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은 다른 사람이 신고하기 전에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리고 결제를 끝내고 별이를 안아 들고 밖으로 심유진을 끌고 나왔다.더 이상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면했지만, 레스토랑 안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차에 올라타고서야 겨우 울음이 그친 별이는 심유진을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김욱은 서둘러 출발하지 않고 티슈를 몇 장 꺼내 들어 심유진에게 건네주며 그녀와 별이가 진정하게 도왔다.두 모녀의 눈은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됐고 눈물에 젖은 손바닥만 한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이 쓰이게 했다.“유진아, 너 은설한테 전화해 봐.”김욱이 심유진이한테 말했다.심유진은 한 손으론 별이를 안아 들고 다른 한 손은 가방에 넣어 핸드폰을 찾았다.어제처럼 하은설의 핸드폰을 받는 이는 없었다.하지만 하은설은 오늘 핸드폰을 가지고 나갔기에 벨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다.“우리 그냥 신고할까?”뚜…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 끊김 소리는 심유진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안 좋은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신고해도 소용없어.”김욱은 재빨리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실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들이 상관하지 않을 거야.”“그럼 어떡해?”심유진은 여전히 공포에 떨었다.“너랑 별이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찾아볼게”이 백화점은 규모가 커서 휴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설령 하은설이 무슨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반드시 목격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백화점은 잠잠했고 경찰들이 드나든 흔적 또한 없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녀는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하은설이 별이를 혼자 레스토랑에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 두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은설의 자유가 제한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하은설은 지금 백화점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안 돼.”김욱은 심유진을 가로막았다.“내가 너랑 별이를 집에 데려다줄게. 만약 하은설이 집으로 돌아가면 너희도 제일 먼저 알게 될 거야. 이후의 일은 나에게 맡겨. 너는 별이만 잘
심유진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만약 하은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한국에 계시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한단 말인가.**그렇게 약 한 시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김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심유진은 전화를 받아 급하게 물었다.“찾았어?”“아직.”김욱이 대답했다.그렇게 금방 돋아난 희망이라는 새싹은 깡그리 뭉개져 버렸다. 심유진은 철퍼덕 주저앉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아...”“내가 백화점 안 CCTV를 찾아봤는데, 은설이 레스토랑을 나가자마자 한 남자가 은설을 따라갔어.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그 두 사람은 같이 있었어. 아마도 아는 사이로 보였어. 내가 찍은 CCTV 화면 사진을 보내줄 테니까 한번 봐봐.”김욱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유진의 카카오톡이 울렸다.심유진은 김욱이 보내온 사진을 클릭했다. CCTV 화면을 찍은 사진에는 남녀 한 쌍이 있었다. 여자는 하은설이었고 남자는...흐릿한 옆모습이었지만 신유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허택양이야!”“허택양?”김욱은 여러 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김욱은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심유진에게 물었다.“이 사람, YT 그룹의 허 대표님이랑은 무슨 사이야?”“허태준의 사촌 동생이야. 은설이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전 남자 친구이기도 하고.”모든 단서가 모이자, 심유진은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어디로 갔는지는 CCTV에 안 찍혔어?”허택양은 현재로선 매우 위험한 인물임이 틀림없었다.허택양이 만약 오늘 하은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면 이미 헤어진 하은설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백화점을 빠져나가는 것까지만 찍혔어.”김욱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잠깐만, 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걸게.”심유진은 전화를 끊고 떨리는 손으로 허태준의 번호를 눌렀다.현재 하은설과 연락이 되지 않지만, 혹시라도 허태준을 통해 허택양과 연락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심유진이었다.심유진은 자신에게 허택양
