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란이세요? 일들 안 하나요?”김욱은 차가우면서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격분해있던 동료들도 이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소리를 죽였다.김욱이 걸어오자 심유진을 에워싸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다들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업무를 하는 척 고개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김욱의 눈빛을 마주칠까 봐서였다.Judy도 한순간 당황했다.그녀는 손등으로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아내고 고개를 살짝 내린 채 빨간 눈을 드러냈다. 그녀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김욱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멈췄다. 이마는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왜 저러죠?”김욱은 심유진한테 물었다.심유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금세 평온해졌다.심유진은 애초에 이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다. 김욱이나 육윤엽이 알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저랑 Judy가 업무상에 상이한 의견을 갖고 있어서요. 마찰이 조금 있었습니다.”심유진은 엄중하지 않게 얘기하려 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조마조마한 표현이었으며 잘못을 인지하는 표현이었다.Judy는 얼굴을 더 깊이 숙이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물은 또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삼십 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녀의 책상에는 눈물이 흥건했다. “Judy, Shen 의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듯하네요?”김욱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사리에 밝고 자상한 상사 역할을 하였다.“얘기해 보세요. 무슨 일이죠?”Judy는 한참을 소리 없이 울다가 울먹이면서 입을 열었다.“Shen이 얘기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녀는 눈을 피했다. 크나큰 억울함을 당한 것처럼 조심스러워했다.심유진은 이런 인재가 오스카 연기대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가 아깝다.김욱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말투도 아까처럼 차갑지 않았다.“저를 믿으신다면 솔직하게 얘기하세요.”그는 말하면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블루항공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 한다면...”
Judy의 흐느낌은 곧바로 멈춰졌다. 그녀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Shen, 제가 도와주기 싫은 게 아니라...”그녀는 난처해하는 척하며 말했다.“김욱 씨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겠지만..., 미안해요. 자료는 Shen이 해야겠네요.”심유진은 이초 동안 Judy를 차갑게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심유진은 더 머무르다가는 그녀의 뺨을 칠 것 같았다.Maria는 심유진의 푸르딩딩한 얼굴을 보자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도로 삼켰다.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그녀의 자리는 Judy와 멀었다. 방금 심유진이 그쪽에 가서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듣지 못했다.그녀는 다만 그쪽에서 소란이 일었다는 것만 알았다. 심지어 업무시간에 사무실에서 나온 적이 거의 없는 김욱마저 나오게 했다는 것도 알았다.그리고 김욱이 돌아올 때의 얼굴색을 보니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일인 것 같았다.**심유진은 파일을 열어 재작성하기 시작했다.전에 했던 내용이 이미 머릿속에 있어서 재작성 하기는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표가 많아 시간을 많이 허비해야 했다.그녀는 퇴근 직전까지 자료를 완성하지 못했다.다들 떠나자 공용 사무실에는 심유진과 Maria만 남았다. Maria는 조용히 다가와서 물었다.“아까 Judy를 찾아서 뭐라 했어요?”심유진은 표에 데이터를 입력하면서 대답했다.“Judy가 제가 절반이나 만든 파일을 삭제해서 다시 하는 중이에요.”“너무 하네요!”Maria는 분했다.“김욱 씨가 혼쭐 내지 않았나요?”심유진은 경각성을 높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김욱 씨가 왜 저 대신 혼쭐을 내야 하죠?”Maria는 실언했음을 감지하고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김욱 씨가 직접 가시길래 유진 씨를 위해 나서주실 줄 알았죠...”다른 사람들처럼 자신과 김욱의 관계를 의심하는 티를 내지 않자 심유진의 마음은 그제야 조금 놓였다.“Judy가 실수로 삭제했다고 하고 김욱 씨도 저한테 하루 더 시간을 준다고 했어요.”“내일 급히 바칠 게
