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마리아한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유진 씨, 지금 뭐 해요?”심유진은 입안에 밥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밥 먹고 있어요. 마리아 씨는요?”“저도 밥 먹고 있죠.”마리아의 목소리는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유진 씨, 보고 싶어요. 유진 씨가 회사에 안 오니까 너무 외로워요. 같이 점심밥 먹어 줄 사람도 없고 출근 시간에 같이 농땡이 부릴 동료도 없어요. 휴...”앞으로 마리아와 만날 기회가 적어진 걸 생각하니 심유진도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마저도 우울해 하면 마리아가 더 침울해할 것을 고려해 감정을 숨긴 채 마리아를 타일렀다.“다른 분과 밥을 먹으면 되죠.”비록 대표실 직원을 다 바꿨다고 해도 마리아의 성격에 그들과 친해지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게다가 새로 온 직원 중 마리아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직원이 많았다. 마리아가 마음만 먹으면 공통된 언어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다른 분들이 유진 씨는 아니잖아요.”마리아는 계속 시무룩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마리아가 이토록 자신을 좋아하는지 심유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심유진은 회사를 떠난 후로부터 한 번도 마리아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미안했다.“아니면...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서 같이 밥 한 끼 먹을래요?”심유진은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심유진이 한국 갈 날이 머지않았고 이번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가기 전 마리아와 밥 한 끼 먹으면서 작별 인사를 할 계획이었다.“좋아요!”마리아는 냉큼 승낙했다.“뭘 먹을지는 유진 씨가 정해요! 전 뭐든지 좋아요!”“네.”심유진은 마리아를 다독이다가 전화를 끊었다....김욱은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왔다.같은 시각 심유진과 하은설은 거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놀고 있었다. 그 둘은 문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놀라서 자리에서 튕겨 나가듯 일어섰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현관 쪽을 바라봤다.김욱의 두 손에는 큰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그는 거실 중앙에 꼿꼿
하은설이 랩 하는 것처럼 퍼붓는 욕에 김욱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여태까지 육윤엽 빼고 그를 이렇게 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김욱은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입을 뗐다.“은설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하은설은 여전히 화가 나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오해? 제가 무슨 오해를 해요.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배신을 하니까 하는 말 아니에요? 블루 항공의 상속권을 뺏은 게 오해라는 거예요, 아니면 같이 자라온 정도 무시하고 유진이를 회사에서 내보낸 게 오해라는 거예요?”하은설이 어디서 들은 헛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욱은 꼭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다 오해예요. 저는 상속권을 뺏은 적도, 유진이를 회사에서 내보낸 적도 없어요. 현재 블루 항공의 대표는 여전히 삼촌이고 장차 그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 역시 유진이예요.”“이제 와서 능청스럽게 발뺌할 생각 하지 마요!”하은설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유진이가 다 저한테 말했어요! 제가 친구 말은 안 믿고 당신이 하는 헛소리를 믿을 것 같아요?”김욱은 드디어 일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것 같았다.“제 말을 못 믿겠다면 저와 함께 유진이 한테 물어봅시다.”김욱은 누구보다도 떳떳했다.다만 심유진이 장황하게 거짓말을 널어놓은 터라 이 둘이 쉽게 화를 삭힐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김욱의 당당한 모습에 하은설은 괜히 망설여졌다.“진짜... 유진이한테서 회사를 뺏은 게 아니에요?”하은설은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맹세해요.”김욱은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만약 제가 거짓말한 게 맞다면 천벌을 받을게요.”“됐어요. 그만하세요.”하은설은 다급히 김욱의 입을 막았다.“믿을게요. 제가 믿으면 되잖아요.”그녀는 골치가 아팠다.“방금 일부러 욕한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아무튼 미안해요. 김욱 씨”김욱은 더는 하은설한테 따지지 않았다.이 일이 하은설 탓도 아니었고 누구 탓인지 따지기 시작하면 아수라장이 되어버릴 것이다.“괜찮습니다.”김욱
