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와 그녀의 변호사는 오후 2시 50분에 총재 사무실에 도착했다.그들 둘은 공공 사무실 공간을 지나갈 때도 조금도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높은 하이힐을 신은 주디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또깍! 또깍!”블루 항공을 떠날 때보다 그녀의 기색은 훨씬 더 좋아 보였다.입고 있는 옷도 원래보다 두 배 이상 비싼 브랜드였다.아무리 봐도 거액의 위약금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심유진의 자리를 지날 때 주디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콧등에 얹은 테가 넓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물었다.“김욱 씨가 여기에 계시죠?”그녀의 말투는 뜻밖으로 아주 친절했다.심유진이 고개를 들자 주디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심유진은 무슨 상황인지 몰랐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네.”“고마워요.”주디는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변호사를 데리고 김욱의 사무실로 향했다.“김욱 씨.”주디는 전에 김욱을 좋아했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와 마주하니 조금 쑥스러웠다.김욱은 시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일찍 오셨네요.”그는 보고 있던 문서를 닫고 일어섰다.“회의실로 갑시다. 유진 씨도 불러올게요.”“김욱 씨, 잠깐만요. 유진 씨를 불러선 안 돼요.”주디는 급하게 문을 막았다.“그건 왜죠?”김욱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그건... 제가 김욱 씨에게 말하려는 일이 유진 씨와 연관되어 있어요.”주디는 고민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그래요?”김욱은 갑자기 호기심에 가득 찼다.그는 아예 의자에 다시 앉아서 여유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러면 여기서 얘기하죠.”그는 맞은편에 있던 의자 두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앉으세요.”그러자 주디와 변호사가 의자에 앉았다.“제가 오늘에 온 건... 김욱 씨와 거래하고 싶어서 왔어요.”주디는 용기를 내어 김욱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무슨 거래요?”김욱이 궁금해서 물었다.“지금 김욱 씨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소식을 알려드릴
김욱은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꾸며낼지 매우 궁금했다.“네.”주디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유진 씨는 원래 블루 항공의 최상급 기밀을 빼내기 위해 모어에서 김욱 씨 곁에 일부러 꽂아둔 사람이에요. 그녀가 블루 항공에 오자마자 저한테 찾아왔어요. 제가 젊고 철없던 시절의 흑역사로 저를 협박해서 자신과 협력하도록 강요했어요.”김욱은 그 말을 듣자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주디 씨와 유진 씨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그건 전부 연기였으니까요. 그렇게 해야만 저와 유진 씨 둘 중의 한 사람이 들킨다 해도 나머지 한 사람이 의심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주디가 재빨리 해명했다.“그렇다면 또 말이 되네요.”김욱은 그녀의 말에 설득당하는 척했다.“하지만 제가 그렇게 빨리 회사에서 잘릴 줄은 몰랐어요.”그 일을 생각하니 주디는 원망스러워서 이를 갈았다.“어느 놈이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지 말이에요.”“그건 다 계획에 있었던 게 아니에요?”김욱이 물었다.주디는 눈가가 실룩거리더니 한순간 살짝 당황했다.“아니, 아니에요. 그게 어떻게 계획된 것일 수 있어요? 공교롭게도 유진 씨도 그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을 줄은 몰랐어요.”주디는 다급한 어조로 부인했다.그녀의 이런 반응을 본 김욱은 의심이 갔다.분명히 그녀가 자신 앞에서 한 말은 모두 일찍이 꾸며낸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다.그러나 김욱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그녀와 변호사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당황했던 것이었다.일시적인 거짓말을 보태면 필연적으로 더 큰 감정 파동이 있기 마련이다.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김욱은 곧 결론을 얻었다. 주디가 종업원과 충돌이 생겨서 싸우는 동영상 때문에 회사에서 잘렸고, 이것 또한 전부 그들의 계획했던 일이었다.이 단서를 따르면 아마 그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사람을 찾는다면...김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네. 알겠어요. 나에게 더 알려줄 것이 있
“주디가 그냥 가버렸다고? 나보고 같이 회의하자고 했잖아?”심유진이 김욱에게 물었다.그러자 김욱이 대답했다.“그들이 너를 부르지 말라 했어.”“왜? 그들이 오빠한테 뭐라고 했어?”심유진은 그들의 대화 내용이 궁금했다.“주디는 모어가 블루 항공에 꽂아둔 스파이의 이름을 나에게 알려주면 그녀의 위약금을 청구하지 말라고 했어.”김욱은 주디의 변호사가 건네준 협의서를 보여주며 말했다.“스파이? 누구야?”심유진은 점점 더 궁금해졌다.김욱은 그녀를 쳐다보기만 하고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그게 무슨 표정이야?”심유진이 멍해져서 물었다.하지만 김욱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웃음을 점점 더 깊어졌다.“설마...”심유진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주디의 이상한 표정과 말투가 생각났다.“주디가 날 스파이라고 했지?”그러자 김욱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축하해. 정답이야.”“그녀의 말을 믿어?”심유진이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김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네 눈에는 내가 바보로 보여?”“그런 건 아니야. 도대체 뭐라고 말했어?”심유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네가 입사한 게 음모의 시작이라고 했어. 네가 입사하자마자 그녀의 흑역사로 그녀를 협력하도록 강요하고 심지어 주디가 잘린 것도 너의 계획이었다고 말했어.”김욱은 주디가 했던 말을 요약해서 심유진에게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허점이 너무 많이 보였지만 난 믿는 척했어.”“그래서 나를 해고할 계획이야?”심유진은 김욱이 사용할 수단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주디가 그녀를 모함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썼던 건 진정한 스파이를 지키고 예전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오직 심유진이 회사에서 쫓겨나야 진정한 스파이가 방심하여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었다.김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당부했다.“그럴 생각이야. 감정을 좀 가다듬어 봐. 이따 사무실을 나갈 때 다른 사람들에게 화가 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오늘은 상황이
