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를 예매했기에 영화관 안에서 그들은 또 마주쳤다. Allen과 Freddy는 심유진네 앞줄에 앉았는데 좀 전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관객들이 신경쓰여서 그런지 그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심유진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영화관의 조명이 꺼지고 Allen과 Freddy의 모습도 이제 보이지 않았다. 심유진은 조금 지루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별이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영화는 이미 끝나있었다. 앞자리의 관객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고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별이는 아직도 다 못 먹은 팝콘통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심유진을 원망했다. “엄마, 자면 어떡해.” 심유진은 하품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에 아직도 졸음이 가득했다. “미안미안.” 심유진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허태준이 보이지 않자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아빠는?” “화장실 갔어.” 별이가 말했다.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버려서...” 별이는 조용히 기다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관에 사람이 적어지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데다가 아빠도 돌아오지 않으니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심유진은 가방을 챙기고 별이의 손을 잡았다. “아빠 찾으러 가자.” 입구에 나가자마자 허태준을 마주쳤다. “깼어?” 심유진은 조금 창피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별이가 허태준의 손을 잡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빠 왜 이제와.” 허태준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심유진에게 물었다. “집에 갈까? 아니면 좀 더 놀래?”심유진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9시가 되고 있었다. 집에 가서 씻고 준비하면 10시가 될 것 같았다. 별이는 내일 학교에 나가야 하고 자신도 출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일찍 자야 했다. 별이가 아쉬워했지만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집에 가자.”허태준은 별이를 재운 다음 약을 들고 심유진의 방으로 들어왔다. 심유진은
허태준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안돼.”심유진은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침대에 앉았다. 허태준은 능숙한 손길로 심유진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심유진은 원래 피부가 하얬는데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기 때문에 피부에 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허태준은 눈빛이 더 깊어졌다. 차가웠던 손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허태준의 마사지는 강도가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았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점심에 김욱이 해 준 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혹시 마사지하는 법에 대해서 배운 적 있어요?”심유진이 궁금해하면서 물었다.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 물어본 문제였다.“배운 적은 없어.”허태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근데 원래 아파 본 사람이 이런 것도 잘해.”심유진이 멈칫했다. 허태준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이 겪었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태준 씨 신분이면 어릴 때부터 주변에 보디가드들이 쭉 깔렸을 거 아니에요. 근데 왜 다쳤어요?”“우리 집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허태준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삼촌 두 분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날 없애고 싶어 했어.”허태준은 허태서보다 몇 년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서열 2위였다. 원래 둘째 삼촌은 자신의 아들이 장손이 되어서 당당하게 YT 그룹을 물려받을 줄 알았는데 어르신은 계속 물러서지 않으셨고 은근히 첫째네 집안을 더 아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었다. 그래서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은 연합하여 여러 번 허태준의 어머니가 유산하도록 계획을 세웠으나 다행히 어머니가 매번 위기를 넘겼기 때문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허태준이 태어난 후에는 허태준을 없애기 위해서 또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결국 어르신이 그 꼴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허태준을 자신의 옆에 붙여뒀기 때문에 그들도 허태준을 죽이려는 계획을 취소했다.어르신은 허태준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끔 무술, 태권도, 권투 등 여러 재능을 배우게 했다
키보드를 오래 친 탓인지 굳은살이 박인 손이 심유진의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찌릿한 전류가 둘 사이에 흘렀다. 심유진은 얼굴이 빨개져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허태준은 심유진이 발을 빼려는 줄 알고 얼른 발목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 약 침대에 다 묻겠다.” 심유진은 몸이 굳어서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허태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심유진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 화제를 돌렸다. “첫 출근인데 적응하기 힘들지는 않아?””괜찮아요.”심유진이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허리가 좀 아파요.”예전에 호텔에서 일을 할 때는 온 하루 앉아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군다나 다른 직원들처럼 방석 같은 것도 준비해 가지 않아서 오늘 하루 종일 앉아 있으려니 매우 힘들었다.“안마해줄까?”허태준이 말을 하면서 손에 묻은 약을 닦았다. “아니요!”심유진이 다급히 손을 저었다.