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프로필 사진으로 누군지 알아냈다. 끝없는 밤하늘, 중간에는 금빛이 나는 초승달, 그 옆에는 작지만 밝아 무시할 수 없는 별이 있었다.이것은 별이 지난주에 그린 그림 숙제다. 별이 설명하길 이 그림의 이름은 >다. 심유진이 자신을 별이라고 부르고 자신도 심유진의 이름에 달이 들어간 줄 알았다고 한다. 심유진은 당연히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별인 줄 알았다. 별이의 빠른 속도에 감탄하고 있던 중 대화창을 누르자 허태준의 이름이 떴다.허태준이 그녀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것은 별로 희한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별이의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니..., 그것도 이렇게 의미가 있는 그림을 쓰니 심유진의 마음은 조금 복잡했다.맞은 쪽에 앉은 Maria는 이미 포크와 나이프를 잡았다. 한입 먹고는 연신 감탄했다.“Shen! 이것 좀 먹어봐요! 완전 맛있어요!”심유진은 흠칫하다가 시선을 허태준의 프로필 사진에서 뗐다.“좋죠.”그녀는 웃으면서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었다.아직 완성하지 못한 자료를 생각하며 심유진은 길게 식사하지 않았다.Maria와 같이 떠날 때 그 일행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들 상 위의 음식은 이미 비었지만 끼리끼리 붙어서 각종 포즈를 하면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이번에 심유진은 멈춰 서지 않았다.레스토랑 출구까지 걸어왔을 때 안에서 한 여인의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심유진은 이런 광경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Maria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이 목소리는..., Judy 같은데요?”“네?”심유진은 흥미진진했다.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은 식사를 멈추고 호기심에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모두의 시선이 멈춰 있는 곳에는 Judy와 제복을 입은 여성 웨이터가 있었다.Judy는 여성 웨이터보다 키가 한 뼘 더 컸다. 상대방을 손가락질하면서 욕하는 모습이 괴롭히는 모습 같았다.“돈을 내면서 여기서 식사하는데 당신 눈치나 봐야겠어요?”“고객은 하늘같은 존재란 걸 모르나봐요?
너무나도 눈에 익은 광경이었다. 예전의 심유진은 매일이다시피 이런 경험을 했다. 웨이터가 Judy한테 욕을 먹자 이상한 손님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자신이 생각났다. 그녀는 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Maria를 붙잡고 말했다.“가요.”Maria는 촬영 중이던 핸드폰을 치웠다. 화도 나지만 유감이었다.“네.”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분노에 차서 말했다.“Judy는 진짜 너무 한 것 같아요! 사적으로 이런 사람인 줄 정말 몰랐네요!”심유진은 Judy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Maria한테 이간질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헤어질 때 Maria는 말했다.“육 대표님한테 Judy의 진짜 모습을 알려야겠어요!”**한창 저녁 식사 시간이기에 퀸 애비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의 빈 택시가 없었다.Maria는 주동적으로 심유진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심유진은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결국 심유진은 길을 건너서 지하철을 탔다.겨울밤 찬바람은 심유진의 긴 머리카락이 뒤로 가게 쌩쌩 불었다.심유진은 목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바람을 마주한 채 걸어갔다.코끝은 얼어서 빨갛게 변했고 콧물도 계속 흘렀다. 심유진은 종이로 닦고 또 닦았다.N 시티의 지하철은 몇백 년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국내 지하철보다 많이 낡았고 역 안은 에어컨을 느낄 수 없었다.차에 오르자 얼어붙은 몸은 그제야 조금씩 따뜻해 지는 것 같았다.역을 나서자 심유진은 금세 찬 바람에 둘러싸여 코트 끝자락이 강풍에 휘날렸다.심유진은 코를 훌쩍이면서 아파트로 걸어갔다. 경비를 서던 관리원이 인사했다.“밖이 춥죠?”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관리원은 심유진을 쳐다보다가 친근하게 타일렀다.“내일 기온이 더 떨어진대요. 눈이 내릴 수도 있으니까 두껍게 입고 다녀요! 감기 걸리지 말고!”심유진은 힘을 들여 “네.”하고 대답한 후 감사 인사로 웃어 보였다.“고마워요.”**“엄마!”심유진이 집에 들어서