“네?”마리아는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왜요? 일에서 무슨 실수라도 했어요?”“몰라요.”심유진은 냉소하며 대답했다.“김욱 씨가 그냥 저에게 아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어요.”“설마요. 유진 씨는 김욱 씨와 사적으로 그렇게 친하잖아요. 그가 어떻게 아무 이유 없이 유진 씨를 해고하겠어요?”마리아는 떠나려는 심유진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아니면 다시 가서 김욱 씨와 잘 말해보세요. 왜 회사를 떠나라고 했는지. 유진 씨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됐어요!”심유진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절 자른다면 잘리면 되죠. 이런 쓰레기 같은 회사는 저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그녀는 마리아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마리아가 그녀의 뒤를 따라오면서 물었다.“지금 바로 가요? 인수인계 안 해도 되나요?”“김욱 씨는 오늘 중으로 회사를 떠나라고 했어요.”심유진은 서랍에 넣어둔 작은 물건들을 모두 배낭에 넣었다. 책상 위의 큰 물건들은 중요한 것들만 한 곳으로 모아 놓고 나머지는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종이상자 좀 갖다주시겠어요?”그녀가 마리아에게 물었다.“알았어요.”마리아는 대답하고 머뭇거리다가 다시 심유진에게 물었다.“정말 떠나기로 결심했어요?”“네.”심유진은 목에서 팻말을 떼어내 탁자 위에 힘껏 내리치면서 말했다.“일할 기회가 그렇게 많은데 제가 왜 이런 회사에서 시간 낭비해야죠? 정말 안 되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영어 교사나 하겠어요. 일도 적고 월급도 많은데. 그리고 미친 사장 따위는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요!”“유진 씨...”마리아는 목이 메어 왔고 갑자기 흐느껴 울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심유진을 껴안고 말했다.“유진 씨와 헤어지는 게 싫어요... 이제 겨우 회사에서 친구 한 명이 생겼는데...”“저는 그냥 회사를 떠날 뿐이에요.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심유진은 그녀를 안아주면서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했다.
저녁에 허태준과 영상통화를 할 때 심유진은 자기가 회사에서 잘린 사실을 알려줬다.그러자 허태준이 그녀에게 물었다.“아니면 대한민국으로 돌아올래요? 이쪽 일은 이미 마무리 단계라 별일 없으면 다음 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그녀가 망설이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나은희 씨가 유진 씨에게 많은 고객을 소개해 줬다고 들었어요. 아마 그들을 직접 만나서 사업 얘기를 하는 게 더 성의가 있지 않을까요?”허태준은 그녀가 오기를 원했다.“그럼 오빠랑 다음 주에 귀국해도 되는지 상의해 보겠어요. 원래 저보고 돌아가서 블루 항공 지사를 만들라고 했지만 지금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저와 함께 갈 사람이 없어요.”심유진은 혼자 힘으로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먼저 돌아가서 회사 주소를 정하고 필요한 회사 물품들을 준비하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었다.“알겠어요.”허태준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유진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릴게요.”그러자 심유진은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별이는 요즘 어때요?”그녀는 말머리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별이가 떠날 때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갔다. 심유진은 그가 보고 싶을 때 영상통화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매번 허씨 집안의 부모가 곁에 있어서 잘 지내는지, 엄마는 보고 싶은지 등등 이런 질문을 하기 불편했다.“잘 지내고 있어요.”허태준도 요즘 바빠서 별이와 연락을 많이 하지 못했다. 이틀에 한 번씩 30분 정도 전화할 수 있었다.그의 엄마가 오히려 카카오톡으로 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줘서 별이의 상황을 알려줬다.엄마의 말로는 별이가 점점 허씨 집안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두 노인과도 점점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그리고 그의 부모는 별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완전히 친손자로 대했다. 비록 원래부터 친손자였지만 말이다.“엄마가 엊그제 별이에게 가정교사가 필요한지 물으셨어요.”허태준은 별이 나이에 아버지의 강요로 많은 학원에 다녔고 심지
“이제 어떡하지? 그가 가기를 기다려?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하은설은 심유진과 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벽에 바짝 붙였다. 하은설은 계속 밖에서 나는 이상한 기척을 주시했다.“일단 기다려 보자.”심유진은 꺼림직했다.하은설과 심유진이 거주하는 곳은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거주자가 아니면 들어올 수가 없다.심유진은 혹시나 허태준이 돌아온 걸 가봐 무서웠다.허태준은 전에도 심유진 몰래 그녀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녀 주위에는 위험 요소가 워낙 많았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그때, 의문의 무거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유진의 심장박동도 점점 빨라졌다.드디어 발걸음 소리가 문밖에서 멈췄을 때 심유진의 심장은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하은설에게 절대 소리 내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다.[그 사람, 아무래도 바로 내 방 밖에 있는 것 같아. 나와 문을 사이에 두고 있다고.]하은설도 심유진 못지않게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심유진이 보낸 문자는 계속해서 하은설의 핸드폰에 떴다.