Maria가 오래 기다릴까 봐 심유진은 반 시간만 야근하고 컴퓨터를 껐다.그녀는 아직 입력이 끝나지 않은 표를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서 자료를 마저 할 생각이었다.“가죠.”정리를 다한 심유진은 Maria한테 말했다.“이렇게 빨리요?”그녀를 기다릴 때 Maria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소리를 듣자 의아스레 고개를 들었다.“네.”심유진은 웃으면서 말했다.“늦으니 배가 고프네요.”“저두요.”Maria는 배를 만지면서 심유진 곁에 다가와 친근하게 그녀의 팔짱을 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빨리 가요.”**Maria는 아마 진짜로 배고팠는지 차를 거칠게 몰았다.N 시티는 경주시처럼 퇴근길이 엄청나게 막혔다. 그녀의 핑크 S|mart는 체형우세로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누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퀸 애비뉴에 도착했다.그들이 가려는 레스토랑은 퀸 애비뉴에 위치해 있는 큰 간판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사가 잘되어 보였다. Maria가 사전 예약을 했어도 그들은 문어구에서 제지당했다.웨이터는 차가운 얼굴로 그들한테 얘기했다.“앞에 있는 손님께서 식사를 끝마치지 못했으니 아직 반 시간가량 기다리셔야 합니다.”가게 안은 웨이팅 존을 만들지 않았다. 자리 웨이팅을 하는 사람들은 가게 앞에 서있어 작은 공간에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심유진과 Maria는 기다리는 사람 중에 서서 기다리지도 떠나지도 못했다.Maria는 심유진한테 연신 사과했다.“미안해요, Shen, 일찍 도착하게 될 줄 몰랐어요. 기다리기 싫으면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요.”심유진은 바람막이를 더 꽉 여미면서 옆에 선 체형이 큰 남성 뒤쪽으로 슬그머니 옮겨갔다. 체형이 큰 남자는 차가운 바람을 다 막아줬다. 심유진은 그제야 떨림을 멈추면서 어렵사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요. 먹고 싶어 했잖아요? 이왕 왔으니 기다리죠. 반 시간밖에 안 되는걸요.”“고마워요, Shen!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Maria는 감동에 겨
”자, 손이라도 데워요.”그녀는 뜨거운 물을 심유진에게 건넸다.“알다시피 여기에는 뜨거운 물이 없어요. 일부러 물을 끓여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심유진은 컵을 두 손으로 들었다. 끊임없이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에 심유진의 움츠려있던 어깨는 천천히 펴졌다.심유진은 감동하면서 소리냈다.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이 아니라면 컵을 얼어붙은 얼굴에 대고 싶었다.“Maria가 아니라면 죽었을 거예요.”심유진은 잠긴 목소리로 Maria한테 말했다.“전혀 오바하지 않았어요.”Maria는 큰 눈으로 심유진을 노려봤다.“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아까 물어보니까 앞에 계신 손님이 다 먹고 결산하고 있다네요. 우리도 곧 들어갈 수 있으니 유진 씨도 밖에서 더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네요.”심유진은 이 말에 살아났다.아니나 다를까 오분도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준비되었다고 통지하러 왔다.레스토랑 안은 에어컨이 빵빵했다. 심유진의 얼어붙은 사지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웨이터는 앞에서 자리로 안내했다. 홀 중앙까지 가자 심유진과 Maria는 한창 웃고 있는 Judy 일행을 발견했다.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높았다. 조용한 편도 아닌 레스토랑 안이고 심유진과 Maria가 거리를 두고 서있어도 그들의 얘기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아까 걔 표정 봤어? 하하하! 분이 풀리는 거 있지!”“김욱 씨가 Judy 편에 설 줄 몰랐어요. 솔직히 그 천한 년 편을 들어주고 Judy를 벌할 줄 알았거든요.”“김욱 씨는 늘 공정한 분이잖아요? 역시 제가 숭배하는 남자예요!”“근데 김욱 씨랑 그 천한 년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관계가 없다면 김욱 씨가 왜 갑자기 육 대표님에게 여자 비서를 안배해 주겠어요? 그런데 관계가 있다고 하기에도..., 오늘 일어난 일은 어떻게 설명하죠?”“예전에 잠깐 관계가 있었나 보죠. 김욱 씨도 그랬잖아요? 직장 내 괴롭힘은 용납할 수 없다고. 그 천한 년이 Judy를 괴롭힌 걸 딱 김욱 씨한테 잡힌 거죠. 김욱 씨도 지