심유진은 얼음창고에 갇힌 것처럼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심유진은 허택양이 어디에서 하은설의 임신 사실을 알아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심유진은 자기 손톱으로 연약한 손바닥 살들을 아프게 꼬집으며 냉정해지려 안간힘을 썼다."당신..."심유진은 이빨을 꽉 깨물었고 목소리에는 힘을 주었다."당신,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예요?""유진 씨를 만나고 싶어요."허택양이 대답했다.심유진은 핸드폰을 든 손에 힘을 주며 되물었다."내가 당신을 만나러 가면 은설이를 풀어줄 건가요?""당연하죠."허택양의 시원하고도 빠른 대답이 들려왔다."그치만..."허택양의 질질 끄는 말에 심유진은 호흡을 멈추고 집중했다."혼자 와야 해요."허택양의 음색은 차갑게 변했다."만약 신고한다거나 다른 사람과 동행한다면..."허택양은 말하면서 음산하게 웃었다."내가 은설이를 어떻게 할지도 몰라요.""좋아요!"심유진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재빨리 하은설을 허택양의 손아귀에서 구할 생각뿐이었다. 설령 그러다 자신이 위협을 받는다고 해도 물불 가리지 않을 심소연이었다. 모든 일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기에."저 혼자 갈게요. 주소 불러주세요."**허택양이 보내온 주소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심유진은 별이를 혼자 집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김욱에게 알릴 용기가 없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깨면 김욱에게 전화를 걸라는 메모를 별이에게 남겼다.출발 전에 심유진은 이미 잠든 별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어 심유진은 몸을 일으켜 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추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안녕."그녀는 애써 힘 있게 말했다.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운전하면서 심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허태준의 번호를 눌렀다.허태준의 핸드폰은 여전히 무응답이었다. 심유진은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어쩌면 이 둘은 정말 인연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천년만년 끝까지
허택양은 조심스럽게 얼굴을 반쯤만 내밀고 심유진의 뒤를 여러 번 살폈다. 뒤따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물쇠를 풀어 문을 열어주었다.“들어오세요.”허택양의 말에도 심유진은 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물었다."은설이는요?"“은설더러 나오라고 하세요. 그다음에 제가 들어갈게요.”“은설은 여기에 없어요.”허택양은 대답했다.심유진은 빠르게 반걸음 뒤로 후퇴하여 허택양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심유진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양옆의 방문이 갑자기 모두 열리면서 검은 슈트를 입은 덩치 좋은 사내들이 그녀를 둘러쌌다.심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허택양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건장한 사내들은 심유진을 잡아 밧줄로 묶고 허택양의 방에 가두었다.비좁은 방 안은 어수선했고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왔다.심유진의 구겨진 미간을 보면서 허택양은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걱정하지 마요, 여기에 오랫동안 있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허택양은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심유진의 턱을 잡았다. 허태준과 닮은 얼굴이 심유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심유진은 허택양을 벗어나고자 머리를 한쪽으로 돌려버렸다."쳇."허택양은 그녀의 모습을 비웃었다."심유진 씨,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요.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지금 순순히 나를 따르고 목숨을 부지할 것 같은데."심유진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질문했다.“은설이는요?”하은설의 안부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은설은 아무 일도 없어요.”말을 마치고 허택양은 다시 심유진에게 다가갔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내가 말했잖아요, 은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하...”심유진은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당신의 말을 믿을 것 같아요?”허택양은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켰다.“좋아요, 은설을 보여줄게요.”허택양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어 영상통화를 걸었다.영상통화는 금방 연결되었고 허택양은 영상을 잘 볼 수 있
