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밤 심유진은 제대로 자지 못했다.밤중에 추워서 덜덜 떨다가 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차가운 손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어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그녀가 깼을 때 방안은 빛 한줄기 없이 어두웠다.그녀는 어렴풋이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여느 때와 같이 그녀는 습관적으로 옆으로 누워 침대 옆에 놓인 핸드폰을 보려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자마자 큰 힘에 의해 잡혀 왔다.심유진은 쓰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찬찬히 보고 나서야 침대 옆에 엎드린 거뭇한 그림자를 발견했다.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검은 그림자가 허태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허태준은 자신의 팔을 깔고 있어 몸이 뒤틀린 채로 두 다리를 쭉 땅에 뻗었다.심유진은 가슴이 아파 허태준과 두 손이 잡힌 채로 허태준을 밀어보았다.“일어나봐요!”허태준은 잠에 깊게 들지 않아 심유진이 부르자마자 눈을 떴다.“깼어?”그는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는 잠에 잠겨 거칠어졌다.심유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허태준은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열은 내린 것 같네.”그는 시름을 놓은 말투로 말했다. 허태준은 두 손으로 침대를 짚어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더 잘래?”그는 물었다.심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허태준은 창가로 걸어가 두터운 암막 커튼을 열어 그 작은 틈새로 햇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한줄기 햇빛은 금세 방안을 밝혔다.심유진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침을 삼켜 목구멍에 물을 묻혔다. 그리고는 급하게 물었다.“몇 시예요? 별이는 학교 갔어요?”밖의 빛을 보니 이르지 않은 것 같았다.허태준은 돌아와서 그녀의 폰을 켰다.“열 시가 다 되어가. 별이는 학교에 안 갔어. 아마도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을 거야.”그녀가 이불을 차던지는 것을 대비해 허태준은 온밤 심유진을 돌보았다. 중도에 해열 패치를 두 번이나 갈아주어 아침 다섯 시쯤 스르르 잠이 들었다.여덟 시가 되어서 별이는 허태준을 찾아왔다. 그는 심유진의
그는 손을 빼기도 싫었다. 따뜻했던 온기가 사라지니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 심유진은 이번에 그를 말리지 않았다. 심유진은 아침을 안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별이는 아니었다. 허태준이 아침 메뉴를 준비하는 사이 심유진은 대충 씻고 컴퓨터와 업무 자료를 들고 하은설의 방으로 갔다. 어젯밤에 허태준과 별이 때문에 야근해야 하는 것도 까먹었었다. 열은 이미 내렸지만 아직도 몸살 기운이 있었기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일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심유진은 얼른 노트북을 끄고 서류들을 숨겼다. “누구세요?” “나야.” 허태준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죽 좀 만들어왔어.” 그릇에 따끈한 죽이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고 약 먹자.” “일단 여기 두세요. 배고플 때 먹을게요.” 심유진은 자신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얼른 허태준을 내쫓았다. “열도 다 내려서 괜찮아요.” 하지만 허태준은 나가지 않았다. 허태준이 예리한 시선으로 심유진을 훑어보다가 심유진 등 뒤의 수상한 물체에 시선을 돌렸다. “저건 뭐지?”심유진이 다급히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허태준은 바로 이불을 걷어버렸다. 쌓여 있는 서류를 본 허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하고 있었어?” 심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허태준은 매정하게 모든 물건들을 압수하고 접시를 심유진에게 넘겼다. “먹어. 안 그러면 이거 다 버려버릴 거니까.” 심유진은 허태준이 말하면 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심유진은 죽을 먹고 감기약도 고분고분하게 삼켰다. 하지만 허태준은 그래도 방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옆에서 지켜봐야겠어.” “이미 다 뺏겨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그래도 걱정되면 별이한테 감독하라고 하고 태준 씨는 이만 자요. 네?” “안돼.” 하지만 허태준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허태준은 아무 말 없이 심유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눈빛 속에 감정이 다 들어있었다. “아직 일주일 안된 거 아는데 그래도...” 허태준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답 들을 수 있을까?” 심유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그걸 물을 줄은 몰랐다. 심유진은 계속 날짜를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약속한 일주일이 되기까지 아직도 삼일이나 있었다. 일을 미루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심유진은 계속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자신을 위로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허태준은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저는...” 심유진은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허태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허태준은 심유진을 재촉할 생각이 없었다. 심유진의 마음에 생긴 응어리가 풀리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심유진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 심유진은 확실히 자신을 관심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유는... 허태준은 행복한 생각에 둘러싸여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물음을 입밖에 꺼내고 말았다. “괜찮아.” 허태준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웃으며 손을 풀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허태준은 한발 물러섰다. 심유진은 맞잡았던 손이 떨어지자 순간 조금 속상했지만 그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허태준이 이미 침대에 누워있는 게 보였다. 어두운 눈빛을 한 허태준이 조용히 심유진과 눈을 마주쳤다. 휘몰아치던 감정들은 사라지고 고요함과 평온함만이 남았다. “올라와.” 허태준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말투였다. “그...” 심유진이 머뭇거리는데 허태준이 한마디 더 했다. “그럼 컴퓨터는...” 허태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심유진은 가장 빠른 속도로 침대에 누웠다. 허태준은 이불을 덮어주고 심유진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 허태준의 턱이 심유진의 정수리에 닿았다. “
