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마리아는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왜요? 일에서 무슨 실수라도 했어요?”“몰라요.”심유진은 냉소하며 대답했다.“김욱 씨가 그냥 저에게 아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어요.”“설마요. 유진 씨는 김욱 씨와 사적으로 그렇게 친하잖아요. 그가 어떻게 아무 이유 없이 유진 씨를 해고하겠어요?”마리아는 떠나려는 심유진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아니면 다시 가서 김욱 씨와 잘 말해보세요. 왜 회사를 떠나라고 했는지. 유진 씨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됐어요!”심유진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절 자른다면 잘리면 되죠. 이런 쓰레기 같은 회사는 저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그녀는 마리아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마리아가 그녀의 뒤를 따라오면서 물었다.“지금 바로 가요? 인수인계 안 해도 되나요?”“김욱 씨는 오늘 중으로 회사를 떠나라고 했어요.”심유진은 서랍에 넣어둔 작은 물건들을 모두 배낭에 넣었다. 책상 위의 큰 물건들은 중요한 것들만 한 곳으로 모아 놓고 나머지는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종이상자 좀 갖다주시겠어요?”그녀가 마리아에게 물었다.“알았어요.”마리아는 대답하고 머뭇거리다가 다시 심유진에게 물었다.“정말 떠나기로 결심했어요?”“네.”심유진은 목에서 팻말을 떼어내 탁자 위에 힘껏 내리치면서 말했다.“일할 기회가 그렇게 많은데 제가 왜 이런 회사에서 시간 낭비해야죠? 정말 안 되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영어 교사나 하겠어요. 일도 적고 월급도 많은데. 그리고 미친 사장 따위는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요!”“유진 씨...”마리아는 목이 메어 왔고 갑자기 흐느껴 울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심유진을 껴안고 말했다.“유진 씨와 헤어지는 게 싫어요... 이제 겨우 회사에서 친구 한 명이 생겼는데...”“저는 그냥 회사를 떠날 뿐이에요.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심유진은 그녀를 안아주면서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했다.
저녁에 허태준과 영상통화를 할 때 심유진은 자기가 회사에서 잘린 사실을 알려줬다.그러자 허태준이 그녀에게 물었다.“아니면 대한민국으로 돌아올래요? 이쪽 일은 이미 마무리 단계라 별일 없으면 다음 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그녀가 망설이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나은희 씨가 유진 씨에게 많은 고객을 소개해 줬다고 들었어요. 아마 그들을 직접 만나서 사업 얘기를 하는 게 더 성의가 있지 않을까요?”허태준은 그녀가 오기를 원했다.“그럼 오빠랑 다음 주에 귀국해도 되는지 상의해 보겠어요. 원래 저보고 돌아가서 블루 항공 지사를 만들라고 했지만 지금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저와 함께 갈 사람이 없어요.”심유진은 혼자 힘으로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먼저 돌아가서 회사 주소를 정하고 필요한 회사 물품들을 준비하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었다.“알겠어요.”허태준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유진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릴게요.”그러자 심유진은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별이는 요즘 어때요?”그녀는 말머리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별이가 떠날 때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갔다. 심유진은 그가 보고 싶을 때 영상통화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매번 허씨 집안의 부모가 곁에 있어서 잘 지내는지, 엄마는 보고 싶은지 등등 이런 질문을 하기 불편했다.“잘 지내고 있어요.”허태준도 요즘 바빠서 별이와 연락을 많이 하지 못했다. 이틀에 한 번씩 30분 정도 전화할 수 있었다.그의 엄마가 오히려 카카오톡으로 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줘서 별이의 상황을 알려줬다.엄마의 말로는 별이가 점점 허씨 집안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두 노인과도 점점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그리고 그의 부모는 별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완전히 친손자로 대했다. 비록 원래부터 친손자였지만 말이다.“엄마가 엊그제 별이에게 가정교사가 필요한지 물으셨어요.”허태준은 별이 나이에 아버지의 강요로 많은 학원에 다녔고 심지
“이제 어떡하지? 그가 가기를 기다려?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하은설은 심유진과 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벽에 바짝 붙였다. 하은설은 계속 밖에서 나는 이상한 기척을 주시했다.“일단 기다려 보자.”심유진은 꺼림직했다.하은설과 심유진이 거주하는 곳은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거주자가 아니면 들어올 수가 없다.심유진은 혹시나 허태준이 돌아온 걸 가봐 무서웠다.허태준은 전에도 심유진 몰래 그녀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녀 주위에는 위험 요소가 워낙 많았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그때, 의문의 무거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유진의 심장박동도 점점 빨라졌다.드디어 발걸음 소리가 문밖에서 멈췄을 때 심유진의 심장은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하은설에게 절대 소리 내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다.[그 사람, 아무래도 바로 내 방 밖에 있는 것 같아. 나와 문을 사이에 두고 있다고.]하은설도 심유진 못지않게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심유진이 보낸 문자는 계속해서 하은설의 핸드폰에 떴다.[이따가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하은설은 숨을 죽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문밖으로 김욱의 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안에 있어?”“아, 미친!”심유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밀칠 뻔했다.“경찰에 신고 안 해도 돼. 우리 오빠야.”심유진은 영상통화를 끊고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난 오빠가 다시는 안 오는 줄 알았어.”심유진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김욱을 바라보았다. “오면 온다고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넌 그냥 회사에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스파이를 잡지 못했어. 넌 아직 위험한 상태야.”심유진은 계속 보호 받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이 늦은 시간에 왜 온 거야. 뭔 일 있어?”“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빨리 자라고 일깨워 주러 왔지.”김욱은 심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
