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묻는데도 안 돼?”심유진이 순순히 대답하지 않자 김욱은 핸드폰을 꺼내는 척했다.“얘기 안 하면 Maria한테 전화 할 거야.”심유진은 황급히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은 뒤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말할게요! Maria를 난처하게 하지 마요!”김욱은 득의양해하면서 그녀의 대답을 내심 기다렸다.“제가 말한 사람은...”심유진은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김욱한테 죽을 각오를 하고 말했다.“오빠가 맞아요.”김욱은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내는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어떻게 이런 결론이 난거지?”김욱은 진심으로 그녀에게 질문했다.“내가 네 앞에서 남자에 대한 흥미를 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하지만 제 앞에서 여자에 대한 흥미를 보인 적도 없잖아요?”심유진은 김욱더러 말문이 막히게 하였다.“오빠를 돌아봐봐요. 사십이 다 되어가는데 여자 친구 하나 없으니 어떻게 달리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김욱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지금 여자 친구가 없는 거지 예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잖아.”“그럼 왜 회사 여직원이 좋아하게 내버려두지 않아요?”심유진은 당당히 의문을 제기했다.“내가 하는 업무에 영향 줄까 봐.”김욱은 여직원들이 그를 꼬시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을 회상했다. 눈꺼풀이 뛰고 태양혈이 아파왔다.“툭하면 사무실에 들어와서 커피 따라주고 디저트를 갖다주고. 심지어 옷을 벗고 나를 덮치려고까지 하는데..., 너라면 받아 당할 수 있겠어?”심유진은 그 화면을 상상했다.“아니요.”심유진은 할 말이 없어졌다.“하지만..., 여자 친구를 만들어 결혼할 생각은 없어요?”“이모세요? 고모세요?”김욱은 혐오스런 말투로 말했다.“나도 널 재촉한 적이 없는데 네가 오히려 날 재촉하네?”“재촉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거죠!”심유진은 김욱의 말을 정정했다.“아버지는 매일 저에게 선 자리를 소개시켜 주는데 왜 먼저 오빠한테 소개시켜 주지 않죠? 안 되겠네요, 시간을 내서 아버지한테 얘기 좀 해
이성친구랑 밥을 먹는 것은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욱이 묘사한 하은설의 반응은 심유진더러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당황하고 어색해 했다라.심지어 그녀를 피하려고 했다니.아무리 봐도 하은설과 그 남자는 보통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심유진은 지체하지 않고 하은설에게 카톡을 보내 심문했다.“무슨 상황이야?”심유진은 하은설의 이름이 입력 중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난 후 다시 이름으로 변했다.그녀에게서 온 문자도 없었다.그녀를 무시하려나 보다.심유진은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이 시간에 하은설은 아마 식사 중일 것이다. 아니면 “남자 친구”랑 꽁냥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한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심유진은 영상통화를 걸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은 채 카톡을 껐다.심유진이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자 김욱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기쁜가 봐?”“그럭저럭요.”심유진은 경쾌한 말투로 대답하고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심유진은 이런 날이 올 줄을 몰랐다.그녀가 별이를 가졌을 때 하은설은 자신이 철저한 비혼주의자라고 얘기했었다.심유진은 그녀랑 몇 년 동거생활을 하면서 하은설의 곁에 특별히 친밀한 남성이 없는 것도 확인하였다.하지만 하은설이 평소에 로맨스 드라마를 즐겨 보는 행동에서 심유진은 하은설이 사실은 연애를 갈망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하은설의 연애는 순탄하지 않았다. 접촉할 기회가 있어 만나본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관념에 차이가 있어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싱글이었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다.그런 그녀가 어쩌다 연애할 낌새를 보이다니...심유진은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기에 하은설같은 마귀할멈을 사로잡았는지.**심유진의 감기는 아직 다 낫지 않았기에 집에서 자가격리를 실시하는 중이다.허태준과 별이는 거실에서 레고를 놀고 있었고 심유진은 목욕을 끝마친 뒤 방으로 돌아갔다.중도에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뜨거운 물을