심유진은 프로필 사진으로 누군지 알아냈다. 끝없는 밤하늘, 중간에는 금빛이 나는 초승달, 그 옆에는 작지만 밝아 무시할 수 없는 별이 있었다.이것은 별이 지난주에 그린 그림 숙제다. 별이 설명하길 이 그림의 이름은 >다. 심유진이 자신을 별이라고 부르고 자신도 심유진의 이름에 달이 들어간 줄 알았다고 한다. 심유진은 당연히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별인 줄 알았다. 별이의 빠른 속도에 감탄하고 있던 중 대화창을 누르자 허태준의 이름이 떴다.허태준이 그녀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것은 별로 희한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별이의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니..., 그것도 이렇게 의미가 있는 그림을 쓰니 심유진의 마음은 조금 복잡했다.맞은 쪽에 앉은 Maria는 이미 포크와 나이프를 잡았다. 한입 먹고는 연신 감탄했다.“Shen! 이것 좀 먹어봐요! 완전 맛있어요!”심유진은 흠칫하다가 시선을 허태준의 프로필 사진에서 뗐다.“좋죠.”그녀는 웃으면서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었다.아직 완성하지 못한 자료를 생각하며 심유진은 길게 식사하지 않았다.Maria와 같이 떠날 때 그 일행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들 상 위의 음식은 이미 비었지만 끼리끼리 붙어서 각종 포즈를 하면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이번에 심유진은 멈춰 서지 않았다.레스토랑 출구까지 걸어왔을 때 안에서 한 여인의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심유진은 이런 광경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Maria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이 목소리는..., Judy 같은데요?”“네?”심유진은 흥미진진했다.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은 식사를 멈추고 호기심에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모두의 시선이 멈춰 있는 곳에는 Judy와 제복을 입은 여성 웨이터가 있었다.Judy는 여성 웨이터보다 키가 한 뼘 더 컸다. 상대방을 손가락질하면서 욕하는 모습이 괴롭히는 모습 같았다.“돈을 내면서 여기서 식사하는데 당신 눈치나 봐야겠어요?”“고객은 하늘같은 존재란 걸 모르나봐요?
너무나도 눈에 익은 광경이었다. 예전의 심유진은 매일이다시피 이런 경험을 했다. 웨이터가 Judy한테 욕을 먹자 이상한 손님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자신이 생각났다. 그녀는 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Maria를 붙잡고 말했다.“가요.”Maria는 촬영 중이던 핸드폰을 치웠다. 화도 나지만 유감이었다.“네.”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분노에 차서 말했다.“Judy는 진짜 너무 한 것 같아요! 사적으로 이런 사람인 줄 정말 몰랐네요!”심유진은 Judy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Maria한테 이간질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헤어질 때 Maria는 말했다.“육 대표님한테 Judy의 진짜 모습을 알려야겠어요!”**한창 저녁 식사 시간이기에 퀸 애비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의 빈 택시가 없었다.Maria는 주동적으로 심유진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심유진은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결국 심유진은 길을 건너서 지하철을 탔다.겨울밤 찬바람은 심유진의 긴 머리카락이 뒤로 가게 쌩쌩 불었다.심유진은 목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바람을 마주한 채 걸어갔다.코끝은 얼어서 빨갛게 변했고 콧물도 계속 흘렀다. 심유진은 종이로 닦고 또 닦았다.N 시티의 지하철은 몇백 년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국내 지하철보다 많이 낡았고 역 안은 에어컨을 느낄 수 없었다.차에 오르자 얼어붙은 몸은 그제야 조금씩 따뜻해 지는 것 같았다.역을 나서자 심유진은 금세 찬 바람에 둘러싸여 코트 끝자락이 강풍에 휘날렸다.심유진은 코를 훌쩍이면서 아파트로 걸어갔다. 경비를 서던 관리원이 인사했다.“밖이 춥죠?”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관리원은 심유진을 쳐다보다가 친근하게 타일렀다.“내일 기온이 더 떨어진대요. 눈이 내릴 수도 있으니까 두껍게 입고 다녀요! 감기 걸리지 말고!”심유진은 힘을 들여 “네.”하고 대답한 후 감사 인사로 웃어 보였다.“고마워요.”**“엄마!”심유진이 집에 들어서
