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는 식당에서 밥을 포장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마침 다른 직원들을 마주쳤다. 그중에서 Maria와 비교적 친한 한 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다.“Maria, 오늘 새로 온 그 비서 말인데 혹시 뒷배경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Maria의 선배, 즉 육윤엽의 전 비서는 육윤엽의 사생활을 실수로 폭로해버려서 회사에서 사직당하고 말았다. 육윤엽이 손을 써놓았기에 미국에서는 아예 취직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Maria는 육윤엽과 김욱의 사생활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저도 몰라요.”Maria가 말했다. 그때 한 직원이 Maria의 손에 들린 음식에 주의를 돌렸다.“누구한테 가져다주는 거야?”평소에 육윤엽과 김욱이 자주 먹는 식당의 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도 자연스럽게 새로 온 비서의 점심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Maria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다른 직원들은 얼른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한 마디씩 했다.“그 직원이 가져다 달라고 한 거야? 아니면 김욱 씨가 부탁한 거야?”“에이 설마, Maria는 회장님 비서지 그 직원 비서가 아닌데 뭔 이런 일까지 하겠어.”“뭔가 보통 사람이 아닐 것 같아. 회사에 들어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김욱 씨가 사람을 데리고 온 걸 본 적이 없어.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가 봐”“나이도 적은 것 같지 않던데 진짜 촌스럽게 입었더라. 대체 김욱 씨는 그 여자 어디가 좋은 거지?”“누가 알아 보통 남자들이랑 취향이 다른가 보지.”Maria는 그들의 수준 떨어지는 대화를 한참 참고 있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에 경고했다.“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앞으로 입 조심하세요.”다들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모든 일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심유진은 다른 일을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계속 자리에서 김욱이 줬던 파일만 훑어봤다. 김욱과 육윤엽은 여러 번 심유진의
먼저 심유진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그 금발의 여성직원 같은 경우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심유진의 다른 팔을 감싸고는 웃으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Judy예요.”향수냄새가 코를 찔러서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했다. Judy는 혹시 침이 자신한테 튀기라도 할까 얼른 몸을 뒤로 피했다. “쯧.” Judy는 휴지를 꺼내 방금 심유진을 만졌던 손과 자신의 가방을 포함해서 몸 곳곳을 닦았다. 심유진과 Maria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눈빛이 느껴지자 그녀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결벽증이 좀 있어서.” 심유진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서 결벽증이 가장 심한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괜찮아요.” 심유진은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얘기했다. Judy는 심유진과 아무런 스킨십도 없이 나란히 걷기만 했다. “혹시 김욱 씨랑 친하세요?” Judy가 넌지시 물어봤다. Maria가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유진은 조금 난감했다. 김욱과 충분히 거리를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요. 오늘 처음 뵙는 분이세요.” 심유진은 모르쇠를 댔다. Maria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Judy는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계속 질문을 했다. “김욱 씨가 직접 데리고 오신 거예요?” “네.” “김욱 씨가 한 번도 여자 비서를 고용한 적이 없었거든요. 유진 씨가 첫 번째예요.” 아무리 둔감한 심유진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저 말에 섞인 적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전 육윤엽 씨 비서예요. 김욱 씨 비서가 아니라.” 심유진이 틀린 곳을 시정했다. “그리고 전 김욱 씨가 제 실력을 보고 절 입사시켰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심유진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당당하게 얘기했다. 다행히 Judy는 더 이상 아
별이는 Freddy와 같은 유치원이었는데 반이 달랐다. 그러니 평소에 유치원에서는 만날 일이 적었고 가끔 등교하거나 하교할 때만 만나서 몇 마디를 나누는 게 다였다. 그리고 지난번 그 일이 생긴 후에는 이런 간단한 교류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심유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보복성 행동은 유치하고 옳지 않은 행동이지만 별이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한 행동도 아니었다.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서 기분이 좋았어?”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이제 Freddy는 다시 나한테 아빠가 없다는 말을 못 할 거야.”심유진은 마음이 아팠다.“그래.”심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허태준은 이 대화에 끼지 못 했다. 차 안의 분위기 때문에 허태준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별이가 자세를 고치고 앉아서는 안전벨트를 했다.“아빠, 이제 집에 가는 거야?”허태준이 시동을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별이는 실망한 듯 보였다.“왜 그래?”시무룩한 별이의 표정을 보며 허태준이 물었다.“영화 보고 싶어.”별이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허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빛으로 심유진의 의견을 물었다.“그러자.”심유진은 거절하지 않았다.“아싸!”별이가 신이 나서 몸을 들썩거렸다. 평일 밤에는 영화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별이는 요즘 가장 핫한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다른 친구들의 이미 다 봤기에 친구들이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별이는 대화에 끼지 못하고 옆에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유진은 그 말을 듣고 미안해하며 별이에게 입을 맞췄다. 분명 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겠다 결심했는데 결국 별이에게는 항상 사랑이 부족했다. 하지만 별이는 전혀 속상한 기색 하나 없이 내일부터 자신도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기만 했다.그때 허태준이 영화표를 사서 돌아왔다. 손에는 콜라 세 병과 팝콘까지 들려 있었다. 팝콘
