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택양은 조심스럽게 얼굴을 반쯤만 내밀고 심유진의 뒤를 여러 번 살폈다. 뒤따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물쇠를 풀어 문을 열어주었다.“들어오세요.”허택양의 말에도 심유진은 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물었다."은설이는요?"“은설더러 나오라고 하세요. 그다음에 제가 들어갈게요.”“은설은 여기에 없어요.”허택양은 대답했다.심유진은 빠르게 반걸음 뒤로 후퇴하여 허택양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심유진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양옆의 방문이 갑자기 모두 열리면서 검은 슈트를 입은 덩치 좋은 사내들이 그녀를 둘러쌌다.심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허택양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건장한 사내들은 심유진을 잡아 밧줄로 묶고 허택양의 방에 가두었다.비좁은 방 안은 어수선했고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왔다.심유진의 구겨진 미간을 보면서 허택양은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걱정하지 마요, 여기에 오랫동안 있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허택양은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심유진의 턱을 잡았다. 허태준과 닮은 얼굴이 심유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심유진은 허택양을 벗어나고자 머리를 한쪽으로 돌려버렸다."쳇."허택양은 그녀의 모습을 비웃었다."심유진 씨,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요.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지금 순순히 나를 따르고 목숨을 부지할 것 같은데."심유진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질문했다.“은설이는요?”하은설의 안부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은설은 아무 일도 없어요.”말을 마치고 허택양은 다시 심유진에게 다가갔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내가 말했잖아요, 은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하...”심유진은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당신의 말을 믿을 것 같아요?”허택양은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켰다.“좋아요, 은설을 보여줄게요.”허택양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어 영상통화를 걸었다.영상통화는 금방 연결되었고 허택양은 영상을 잘 볼 수 있
심유진은 그동안 허택양이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단 몇 년 사이에 그에게서는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어쩌면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속의 변태 살인마와 허택양의 얼굴이 천천히 겹쳐 보였다. 심유진은 숨을 참고 이빨을 꽉 깨물고 나서야 가까스로 공포를 잠재웠다.긴장한 심유진을 본 허택양의 웃음은 점점 더해갔다 .심유진이 불안해할수록 허택양은 더욱 흥분했다.“내가 무섭죠.”허택양은 강한 확신의 말투로 말했다.심유진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지 않았고 몸 뒤로 묶여 있는 두 손에 힘을 주고 시트를 꽉 잡았다.“지금 당신의 모습을 찍어서 허태준에게 보여주고 싶어요.”허택양의 손가락은 심유진의 눈썹부터 입술까지 얼굴 전체를 쓸었다.“사랑하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본다면 태준도 힘들겠죠?”“사랑하는 여인?”심유진은 눈썹을 치켜뜨고 비꼬았다.“허태준이 사랑하는 여인은 아직 감옥에 있는 거 아니에요?”“심유진 씨.”허택양의 눈빛은 차가워졌고 그녀에게 경고 어린 말을 내뱉었다.“내 앞에서 잔머리 쓰지 마요. 내가 모르는 줄 아나 본데, 당신이랑 허태준이 재혼한 사실을 난 알아요.”심유진과 허태준이 재혼한 사실은 몇몇 사람밖에 알지 못했다.심유진은 단번에 하은설이 허태준에게 들켰음을 눈치챘다.이 또한 허택양이 의도를 숨기고 하은설에게 접근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맞아요. 제가 허태준이랑 재혼했어요.”심유진은 당당하게 인정했다.“그런데 결혼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죠?”심유진은 허택양에게 되물었다.“잊지 말아요, 저랑 허태준이 결혼했을 때 그는 아직도 정소월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요.”“그건 정소월이 이미 결혼했기 때문이에요!”허택양은 흥분해서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자신이 너무 쉽게 흥분했음을 느낀 허택양은 계면쩍은 듯 웃었고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그럼 당신이 말해 봐요. 허태준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왜 결혼했는지?”“은설이 아직 말 안 했나요? 저의 친아버지가 바