심유진은 그들 부자 사이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다른 한 사람에게 관여해야만 했다.**심유진은 열 시 반까지 기다렸다. 하은설이 이때쯤이면 호텔에 도착할 것 같아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뭐해?”이번엔 입력 중이라는 상태도 없이 바로 그녀를 무시한 듯했다.십 분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자 심유진은 영상통화를 보냈다. 하지만 응답이 없어 이내 끊어졌다.심유진은 하은설에게 대 여섯 번 전화했다. 아마도 하은설은 짜증이 났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심유진, 너 미쳤지?!”심유진은 울려서 아픈 귀를 부여잡고 헤벌쭉 웃으면서 물었다.“왜, 방해되었나?”하은설은 노발대발해서 소리 질렀다.“꺼져!”심유진은 하은설이 소리 지르기 전부터 휴대폰을 멀리에 댔다. 아니면 고막이 터지는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말해봐.”심유진은 자세를 바꾸어 침대에 기대면서 베개 하나를 허리에 받쳤다.“그 남자 이름은 뭐야? 나이는? 어디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한대?”“심유진, 넌 정말 미친 거야!”하은설은 똑같이 욕을 했지만 이번에는 기세가 꺾였다.“올해 중순쯤 정밀검사를 받아본 후 내가 미쳤는지 미치지 않았는지 결론을 내고, 먼저 네 남자 친구 얘기나 하지. 오늘 저녁에 오빠랑 마주친 그 사람 말이야.”하은설은 이 화제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남자 친구가 아니야. 기껏해야 섹스 파트너야.”“뭐라고?!”충격이 너무 큰 탓에 심유진은 목소리 조절을 하지 못했다. 옆방에서 아이를 재우던 허태준도 이쪽으로 관심을 돌렸다.그는 조급히 그녀의 방문을 열면서 긴장해서 물었다.“왜 그래?”심유진은 멋쩍게 웃으면서 손안의 핸드폰을 흔들면서 말했다.“아니에요, 하은설과 통화 중이에요.”허태준은 알겠다는 듯이 대답하고 걱정스레 그녀를 다시 한번 보고 문을 닫았다.“너네 허 대표는 아직 안 갔네?”하은설도 이쪽 상황을 듣고 심유진한테 물었다.심유진은 그녀가 화제를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계속
”첫눈에 반하다.”연애학적으로 보면 참 낭만적인 일이다. 대다수 젊은 남녀가 기대하고 갈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봤을 때 가능성이 매우 작은 일이다. 심유진은 심지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틀렸다.심유진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하은설을 위해 기뻐했다.“세상에! 완전 청춘 드라마가 따로 없잖아?”심유진은 흥분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첫눈에 반한 데다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라니, 그야말로 청춘 드라마의 클리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은설의 얼굴도 여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남자는 어떨지 몰라도...“잘생겼어?”심유진은 격동에 겨워 목소리마저 떨렸다.“음...”하은설은 몇 초 망설이다가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럽게 말했다.“너네 허 대표보다는 못하지만 잘 생겼어. 오관이 너네 허 대표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정교하진 않아. 풍기는 아우라도 전혀 다르고. 허 대표가 차가운 스타일이라면 그 사람은 조금 더 따뜻한 스타일이라고나 할까?”하은설의 말투에서 심유진은 하은설이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심유진은 혀를 끌끌 차더니 물었다.“너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하고 너도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이참에 연애를 안 하고?”섹스 파트너라는 것은 결국 불안정한 관계다.“그 사람은 사업이 국내에 있고 또..., 말하진 않았지만, 옷차림새나 행동거지로 봤을 때 간단한 집안 같지 않았어. 연애를 한다면 그 집 사람들이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와 날 죽이려 들걸?”하은설은 자신을 비웃으면서 말했다.“그건 모르지. 그 사람 가족이 날아와서 200억을 주면서 떠나라고 한다면? 넌 그러면 부자가 되는 거 아니야?”“그러네!”하은설도 심유진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그러면 그 돈을 너랑 별이와 나눠야지. 우리 셋이 한평생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네. 너무 좋다!”두 사람은 한참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침묵 하였다.“진짜 좋아한다면 나라가 달라도, 가정 조건이 달라도 다