“심유진! 이리 와봐!”김욱은 심유진을 불렀다.심유진은 얼굴을 찌푸린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방에 나타났다.“왜, 복수라도 하려고?”김욱은 눈썹을 찡그렸다.“아니!”심유진은 재빨리 태세 전환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사랑하는 오라버니께서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김욱은 강한 비린내를 풍기며 여전히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스티로폼 박스에서 꺼내 심유진 앞으로 던졌다.“생선 손질 좀 해줘.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손질해야 해.”“윽!”생생하게 살아서 펄떡이는 생물이 몸에 닿는 것도 무서웠던 심유진은 바로 김욱 뒤로숨었다. 심유진은 김욱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오빠, 내가 잘못했어, 진짜!”심유진은 울먹이며 싹싹 빌었다.“설마 이런 식으로 복수하는 건 아니지? 나 이러다가 트라우마 생기면 기면 어쩔 거야!”김욱은 마음을 굳게 먹은 것 같았다. 그는 등 뒤에 서있던 심유진을 끌어내고 식칼을 손에 쥐여주었다.“네가 선택해. 물고기를 죽일래, 아니면 네가 죽을래.”김욱은 엄숙한 표정으로 위협했고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왠지 섬뜩했다.상의할 여지 따위는 없어 보였다. 심유진은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생선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퍽!”방금까지 펄떡이던 물고기는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그,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해?”심유진은 멍하니 서서 김욱한테 물었다.김욱은 태연하게 다음 절차를 알려줬다.“비닐을 긁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다 걸러내. 그리고 생선을 한 조각씩 얇게 썰어주면 돼.”심유진은 눈앞에 펼쳐질 잔인한 광경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오, 오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오빠...”심유진은 김욱이 방심한 틈을 타 그의 옷소매를 잡으려 했다.김욱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잽싸게 피했다.“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질 생각하지 마.”그는 심유진을 봐줄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빨리 일해!”그 후 김욱의 감시 아래 심유진은 손질을 마쳤다.심유진이 손질을 하는 동안 김욱은 입
토요일 저녁.심유진과 마리아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 잡았다.이번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니 심유진은 특별히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예약했다. 레스토랑이 워낙 핫플레이스여서 육윤엽의 도움으로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레스토랑 문 앞에서 마주쳤다.마리아는 심유진을 보자마자 끌어안기 바빴다.“유진 씨!”마리아는 한참 동안 심유진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감탄을 자아냈다.“역시 야근을 안 하니까 얼굴색이 좋아졌네요.”심유진은 부끄러운 듯 웃었다.“오늘 화장이 잘 먹었을 뿐이에요.”오늘 두 사람이 온 레스토랑은 차림새를 주의해야 했다.하은설은 그녀에게 은색 롱스커트를 추천해 주었다. 메이크업은 자연스럽고 단아하게 연출했다.심유진은 내츄럴 하고 단아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한 시간 만에 완성했다.평소 십여 분 만에 끝낸 메이크업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심유진과 마리아는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두 사람의 출중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유진 씨?”그때, 옆에서 갑자기 심유진을 부르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심유진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먼 곳에 있는 앨런을 발견했다.앨런은 거래처와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한 남성과 여성이 그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보통 신분이 아닌 것 같았다.심유진은 힘겹게 웃음을 지었다.그녀는 고개를 까딱이고는 앨런과 길게 대화하지 않았다.마리아는 심유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저분이 유진 씨 친구예요?”“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예요.”마리아는 수상함을 느낀 듯 피식댔다.“보통 동료가 아닌 거 같은데요? 저분이 유진 씨를 보는 눈빛이... 묘한데요.”앨런은 심유진에 대한 호감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그와 초면인 마리아조차도 단번에 심유진을 향한 그의 애틋한 눈길을 보아낼 수 있었다.심유진은 그런 앨런이 딱하게 보일 뿐이었다.