Allen은 허태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잠시 멈칫하고 나서 Allen은 심유진 쪽으로 다가왔다. Freddy는 지난번 그 일 때문인지 계속 쭈뼛쭈뼛 거리며 Allen뒤에 숨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영화 보러 왔어요?”심유진은 자신이 아직도 지난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로 보이고 싶지가 않아서 먼저 말을 걸었다. “Freddy네 반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 영화내용이 주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밤은 피아노 수업을 취소했어요.” Allen은 심유진과 대화를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허태준을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분은?”심유진은 이 질문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직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심유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별이가 먼저 말했다. “우리 아빠에요.”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별이에게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허태준이 별이를 꽉 끌어안았다. 비록 유치원에 Freddy를 데리러 갔을 때 별이 아빠에 대한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심유진과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아직 애인이 있는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이의 애칭을 부르고 별이도 따르는 걸 보면 가짜인 것 같지는 않았다. Allen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금방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심유진에게 물었다. “혹시 전남편?” 심유진에게 아들이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이미 깨진 인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허태준이 그저 전남편일 뿐이라면... Allen은 경각심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번에도 심유진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허태준이 심유진의 어깨를 팔로 감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주도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심유진을 품에 안은 허태준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남편 아니고 그냥 남편입니다.” Allen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네?” 그는 얼른 심유진에게 확인을 하고 싶었다. “사실이에요?”심유진 역
같은 영화를 예매했기에 영화관 안에서 그들은 또 마주쳤다. Allen과 Freddy는 심유진네 앞줄에 앉았는데 좀 전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관객들이 신경쓰여서 그런지 그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심유진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영화관의 조명이 꺼지고 Allen과 Freddy의 모습도 이제 보이지 않았다. 심유진은 조금 지루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별이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영화는 이미 끝나있었다. 앞자리의 관객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고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별이는 아직도 다 못 먹은 팝콘통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심유진을 원망했다. “엄마, 자면 어떡해.” 심유진은 하품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에 아직도 졸음이 가득했다. “미안미안.” 심유진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허태준이 보이지 않자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아빠는?” “화장실 갔어.” 별이가 말했다.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버려서...” 별이는 조용히 기다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관에 사람이 적어지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데다가 아빠도 돌아오지 않으니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심유진은 가방을 챙기고 별이의 손을 잡았다. “아빠 찾으러 가자.” 입구에 나가자마자 허태준을 마주쳤다. “깼어?” 심유진은 조금 창피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별이가 허태준의 손을 잡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빠 왜 이제와.” 허태준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심유진에게 물었다. “집에 갈까? 아니면 좀 더 놀래?”심유진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9시가 되고 있었다. 집에 가서 씻고 준비하면 10시가 될 것 같았다. 별이는 내일 학교에 나가야 하고 자신도 출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일찍 자야 했다. 별이가 아쉬워했지만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집에 가자.”허태준은 별이를 재운 다음 약을 들고 심유진의 방으로 들어왔다. 심유진은
허태준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안돼.”심유진은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침대에 앉았다. 허태준은 능숙한 손길로 심유진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심유진은 원래 피부가 하얬는데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기 때문에 피부에 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허태준은 눈빛이 더 깊어졌다. 차가웠던 손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허태준의 마사지는 강도가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았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점심에 김욱이 해 준 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혹시 마사지하는 법에 대해서 배운 적 있어요?”심유진이 궁금해하면서 물었다.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 물어본 문제였다.