허태준은 옅은 회색 생활복을 입고 있었다. 코튼 후드의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져 하얗고 긴 팔을 드러냈다.“왜 이렇게 빨리 왔어?”그는 티슈로 물에 젖은 손을 닦으면서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심유진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따뜻하고 편안한 슬리퍼로 갈아신으면서 별이와 함께 허태준한테로 걸어갔다.“밥만 먹는데요, 뭘.”그녀는 어깨에 걸친 가방을 쇼파에 벗어던지고 허태준한테 물었다.“두 사람은요? 밥 먹었어요?”“방금 먹었어.”허태준은 대답했다.“설거지하는 중이야.”심유진은 흠칫했다. 시선은 차가운 물에 적셔져 빨갛게 변한 허태준의 손에 머물렀다. 그리고 조급히 알려줬다.“집에 식기 세척기가 있는데요!”“식기 세척기라 해도 내 손으로 씻은 것보다 깨끗하지 못해.”허태준은 덤덤히 말했지만 그의 말에서 꼼꼼한 성격을 볼 수 있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결벽이 어느 만큼 심각한지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그러면 적어도 뜨거운 물을 쓰지!”허태준은 동그랗게 만 종이를 장거리 슛을 해 쓰레기통에 버렸다.“괜찮아.”그는 까만 눈동자로 평온하게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안 추워.”“손이 이렇게 빨개졌는데 안 춥다구요?”심유진은 화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허태준의 한마디는 심유진을 더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당신 손이 더 빨개.”심유진은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확실히...자기 손이 더 빨간 것 같았다.심유진은 조마조마하여 손을 뒤로 감췄다. 하지만 별이가 한쪽 팔을 잡아당겨 움직일 수가 없었다.“맞아요! 엄마 손은 완전 차가워요!”별이는 일부러 심유진의 말에 반대되게 행동하듯 심유진의 손을 허태준의 손에 가져갔다.“아빠, 빨리 엄마 손을 따뜻하게 해줘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허태준은 늘 몸이 차가웠다. 그랬기에 두 손도 항시 차가웠다. 거기다 아까 찬물에 식기를 씻었기에 손은 더 차가웠다.하지만 그런 손이라도 심유진의 손보다는 따뜻했다.허태준은 두 눈을 작게 뜨면서 위험한 빛을 내뿜었다.심유진은 움찔했다.
허태준의 따뜻한 몸 때문에 심유진의 얼어붙은 손은 조금씩 온도를 되찾기 시작했다.심유진은 시름이 놓였다.“이제 가도 되죠?”그녀는 허태준한테 물었다.허태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그녀의 손을 옷 속에서 빼냈다.“목욕물을 받아놓을 테니 목욕해.”그는 말하면서 별이한테 임무를 안배해 줬다.“엄마한테 판람근을 탄 물을 갖다주고 다 마실 때까지 감독해.”“네!”별이는 임무를 받자마자 총총 뛰어갔다. 심유진이 막아서려야 막아설 틈도 없었다.허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 마시고 욕실로 가.”**허태준은 이미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넣었다. 판람근의 위치도 별이한테 이미 알려주었다.별이는 조심스레 보온병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심유진 곁으로 다가왔다.“엄마, 빨리 마셔요!”별이는 보온병을 심유진의 손에 쥐어주었다. 별이는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심유진의 무릎을 베고 누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허태준의 임무를 엄격히 집행하는 듯했다.판람근의 쓴 향에 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렸다.심유진은 별이한테 장난쳤다.“너무 쓴데, 안 마시면 안 돼?”“안 돼요!”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 심유진의 장난에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다 마셔야 해요!”심유진은 욕실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자 소리를 낮춰 별이와 협상했다.“지금은 아빠가 우리 둘 대화를 듣지 못하니 이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주방에 가서 약을 다 버리고 아빠한테 비밀로 하자. 응?”별이는 심유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서 일어난 후 슬리퍼를 끌면서 욕실로 총총 달아갔다.반쯤 열린 문 사이로 심유진은 별이가 허태준한테 고자질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아빠! 엄마가 또 말을 안 들어요! 약을 안 먹겠대요! 약을 슬그머니 버리겠대요!”심유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아들놈을 괜히 키웠어.일 분 후 허태준은 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허태준의 차가운 시선으로