심유진은 조심스럽게 문에 붙어서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거실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허태준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가만히 자신의 노트북과 서류들을 가져왔다. 방문을 열자마자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깼어?” 별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심유진은 안 좋은 타이밍에 나타난 별이를 보고 조금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허태준도 별이를 따라 나왔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왠지 부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때 별이가 먼저 소리쳤다. “엄마, 입술이 왜 그래?” 심유진이 멈칫했다. 별이는 나이가 어렸기에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넘어졌어? 아니면 모기에 물렸어? 어? 근데 모기는 겨울에 없을 텐데.” 심유진은 얼른 입을 가리고 방으로 도망쳤다. 퉁퉁 부은 입술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살짝만 만져도 통증이 느껴졌다.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허태준이 자신이 잠든 틈을 타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별이가 아직 지켜보고 있었기에 심유진은 그냥 억지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거실에 다시 나갔을 때 허태준은 별이와 레고를 맞추고 있었다. 육윤엽이 저번에 사 온 마을 모형이었다. 별이 혼자 했을 때는 며칠을 만들어도 10분의 1 밖에 만들지 못했었는데 둘이 함께 하니 이미 얼추 모형이 완성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완전 대단해!”별이가 심유진에게 자랑했다. “아빠가 이거 만들어줬어. 내일 유치원에 가져가면 다들 부러워할 거야.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줘야지.” 심유진은 웃으면서 그런 별이를 지켜봤다. 심유진이 다가오자 허태준이 탁자 위의 마스크를 쓰라고 눈짓했다. “일단 이거 써. 애도 있으니까.” 허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이 다시 심유진의 입술에 머물렀다. 심유진은 바이러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업적을 가리기 위해 쓰라는 건지 알 수
심유진은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의 불쾌한 기억 때문이었다. 심씨네 집안은 나름 잘 사는 집이었기에 카메라가 금방 보급되기 시작했을 무렵 소학생이었던 심연희도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이는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심연희가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닐 때마다 심유진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카메라 필름은 20장 밖에 없었고 집안에는 암실도 없었으며 당시에는 사진관도 매우 적었다. 그래서 심연희는 사진을 잔뜩 찍은 다음 기사님에게 부탁해서 몇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사진관까지 가서 사진을 뽑아왔다. 심연희는 나이가 어렸기에 카메라를 그저 장난감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도 대충 찍었고 찍은 사진들을 보면 초점이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낭비한 필름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심연희는 신경 쓰지 않았고 집안사람들은 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영은이 그 사진들 중 심유진이 흐릿하게 찍힌 사진을 들고 와서 욕설을 퍼부었다. “필름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 왜 옆에서 알짱대고 난리야.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우리 집 돈만 축내는 주제에.” 사영은은 그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던졌다. 그때 사영은의 눈빛을 심유진은 평생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심유진은 한 번도 심연희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훔쳐보지 않았다. 누군가 사진을 찍어주겠다 할 때마다 심유진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거부감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니 허태준의 배경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 사진도 무조건 몰래 찍은 사진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심유진은 허태준이라는 사람을 몰랐다. 그럼 이 사진은 어떻게 얻은 걸까. 심유진은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컴퓨터를 끄고 업무부터 시작했다. PPT를 완성하고 복사본도 여러 곳에 저장해 둔 후 김욱에게 전송하고 나서야 심유진은 안심하고 노트북을 껐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Judy가 삭제할 방법이 있을지 지켜보고 싶었다. 노트북과 파일들을
