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도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조금씩 고개를 돌리다가 마침 별이와 눈이 마주쳤다. 별이는 많이 화가 난 것 같았다. 심유진이 얼른 허태준에게서 떨어져서 별이에게 해명하려고 하는데 별이가 씩씩 거리며 말했다. “나만 빼고 왜 둘이 안고 있어!” 억울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심유진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하지만 허태준은 침착했다. “이리 와.” 별이는 바로 눈을 반짝이며 허태준에게 갔다. 허태준은 노트북을 심유진에게 넘겨주고 별이를 들어 올렸다. 별이는 허태준의 목을 꽉 껴안으며 볼에 뽀뽀를 했다. “아빠가 최고야!”표정이 복잡한 심유진을 보며 허태준이 일부러 물었다. “그럼 엄마는?” “엄마도!” 별이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기에 당연히 엄마도 놓치지 않았다. 별이가 심유진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엄마도 안을 거야!” 심유진이 피동적으로 끌려갔다. 허태준은 한 팔에 한 명씩 꽉 끌어안았다. 허태준이 한쪽 팔로 심유진의 허리를 감자 심유진이 은근슬쩍 선을 넘지 말라는 눈치를 줬다. 하지만 허태준은 모른 척 별이에게 말을 걸었다.“이제 기분이 나아졌어?”“잠시만!”별이가 휴대폰을 꺼내면서 우물쭈물 말했다.“사진도 찍고 싶어.”“당연히 찍어야지.”허태준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며 심유진을 바라봤다. 별이도 애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심유진은 사진을 찍는 걸 싫어했지만 두 사람의 공세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래.”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들었다.“하나, 둘, 셋! 김치!”별이의 찬란한 웃음과 조금은 어색한 심유진의 웃음,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허태준까지 한 프레임에 가득 담겼다. 별이는 바로 그 사진을 하은설에게 보내주며 말했다.“이 사진 프린트 해줘! 유치원 친구들한테 보여줄 거야.”심유진은 말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별이가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들을 생각하니 결국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별이는 그제야 심유진의 손에 들린 노트북에 주의를 돌렸다.“아빠 꺼야?”“
별이는 얌전히 대답했다. “알겠어.”허태준은 오묘한 표정으로 심유진을 바라보며 친절하게 말했다. “노트북 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거 써도 돼.” 심유진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고맙지만 필요 없거든요?” 낮에 심유진과 허태준이 같이 자는 모습을 본 별이는 오늘은 꼭 자기도 같이 자겠다고 떼를 썼다. 심유진은 이제 열이 내렸지만 아직도 감기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기에 혹시 별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한참을 설득했다. 끝내 허태준이 별이와 함께 자는 걸로 타협을 봤다. 심유진은 혼자 큰 침대를 차지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어린아이처럼 침대위에서 뒹굴거려 보기도 했다. 근데 불을 끄고 혼자 조용히 있으니 자신의 숨소리도 느껴지는 이 공간이 유달리 외로웠다. 심유진은 순간 두려워져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하지만 공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유진은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감기약 기운 때문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알람소리를 못 들은 심유진은 출근하기 10분 전이 되여서야 일어났다. 심유진은 화장도 못하고 대충 씻은 다음 다급히 집을 나섰다. 허태준은 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려고 나간 건지 집에 아무도 없었다. 주방 테이블에는 허태준이 준비한 아침과 쪽지가 있었다. “별이 데려다주고 올 테니까 아침 먹고 있어. 데려다줄게.” 하지만 심유진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심유진은 택시를 타고나서야 허태준에게 문자를 남겼다. “이미 회사로 출발했어요.” 심유진은 당연히 늦었다. 회사에서 낙하산으로 찍혔기 때문에 심유진은 이미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해 보니 자리에 누구도 없었다. 심유진은 Maria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들 어디 갔어요?” Maria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심유진은 김욱의 사무실에도 들어가 봤지만 역시 사람이 없었다. 육윤엽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분명 정상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게다가 비록 다들 자리에 없었지만 노트북은 켜진 상태였고 가방