“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요.”심유진은 허리가 민감했다. 허태준이 발목을 터치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데 허리를 안마해 준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다행히 허태준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럼 일찍 자.”허태준이 아쉬워하면서 말했다.“내일도 허리 아프면 말하고.”“알겠어요.”심유진은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무리 아파도 절대 얘기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다음날이 밝았다. 아침의 풍경은 여전히 어제와 똑같았다. 하은설이 없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외출하기 전 심유진은 허태준과 별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패딩 대신에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안에는 보온 기능이라고는 아예 없는 얇은 흰색셔츠와 정장 바지를 매치했다. 이런 착장을 또 신발로 망칠 수는 없었다. 발목의 붓기도 이제 다 내렸기 때문에 심유진은 과감하게 하이힐을 골랐다.허태준과 별이가 불만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심유진은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며 가방을 들고 신속하게 집에
별이는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그러니까 패딩 입으라고 했지! 감기 걸리면 어떡해!”별이는 하은설이 잔소리를 하는 모양을 똑같이 따라 했다. 심유진은 대꾸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차에 탔다. 차 안은 히터를 틀진 않았지만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허태준은 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차에 오르고 또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창문을 살짝 열어놨다. 겨울의 찬바람이 다 심유진을 향했다.“에취!”심유진은 연신 재채기를 했다. 허태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문 좀 닫아 줄래요?”심유진이 코를 훌쩍이면서 말했다. 찬 바람을 하도 맞았더니 인내심이 바닥 나서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허태준은 당당하게 거절했다.“통풍 좀 해야지.”심유진은 화가 났지만 구석에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좌석 옆에는 바로 담요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담요를 쓰면 춥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심유진은 결국 그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심유진은 인사도 하지 않고 옷을 여미고는 가장 빠른 속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자 굳었던 사지에 서서히 감각이 돌아왔다.차림이 달라지니 직원들이 심유진을 보는 눈빛도 어제와 달라졌다. 남자 직원들은 놀라워했고 여자 직원들은 놀라워하는 동시에 질투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육윤엽과 김욱은 회사에 가장 늦게 출근했다. 심유진의 곁을 지날 때 육윤엽은 잠시 멈칫했다. 시선이 심유진의 얇은 옷차림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인상을 찌푸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2분 후 심유진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날이 이렇게 추운데 왜 패딩도 안 입었어.”심유진은 안 춥다고 대충 대꾸해 주고는 휴대폰을 껐다. 오전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커피 한 잔 타서 마시려는데 휴게실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들렸다.“그 신입 오늘은 좀 꾸몄더라고.”“어제 너무 촌스럽게 입고 와서 김욱 씨가 쪽팔리다고 한 거 아니야? 근데 진짜 왜 저런 여
심유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Judy를 중심으로 여자 직원들 몇 명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었다. 심유진이 웃으면서 물었다.“잠시 비켜 주실 수 있어요?”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여직원들은 자리를 피해 주면서 심유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Judy는 자세히 심유진의 표정을 살폈다. 심유진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자 Judy는 심유진이 방금의 대화를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정 했다.“커피가 아직 안 돼서 저희도 기다리고 있어요.” Judy는 심유진과 십 년 지기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친한 척을 했다.“아, 그럼 이따가 올게요.”심유진이 가려고 하자 Judy가 막아섰다.“유진 씨가 마실 거예요 아니면 김욱 씨가 마실 거예요?”심유진의 손에 들린 컵을 바라보는 Judy의 눈빛에 질투가 가득했다. 심유진은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 것 같았다. 이 컵은 어제 김욱이 쓰라고 준 것이었는데 김욱의 책상 위에 놓인 것과 똑같은 컵이어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특별히 해명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말해도 여직원들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제가 마실 거예요.”Judy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말했다.“그럼 컵은 여기 두고 가세요. 제가 커피 가져다 드릴게요.”심유진은 가식적인 그 웃음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Judy가 가져다준다고 해도 심 유진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안에 뭘 넣을지 모르니 말이다.“고마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번에는 제 차례까지 오지 않을 거 같은 데 조금 이따 올게요.”회사의 커피 머신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 작동하면 다섯 컵 정도 되는 커피가 나왔다. 근데 지금 직원이 일곱 명이나 있었다. 심유진은 이 핑계를 되면 자리를 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Judy는 심유진을 놓아주지 않았다.“괜찮아요. 매 사람마다 조금씩 적게 마시면 한 컵 정도는 더 나오죠.”Judy는 그렇게 말하면서 심유진의 컵
