위해서가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