[이따가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하은설은 숨을 죽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문밖으로 김욱의 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안에 있어?”“아, 미친!”심유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밀칠 뻔했다.“경찰에 신고 안 해도 돼. 우리 오빠야.”심유진은 영상통화를 끊고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난 오빠가 다시는 안 오는 줄 알았어.”심유진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김욱을 바라보았다. “오면 온다고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넌 그냥 회사에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스파이를 잡지 못했어. 넌 아직 위험한 상태야.”심유진은 계속 보호 받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이 늦은 시간에 왜 온 거야. 뭔 일 있어?”“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빨리 자라고 일깨워 주러 왔지.”김욱은 심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
재택근무를 해야 했던 심유진은 밖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하지만 업무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심유진은 당분간 판매와 고객 서비스 업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다른 회사와의 계약 세부 사항을 소통하고 상담에 응하는 업무를 맡았다.하은설은 방금 끓인 현미차를 심유진 옆에서 주룩주룩 마셔댔다.“나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하은설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공포에 떨었다.심유진은 타이핑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인데.”“너 분명 너의 오빠와 싸워서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하지 않았어?”하은설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심유진은 전혀 당황해하지 않았다.“응. 그런데 왜?”“그럼 어젯밤에 왜 온 거지?”하은설은 심유진 앞으로 조금씩 다가가며 말했다.“아무리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얼마나 심하게 싸웠겠어.”“음...”심유진은 적당하게 둘러댈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사실... 나 오빠와 갈등이 없었고 쫓겨난 것도 아니야.”“풋!”하은설은 재빨리 냉소를 지으며 심유진의 얼굴을 꼬집었다.“야! 이것도 친구라고!”하은설은 귀가 아플 정도로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했는지 알아?”하은설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어젯밤, 나는 네 오빠가 집까지 찾아와서 괜히 트집 잡는 줄 알았잖아! 그래서 내가 네 오빠를 호되게 꾸짖은 것도 모자라 손찌검까지 했다고! 아, 망했어! 그리고 네 오빠가 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아! 열받아!”심유진은 꼬집힌 얼굴이 너무 아팠지만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끝내 참지 못했다.“푸하하!”“웃음이 나와?”하은설은 어제의 기억이 상기되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젯밤 자신이 한 어리석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한 나머지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내가 미안해.”심유진은 웃다가 찔끔 나온 눈물을 손끝으로 닦으며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네가 오빠를 혼내줄 줄은 몰랐지.”하은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점심시간, 마리아한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유진 씨, 지금 뭐 해요?”심유진은 입안에 밥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밥 먹고 있어요. 마리아 씨는요?”“저도 밥 먹고 있죠.”마리아의 목소리는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유진 씨, 보고 싶어요. 유진 씨가 회사에 안 오니까 너무 외로워요. 같이 점심밥 먹어 줄 사람도 없고 출근 시간에 같이 농땡이 부릴 동료도 없어요. 휴...”앞으로 마리아와 만날 기회가 적어진 걸 생각하니 심유진도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마저도 우울해 하면 마리아가 더 침울해할 것을 고려해 감정을 숨긴 채 마리아를 타일렀다.“다른 분과 밥을 먹으면 되죠.”비록 대표실 직원을 다 바꿨다고 해도 마리아의 성격에 그들과 친해지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게다가 새로 온 직원 중 마리아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직원이 많았다. 마리아가 마음만 먹으면 공통된 언어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다른 분들이 유진 씨는 아니잖아요.”마리아는 계속 시무룩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마리아가 이토록 자신을 좋아하는지 심유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심유진은 회사를 떠난 후로부터 한 번도 마리아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미안했다.“아니면...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서 같이 밥 한 끼 먹을래요?”심유진은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심유진이 한국 갈 날이 머지않았고 이번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가기 전 마리아와 밥 한 끼 먹으면서 작별 인사를 할 계획이었다.“좋아요!”마리아는 냉큼 승낙했다.“뭘 먹을지는 유진 씨가 정해요! 전 뭐든지 좋아요!”“네.”심유진은 마리아를 다독이다가 전화를 끊었다....김욱은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왔다.같은 시각 심유진과 하은설은 거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놀고 있었다. 그 둘은 문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놀라서 자리에서 튕겨 나가듯 일어섰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현관 쪽을 바라봤다.김욱의 두 손에는 큰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그는 거실 중앙에 꼿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