“당신이 듣고 싶지 않다면...”허택양은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나가서 받을게요.”심유진은 허택양이 자신의 간절함을 눈치챌까 봐 그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마음대로 해요.”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는 심유진이었다.“쳇.”허택양은 자기가 한 말대로 나갔다.곧바로 검은 슈트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들어와 무표정으로 심유진을 쳐다보며 경고했다.“가만히 있어요, 도망갈 생각 말고!”건장한 사내는 보기에는 흉악했으나 허택양만큼의 압박감은 주지 않았다.심유진은 묶인 다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지금 상태로 어떻게 도망가겠어요?”사내는 가볍게 비웃었고 그 후로 심유진을 상대하지 않았다.심유진은 적극적으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이런 일 하면 허택양이 얼마나 줘요? 내가 당신과 동료들 지금의 두 배로 줄 테니까, 나 좀 풀어주면 안 돼요?”사내는 그녀를 째려보고는 소리쳤다.“닥쳐!”심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정말이에요.”“내가 허택양보다 돈이 많거든요. 게다가 당신들이 나를 데려가면 가족들이 당신들 가만 안 놔둘 거예요.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가 N 시티에서 한 가닥 하시거든요. 그리고 허태준도 엄청난 걸 당신들도 잘 알죠? 당신들 조사하는 건 시간문제예요. 당신이 와이프나 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없다고 해도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은 있을 것 아니에요. 허태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는 타입이라 걸리면 당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걸요?”평온했던 사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심유진은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내가 장담해요. 만약 당신이 나와 내 친구를 무사히 풀어주면 당신들에게 두 배의 값을 지불하고 오늘 일은 죽어도 묻지 않을게요!”사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진짜죠?”“그럼요!”심유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걱정된다면 각서를 쓸 수도 있어요!”사내는 생각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좋아요! 잠시 후에 내가 동료들과 상의를 해보죠. 다만...”
허택양은 마치 신유진의 말에 혹한듯해 보였다. 몇 초간 두려워하는 듯 보이던 얼굴빛은 다시 어둡게 변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검은색 슈트를 입은 사내가 밀치고 막무가내로 들어왔다.그는 시종 얼굴을 굳히고 허택양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시종일관 심유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허 대표님 시간 다 됐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허택양에게 말했다.“그래.”허택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유진을 침대에서 당겼다.다리가 묶인 신유진은 휘청거리다가 몸이 앞으로 쏠려 벽에 부딪힐 뻔했다.허택양은 등 뒤에서 심유진을 당겼고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의 다리에 둘러싸인 줄을 쳐다보았다.처음에는 심유진이 도망갈 것을 대비하여 그녀에게 밧줄을 감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을 지체할 줄은 몰랐다.허택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내를 불렀다.“풀어 줘.”그리고는 심유진에 대한 경고도 빼먹지 않았다.“만약 일을 저지른다면 하은설은...”“걱정 말아요! 난 절대 돌아 도망가지 않아요.”심윤지는 허택양을 비웃었다.“내가 당신보다는 신용을 잘 지키잖아요.”그 말에 허택양도 비아냥거렸다.“그러면 다행이고요.”사내는 허택양에게 물었다.“허 대표님, 손에 묶인 것도 풀까요?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걸 보고 신고라도 하면...”허택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풀어, 아무튼 도망가지 못하니까.”풀리지 않게 단단히 묶은 탓에 작은 칼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풀 수 있었다.심유진은 사내의 손에 든 반짝거리는 칼을 보고서는 몰래 사내에게 눈짓을 보냈다.사내도 빨리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허택양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칼을 심유진의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준비됐습니다.”사내는 아무런 표정 없이 허택양에게 보고를 올렸다.허택양은 신유진을 끌어안아 친밀한 사이처럼 보이게 했다.“나가서 큰 소리 내지 마요. 다른 사람에게 구원하지도 마요. 아니면...”“아니면 하은설과 아이도 죽일 거죠.”심유진은 냉정하게 그의 말을 이었다.“됐어,
