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말이 아니라 정말 부지배인님은 총지배인님이랑 비교가 안 돼요.”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한마디 해석도 없이 잠적한 거 봐요.””진짜 실망이에요.” 허태준이 킹 호텔을 건드린 건 아마 유경원 때문일 것이다.유경원이 사라진 것도 허태준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유경원을 위해서 해석해 줄 생각이 없었다.“부 지배인님 빼고 호텔 사무는 누가 관리 하고 있어요?”그녀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매니저가 몇 명 관리인들의 이름을 댔다.“그 사람들한테 일단 연락해 봐요. 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면 본사도 이미 알아차렸을 테니 곧 방법이 생길 거예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요.”“알겠습니다.”매니저가 몇 분 뒤에 다시 문자를 보냈다.“차장님이 이미 본사에 연락했대요.”차장은 채팅방에도 등장하여 위로의 말을 건네며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심유진이 기사 댓글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매니저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그래서 지배인님은 대체 언제 돌아오시는 거예요? 저희 부서는 지배인님이 돌아오시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심유진은 자신이 이렇게 환영받을 줄은 몰랐다. 매니저의 말투를 보아하니 유경원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좋은 지배인이었는지를 다들 다시 한번 느낀 것만 같았다.“근데 부 지배인이 그렇게 일을 못 하던가요?”심유진은 뒤에서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었다. 심유진이 봤을 때 유경원은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무리 본사에서 파견한 직원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래 머무르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예전에는 좋았죠. 근데 지배인님이 회사를 나가고 나서부터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요.”“전처럼 다정하지도 않고 조금만 실수해도 욕부터 했다니까요.”“지배인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 많아요. 사직당한 사람도 있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해서 자기 발로 나간 사람도 있고요.”“빚만
별이와 하은설은 공원에서 실컷 놀고 둘이서 손을 잡고는 행복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심유진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따뜻한 커피와 우유를 건넸다. 근데 별이의 등은 이미 땀에 젖어있었다.“엄마! 아주 재밌어!”별이는 종달새처럼 재잘재잘 공원 내부 곳곳을 다 소개했다. 심유진은 열심히 들어 주면서 리액션해줬다. 별이는 기분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어제의 속상한 감정은 이미 다 잊은 것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은 식당은 심유진이 예약한 것이었다.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이었는데 이건 별이가 좋아하는 메뉴였고 심유진은 자주 사주지 않는 메뉴들이었다. 하은설이 심유진에게 농담을 던졌다. “혹시 대표님한테 아들의 사랑을 뺏기기라도 할까 봐 위기의식이 느껴진 거야?”심유진이 하은설을 째려보면서 말했다. “조용히 해.”하은설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별이의 손을 잡았다.“얼른 도망가자. 너네 엄마 화나서 이모 때릴지도 몰라.”별이는 뛰면서 심유진의 눈치를 살폈다. 심유진은 얼른 웃음을 지었다.“이모가 거짓말하는 거야. 엄마가 왜 사람을 때리겠어.”심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보탰다.“근데 아빠는 잘 때릴걸.”하은설은 너무 웃겨서 넘어질 뻔했다.심유진은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감자튀김만 몇 개 집어 먹고는 말았다. 심유진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있었는데 분명히 문자 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몇 분마다 한 번씩 휴대폰을 확인했다. 허태준은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별이와 통화를 한 지 5시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별이의 말에 따르면 그때 허태준은 곧 비행기에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5시간이면 경주에서 어디를 가든 국내에서는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혹시 해외로 출장을 가는 걸까?CY그룹은 굉장히 큰 과학기술 집단이니 여러 나라들과도 합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심유진이 긴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휴대폰을 보지 않기 위해 심유진은 아예 휴대폰을 가방 안에
심유진과 별이 모두 어이없다는 듯 하은설을 쳐다봤다. “흥!” 하은설은 가방을 들고일어나면서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 올게.” 하은설이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데 검은 머리에 황색 피부를 가진 아시아인 한 명이 손을 씻고 있었다. 미국에서 오래 지내면서 하은설은 아시아인만 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기도 다 지나버렸기에 아시아인을 만나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성은 유달리 하은설의 눈길을 끌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 정갈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하고 오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심지어 구두까지 반짝반짝 닦은 상태였다. 하은설은 호텔에서 일하면서 많은 vip손님들을 모셨었다. 이 남성의 복장은 딱 봐도 원단이나 설계가 최상급이었다. 절대 보통인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이 가게에 있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남성은 손을 깨끗하게 씻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하은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기 전에 하은설이 얼른 시선을 피했다.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하은설은 침착한 척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도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몸의 체온을 낮춰줄 수가 없었다. 남성은 휴지로 손을 닦고 나서도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은설은 얼른 손을 씻고는 물기를 툭툭 털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근데 그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 하은설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달아올랐다. 그 사이 남성은 어느새 하은설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하은설은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짙은 눈썹, 높은 코, 길게 째진 눈...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왠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왜 아무 말도 없어요?”남성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공주들은 말을 못 하나? 아까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하은설은 더 이상 이 상황을 버틸 수가