“배운 적은 없어.”허태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근데 원래 아파 본 사람이 이런 것도 잘해.”심유진이 멈칫했다. 허태준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이 겪었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태준 씨 신분이면 어릴 때부터 주변에 보디가드들이 쭉 깔렸을 거 아니에요. 근데 왜 다쳤어요?”“우리 집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허태준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삼촌 두 분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날 없애고 싶어 했어.”허태준은 허태서보다 몇 년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서열 2위였다. 원래 둘째 삼촌은 자신의 아들이 장손이 되어서 당당하게 YT 그룹을 물려받을 줄 알았는데 어르신은 계속 물러서지 않으셨고 은근히 첫째네 집안을 더 아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었다. 그래서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은 연합하여 여러 번 허태준의 어머니가 유산하도록 계획을 세웠으나 다행히 어머니가 매번 위기를 넘겼기 때문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허태준이 태어난 후에는 허태준을 없애기 위해서 또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결국 어르신이 그 꼴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허태준을 자신의 옆에 붙여뒀기 때문에 그들도 허태준을 죽이려는 계획을 취소했다.어르신은 허태준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끔 무술, 태권도, 권투 등 여러 재능을 배우게 했다
키보드를 오래 친 탓인지 굳은살이 박인 손이 심유진의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찌릿한 전류가 둘 사이에 흘렀다. 심유진은 얼굴이 빨개져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허태준은 심유진이 발을 빼려는 줄 알고 얼른 발목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 약 침대에 다 묻겠다.” 심유진은 몸이 굳어서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허태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심유진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 화제를 돌렸다. “첫 출근인데 적응하기 힘들지는 않아?””괜찮아요.”심유진이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허리가 좀 아파요.”예전에 호텔에서 일을 할 때는 온 하루 앉아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군다나 다른 직원들처럼 방석 같은 것도 준비해 가지 않아서 오늘 하루 종일 앉아 있으려니 매우 힘들었다.“안마해줄까?”허태준이 말을 하면서 손에 묻은 약을 닦았다. “아니요!”심유진이 다급히 손을 저었다.“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요.”심유진은 허리가 민감했다. 허태준이 발목을 터치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데 허리를 안마해 준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다행히 허태준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럼 일찍 자.”허태준이 아쉬워하면서 말했다.“내일도 허리 아프면 말하고.”“알겠어요.”심유진은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무리 아파도 절대 얘기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다음날이 밝았다. 아침의 풍경은 여전히 어제와 똑같았다. 하은설이 없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외출하기 전 심유진은 허태준과 별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패딩 대신에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안에는 보온 기능이라고는 아예 없는 얇은 흰색셔츠와 정장 바지를 매치했다. 이런 착장을 또 신발로 망칠 수는 없었다. 발목의 붓기도 이제 다 내렸기 때문에 심유진은 과감하게 하이힐을 골랐다.허태준과 별이가 불만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심유진은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며 가방을 들고 신속하게 집에
별이는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그러니까 패딩 입으라고 했지! 감기 걸리면 어떡해!”별이는 하은설이 잔소리를 하는 모양을 똑같이 따라 했다. 심유진은 대꾸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차에 탔다. 차 안은 히터를 틀진 않았지만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허태준은 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차에 오르고 또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창문을 살짝 열어놨다. 겨울의 찬바람이 다 심유진을 향했다.“에취!”심유진은 연신 재채기를 했다. 허태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문 좀 닫아 줄래요?”심유진이 코를 훌쩍이면서 말했다. 찬 바람을 하도 맞았더니 인내심이 바닥 나서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허태준은 당당하게 거절했다.“통풍 좀 해야지.”심유진은 화가 났지만 구석에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좌석 옆에는 바로 담요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담요를 쓰면 춥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심유진은 결국 그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심유진은 인사도 하지 않고 옷을 여미고는 가장 빠른 속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자 굳었던 사지에 서서히 감각이 돌아왔다.차림이 달라지니 직원들이 심유진을 보는 눈빛도 어제와 달라졌다. 남자 직원들은 놀라워했고 여자 직원들은 놀라워하는 동시에 질투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육윤엽과 김욱은 회사에 가장 늦게 출근했다. 심유진의 곁을 지날 때 육윤엽은 잠시 멈칫했다. 시선이 심유진의 얇은 옷차림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인상을 찌푸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2분 후 심유진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날이 이렇게 추운데 왜 패딩도 안 입었어.”심유진은 안 춥다고 대충 대꾸해 주고는 휴대폰을 껐다. 오전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커피 한 잔 타서 마시려는데 휴게실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들렸다.“그 신입 오늘은 좀 꾸몄더라고.”“어제 너무 촌스럽게 입고 와서 김욱 씨가 쪽팔리다고 한 거 아니야? 근데 진짜 왜 저런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