고개를 들자 어두운 표정을 한 육윤엽이 보였다. 뒤쪽을 보니 김욱과 Maria 역시 같은 표정이었다. 심유진이 서있는 걸 보고 육윤엽이 놀랐는지 멈칫했다. 심유진은 얼른 모르는 사람인척하며 공손하게 인사부터 했다. 육윤엽이 인사를 받으며 친하지 않은 척 자리를 떠났다. 김욱도 멈칫하더니 상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전에 알리지 않고 지각했으니 이번 달 보너스는 취소하겠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오셔서 상황 설명해 주시죠.” 회의실의 직원들은 모두 이 말을 들었다. Maria는 동정의 눈빛을 보냈지만 다른 직원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심유진은 얌전히 김욱의 뒤를 따라 사무실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피곤해.” 김욱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잘하는 짓이다.” 김욱과 육윤엽 모두 심유진이 신분을 숨기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괜히 쓸데없이 피곤한 짓을 하는 걸 안타까워했다. “열은 내렸어?” 김욱이 노트북으로 업무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내렸어.” “하긴, 열이 안 내렸으면 태준 씨가 널 출근하게 내버려 뒀을 리가 없지.” 김욱이 심유진의 패딩을 바라봤다. “처음부터 이렇게 입었으면 얼마나 좋아.” “동기들이 촌스럽다고 한단 말이야.” 심유진이 입을 삐죽거렸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얼른 적응해야지.” “그럴 필요 없어.” 김욱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곧 회사 관리인이 될 사람이니까 직원들과의 관계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거야. 그러니까...” 김욱이 심유진이 보내준 PPT를 켜면서 말했다. “브리핑할 준비는 다 됐어?” 심유진은 준비한 대로 브리핑을 완벽하게 해냈고 김욱도 매우 만족했다. “감기가 다 나으면 나랑 고객들 만나러 다니자.” 회사 업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자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래.” 심유진은 조금 흥분됐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서류를 붙들고 있는 것보다 외근이 훨씬
Maria는 문자를 확인하라고 눈치를 줬다. 심유진은 그제야 노트북을 켰다. Maria가 보낸 문자가 보였다. “Judy가 해고당했어요. 오늘 아침에 회의도 Judy 때문에 열린 거예요. 엄청 화내셨는데 참석 안 하길 잘했어요.” 심유진은 Judy의 자리를 확인했다. 기둥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요?” Maria가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심유진은 그제야 블루 항공내부에도 익명 게시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업에 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중고거래를 하거나 사내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우에 있는 글 한번 봐보세요!” Maria의 문자에 심유진은 댓글이 가장 많은 글을 확인했다. 심유진은 SNS를 자주 하지 않았기에 글 제목을 보고도 무슨 일인지 잘 몰랐다. 글에 첨부된 영상은 심유진이 그날 식당에서 직접 목격한 광경이었다. 글을 올린 사람은 Judy의 신상도 다 공개해 버렸고 댓글은 의견이 분분했다. “나도 아는 사람인데 사람 좋아 보이던데?””나도 아는데 매번 볼 때마다 느낌이 안 좋았어.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것 같더라.” “구체적으로 말해봐. 너무 궁금해!” 댓글에 직원들이 Judy의 업적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험담을 하거나 누군가를 괴롭혔다는 내용이었다. 심유진이 알고 있는 Judy의 모습이었다. 심유진은 Maria에게 물었다. “요즘 이 글이 핫해요?” “그럼요!!!!!” Maria의 문자에서 이 글이 얼마나 퍼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Maria는 SNS에 돌아다니는 글들을 캡처해서 보내줬다. 네티즌들은 Judy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블루 항공에서 Judy를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Judy가 저희 회사 사람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회사를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경쟁사는 이때다 싶어서 저희 회사를 더 억압하고 있고요. 그래서 어제 회장님이 바로 Judy를 해고시켰