심유진은 그동안 허택양이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단 몇 년 사이에 그에게서는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어쩌면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속의 변태 살인마와 허택양의 얼굴이 천천히 겹쳐 보였다. 심유진은 숨을 참고 이빨을 꽉 깨물고 나서야 가까스로 공포를 잠재웠다.긴장한 심유진을 본 허택양의 웃음은 점점 더해갔다 .심유진이 불안해할수록 허택양은 더욱 흥분했다.“내가 무섭죠.”허택양은 강한 확신의 말투로 말했다.심유진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지 않았고 몸 뒤로 묶여 있는 두 손에 힘을 주고 시트를 꽉 잡았다.“지금 당신의 모습을 찍어서 허태준에게 보여주고 싶어요.”허택양의 손가락은 심유진의 눈썹부터 입술까지 얼굴 전체를 쓸었다.“사랑하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본다면 태준도 힘들겠죠?”“사랑하는 여인?”심유진은 눈썹을 치켜뜨고 비꼬았다.“허태준이 사랑하는 여인은 아직 감옥에 있는 거 아니에요?”“심유진 씨.”허택양의 눈빛은 차가워졌고 그녀에게 경고 어린 말을 내뱉었다.“내 앞에서 잔머리 쓰지 마요. 내가 모르는 줄 아나 본데, 당신이랑 허태준이 재혼한 사실을 난 알아요.”심유진과 허태준이 재혼한 사실은 몇몇 사람밖에 알지 못했다.심유진은 단번에 하은설이 허태준에게 들켰음을 눈치챘다.이 또한 허택양이 의도를 숨기고 하은설에게 접근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맞아요. 제가 허태준이랑 재혼했어요.”심유진은 당당하게 인정했다.“그런데 결혼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죠?”심유진은 허택양에게 되물었다.“잊지 말아요, 저랑 허태준이 결혼했을 때 그는 아직도 정소월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요.”“그건 정소월이 이미 결혼했기 때문이에요!”허택양은 흥분해서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자신이 너무 쉽게 흥분했음을 느낀 허택양은 계면쩍은 듯 웃었고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그럼 당신이 말해 봐요. 허태준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왜 결혼했는지?”“은설이 아직 말 안 했나요? 저의 친아버지가 바
“당신이 듣고 싶지 않다면...”허택양은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나가서 받을게요.”심유진은 허택양이 자신의 간절함을 눈치챌까 봐 그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마음대로 해요.”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는 심유진이었다.“쳇.”허택양은 자기가 한 말대로 나갔다.곧바로 검은 슈트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들어와 무표정으로 심유진을 쳐다보며 경고했다.“가만히 있어요, 도망갈 생각 말고!”건장한 사내는 보기에는 흉악했으나 허택양만큼의 압박감은 주지 않았다.심유진은 묶인 다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지금 상태로 어떻게 도망가겠어요?”사내는 가볍게 비웃었고 그 후로 심유진을 상대하지 않았다.심유진은 적극적으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이런 일 하면 허택양이 얼마나 줘요? 내가 당신과 동료들 지금의 두 배로 줄 테니까, 나 좀 풀어주면 안 돼요?”사내는 그녀를 째려보고는 소리쳤다.“닥쳐!”심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정말이에요.”“내가 허택양보다 돈이 많거든요. 게다가 당신들이 나를 데려가면 가족들이 당신들 가만 안 놔둘 거예요.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가 N 시티에서 한 가닥 하시거든요. 그리고 허태준도 엄청난 걸 당신들도 잘 알죠? 당신들 조사하는 건 시간문제예요. 당신이 와이프나 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없다고 해도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은 있을 것 아니에요. 허태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는 타입이라 걸리면 당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걸요?”평온했던 사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심유진은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내가 장담해요. 만약 당신이 나와 내 친구를 무사히 풀어주면 당신들에게 두 배의 값을 지불하고 오늘 일은 죽어도 묻지 않을게요!”사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진짜죠?”“그럼요!”심유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걱정된다면 각서를 쓸 수도 있어요!”사내는 생각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좋아요! 잠시 후에 내가 동료들과 상의를 해보죠. 다만...”
