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은 일에 미친 사람이었고 심유진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에도 그들은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문서들을 반찬 삼아 라면을 먹었다. 그때 심유진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별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심유진은 깜짝 놀라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엄마…” 별이가 울면서 심유진을 불렀다. 심유진은 점점 불안해져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왜?” 심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가 사라졌어.” 별이가 울먹이면서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다. 심유진은 얼른 밖으로 나갔고 김욱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 뒤를 따랐다. “일단 울지 마.” 심유진이 별이를 달랬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엄마한테 자세히 설명해 봐.” “이모랑 밥 먹다가 이모가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했어.” 별이가 밥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 보냈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는?” 심유진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현관에 걸어둔 패딩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김욱은 엘리베이터를 눌러주며 희미한 통화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10분이 지나도 안 왔어. 그리고 전화해도 안받았어. 직원분한테 부탁해서 화장실에 가봤는데 이모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대. 엄마, 나 무서워.” 별이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이미 나왔어. 금방 도착해.” 심유진이 저도 모르게 말을 빨리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도 문 닫는 버튼을 정신없이 눌렀다. “어디 가지 말고 거기에서 기다려. 누가 데려가려고 하면 소리치거나 주위 어른들한테 신고해 달라고 해.” “응.” 별이가 대답했다. “전화는 안 끊을게.” 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심유진은 계속 통화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응.” 별이는 대답을 하긴 했지만 저도 모르게 재촉했다. “엄마 꼭 빨리 와.” 김욱은 일부러 집과 가까운 영화관의 표를 구했기에 이동시간이 짧았다. 심유진
김욱은 다른 사람이 신고하기 전에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리고 결제를 끝내고 별이를 안아 들고 밖으로 심유진을 끌고 나왔다.더 이상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면했지만, 레스토랑 안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차에 올라타고서야 겨우 울음이 그친 별이는 심유진을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김욱은 서둘러 출발하지 않고 티슈를 몇 장 꺼내 들어 심유진에게 건네주며 그녀와 별이가 진정하게 도왔다.두 모녀의 눈은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됐고 눈물에 젖은 손바닥만 한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이 쓰이게 했다.“유진아, 너 은설한테 전화해 봐.”김욱이 심유진이한테 말했다.심유진은 한 손으론 별이를 안아 들고 다른 한 손은 가방에 넣어 핸드폰을 찾았다.어제처럼 하은설의 핸드폰을 받는 이는 없었다.하지만 하은설은 오늘 핸드폰을 가지고 나갔기에 벨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다.“우리 그냥 신고할까?”뚜…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 끊김 소리는 심유진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안 좋은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신고해도 소용없어.”김욱은 재빨리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실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들이 상관하지 않을 거야.”“그럼 어떡해?”심유진은 여전히 공포에 떨었다.“너랑 별이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찾아볼게”이 백화점은 규모가 커서 휴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설령 하은설이 무슨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반드시 목격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백화점은 잠잠했고 경찰들이 드나든 흔적 또한 없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녀는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하은설이 별이를 혼자 레스토랑에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 두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은설의 자유가 제한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하은설은 지금 백화점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안 돼.”김욱은 심유진을 가로막았다.“내가 너랑 별이를 집에 데려다줄게. 만약 하은설이 집으로 돌아가면 너희도 제일 먼저 알게 될 거야. 이후의 일은 나에게 맡겨. 너는 별이만 잘
심유진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만약 하은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한국에 계시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한단 말인가.**그렇게 약 한 시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김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심유진은 전화를 받아 급하게 물었다.“찾았어?”“아직.”김욱이 대답했다.그렇게 금방 돋아난 희망이라는 새싹은 깡그리 뭉개져 버렸다. 심유진은 철퍼덕 주저앉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아...”“내가 백화점 안 CCTV를 찾아봤는데, 은설이 레스토랑을 나가자마자 한 남자가 은설을 따라갔어.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그 두 사람은 같이 있었어. 아마도 아는 사이로 보였어. 내가 찍은 CCTV 화면 사진을 보내줄 테니까 한번 봐봐.”김욱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유진의 카카오톡이 울렸다.심유진은 김욱이 보내온 사진을 클릭했다. CCTV 화면을 찍은 사진에는 남녀 한 쌍이 있었다. 