“미친놈이라고?”심유진이 저도 모르게 별이부터 감싸면서 주변을 경계했다.“어디?”하은설도 주변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지만 아까 봤던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이상하네.”하은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까 낮은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정도로 말한 건 아니다. 그러니 그 남자의 좌석은 자신과 매우 가까울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시야 범위 내에 있어야 정상이었다.“아직 안 돌아왔나 보다.”하은설은 이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심유진은 그 말에 불안함이 확 밀려왔다. 요즘 들어 총격 사건이 자주 일어나서 계속 경계심을 낮추지 않던 참이었다.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발생할까 봐 심유진이 별이를 재촉했다.“빨리 먹어. 집에 일찍 가자.”하은설도 불안해서 계속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계산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그 미친놈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니 심유진과 하은설 모두 더 놀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하은설은 집으로 돌아가서 업무를 마무리했고 심유진은 계속 블루 항공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봤다. 별이도 혼자서 잘 놀았다. 이렇게 평온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기 전에 심유진은 드디어 허태준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바빠서 이제야 문자를 확인했어요.” 허태준은 답장이 늦은 원인부터 해석하고는 질문에 대답했다. “킹 호텔 일은 제가 힘을 쓴 게 맞아요. 하지만 소방 문제는 확실히 있었어요. 임시 폐업 후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은 유관부문에서 내린 결정이에요.”그리고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기사를 하나 보냈다. 킹 호텔의 압류 수색에 관한 기사였는데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자세 했고 증거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문제가 생긴 곳들은 심유진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모두 합격이었었다. 심유진은 그제야 매니저가 왜 유경원을 그렇게 원망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유진은 자책했다. 만약에 자신이 유경원의 흑심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채고 그를 사직시켰더라면 일이 이렇게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유경원
“이미 아빠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심유진은 못 알아들은 척했다. 하지만 허태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무슨 뜻으로 얘기하는 건지 알잖아요.” 심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이가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는지 알죠.” 허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 “우리 사이의 문제로 아이까지 영향받아서는 안 돼요. 아이는 완전한 가정을 얻을 권리가 있으니까.” 사실 심유진도 이런 도리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럼 그동안 곁에 있어주지 못한 건 어떻게 해석할 거예요? 과거는 또 어떡하고요? 그리고 당신 딸은요? 별이도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그 아이도 우리 별이를 안 좋아해요. 둘 사이의 관계는 어쩔 거예요.” 질문을 던질수록 허태준과 별이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허태준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사실 해결방법은 있어요.” “뭔데요?””결혼하자.” “야! 야!” 하은설이 심유진의 눈앞에서 손을 휘휘 저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떡해. 엄마가 정신을 잃었나 봐.” 하은설이 오버하면서 별이를 안고 장난을 쳤다. 심유진이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별이도 봤기에 별이는 다급히 심유진을 흔들며 말했다. “엄마! 엄마!” 심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둘 다 왜 이래?”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하은설은 심유진이 보고 있던 자료들을 힐끗 들여다봤다. “뭘 보고 있길래 한참 동안 불러도 대답이 없어.” “아무것도 아니야.” 심유진이 얼른 파일을 치우고는 대충 핑계를 댔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생각 좀 하느라.” 심유진이 별이를 안으면서 말을 돌렸다. “배고프다. 저녁은 뭐 먹을래?” 저녁은 배달을 시켰다. 심유진은 멍하니 가만있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쓰레기를 치우다가 소스를 온몸에 흘렸다. 하은설은 심유진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빼앗고는 그녀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들어가서 자. 내일 예쁘게 하고 연회에 참