“진짜 그냥 동료일 뿐이에요.”심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리아와 앨런은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관계라서 심유진은 굳이 둘을 소개해 줄 생각이 없었다. “이쪽은 제가 킹 호텔에서 근무할 때 직속 상사였던 앨런이고 이쪽은 제 동료이자 친구인 마리아예요.”앨런은 젠틀한 모습을 뽐내려고 먼저 마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반가워요, 앨런 씨.”마리아는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녀는 앨런의 손을 살짝 잡으며 인사했다.“제가 정정할게요. 저는 현재 유진 씨의 동료가 아니라 옛 동료예요.”“네? 유진 씨, 또 이직했나요?”“아니요.”심유진은 애써 멋쩍게 웃음을 유지했다.“저 지금은 백수예요.”“무슨 말이에요?”앨런의 눈에는 의혹으로 가득했다.심유진이 킹 호텔에서 퇴사할 때 앨런한테 집에서 운영하는 회사로 이직할 거라고 말했었다. 그 때문에 심유진은 앨런 앞에서 차마 자신이 잘렸다는 거짓말 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잘렸다고 했다간 들통날 게 뻔했다. 게다가 마리한테 그녀의 정체를 들킬 수도 있었다.심유진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마리아를 슬쩍 쳐다봤다.“그냥 저랑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심유진은 마리아가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앨런한테 진실을 말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과연 마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눈치를 챘다.“네. 대표님이 유진 씨를 붙잡으려 온갖 노력을 다했어요. 그럼에도 유진 씨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우리 부서 동료들도 다 섭섭했어요.”앨런은 그 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그는 심유진의 업무 능력이 강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렇게 능력 있는 심유진이 잘린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지금 다니는 직장이 없다면 킹 호텔로 돌아오는 건 어때요?”앨런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전 일단 좀 쉬고 싶어요.”심유진은 그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그래요. 어쩔 수 없죠.”앨런은 굳이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다.“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일할 의향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거래처 고객이 아직 기다리고 있어 앨런은 이내 자리로 돌아
“갑자기 웬 선물이에요?”마리아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손목에서 반짝이는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심유진은 더 이상 마리아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저 다음 주에 한국으로 돌아가요.”“네?”마리아는 깜짝 놀랐다.“진짜 가서 영어 가르칠 생각이에요?”“아직은 모르겠어요. 돌아간 후에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심유진은 미소를 머금고 계속해서 말했다.“사실 집이 좀 그리워요. 혼자 외국에서 직장도 잃었고 너무 힘들더라고요.”“그렇긴 하겠네요.”마리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럼, 이제 또 여기에 올 거예요?”마리아는 내심 기대하며 물었다.“상황 봐서요. 제가 한국에서 새 직장을 찾으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요.”심유진은 조심스레 대답했다.“그럼 저분은 어쩌고요?”마리아는 그새를 못 참고 먼 곳에 앉아 있는 앨런을 보며 놀렸다.“앨런 씨는 유진 씨가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심유진은 재차 해명했다.“앨런 씨와 저는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네, 알겠어요. 두 분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됐죠?”마리아는 여전히 키득거리며 심유진을 놀려먹었다. 심유진의 말을 믿지 않는 게 확실했다.앨런을 마주친 후로 심유진은 이번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뚝 떨어졌다.심유진은 마리아와 밥을 먹으면서 많은 대화를 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멀리서 바라보는 앨런의 눈빛이 그녀를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심유진은 부랴부랴 식사를 마친 후 결제를 한 뒤 빨리 떠나려 했다.심유진과 마리아가 레스토랑을 떠나려는 순간 앨런이 따라나섰다.“유진 씨!”그는 큰소리로 심유진을 불러세웠다.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무슨 일 있어요?”“내일 일요일인데, 혹시 시간 돼요?”앨런은 다급하게 물었다.“사실 프레디와 나가서 놀 생각인데 유진 씨도 같이 갈래요?”“죄송해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앨런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심유진은 거절했다.“부자끼리 좋은 시간 보내요!”“하지만 프레디가