여자는 하은설이었고 남자는...흐릿한 옆모습이었지만 신유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허택양이야!”“허택양?”김욱은 여러 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김욱은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심유진에게 물었다.“이 사람, YT 그룹의 허 대표님이랑은 무슨 사이야?”“허태준의 사촌 동생이야. 은설이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전 남자 친구이기도 하고.”모든 단서가 모이자, 심유진은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어디로 갔는지는 CCTV에 안 찍혔어?”허택양은 현재로선 매우 위험한 인물임이 틀림없었다.허택양이 만약 오늘 하은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면 이미 헤어진 하은설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백화점을 빠져나가는 것까지만 찍혔어.”김욱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잠깐만, 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걸게.”심유진은 전화를 끊고 떨리는 손으로 허태준의 번호를 눌렀다.현재 하은설과 연락이 되지 않지만, 혹시라도 허태준을 통해 허택양과 연락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심유진이었다.심유진은 자신에게 허택양
심유진은 얼음창고에 갇힌 것처럼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심유진은 허택양이 어디에서 하은설의 임신 사실을 알아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심유진은 자기 손톱으로 연약한 손바닥 살들을 아프게 꼬집으며 냉정해지려 안간힘을 썼다."당신..."심유진은 이빨을 꽉 깨물었고 목소리에는 힘을 주었다."당신,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예요?""유진 씨를 만나고 싶어요."허택양이 대답했다.심유진은 핸드폰을 든 손에 힘을 주며 되물었다."내가 당신을 만나러 가면 은설이를 풀어줄 건가요?""당연하죠."허택양의 시원하고도 빠른 대답이 들려왔다."그치만..."허택양의 질질 끄는 말에 심유진은 호흡을 멈추고 집중했다."혼자 와야 해요."허택양의 음색은 차갑게 변했다."만약 신고한다거나 다른 사람과 동행한다면..."허택양은 말하면서 음산하게 웃었다."내가 은설이를 어떻게 할지도 몰라요.""좋아요!"심유진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재빨리 하은설을 허택양의 손아귀에서 구할 생각뿐이었다. 설령 그러다 자신이 위협을 받는다고 해도 물불 가리지 않을 심소연이었다. 모든 일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기에."저 혼자 갈게요. 주소 불러주세요."**허택양이 보내온 주소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심유진은 별이를 혼자 집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김욱에게 알릴 용기가 없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깨면 김욱에게 전화를 걸라는 메모를 별이에게 남겼다.출발 전에 심유진은 이미 잠든 별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어 심유진은 몸을 일으켜 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추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안녕."그녀는 애써 힘 있게 말했다.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운전하면서 심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허태준의 번호를 눌렀다.허태준의 핸드폰은 여전히 무응답이었다. 심유진은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어쩌면 이 둘은 정말 인연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천년만년 끝까지
허택양은 조심스럽게 얼굴을 반쯤만 내밀고 심유진의 뒤를 여러 번 살폈다. 뒤따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물쇠를 풀어 문을 열어주었다.“들어오세요.”허택양의 말에도 심유진은 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물었다."은설이는요?"“은설더러 나오라고 하세요. 그다음에 제가 들어갈게요.”“은설은 여기에 없어요.”허택양은 대답했다.심유진은 빠르게 반걸음 뒤로 후퇴하여 허택양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심유진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양옆의 방문이 갑자기 모두 열리면서 검은 슈트를 입은 덩치 좋은 사내들이 그녀를 둘러쌌다.심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허택양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건장한 사내들은 심유진을 잡아 밧줄로 묶고 허택양의 방에 가두었다.비좁은 방 안은 어수선했고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왔다.심유진의 구겨진 미간을 보면서 허택양은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걱정하지 마요, 여기에 오랫동안 있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허택양은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심유진의 턱을 잡았다. 허태준과 닮은 얼굴이 심유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심유진은 허택양을 벗어나고자 머리를 한쪽으로 돌려버렸다."쳇."허택양은 그녀의 모습을 비웃었다."심유진 씨,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요.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지금 순순히 나를 따르고 목숨을 부지할 것 같은데."심유진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질문했다.“은설이는요?”하은설의 안부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은설은 아무 일도 없어요.”말을 마치고 허택양은 다시 심유진에게 다가갔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내가 말했잖아요, 은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하...”심유진은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당신의 말을 믿을 것 같아요?”허택양은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켰다.“좋아요, 은설을 보여줄게요.”허택양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어 영상통화를 걸었다.영상통화는 금방 연결되었고 허택양은 영상을 잘 볼 수 있