일요일의 연회는 6시에 시작이었다. 김욱은 점심때에 심유진을 데리러 가서 준비를 시작했다. 지점은 육윤엽의 별장이었는데 미국의 재벌들은 다 모였다는 구역이었다.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았다면 심유진은 평생 발을 디뎌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심유진은 인터넷이나 영화에서만 이 별장들을 봤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곳에 도착했을때 심유진은 자신의 견식이 얼마나 얕은지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부자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호화로웠다. 정원은 어마어마하게 컸고 여러 가지 모양의 화려한 수영장도 있었는데 감탄을 자아내는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육윤엽은 한국 사람답게 별장의 여기저기에 한국인의 정서를 나타내는 한옥 설계가 깃들어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장면들이 펼쳐져서 과거로 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장은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은 거실이었고 2층에는 육윤엽 침실과 서재가 있었다. 김욱이 심유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 고용인들은 다 소식을 들었는데 환한 미소로 심유진을 맞이해 줬다. 심유진은 회사에서나 이런 대접을 받아봤지 집에서 이런 환대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이며 예의 있게 같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스타일리스트가 2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총관리인으로 보이는 중년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면서 김욱에게 말했다. “회장님은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계셔서 조금 있다 오실 겁니다.” “네, 돌아오시면 알려주세요.” 심유진은 김욱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가구들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서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계단도 나무로 만들었기에 올라갈 때마다 기분 좋은 발자국 소리가 났다. 방이 적지 않았지만 이곳은 육윤엽이 혼자 쓰고 있었다. 육윤엽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김욱이 찾아와도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작은 건물에 머무를 뿐이었다. “삼촌이 너랑 별이를 위해서 특별히 옆방을 다시 리모
그리고 이건 사영은 때문에 생긴 관념이기도 했다. 그러니 육윤엽을 만나고 그가 자신에게 해준 모든 것들이 심유진은 고맙기만 했다. “됐어, 눈물부터 닦아.” 김욱이 휴지를 건네면서 말했다. “일단 옆방으로 가자. 좀 꾸며야지.” 별이의 옆방은 심유진의 방이었다. 역시나 별장의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현대식으로 꾸며진 방이었다. 방안에는 과하게 꾸민 젊은 여자들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김욱이 심유진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데려왔으니까 이제 시작하죠.” 여자들이 심유진을 향해 다가왔다. 메이크업을 받고 헤어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심유진은 중간에 몇 번이나 졸다가 두피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잠에서 깼다. 어깨까지 오던 검은색 생머리는 갈색으로 변했고 큰 웨이브까지 넣었다. 메이크업은 원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짙었다. 붉은 입술에 일부러 눈물점도 찍으니 더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심유진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었다. “너무 예뻐요!” “선녀인 줄 알았어요!” “SNS에 올려도 돼요?” 심유진은 쏟아지는 칭찬에 얼굴을 붉혔다. 김욱도 진행 상황을 확인하러 왔다가 심유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가 감히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김욱을 보며 심유진이 그의 팔짱을 꼈다. 사방에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욱은 사진 몇 장을 고심해서 골라서는 SNS에 업로드했다. 연회가 시작된 지 한시간전이 되여서야 육윤엽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그는 심유진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고는 다급히 거실로 내려가 연회 준비를 했다. 6시가 되여서야 손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심유진은 드레스로 갈아입고는 김욱과 함께 2층에서 대기했다. 김욱은 심유진에게 전체적인 순서를 설명해 줬다. 연회가 시작되고 육윤엽의 환영 인사가 끝나면 심유진이 등장하는 순서였다. “긴장돼.” 심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김욱에게 말했다. 이미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고 심장
육윤엽의 발언은 상당히 간결했다. 이분도 초과하지 않은듯했다.심유진은 아직도 멍한 상태다. 맞은편의 김욱이 심유진의 어깨를 툭 쳐서 그녀를 일깨웠다.“내려갈 준비해.”심유진은 급히 발을 들어 앞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은 너무 커 하마터면 치맛자락을 밟아 넘어질 뻔했다.김욱은 한발 다가가서 그녀를 부축했다. 손은 주먹을 쥔 채 입가에 갖다 대고 낮은 소리로 강조했다.“품위 있게, 우아하게.”심유진은 리허설했던 것처럼 손끝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고고하게 고개를 쳐들고 허리를 곧게 폈다.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유유히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의 뜨거운 눈빛 속에 얼굴의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육윤엽은 눈에 눈물을 머금으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심유진을 바라보았다. 심유진이 제대로 선 후에야 자신의 어깨를 내주었다.심유진은 익숙한 듯 육윤엽의 팔을 잡고 홀 내 한 바퀴를 기품 있게 돌아보았다.오늘 오신 분들은 대부분 아시안 얼굴이었고 나이도 젊은 편이었다.심유진은 의혹스러웠다. 블루항공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미국에서 이렇게 크게 발전했다면 파트너도 각 인종 다 있겠지만 미국에서 사는 백인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중년 백인일 거라고 생각했다.사람들 앞이기에 심유진은 육윤엽한테 그 이유에 관해 묻지 못했다. 심유진은 인형처럼 육윤엽이 이끄는 대로 중앙에 걸어갔다. 육윤엽은 사람들한테 소개했다.“이분이 바로 제 딸, 심유진입니다.”주위에서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모두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만 진심으로 보내는 축복인지 아니면 위선스러운 공경인지는 모른다.심유진은 손을 흔들며 숙녀처럼 온화한 말투로 인사했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심유진입니다.”다년간의 훈련을 받았기에 심유진의 영어 발음은 이미 지방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특유의 악센트가 있다. 진이라는 글자를 부를 때 억양이 저도 몰래 올라갔지만 괴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여웠다.육윤엽은 심유진의 표현에 상당히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