양아치들의 시선이 모두 허택양에게 집중된 틈을 노려 심유진은 도망쳤다.양아치들은 심유진이 계속하여 더욱 안쪽으로 달려가자 독 안에 든 쥐 격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더 이상 심유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허택양을 더욱 심하게 비웃었다.“이것 봐, 네 여자도 너를 버리고 도망치네!”“넌 쓸모없는 놈이야!”“하하하하하!”...심유진은 가장 빠른 속도로 허택양이 자신을 가두었던 방문까지 달려와 큰 소리로 외쳤다.“빨리 나와요! 허택양이 맞고 있어요!”사내들은 여러 방에서 달려 나왔고 맨 처음 나온 사내는 바로 심유진과 거래가 있었던 사내였다.그 사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는지 매우 직설적으로 말했다.“허 씨 그 자가 맞고 있으면 당신은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우리한테 달려온 거지?”“내가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심유진은 손을 내저으며 다그쳤다.“됐어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구해줘요! 그 사람이 가지 않으면 내 친구도 돌아갈 수 없다고요!”심유진은 사내들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밖으로 나갔다.허택양은 여전히 양아치들에게 붙잡혔고 얼굴에는 상처가 늘었다.한 놈이 손을 높게 들어 허택양의 얼굴을 가격하려는 찰나 심유진이 소리쳤다.“그만!”양아치의 동작은 멈추었고 욕설을 내뱉으려 하던 놈은 심유진 뒤의 무리를 보고 당황해하며 자기 무리에게 말했다.“가자!”그놈들은 빠르게 도망쳤고 금세 모습을 감췄다.사내들은 빠르게 허택양에게 달려왔다.“허 대표님, 괜찮으세요?”“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저희가 너무 늦었습니다.”“병원으로 갈까요, 허 대표님?”...모두들 하나같이 허택양을 세심하게 보살폈다.사내들이 배신한 사실을 몰랐다면 심유진은 아마 그들이 허택양에 대한 ‘진심’에 감동했을지도 모른다.허택양은 고통을 참으며 손사래를 쳤다.“괜찮아, 병원으로 가지 말고 공항으로 가지.”허택양은 심유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비록 몇몇 양아치들을 마주치기는 했으나
허택양이 나가자 심유진은 사내의 핸드폰을 빌렸다.심유진의 핸드폰은 허택양이 빼앗아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는 3개뿐이었다. 자신의 번호, 은설의 번호, 그리고 별이 전화번호.자신과 하은설의 번호는 받지 않을 테니 모든 희망은 별이의 번호에 걸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이면 김욱과 함께일 것이다.허택양이 빨리 돌아올 것이 두려워 심유진은 번호를 누른 후 핸드폰을 돌려줬다.“김욱을 찾아요.”심유진은 곁에서 작게 말했다.사내는 시키는 대로 했다.공항안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륙 항공편 정보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심유진은 귀를 쫑긋거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사내는 고개를 숙여 심유진에게 알렸다.“김욱이 받았습니다.”“하은설을 데리러 가라고 해요.”심유진의 두 눈은 앞을 주시했고 그와 어떠한 눈빛도 주고받지 않았다.“당신은 알고 있죠? 은설이가 어디에 갇힌 건지.”허택양은 아마 하은설을 지키는 모든 이들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심유진이 도망을 친다면 하은설을 다시 붙잡아 올 수도 있었다. 지금의 하은설 상태라면 결코 스스로 도망치기는 어려울 테니까.그래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김욱더러 사람을 보내 이들보다 빨리 하은설을 구출하는 것이다.사내는 멍해서 고개를 저었다.“그곳은 정말 모릅니다. 허 씨가 저희와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심유진의 눈가는 파르르 떨려왔고 가슴은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사내는 심유진이 말이 없자 물었다.“친구에게 사람을 보내랄가요?”“잠시만요.”심유진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당신에게 사람을 보내라는지 묻고 있습니다.”사내는 심유진에게 김욱의 말을 전했다.“네.”심유진은 답했다.그녀는 현재 아무것도 없이 스스로 공항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사내는 김욱과 또 몇 마디 주고받고는 대략적인 메세지를 심유진에게 전달했다.“이 사람과 더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까?”사내가 심유진에게 물었다.“아니요.”다른 일들은 집에 돌아간 후 직접 전해주고