솔직히 Judy가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었지만 그냥 비판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일자리까지 잃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신상이 다 털렸으니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심유진은 Judy가 평소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기에 이런 후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티즌들은 그녀가 벌을 받기를 원했고 아마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녀를 해고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블루 항공이 네티즌들 눈치를 봐야 하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일이 커지면 회사 명의에도 영향이 가게 되니 이 방법이 가장 확실했을 것이다. Judy가 해고당한 사실을 듣고 심유진이 기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심유진 역시 Judy의 피해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Judy가 블루 항공에서 그렇게 오래 일한 걸 보면 업무 능력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훌륭하다는 말이었다. 심유진은 Judy가 이렇게 회사에서 나가버리면 다른 직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되었다. 심유진이 Maria에게 물었다. “근데 다른 직원들은 의견이 없던가요?””같이 해고당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할 말이 있어도 참아야죠. 오늘 퇴근하고 시간 있어요? 같이 저녁 먹을래요? Judy가 해고당한 걸 축하해야죠! 사실 저도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Maria는 Judy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유진은 조금 놀라웠다. Judy가 사람은 그다지 않아도 Maria에게만은 항상 친절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대부분 직원들은 Maria에게 친절했다. 혹시나 회장님에게 고발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 그럴 것이다. “제가 밥 살게요.” 심유진이 말했다. 지난번에 Maria가 밥을 사줬었기에 이번에는 꼭 대접해주고 싶었다. Maria는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받아들였다. 둘은 한참을 의논하다가 요즘 유명한 식당으로 예약했다. Judy가 없으니 회사에서도 훨씬 더 편안했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동기들은 여전히 심유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으나 애초에 부딪힐 일이 적었기 때문에
심유진은 문을 잡아주며 육윤엽과 김욱이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김욱은 오히려 자신이 문을 잡아주며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심유진이 망설이자 Maria는 심유진의 손목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네 사람 모두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늦은 시간이라 타는 사람이 없어서 1층까지 바로 내려갔다. 그때 김욱이 물었다. “식사는 어디 가서 할 거예요?” “가까운 한식집으로 가려고요.” 미국의 한식집은 사실 대부분 현지화된 음식으로 바뀌어져서 맛있는 집이 적었다. 하지만 회사 근처의 한식집은 정말 맛이 훌륭했기에 유학생들이나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다. 심유진은 예전부터 그 명성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예전에 살던 곳은 거리가 멀었고 심유진은 요리를 해 먹었기에 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거기로 가시는구나.” 김욱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갑자기 한식이 먹고 싶네요.” 상사의 요구는 보통 아무리 난감해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심유진과 Maria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다행히 육윤엽은 같이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회사 문 앞에서 육윤엽은 차를 타러 가고 나머지 세 사람은 식당으로 갔다. 김욱이 먼저 걸어가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이 가깝기도 하거니와 그쪽은 주차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밤바람이 찼기에 심유진은 코를 훌쩍거렸다. 하도 휴지로 코를 풀어서 빨개진 코끝을 보며 김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약 먹었어요?” 걱정하는듯한 말투에 심유진이 깜짝 놀라서 거리를 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점심에 먹었어요.” 심유진은 Maria의 눈치를 봤으나 Maria는 딱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10분 정도 지나서 식당에 도착했다. 사전에 예약을 했기 때문에 대기할 필요도 없었다. 주문을 마친 다음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유진과 Maria는 물만 마셔댔고 김욱은 휴대폰