허태준은 바로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왜 그래?” 거대한 몸집에 꽃무늬 앞치마를 한 모습, 심유진은 이미 익숙한 모습이었다. “괜찮아요.” 심유진이 여전히 기침을 하며 힘겹게 대답했다. 허태준이 얼른 따뜻한 물을 떠 왔다. 심유진은 그들과 멀리 떨어진 베란다까지 가서야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셨다. 겨우 기침이 멎자 심유진이 허태준과 별이를 보며 말했다. “둘 다 나랑 멀리 떨어져 있어요.” 허태준이 다가오려고 하자 심유진은 얼른 뒤로 물러서며 경고했다. “특히 그쪽! 오지 마요!” 허태준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심유진을 바라봤다. 잘 때만 해도 자신을 안고 자던 사람이 왜 몇 시간 사이에 이렇게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유진은 기침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빨개졌다. 심유진은 허태준의 시선을 피하며 빙 돌아서 자신의 방 앞에까지 왔다. “저녁은 둘이 먼저 먹어요. 전 나중에 먹을게요. 옮으면 안 되니까.” 심유진은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저녁밥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왜...” 심유진은 뭐라고 하려다가 허태준의 어두운 표정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허태준은 쟁반을 침대에 올려뒀지만 전처럼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심유진을 쳐다볼 뿐이었다. 심유진은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해 먼저 물었다. “왜요?” 허태준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전처럼 차가운 말투가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억울함이 묻어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심유진은 왠지 그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미안함 때문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니요. 태준 씨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냥 제가...” 심유진은 별이가 했던 질문을 허태준에게 그대로 알려줬다. 말을 마치니 온몸이 부끄러움 때문에 달아올랐다. 허태준은 더 이상 처음처럼 긴장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허태준의 표정이 갑자기 굳혔다. “왜 같은
허태준은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심유진은 화가 나서 베개를 던졌지만 피하지 않고 맞아주는 허태준을 보니 순간 분노보다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괜찮아요?” 허태준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심유진은 더 당황했다. 심유진은 얼른 허태준에게 다가갔다. “많이 아파요?” 심유진은 허태준 앞에 앉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다급히 물었다. 허태준이 고통을 참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미안해요.” 심유진은 식은땀이 났다. 맞은 부분을 어루만져 주려다가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심유진은 손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때 허태준이 손을 덥석 잡았다. 순식간에 심유진은 허태준의 품에 안겨버렸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목과 허리를 감싸며 그녀를 자신의 품에 꽉 채워 넣었다. “심유진.” 허태준이 심유진의 귀를 살짝 물었다. 뜨거운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이제 인정해. 넌 나 없으면 안 돼.” 허태준의 목소리가 마법처럼 마음을 파고들었다. 심유진은 서서히 얼굴이 붉어졌다. “Mike고 Allen이고 그 누구도 다 안돼. 나여야 해.” 마음속으로만 하고 있던 생각을 허태준이 크게 말해버리니 심유진은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뭔 소리예요! 이거 놔요! 안 놓으면 쫓아낼 거예요.” 하지만 심유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허태준은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유진.” 허태준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보다 훨씬 진지한 말투였다. 심유진이 그 목소리에 멈칫했다. “자기 마음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허태준은 말을 마치고 손을 놓았지만 심유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밥 먹어.” 허태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이나 말투 모두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따가 그릇 가지러 올게.” 하지만 심유진은 입맛이 없어서 침대에 앉은 채 허태준이 두고 간 음식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모두 심유진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지만 젓가락질을 할
심유진은 허태준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자신 때문인지 아니면 별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허태준은 별이가 자신의 친아들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 허태준이 이렇게 잘해주는 건 별이에게 온전한 가족을 선물해주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심유진은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밖으로 나갔다.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던 허태준과 별이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엄마 밥 다 먹었어?” 별이가 먼저 물었다. “아직.” 심유진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빠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심유진은 허태준을 바라봤다. “잠시 서재로 와요.” 허태준은 리모컨을 별이에게 넘겨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조금만 더 보다가 씻고 자. 알겠지?” 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얘기 잘해.” 심유진이 살짝 눈을 흘기자 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TV에 집중했다. 허태준은 심유진을 따라서 서재로 들어갔다. 별이가 듣기라도 할까 봐 심유진은 문을 굳게 닫고 잠그기까지 했다. 허태준은 흥미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심유진이 자신을 쳐다볼 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뭐 하려고?” 심유진은 허태준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허태준은 얼른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래. 이리 와.” 어이없어하는 심유진을 보며 허태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책상에 기댔다. “날 부른 거 보면 생각 정리가 끝난 건가?” “그거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허태준은 조금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럼?” 심유진은 허태준의 컴퓨터를 켰다. 허태준은 잠시 멈칫하다가 심유진을 제지시키려고 했으나 결국 한발 늦고 말았다. 앳된 얼굴을 한 심유진의 사진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이게 뭐예요?” 심유진이 허태준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허태준은 당황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