심유진과 허택양은 로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허택양은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아 한 쌍의 달달한 커플을 연기하고 있었다.심유진은 자신이 벗어나지 못할 거라 예상을 했기에 그냥 가만히 놔뒀다.얼마나 지났을까, 허택양의 핸드폰으로 사진이 전송되었다.허택양은 휴대폰을 들어 심유진의 눈앞에 두었다.“잘 봐요.”사진 속의 하은설은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고 한 남자 동료에게 안겨져 있었다.남자 동료는 매우 당황한 모습이었고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이 남자 동료는 심유진도 만난 적이 있었다. 하은설과 평상시 사이가 괜찮아 믿어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심유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허택양이 핸드폰을 거두고는 물었다.“지금 가도 되는 거죠?”이 사진을 기다리기 위해 그는 이미 한차례 항공편을 변경했다.N 시티에서 경주로 가는 항공편은 많지 않았다. 이번 항공편의 목적지는 경주와 인접한 대구였는데 도착 후 환승해야만 경주로 갈 수 있었다.심유진의 태도는 이전보다 많이 수그러들었다.“네.”탑승 게이트로 가는 길에 심유진은 갑자기 멈추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아랫배를 부여잡았다.허택양은 그런 그녀를 냉정하게 보며 경고했다.“수작 부리지 마요, 화장실 갈 거면 비행기 탑승 후에 가요.”“그게 아니라...”심유진은 눈썹을 찡그렸다.“나...그날...인 것 같아요.”허택양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날’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는 불편한 듯 고개를 돌렸고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내가 당신을 믿을 것 같아요? 설령 그날이라 해도 지금은 참아요!”심유진은 이를 꽉 깨물고 온 힘을 다해 참았다.하지만 아랫배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으로 그녀의 얼굴빛은 창백해졌고 콧등에도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심유진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주저앉았다.그 모습에 많은 여행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나이 지긋한 백인 할머니가 오더니 친절하게 물었다.“괜찮아요? 어디 아파요?”심유진은 허택양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손을 저으
발신자 번호는 한국 번호였다.심유진은 한 사람으로 추측했으나 확실하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덜덜 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누구세요?”상대방은 대답은 빨랐다.“허태준.”역시나 였다.심유진은 그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단지 지금 이순간 크나큰 안정감을 느꼈다.허태준이 있다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다는 느낌이었다.거울을 보고 용모를 정리 한 뒤 심유진은 살금살금 여자 화장실을 빠져나왔다.화장실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 나오라고 메세지를 보낸 허태준도, 자신을 쫓아오던 허택양도.의문에 휩싸이던 찰나 손목이 갑자기 당겨져 순식간에 누군가의 품에 갇히게 되었다.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순식간에 심유진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모든 불안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심유진은 몸을 돌려 두 팔로 허태준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허태준도 그녀를 강하게 안고 한 손으로 심유진의 등을 쓰다듬으며 낮고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그녀를 다독였다.“괜찮아요, 이제 다 끝났어요.”심유진은 긴장의 끈이 풀어져 자신의 얼굴을 허태준의 가슴에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괜찮은척 했으나 심유진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허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빛에는 연민과 함께 음산함도 드리워졌다.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가끔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이 선남선녀에게로 향했다.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곧 이별하는 커플이 자신들의 아쉬움을 달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허태준은 심유진의 감정을 추스르고 난 후에야 그녀의 얼굴을 들어 티슈로 눈물을 세심하게 닦아주며 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심유진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빨갛게 부은 눈을 한 채 고개를 저었다.“괜찮아.”허태준은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그녀와 밖으로 향했다.“김욱이 도착했을 거예요, 나가요.”넓은 대합실 로비는 한산했고 얼마 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