김욱은 그냥 묻는 듯해 보였으나 사실 죄를 묻는 듯하기도 했다.Maria는 육윤엽의 비서이기에 평소에는 일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육윤엽과의 관계는 총재 사무실 기타 직원보다 훨씬 친한 편이다.육윤엽은 업무에만 몰두하여 직원의 업무 능력에 대한 요구가 높을 뿐 인성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 내에서 위세를 부리는 직원을 용납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비서는 관건적인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즉시 회사 내 중요하지 않지만 처리가 필요한 자잘한 일에 대해 육윤엽에게 보고하는 것이다.Maria도 실책했음을 인지했다.그녀는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물컵을 잡고 있었다.“들은 게 있긴 합니다.”그녀는 육윤엽한테 솔직하게 말했다.“육 대표님에게 제때 보고하지 않은 것은 제 잘못입니다.”“하지만 그 잘못에 대해 보상했잖아요, 안 그래요?”김욱은 그녀를 암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Maria의 몸은 흠칫했다. 그녀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입은 반쯤 벌려졌으나 한참 동안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무슨 뜻이죠?”심유진도 오리무중이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김욱은 태연하게 그녀의 의혹을 풀어줬다.“회사 내부 커뮤니티에 Judy를 폭로하는 게시글은 Maria가 보낸 겁니다.”블루항공 내부 커뮤니티는 자유롭게 활용되었다. 계정은 실명제가 아니었고 내부 IP만으로 회원가입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매 IP는 한 대의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어 IT 부서에서 찾아보기만 하면 게시글 작성자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커뮤니티의 이 게시글은 핫했다. 그래서 김욱도 본 적이 있다. 김욱은 게시물 작성자가 Judy와 원한이 있는 사람이 일부러 선전포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IT 부서를 찾았건만 작성자는 뜻밖에 Maria였다.“네?”심유진도 똑같이 놀라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Maria에 물었다.“진짜예요?”김욱이 적나라하게 그녀를 까발렸으니 Maria도 부인하지
Maria의 우중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금세 밝은 미소가 나타났다.“김욱 씨, 고마워요!”그녀는 유난히 감격에 겨워 얘기했다. 그녀의 모습은 심유진이 요 며칠 본 것 중에 제일 희열에 겨운 모습이었다.역시 상금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다.**그들의 음식은 하나하나 올라오고 있었다.심유진과 김욱은 맛있게 먹었다. Maria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여 젓가락질 할 때마다 맑은 물에 한번 헹궈서 먹었다.심유진은 그녀가 힘들게 젓가락질 하고 독약을 삼키듯 음식을 입에 넣는 모습을 보고 의혹스레 물었다.“한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서 왜 여기로 오자고 제의했나요?”심유진은 먹는 것에 대해 연구가 깊지 않다. 옛날에 하은설과 둘이 만들어 먹거나 밥을 하기 싫을 때에는 근처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곤 했다. 그도 아니라면 호텔에서 대충 끼니를 에웠다.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는 대부분 고객 접대하기 위함이었고 지점도 그녀의 조수가 대신 예약하였기에 심유진은 머리를 쓸 일이 없었다.오늘도 마찬가지로 Maria가 제의하고 결정했기에 심유진은 돈만 내주면 되었다.“이 집에 와본 적이 없잖아요! 유진 씨와 같이 와서 먹어보고 싶었어요.”Maria는 매워서 연거푸 혀를 내밀었다. 회사 내 얼음공주처럼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말을 하면서도 연신 “쓰읍, 쓰읍” 하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인터넷에서 그러는데 여기가 제대로 한국 맛을 낸다고 하길래 유진 씨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심유진은 감동에 겨워 코끝이 찡해났다.예전 경험으로 인해 심유진은 직장생활에서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Maria가 그녀를 위해 한 일들은 그녀의 인지를 바꾸었다.“너무 맛있어요.”심유진이 말했다.“하지만 저를 맞추느라 무리하지 말아요. 다음에 식사할 때는 우리가 다 좋아하는 레스토랑으로 가요!”“좋아요!”Maria는 말하자마자 또 물 반 컵을 마셨다.**계산할 때 심유진과 김욱은 한참 옥신각신했다.이번 식사는 심유진이 계산하기로 했는데 김욱은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