허태준은 옅은 회색 생활복을 입고 있었다. 코튼 후드의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져 하얗고 긴 팔을 드러냈다.“왜 이렇게 빨리 왔어?”그는 티슈로 물에 젖은 손을 닦으면서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심유진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따뜻하고 편안한 슬리퍼로 갈아신으면서 별이와 함께 허태준한테로 걸어갔다.“밥만 먹는데요, 뭘.”그녀는 어깨에 걸친 가방을 쇼파에 벗어던지고 허태준한테 물었다.“두 사람은요? 밥 먹었어요?”“방금 먹었어.”허태준은 대답했다.“설거지하는 중이야.”심유진은 흠칫했다. 시선은 차가운 물에 적셔져 빨갛게 변한 허태준의 손에 머물렀다. 그리고 조급히 알려줬다.“집에 식기 세척기가 있는데요!”“식기 세척기라 해도 내 손으로 씻은 것보다 깨끗하지 못해.”허태준은 덤덤히 말했지만 그의 말에서 꼼꼼한 성격을 볼 수 있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결벽이 어느 만큼 심각한지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그러면 적어도 뜨거운 물을 쓰지!”허태준은 동그랗게 만 종이를 장거리 슛을 해 쓰레기통에 버렸다.“괜찮아.”그는 까만 눈동자로 평온하게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안 추워.”“손이 이렇게 빨개졌는데 안 춥다구요?”심유진은 화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허태준의 한마디는 심유진을 더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당신 손이 더 빨개.”심유진은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확실히...자기 손이 더 빨간 것 같았다.심유진은 조마조마하여 손을 뒤로 감췄다. 하지만 별이가 한쪽 팔을 잡아당겨 움직일 수가 없었다.“맞아요! 엄마 손은 완전 차가워요!”별이는 일부러 심유진의 말에 반대되게 행동하듯 심유진의 손을 허태준의 손에 가져갔다.“아빠, 빨리 엄마 손을 따뜻하게 해줘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허태준은 늘 몸이 차가웠다. 그랬기에 두 손도 항시 차가웠다. 거기다 아까 찬물에 식기를 씻었기에 손은 더 차가웠다.하지만 그런 손이라도 심유진의 손보다는 따뜻했다.허태준은 두 눈을 작게 뜨면서 위험한 빛을 내뿜었다.심유진은 움찔했다.
허태준의 따뜻한 몸 때문에 심유진의 얼어붙은 손은 조금씩 온도를 되찾기 시작했다.심유진은 시름이 놓였다.“이제 가도 되죠?”그녀는 허태준한테 물었다.허태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그녀의 손을 옷 속에서 빼냈다.“목욕물을 받아놓을 테니 목욕해.”그는 말하면서 별이한테 임무를 안배해 줬다.“엄마한테 판람근을 탄 물을 갖다주고 다 마실 때까지 감독해.”“네!”별이는 임무를 받자마자 총총 뛰어갔다. 심유진이 막아서려야 막아설 틈도 없었다.허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 마시고 욕실로 가.”**허태준은 이미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넣었다. 판람근의 위치도 별이한테 이미 알려주었다.별이는 조심스레 보온병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심유진 곁으로 다가왔다.“엄마, 빨리 마셔요!”별이는 보온병을 심유진의 손에 쥐어주었다. 별이는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심유진의 무릎을 베고 누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허태준의 임무를 엄격히 집행하는 듯했다.판람근의 쓴 향에 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렸다.심유진은 별이한테 장난쳤다.“너무 쓴데, 안 마시면 안 돼?”“안 돼요!”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 심유진의 장난에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다 마셔야 해요!”심유진은 욕실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자 소리를 낮춰 별이와 협상했다.“지금은 아빠가 우리 둘 대화를 듣지 못하니 이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주방에 가서 약을 다 버리고 아빠한테 비밀로 하자. 응?”별이는 심유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서 일어난 후 슬리퍼를 끌면서 욕실로 총총 달아갔다.반쯤 열린 문 사이로 심유진은 별이가 허태준한테 고자질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아빠! 엄마가 또 말을 안 들어요! 약을 안 먹겠대요! 약을 슬그머니 버리겠대요!”심유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아들놈을 괜히 키웠어.일 분 후 허태준은 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허태준의 차가운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