“실수로 컵을 깼어.” 심유진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사실을 숨겼다. “다른 컵 있어? 커피 마시고 싶은데.”“컵은 없고 몇 번 안 쓴 텀블러는 있어. 깨끗하게 씻어 뒀는데 괜찮으면 이거라도써. 내일 새 걸로 사다 줄게.”김욱이 말했다.“그래.’심유진은 텀블러를 건네받고 다시 휴게실로 갔다. 파편들은 이미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여직원들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심유진은 커피를 받아서 휴게실을 나섰다. 입구에서 심유진은 또 Judy를 마주쳤다. Judy는 손에 일회용 컵을 들고 있었는데 심유진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지금 유진 씨 커피 타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와 계셨네요.”심유진이 웃으면 말했다.“고마워요.” Judy는 일회용 컵을 버리고는 심유진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이 텀블러도 김욱 씨랑 같은 거네요.”Judy가 신경 쓰지 않는 척 은근히 또 떠봤다. 심유진은 사실대로 말했다.“김욱 씨가 빌려 준거예요. 컵이 깨졌는데 마침 안 쓰는 텀블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심유진은 일부러 Judy 앞에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표정이 굳어진 Judy를 만족스럽게 쳐다봤다.“아 맞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Judy가 화제를 돌렸다.“근처에 새로 생긴 식당이 있어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유진 씨도 갈래요?”심유진은 같이 가기로 한 사람들 중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누가 됐던 가기 싫었다.“죄송해요. 시간이 없어서.”심유진이 난감해하며 말했다.“정리해야 될 자료들이 있거든요.”Judy는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그럼 다음에 시간 있을 때 같이 가요.”“그래요.”심유진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다음에는 무슨 핑계를 댈지 고민했다. 점심시간에 심유진은 Maria와 같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발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을 대신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이유가 없었다. 심유진은 사면팔방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밥이 입으로 넘어 가는지 코로 넘어 가는지 알 수 없을
Maria는 손에 남은 나머지 반 조각 쿠키마저 입에 넣어 고개를 돌려 그의 질문을 피했다.심유진은 김욱을 대할 때 Maria와 같은 위축감이 없었다. 그래서 태연하게 대답했다.“식당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줄을 서기 귀찮아서 Maria랑 같이 올라왔어요.”김욱의 눈빛은 그녀의 얼굴에 이 초 동안 멈췄다. 그리고 Maria한테 말했다.“내일부터 점심 도시락 사 인분 주문하도록 하세요. 두 사람도 올라와서 드시고요.”Maria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알겠습니다.”그녀의 입안에는 여전히 씹다 남은 쿠키가 있었다. 그래서 얘기를 할 때 부스러기가 기도에 들어가 Maria는 끊임없이 기침하였다.김욱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리고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심유진한테 건넸다.“두 사람의 점심시간은 2시간 연장 하도록 하세요.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서 식사를 하세요. 제가 쏠게요.”심유진은 그의 카드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들의 점심시간을 늘리는 데에 대해 거절하지 않았다.**블루항공 빌딩은 N 시티 제일 번화한 곳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근처에는 유명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심유진은 Maria가 고른 식당 중 한곳을 골랐다. 두 사람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Shen.”이 시각, 김욱과 떨어져 있었기에 Maria는 자신의 의문을 제기 했다.“왜 김욱 씨한테 사실대로 얘기 하지 않았나요? 김욱 씨는 손을 쓸 텐데, 아닌가요?”“소용 없어요.”심유진은 메뉴판을 펼치던 손을 멈추고 어쩔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김욱 씨가 나서면 다들 앞에서 토론 하지 않을 뿐 뒤에서는 똑같이 얘기할 겁니다. 이것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어요.”“그건 그래요.” Maria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름을 놓고 웃었다.“이제 더는 아래에서 구경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네요. 그 사람들의 생각도 당신한테 영향을 미치지는 못 할 거예요.”심유진은 그녀한테 알리지 못한 사실이 있다. 총재 사무실이야말로 유언비어의 중심이자 재난 구역이다.“그래요.”심유진은 대답
박스는 크지 않았다. 서너 개 신발 박스를 쌓아 놓은 정도의 크기였다. 투명 테이프로 입구를 봉했지만 택배 겉면에 붙어있는 택배 운송장은 보이지 않았다. 간결한 포스트잇 위에는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속한 부서가 적혀 있었다. 포스트잇에 적인 글씨체는 낯선 글씨체여서 누구 것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문제를 더 고민 하지 않고 바로 테이프를 뜯었다.하지만 이내 그녀는 이상함을 눈치 챘다.이 테이프는 누군가가 뜯고 다시 부친 것 같았다. 그녀가 뜯었을 때 저항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것이 택배를 부친 사람의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이미 뜯었는지 모른다. 뜯은 테이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녀는 박스를 열어 봤다. 박스 안에는 자잘한 물건들이 있었다. 의자에 묶을 수 있는 쿠션도 있었고 낮잠 자기 좋은 목베개와 담요도 있었으며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간식들도 있었다. 그리고 큰 봉투에 담긴 판람근도 있었다. 그 판람근을 보자마자 심유진은 이 물건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챘다. 그녀는 서둘러 서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켜자 수도 없이 많은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떴다. 전화는 허태준한테서 온 것이었고 문자도 허태준한테서 온 것이었다. 시간은 1시간 전으로 나타났다. 그녀와 Maria가 밖에서 밥을 먹을 때다. 허태준은 자신이 아래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한테 줄 물건이 있으니 내려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답장이 없었던 탓인지 그는 마지막으로 문자 하나를 보냈다. 물건을 안내데스크에 놓았으니 이따가 누군가가 그녀한테 배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더러 물건을 받은 후 확인 문자를 보내 달라고 했다.심유진은 문자로 대답했다.“물건 받았어요.”심유진은 잠깐 생각하다가 또 물었다. “박스 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뜯었었나요?”허태준은 운전 중이었는지 반 시간 후 답장 했다.“아니, 테이프를 붙인 후 손을 대지 않았어.”“왜? 누가 박스를 열었어?”잃은 물건이 있는지 걱정이 되었는지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