재택근무를 해야 했던 심유진은 밖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하지만 업무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심유진은 당분간 판매와 고객 서비스 업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다른 회사와의 계약 세부 사항을 소통하고 상담에 응하는 업무를 맡았다.하은설은 방금 끓인 현미차를 심유진 옆에서 주룩주룩 마셔댔다.“나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하은설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공포에 떨었다.심유진은 타이핑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인데.”“너 분명 너의 오빠와 싸워서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하지 않았어?”하은설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심유진은 전혀 당황해하지 않았다.“응. 그런데 왜?”“그럼 어젯밤에 왜 온 거지?”하은설은 심유진 앞으로 조금씩 다가가며 말했다.“아무리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얼마나 심하게 싸웠겠어.”“음...”심유진은 적당하게 둘러댈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사실... 나 오빠와 갈등이 없었고 쫓겨난 것도 아니야.”“풋!”하은설은 재빨리 냉소를 지으며 심유진의 얼굴을 꼬집었다.“야! 이것도 친구라고!”하은설은 귀가 아플 정도로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했는지 알아?”하은설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어젯밤, 나는 네 오빠가 집까지 찾아와서 괜히 트집 잡는 줄 알았잖아! 그래서 내가 네 오빠를 호되게 꾸짖은 것도 모자라 손찌검까지 했다고! 아, 망했어! 그리고 네 오빠가 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아! 열받아!”심유진은 꼬집힌 얼굴이 너무 아팠지만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끝내 참지 못했다.“푸하하!”“웃음이 나와?”하은설은 어제의 기억이 상기되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젯밤 자신이 한 어리석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한 나머지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내가 미안해.”심유진은 웃다가 찔끔 나온 눈물을 손끝으로 닦으며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네가 오빠를 혼내줄 줄은 몰랐지.”하은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점심시간, 마리아한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유진 씨, 지금 뭐 해요?”심유진은 입안에 밥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밥 먹고 있어요. 마리아 씨는요?”“저도 밥 먹고 있죠.”마리아의 목소리는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유진 씨, 보고 싶어요. 유진 씨가 회사에 안 오니까 너무 외로워요. 같이 점심밥 먹어 줄 사람도 없고 출근 시간에 같이 농땡이 부릴 동료도 없어요. 휴...”앞으로 마리아와 만날 기회가 적어진 걸 생각하니 심유진도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마저도 우울해 하면 마리아가 더 침울해할 것을 고려해 감정을 숨긴 채 마리아를 타일렀다.“다른 분과 밥을 먹으면 되죠.”비록 대표실 직원을 다 바꿨다고 해도 마리아의 성격에 그들과 친해지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게다가 새로 온 직원 중 마리아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직원이 많았다. 마리아가 마음만 먹으면 공통된 언어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다른 분들이 유진 씨는 아니잖아요.”마리아는 계속 시무룩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마리아가 이토록 자신을 좋아하는지 심유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심유진은 회사를 떠난 후로부터 한 번도 마리아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미안했다.“아니면...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서 같이 밥 한 끼 먹을래요?”심유진은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심유진이 한국 갈 날이 머지않았고 이번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가기 전 마리아와 밥 한 끼 먹으면서 작별 인사를 할 계획이었다.“좋아요!”마리아는 냉큼 승낙했다.“뭘 먹을지는 유진 씨가 정해요! 전 뭐든지 좋아요!”“네.”심유진은 마리아를 다독이다가 전화를 끊었다....김욱은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왔다.같은 시각 심유진과 하은설은 거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놀고 있었다. 그 둘은 문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놀라서 자리에서 튕겨 나가듯 일어섰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현관 쪽을 바라봤다.김욱의 두 손에는 큰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그는 거실 중앙에 꼿꼿