허택양은 마치 신유진의 말에 혹한듯해 보였다. 몇 초간 두려워하는 듯 보이던 얼굴빛은 다시 어둡게 변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검은색 슈트를 입은 사내가 밀치고 막무가내로 들어왔다.그는 시종 얼굴을 굳히고 허택양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시종일관 심유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허 대표님 시간 다 됐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허택양에게 말했다.“그래.”허택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유진을 침대에서 당겼다.다리가 묶인 신유진은 휘청거리다가 몸이 앞으로 쏠려 벽에 부딪힐 뻔했다.허택양은 등 뒤에서 심유진을 당겼고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의 다리에 둘러싸인 줄을 쳐다보았다.처음에는 심유진이 도망갈 것을 대비하여 그녀에게 밧줄을 감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을 지체할 줄은 몰랐다.허택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내를 불렀다.“풀어 줘.”그리고는 심유진에 대한 경고도 빼먹지 않았다.“만약 일을 저지른다면 하은설은...”“걱정 말아요! 난 절대 돌아 도망가지 않아요.”심윤지는 허택양을 비웃었다.“내가 당신보다는 신용을 잘 지키잖아요.”그 말에 허택양도 비아냥거렸다.“그러면 다행이고요.”사내는 허택양에게 물었다.“허 대표님, 손에 묶인 것도 풀까요?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걸 보고 신고라도 하면...”허택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풀어, 아무튼 도망가지 못하니까.”풀리지 않게 단단히 묶은 탓에 작은 칼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풀 수 있었다.심유진은 사내의 손에 든 반짝거리는 칼을 보고서는 몰래 사내에게 눈짓을 보냈다.사내도 빨리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허택양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칼을 심유진의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준비됐습니다.”사내는 아무런 표정 없이 허택양에게 보고를 올렸다.허택양은 신유진을 끌어안아 친밀한 사이처럼 보이게 했다.“나가서 큰 소리 내지 마요. 다른 사람에게 구원하지도 마요. 아니면...”“아니면 하은설과 아이도 죽일 거죠.”심유진은 냉정하게 그의 말을 이었다.“됐어,
양아치들의 시선이 모두 허택양에게 집중된 틈을 노려 심유진은 도망쳤다.양아치들은 심유진이 계속하여 더욱 안쪽으로 달려가자 독 안에 든 쥐 격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더 이상 심유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허택양을 더욱 심하게 비웃었다.“이것 봐, 네 여자도 너를 버리고 도망치네!”“넌 쓸모없는 놈이야!”“하하하하하!”...심유진은 가장 빠른 속도로 허택양이 자신을 가두었던 방문까지 달려와 큰 소리로 외쳤다.“빨리 나와요! 허택양이 맞고 있어요!”사내들은 여러 방에서 달려 나왔고 맨 처음 나온 사내는 바로 심유진과 거래가 있었던 사내였다.그 사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는지 매우 직설적으로 말했다.“허 씨 그 자가 맞고 있으면 당신은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우리한테 달려온 거지?”“내가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심유진은 손을 내저으며 다그쳤다.“됐어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구해줘요! 그 사람이 가지 않으면 내 친구도 돌아갈 수 없다고요!”심유진은 사내들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밖으로 나갔다.허택양은 여전히 양아치들에게 붙잡혔고 얼굴에는 상처가 늘었다.한 놈이 손을 높게 들어 허택양의 얼굴을 가격하려는 찰나 심유진이 소리쳤다.“그만!”양아치의 동작은 멈추었고 욕설을 내뱉으려 하던 놈은 심유진 뒤의 무리를 보고 당황해하며 자기 무리에게 말했다.“가자!”그놈들은 빠르게 도망쳤고 금세 모습을 감췄다.사내들은 빠르게 허택양에게 달려왔다.“허 대표님, 괜찮으세요?”“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저희가 너무 늦었습니다.”“병원으로 갈까요, 허 대표님?”...모두들 하나같이 허택양을 세심하게 보살폈다.사내들이 배신한 사실을 몰랐다면 심유진은 아마 그들이 허택양에 대한 ‘진심’에 감동했을지도 모른다.허택양은 고통을 참으며 손사래를 쳤다.“괜찮아, 병원으로 가지 말고 공항으로 가지.”허택양은 심유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비록 몇몇 양아치들을 마주치기는 했으나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