하은설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심유진은 그녀의 표정에서 슬픔을 볼 수 있었다.“둘이 아직 연락해?”심유진이 물었다.“연락하지. 별이랑 허 대표가 따로 있을 때처럼 매일 저녁 반 시간씩 영상통화 하고 있어.”하은설은 뒤에 기대면서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은 초점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재미가 없어.”“재미가 없으면 그만둬!”심유진은 하은설을 자극했다.하은설은 심유진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왜 그만둬야 하는데? 그 사람과 연락한다 해도 다른 남자랑 잘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앞으로 더 만날 수도 있을지 누가 알아?”“다른 남자랑 자는 걸 못 봤는데...?”심유진은 유리잔을 깨물면서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뭐래?”하은설은 심유진을 노려보았다.“얼마나 많은 남자가 내 꽁무니를 따라다니는지 알아? 내기할래? 내일부터 한 달 동안 매일 다른 남자를 데리고 와서 잘 거야!”“믿어! 믿지!”심유진은 급히 하은설을 제지했다.“부탁인데 내 아들의 심신 건강을 위해 남자를 데리고 오지 말아 줘!”“그래?”하은설은 눈썹을 치켜들었다.“심유진 씨, 앞뒤가 다르네요!”“뭐가?”심유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너는 남자를 집에 데리고 와도 되고 난 네 아들 심신 건강에 영향 준다는 거야?”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했다.“내가 언제 남자를 데리고 왔어? 허튼소리 하지 마!”“허 대표는 남자가 아니야? 한번 데려왔다 하면 일주일씩 있는데.”하은설은 심유진의 장딴지를 살짝 걷어찼다.“아이고...”하은설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일주일 동안 둘이 진도를 뺐어?”“우리가 무슨 진도를 빼?”심유진은 조마조마하여 술잔을 입에 갖다 댔다. 술을 마신다는 핑계로 하은설의 질문을 회피하려 했다.“짜증 나게 이렇게 회피하고 꾸물거리지만 말고.”하은설은 술잔에 든 와인을 한입에 마시고 말했다.“재결합할 거면 일찍 하고. 그래야 별이도 일찍 온전한 가족을 갖게 될 거 아냐. 재결합하기 싫다면 얘기 잘하고. 그 사람 희망 고문하지 말고,
허태준은 더 이상 심유진 집에 묵지 않았지만 이튿날 아침 제시간에 맞춰 그녀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풍성한 아침도 싸 왔다.하은설은 아침을 먹으면서 허태준한테 칭찬을 늘어놓았다.“허 대표님은 진짜 세상 좋은 남자십니다!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면 제가 모든 곤란을 헤쳐가면서도 따라다닐 텐데!”허태준은 하은설의 칭찬을 받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하은설에 대한 태도도 더 좋아졌다.“하은설 씨는 내일 아침 조식으로 어떤 음식을 먹고 싶나요? 제가 호텔에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심유진은 바싹하게 구운 베이컨을 물면서 슬며시 눈을 흘겼다.하은설도 허태준 앞에서 내숭 떨지 않고 음식 이름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허 대표님, 앞으로 저한테 부탁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허태준은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허태준이 옆에 없자 별이는 저녁에 자는 것이 습관 되지 않아 차에서 한참을 푸념했다. 심유진이 강제적으로 진압해서야 그만두었다.예전처럼 허태준은 별이를 유치원 안까지 데려다주고 심유진은 혼자 차에서 기다렸다.차창을 넘어 별이는 허태준의 손을 잡고 발랄하게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허태준도 별이의 키에 맞춰 허리를 숙이면서 별이의 얘기를 열심히 들었다. 심유진의 가슴은 따뜻해졌고 자기 생각을 더욱 굳게 다잡았다.이십여 분 후 허태준은 유치원에서 나왔다. 심유진이 별이를 데리고 가는 데 걸린 시간의 두 배다.심유진은 허태준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는지 알 것만 같았다.“선생님이 또 얘기를 늘어놓으셨죠?”심유진은 팔짱을 끼면서 턱을 들고 장난어린 눈빛과 말투로 말했다.별이의 반 여선생님은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들은 심유진과 같은 중년여성과 달리 멋진 남자에 대한 저항력이 높지 않았다. 허태준의 얼굴은 그들한테 있어서 핵무기와도 같은 살상력을 갖고 있었다.심유진은 별이한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매번 허태준이 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줄 때면 선생