심유진의 몸은 흠칫하였다.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발을 움직이자마자 등은 물방울이 가득 맺힌 문에 닿았다. 얇은 셔츠는 금세 젖었다. 면으로 짜인 셔츠는 피부에 닿았고 재질의 훌륭한 통기성은 허울이 되었다.안개 속에 허태준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준수한 얼굴도 점점 또렷해졌다.심유진은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구석에서 벌벌 떨었다.“오, 오지 마요.”심유진은 떨린 목소리로 경고했다.“발은 다 나았거든요. 허태준 씨의 도움이 필요 없어요.”허태준은 말없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몇 초 후 그녀한테 손을 내밀었다.“와봐.”그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심유진은 손을 이미 문고리에 올려놓았다. 머릿속은 재빨리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다.허태준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문을 열기 전에 그녀를 안아 올렸다.심유진은 경황실색하여 고막이 터질 정도로 소리 질렀다.허태준의 시선은 덤덤히 그녀의 얼굴에 머물면서 그녀한테 귀띔했다.“조용히 해. 별이를 놀래킬라.”심유진은 즉시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내려줘요!”그녀는 그의 귓가에 이를 악물고 공기와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허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그는 제멋대로 욕조 옆 걸상에 앉았다. 심유진을 품에 안은 채 조심히 그녀의 양말과 슬리퍼를 벗겨냈다.심유진은 발가락과 발끝을 겨우 걸칠만한 덧신을 신고 있었다. 공기 중에 노출된 발목은 이미 얼어서 보라색을 띠고 있어 하얗고 긴 다리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허태준은 입술을 굳게 닫았다.속눈썹 틈새로 심유진은 그의 불만을 볼 수 있었다.심유진은 잘못한 것을 알고 가만히 있었다. 그의 화를 돋우어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초래할까이다.“내일에는 어그부츠를 신고 출근할게요. 제일 긴 어그부츠요!”심유진은 제기했다.허태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위로 올렸다.하루 종일 하이힐을 신었고 방금 전 지하철역에서 몇백 미터를 걸어왔기에 심유진의 장딴지
”고마워요.”심유진이 말했다.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렸다.별이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 허태준이 한참 동안 말이 없자 별이는 허리에 손을 얹고 허태준을 교육하기 시작했다.“아빠, 엄마한테 괜찮다고 말해야죠!”허태준은 심유진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별이는 기뻤다. 하지만 심유진은 등 뒤가 차가워 나는 것 같았다.그녀는 급히 우유를 마시고 컵을 팽개친 채 도망가듯 안방으로 갔다.“잘게요! 다들 일찍 자요!”별이는 도망가는듯한 심유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철이 없죠?”허태준은 부드러운 눈을 하고 별이의 고개를 어루만졌다.“엄마는 철이 안 들어도 괜찮아. 별이랑 아빠가 엄마를 보호하면 돼.” **아마도 우유의 작용인지 심유진은 빠르게 잠이 들었다.하지만 한밤중에 추워서 깼다.두터운 오리털 이불은 그녀의 몸에 잘 덥혀 있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꿈결에 차 던진 것이 아니었다.심유진은 따뜻해지려고 몸을 움츠리고 두 팔로 자신을 꼬옥 안았다. 하지만 뼛속부터 전해져오는 냉기는 그녀를 떨게 했다.처음에는 보일러가 고장난 게 아닐지 의심했다.그녀는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핸드폰을 들고 보일러 밸브를 검사하러 갔다.서재를 지날 때 그녀는 놀랍게도 아래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서재 안에 있던 사람도 밖의 기척을 느낀 것 같았다.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전해지더니 몇 초 후 서재의 문이 열렸다.허태준은 여전히 생활복을 입고 있었다. 눈썹사이로는 예전보다 강한 예리함이 묻어져 나왔다.그의 어깨를 넘어 심유진은 책상 위의 노트북을 보았다. 아마 밤을 새우면서 일을 했나 보다.“왜 아직 안 잤어?”허태준은 물었다.심유진은 점퍼를 더 여미면서 말했다.“보일러가 고장난 것 같아서 보러 가는 중이었어요.”그녀는 얘기할 때 치아가 떨려 아래위 이가 맞부딪혔다.허태준은 의심스러웠다.“보일러가 고장났어?”심유진은 놀