레스토랑 문 앞에서 함께 있는 그 둘의 모습을 본 후로 심유진은 도통 잠이 오지를 않았다.마리아와 앨런이 웃고 있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심유진은 그 웃음에 담긴 의미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웃고 있는게 확실해 보였다....일요일 아침.심유진은 마리아한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유진 씨!”전화기 너머로 마리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어제 집으로 돌아간 후, 실수로 팔찌를 끊어뜨렸어요... 혹시 어디서 고칠 수 있는지 알아요?”심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팔찌를 산 곳을 보내줬다.“제가 보낸 주소로 찾아가면 돼요. 제가 미리 샵주한테 얘기해 놓을게요.”“유진 씨, 저와 같이 가주면 안 돼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만약 샵주가 고쳐주지 않으면 어쩌죠?”“사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심유진은 사실 그대로 말했다. 사실 그녀도 인터넷으로 팔찌를 구매하기는 처음이었다. 그 샵이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한번 믿어보는 마음으로 산 것이었다.“마음이 안놓이면 먼저 내버려두세요. 제가 나중에 믿을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봐 줄게요.”“이 팔찌 유진 씨가 준 선물인데 어떻게 가만히 내버려둬요. 하루라도 빨리 고치고 싶어요.”마리아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유진 씨, 제발요. 저랑 같이 가요. 네?”심유진은 단호하게 거절하려던 찰나 주방으로 다가오고 있는 김욱을 발견했다.“알겠어요.”심유진은 바로 말을 바꿨다.“저 지금 옷 갈아입고 나갈게요. 제가 집 앞으로 데리러 갈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요.”김욱은 통화 소리를 듣고 심유진한테 뭔가 물어보려 했다.심유진은 잽싸게 손가락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괜찮아요. 제가 신세를 지는 건데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마리아는 연신 거절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아니면 제가 유진 씨 데리러 갈게요.”심유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그래도 되죠.”“그럼, 저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마리아는 그제야 흡족하게 전화를 끊었다.
유리컵은 바닥에 떨어져 조각조각 부서졌다.주스는 바닥에 쏟아졌고 심유진의 다리와 슬리퍼에도 주스가 튕겼다.“너...”김욱은 점점 가까이 흘러오는 주스를 보며 절망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절대 말하지 않았을 거다.“왜! 왜! 무슨 일 있어?”하은설은 부랴부랴 방에서 달려 나왔다. 그녀는 주방 안에 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김욱은 기침이 멈추지 않아 곧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는 힘겹게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물...”하은설은 단번에 뜻을 알아차리고 다급하게 물 한 잔을 따라서 김욱한테 건넸다.그는 물 반 컵을 비운 후에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심유진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마리아 씨가 스파이라고? 진짜야?”심유진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그렇지만 마리아 씨는 블루 항공에서 근무한 지 오래됐잖아. 그전에도 회사의 기밀이 모어 항공에 넘어간 적 있어?”“그전에는 없었지.”한바탕 기침하고 나니 김욱은 어느새 목이 잠겼다.“하지만 이미 증거를 확보했어.”심유진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은 것 같았다. “무슨 증거인데?”“나 마리아 씨의 이력서를 확인했어.”김욱은 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였다.“마리아 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어. 그녀는 어릴 적부터 엄마 손에서 자랐지.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주부였어. 그 모녀는 보잘것없는 농촌에서 살았지만 생활이 풍족했대. 마리아 씨의 동창들도 그녀가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옷, 가방과 화장품이 모두 명품이었대.”“그 말은 즉, 마리아 씨가 후원받은 거라는 거야?”심유진이 그의 말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김욱은 심유진을 째려보더니 한심한 듯 말했다.“네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참 궁금하네.”“그럼, 그 돈이 다 어디서 난 건데?”심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그게 수상했단 말이야.”김욱은 식탁을 탁탁 두드렸다.“그래서 내가 해커를 통해 뒷조사를 해봤는데 마리아 씨가 블루 항공에서 근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