심유진과 Maria를 제외한 나머지는 김욱의 결정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듯했다.심유진과 Maria는 회의록을 작성하는 습관이 있어 노트를 챙겼다. 하지만 회의실로 가는 길에 놀랍게도 그들 옆을 지나가는 동료들이 다들 빈손을 하고 있는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눈치로 질문했다.“뭐지?”**다들 자리에 앉고 나서야 김욱은 들어왔다.그는 문을 잠그고 회의실 안을 한바퀴 돌아본 후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심유진은 육윤엽이 부서미팅에 불참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김욱이 이때 입을 열었다.“당신들의 사직서를 다 받았습니다.”심유진은 흠칫하면서 놀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그녀 옆에 앉은 Maria의 표정도 그녀와 다를 바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혹은 목을 빳빳이 쳐들고 당당하게 김욱을 쳐다보았고 혹은 머리를 숙여 당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 건은 육 대표님의 결재가 필요 없습니다. 제가 대신 답변하도록 하죠. 저는 허락하겠습니다.”김욱은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폭발적인 소식이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다.“인사팀에 얘기해 놓았으니 오후에 통일적으로 이직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그의 평정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심유진은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다. 충동적으로 김욱한테 묻고 싶었다. 왜 한 개 부서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었는지, 총재 사무실은 어떻게 운영이 될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하지만 사람들이 많아 심유진은 꾹 참았다.한 여성 동료가 분노에 겨워 일어서서 책상에 손을 받히고 김욱한테 질문했다.“우리 부서 오랜 직원들이 능력도 없는 정부보다도 못하던가요?”능력 없는 정부라는 말을 뱉자 그녀는 당당하게 심유진을 쳐다보았다.어이없이 당한 심유진은 피를 토할 뻔 했다.자신은 왜 얽혀있는지?“첫째, Shen 은 제 정부가 아닙니다. 더 이상 이런 루머를 퍼트린다면 당신들을 훼방죄로 고소할 겁니다. 둘째, Shen 의 업무능력은 당신들 대부분보다 뛰어납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Shen의 이력서를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심유진은 이 총소리가 없는 전쟁 속에 그녀와 Maria는 유일한 방관자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그들 모두 피치 못할 책임이 있었다. 심유진은 제일 직접적인 근원이었고 Maria는 Judy가 이직하게 떠민 꼴이 되었다.모두의 과녁이 되고 싶지 않아 심유진은 신속히 Maria의 손을 잡고 책상 위의 물건을 집었다. 고개를 숙인 채 타인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소리를 죽이면서 밖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출구에 다가가기 전에 여러 명이 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지금 의기양양하죠?”아까 김욱의 심기를 건드린 Nina는 이번에도 앞장 섰다. 아까보다 더 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그녀의 체형은 심유진보다 건장했지만 키는 심유진보다 작았다. 하지만 기세로 보아 여전히 압박감을 초래했다.심유진도 갖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었기에 타인을 먼저 건드리진 않지만 이런 캐릭터가 눈앞에 닥치면 무서워하지도 않았다.“네, 의기양양하죠.”심유진은 허리를 곧게 펴고 팔짱을 끼고 키가 큰 우세를 발휘해 일부러 승리자의 자태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갖은 수단으로 절 쫓아내려 했는데 결국 일자리를 잃은 건 당신들이네요.”심유진은 영화 속에 나오는 빌런처럼 크게 웃으면서 얘기했다.“당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요? 자신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너무 자신만만했다고 해야 하나요? 그도 아니면 아둔하다고 해야 할까요?”“너!”Nina는 화가 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손을 들어 심유진의 뺨을 갈기려 했다.심유진은 미리 준비하고 있어 그녀의 손을 잡고 반격하려던 찰나 몸이 사람에 부딪혀 엉거주춤하게 옆으로 밀려났다.이윽고 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심유진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옆을 바라보았다. Nina의 손은 아직 허공에 있었고 그녀의 공격 범위 내에 없었던 Maria가 심유진이 서있었던 자리에 서있었다. Maria의 고개는 옆으로 쏠렸고 얼굴을 만진 채 서있었다.“Maria!”심유진은 쏜살같이 앞으로 다가가 Maria를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