심유진은 그동안 허택양이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단 몇 년 사이에 그에게서는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어쩌면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속의 변태 살인마와 허택양의 얼굴이 천천히 겹쳐 보였다. 심유진은 숨을 참고 이빨을 꽉 깨물고 나서야 가까스로 공포를 잠재웠다.긴장한 심유진을 본 허택양의 웃음은 점점 더해갔다 .심유진이 불안해할수록 허택양은 더욱 흥분했다.“내가 무섭죠.”허택양은 강한 확신의 말투로 말했다.심유진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지 않았고 몸 뒤로 묶여 있는 두 손에 힘을 주고 시트를 꽉 잡았다.“지금 당신의 모습을 찍어서 허태준에게 보여주고 싶어요.”허택양의 손가락은 심유진의 눈썹부터 입술까지 얼굴 전체를 쓸었다.“사랑하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본다면 태준도 힘들겠죠?”“사랑하는 여인?”심유진은 눈썹을 치켜뜨고 비꼬았다.“허태준이 사랑하는 여인은 아직 감옥에 있는 거 아니에요?”“심유진 씨.”허택양의 눈빛은 차가워졌고 그녀에게 경고 어린 말을 내뱉었다.“내 앞에서 잔머리 쓰지 마요. 내가 모르는 줄 아나 본데, 당신이랑 허태준이 재혼한 사실을 난 알아요.”심유진과 허태준이 재혼한 사실은 몇몇 사람밖에 알지 못했다.심유진은 단번에 하은설이 허태준에게 들켰음을 눈치챘다.이 또한 허택양이 의도를 숨기고 하은설에게 접근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맞아요. 제가 허태준이랑 재혼했어요.”심유진은 당당하게 인정했다.“그런데 결혼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죠?”심유진은 허택양에게 되물었다.“잊지 말아요, 저랑 허태준이 결혼했을 때 그는 아직도 정소월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요.”“그건 정소월이 이미 결혼했기 때문이에요!”허택양은 흥분해서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자신이 너무 쉽게 흥분했음을 느낀 허택양은 계면쩍은 듯 웃었고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그럼 당신이 말해 봐요. 허태준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왜 결혼했는지?”“은설이 아직 말 안 했나요? 저의 친아버지가 바
“당신이 듣고 싶지 않다면...”허택양은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나가서 받을게요.”심유진은 허택양이 자신의 간절함을 눈치챌까 봐 그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마음대로 해요.”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는 심유진이었다.“쳇.”허택양은 자기가 한 말대로 나갔다.곧바로 검은 슈트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들어와 무표정으로 심유진을 쳐다보며 경고했다.“가만히 있어요, 도망갈 생각 말고!”건장한 사내는 보기에는 흉악했으나 허택양만큼의 압박감은 주지 않았다.심유진은 묶인 다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지금 상태로 어떻게 도망가겠어요?”사내는 가볍게 비웃었고 그 후로 심유진을 상대하지 않았다.심유진은 적극적으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이런 일 하면 허택양이 얼마나 줘요? 내가 당신과 동료들 지금의 두 배로 줄 테니까, 나 좀 풀어주면 안 돼요?”사내는 그녀를 째려보고는 소리쳤다.“닥쳐!”심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정말이에요.”“내가 허택양보다 돈이 많거든요. 게다가 당신들이 나를 데려가면 가족들이 당신들 가만 안 놔둘 거예요.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가 N 시티에서 한 가닥 하시거든요. 그리고 허태준도 엄청난 걸 당신들도 잘 알죠? 당신들 조사하는 건 시간문제예요. 당신이 와이프나 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없다고 해도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은 있을 것 아니에요. 허태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는 타입이라 걸리면 당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걸요?”평온했던 사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심유진은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내가 장담해요. 만약 당신이 나와 내 친구를 무사히 풀어주면 당신들에게 두 배의 값을 지불하고 오늘 일은 죽어도 묻지 않을게요!”사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진짜죠?”“그럼요!”심유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걱정된다면 각서를 쓸 수도 있어요!”사내는 생각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좋아요! 잠시 후에 내가 동료들과 상의를 해보죠. 다만...”
허택양은 마치 신유진의 말에 혹한듯해 보였다. 몇 초간 두려워하는 듯 보이던 얼굴빛은 다시 어둡게 변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검은색 슈트를 입은 사내가 밀치고 막무가내로 들어왔다.그는 시종 얼굴을 굳히고 허택양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시종일관 심유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허 대표님 시간 다 됐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허택양에게 말했다.“그래.”허택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유진을 침대에서 당겼다.다리가 묶인 신유진은 휘청거리다가 몸이 앞으로 쏠려 벽에 부딪힐 뻔했다.허택양은 등 뒤에서 심유진을 당겼고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의 다리에 둘러싸인 줄을 쳐다보았다.처음에는 심유진이 도망갈 것을 대비하여 그녀에게 밧줄을 감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을 지체할 줄은 몰랐다.허택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내를 불렀다.“풀어 줘.”그리고는 심유진에 대한 경고도 빼먹지 않았다.“만약 일을 저지른다면 하은설은...”“걱정 말아요! 난 절대 돌아 도망가지 않아요.”심윤지는 허택양을 비웃었다.“내가 당신보다는 신용을 잘 지키잖아요.”그 말에 허택양도 비아냥거렸다.“그러면 다행이고요.”사내는 허택양에게 물었다.“허 대표님, 손에 묶인 것도 풀까요?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걸 보고 신고라도 하면...”허택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풀어, 아무튼 도망가지 못하니까.”풀리지 않게 단단히 묶은 탓에 작은 칼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풀 수 있었다.심유진은 사내의 손에 든 반짝거리는 칼을 보고서는 몰래 사내에게 눈짓을 보냈다.사내도 빨리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허택양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칼을 심유진의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준비됐습니다.”사내는 아무런 표정 없이 허택양에게 보고를 올렸다.허택양은 신유진을 끌어안아 친밀한 사이처럼 보이게 했다.“나가서 큰 소리 내지 마요. 다른 사람에게 구원하지도 마요. 아니면...”“아니면 하은설과 아이도 죽일 거죠.”심유진은 냉정하게 그의 말을 이었다.“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