이날 밤 심유진은 제대로 자지 못했다.밤중에 추워서 덜덜 떨다가 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차가운 손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어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그녀가 깼을 때 방안은 빛 한줄기 없이 어두웠다.그녀는 어렴풋이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여느 때와 같이 그녀는 습관적으로 옆으로 누워 침대 옆에 놓인 핸드폰을 보려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자마자 큰 힘에 의해 잡혀 왔다.심유진은 쓰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찬찬히 보고 나서야 침대 옆에 엎드린 거뭇한 그림자를 발견했다.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검은 그림자가 허태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허태준은 자신의 팔을 깔고 있어 몸이 뒤틀린 채로 두 다리를 쭉 땅에 뻗었다.심유진은 가슴이 아파 허태준과 두 손이 잡힌 채로 허태준을 밀어보았다.“일어나봐요!”허태준은 잠에 깊게 들지 않아 심유진이 부르자마자 눈을 떴다.“깼어?”그는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는 잠에 잠겨 거칠어졌다.심유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허태준은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열은 내린 것 같네.”그는 시름을 놓은 말투로 말했다. 허태준은 두 손으로 침대를 짚어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더 잘래?”그는 물었다.심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허태준은 창가로 걸어가 두터운 암막 커튼을 열어 그 작은 틈새로 햇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한줄기 햇빛은 금세 방안을 밝혔다.심유진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침을 삼켜 목구멍에 물을 묻혔다. 그리고는 급하게 물었다.“몇 시예요? 별이는 학교 갔어요?”밖의 빛을 보니 이르지 않은 것 같았다.허태준은 돌아와서 그녀의 폰을 켰다.“열 시가 다 되어가. 별이는 학교에 안 갔어. 아마도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을 거야.”그녀가 이불을 차던지는 것을 대비해 허태준은 온밤 심유진을 돌보았다. 중도에 해열 패치를 두 번이나 갈아주어 아침 다섯 시쯤 스르르 잠이 들었다.여덟 시가 되어서 별이는 허태준을 찾아왔다. 그는 심유진의
그는 손을 빼기도 싫었다. 따뜻했던 온기가 사라지니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 심유진은 이번에 그를 말리지 않았다. 심유진은 아침을 안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별이는 아니었다. 허태준이 아침 메뉴를 준비하는 사이 심유진은 대충 씻고 컴퓨터와 업무 자료를 들고 하은설의 방으로 갔다. 어젯밤에 허태준과 별이 때문에 야근해야 하는 것도 까먹었었다. 열은 이미 내렸지만 아직도 몸살 기운이 있었기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일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심유진은 얼른 노트북을 끄고 서류들을 숨겼다. “누구세요?” “나야.” 허태준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죽 좀 만들어왔어.” 그릇에 따끈한 죽이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고 약 먹자.” “일단 여기 두세요. 배고플 때 먹을게요.” 심유진은 자신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얼른 허태준을 내쫓았다. “열도 다 내려서 괜찮아요.” 하지만 허태준은 나가지 않았다. 허태준이 예리한 시선으로 심유진을 훑어보다가 심유진 등 뒤의 수상한 물체에 시선을 돌렸다. “저건 뭐지?”심유진이 다급히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허태준은 바로 이불을 걷어버렸다. 쌓여 있는 서류를 본 허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하고 있었어?” 심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허태준은 매정하게 모든 물건들을 압수하고 접시를 심유진에게 넘겼다. “먹어. 안 그러면 이거 다 버려버릴 거니까.” 심유진은 허태준이 말하면 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심유진은 죽을 먹고 감기약도 고분고분하게 삼켰다. 하지만 허태준은 그래도 방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옆에서 지켜봐야겠어.” “이미 다 뺏겨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그래도 걱정되면 별이한테 감독하라고 하고 태준 씨는 이만 자요. 네?” “안돼.” 하지만 허태준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