하은설이 랩 하는 것처럼 퍼붓는 욕에 김욱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여태까지 육윤엽 빼고 그를 이렇게 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김욱은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입을 뗐다.“은설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하은설은 여전히 화가 나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오해? 제가 무슨 오해를 해요.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배신을 하니까 하는 말 아니에요? 블루 항공의 상속권을 뺏은 게 오해라는 거예요, 아니면 같이 자라온 정도 무시하고 유진이를 회사에서 내보낸 게 오해라는 거예요?”하은설이 어디서 들은 헛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욱은 꼭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다 오해예요. 저는 상속권을 뺏은 적도, 유진이를 회사에서 내보낸 적도 없어요. 현재 블루 항공의 대표는 여전히 삼촌이고 장차 그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 역시 유진이예요.”“이제 와서 능청스럽게 발뺌할 생각 하지 마요!”하은설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유진이가 다 저한테 말했어요! 제가 친구 말은 안 믿고 당신이 하는 헛소리를 믿을 것 같아요?”김욱은 드디어 일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것 같았다.“제 말을 못 믿겠다면 저와 함께 유진이 한테 물어봅시다.”김욱은 누구보다도 떳떳했다.다만 심유진이 장황하게 거짓말을 널어놓은 터라 이 둘이 쉽게 화를 삭힐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김욱의 당당한 모습에 하은설은 괜히 망설여졌다.“진짜... 유진이한테서 회사를 뺏은 게 아니에요?”하은설은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맹세해요.”김욱은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만약 제가 거짓말한 게 맞다면 천벌을 받을게요.”“됐어요. 그만하세요.”하은설은 다급히 김욱의 입을 막았다.“믿을게요. 제가 믿으면 되잖아요.”그녀는 골치가 아팠다.“방금 일부러 욕한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아무튼 미안해요. 김욱 씨”김욱은 더는 하은설한테 따지지 않았다.이 일이 하은설 탓도 아니었고 누구 탓인지 따지기 시작하면 아수라장이 되어버릴 것이다.“괜찮습니다.”김욱
“심유진! 이리 와봐!”김욱은 심유진을 불렀다.심유진은 얼굴을 찌푸린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방에 나타났다.“왜, 복수라도 하려고?”김욱은 눈썹을 찡그렸다.“아니!”심유진은 재빨리 태세 전환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사랑하는 오라버니께서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김욱은 강한 비린내를 풍기며 여전히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스티로폼 박스에서 꺼내 심유진 앞으로 던졌다.“생선 손질 좀 해줘.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손질해야 해.”“윽!”생생하게 살아서 펄떡이는 생물이 몸에 닿는 것도 무서웠던 심유진은 바로 김욱 뒤로숨었다. 심유진은 김욱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오빠, 내가 잘못했어, 진짜!”심유진은 울먹이며 싹싹 빌었다.“설마 이런 식으로 복수하는 건 아니지? 나 이러다가 트라우마 생기면 기면 어쩔 거야!”김욱은 마음을 굳게 먹은 것 같았다. 그는 등 뒤에 서있던 심유진을 끌어내고 식칼을 손에 쥐여주었다.“네가 선택해. 물고기를 죽일래, 아니면 네가 죽을래.”김욱은 엄숙한 표정으로 위협했고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왠지 섬뜩했다.상의할 여지 따위는 없어 보였다. 심유진은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생선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퍽!”방금까지 펄떡이던 물고기는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그,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해?”심유진은 멍하니 서서 김욱한테 물었다.김욱은 태연하게 다음 절차를 알려줬다.“비닐을 긁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다 걸러내. 그리고 생선을 한 조각씩 얇게 썰어주면 돼.”심유진은 눈앞에 펼쳐질 잔인한 광경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오, 오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오빠...”심유진은 김욱이 방심한 틈을 타 그의 옷소매를 잡으려 했다.김욱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잽싸게 피했다.“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질 생각하지 마.”그는 심유진을 봐줄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빨리 일해!”그 후 김욱의 감시 아래 심유진은 손질을 마쳤다.심유진이 손질을 하는 동안 김욱은 입
토요일 저녁.심유진과 마리아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 잡았다.이번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니 심유진은 특별히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예약했다. 레스토랑이 워낙 핫플레이스여서 육윤엽의 도움으로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레스토랑 문 앞에서 마주쳤다.마리아는 심유진을 보자마자 끌어안기 바빴다.“유진 씨!”마리아는 한참 동안 심유진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감탄을 자아냈다.“역시 야근을 안 하니까 얼굴색이 좋아졌네요.”심유진은 부끄러운 듯 웃었다.“오늘 화장이 잘 먹었을 뿐이에요.”오늘 두 사람이 온 레스토랑은 차림새를 주의해야 했다.하은설은 그녀에게 은색 롱스커트를 추천해 주었다. 메이크업은 자연스럽고 단아하게 연출했다.심유진은 내츄럴 하고 단아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한 시간 만에 완성했다.평소 십여 분 만에 끝낸 메이크업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심유진과 마리아는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두 사람의 출중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유진 씨?”그때, 옆에서 갑자기 심유진을 부르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심유진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먼 곳에 있는 앨런을 발견했다.앨런은 거래처와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한 남성과 여성이 그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보통 신분이 아닌 것 같았다.심유진은 힘겹게 웃음을 지었다.그녀는 고개를 까딱이고는 앨런과 길게 대화하지 않았다.마리아는 심유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저분이 유진 씨 친구예요?”“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예요.”마리아는 수상함을 느낀 듯 피식댔다.“보통 동료가 아닌 거 같은데요? 저분이 유진 씨를 보는 눈빛이... 묘한데요.”앨런은 심유진에 대한 호감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그와 초면인 마리아조차도 단번에 심유진을 향한 그의 애틋한 눈길을 보아낼 수 있었다.심유진은 그런 앨런이 딱하게 보일 뿐이었다.“진짜 그냥 동료일 뿐이에요.”심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