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의 말투는 여느 때와 다름없다.심유진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었지만 심유진은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했다.“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시니 상속할 사람이 필요해요.”심유진은 둘러댔다.“김욱 씨가 너보다 더 적합해.”허태준은 냉정하게 말했다.“육 대표와 블루항공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미래를 김욱 형한테 맡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일걸.”심유진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그러기에 허태준은 심유진이 킹 호텔의 일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받는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렸다.허태준은 김욱한테 물었었다. 하지만 김욱도 아는 사실이 없었다.“무거운 짐을 오빠한테 전부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요.”심유진은 핸드폰을 더 꽉 잡았다. 긴장한 탓인지 심유진의 손바닥은 땀방울이 맺혔다.허태준은 한참을 침묵했다.“그래.”심유진이 솔직하지 못하다면 더 추궁해봤자 의미가 없다.두 사람은 또 한 번 침묵하였다.전화가 울려왔다. 심유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Allen이었다.심유진은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Allen은 금방 전화를 또 걸어왔다. 심유진이 받지 않으면 온밤 전화를 할 기세다.심유진은 복잡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허태준은 여전히 조용했다. 심유진은 물었다.“더 볼일이 있나요?”전화를 끊으려는 의도가 명확했다.허태준은 말했다.“있어.”“나는 피곤해.”허태준은 말했다.“경찰서에 온밤동안 있다가 눈을 붙이지도 못했어.”심유진은 급했다.“그럼 얼른 자야죠!”“잠이 안 와.”허태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유진아, 보고 싶어.”무언가가 명중한 것처럼 심유진의 가슴은 저릿해 났다. 심유진은 처음으로 허태준의 직설적인 감정표현을 들었다. 심유진은 어쩔줄 몰랐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기뻤다.“아니... ”심유진의 얼굴은 빨갰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아무리 보고 싶어도 잠을 잘 자야죠.”심유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별이를 대할 때처럼 부드러웠다.“곁에 없으니 잠을 잘 잘 수가 없어.”허
이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좋아요.”심유진은 흔쾌히 수락했다.“먼저 침대 위에 누워요.”전화기 너머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한참 지나서 허태준은 말했다.“됐어.”“이야기 해줄게요.”심유진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 별이를 재울 때도 이야기를 들려주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허태준한테 해줄 수 있었다.허태준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심유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제일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삼림 속에 토끼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허태준은 호기심이 왕성한 별이보다 다루기 쉬웠다. 허태준은 중간에 그녀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예를 들면 토끼가 어떻게 말을 하고 곰이 왜 토끼를 잡아먹지 않는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심유진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허태준의 경청에 흡족했다.이야기를 순리롭게 마치고 나서 심유진은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허태준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심유진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물었다.“자요?”대답 소리가 없다.잠들었나 보다.심유진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질투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옆에 없으니 잠이 안 온다 해놓고 누구보다 빨리 잠들면 어쩌자는 건지.심유진은 흥하더니 이를 악물면서 전화를 끊었다.핸드폰은 금세 울렸다. 그녀한테 계속 전화 걸었던 Allen이었다.몇 년 동안 Allen이 자신을 돌봐준 데에 대해 감격스러웠고 계속 친구를 할 마음이었지만 이번 전화 사건은 심유진한테 반감만 안겨주었다. 심유진은 Allen을 차단하고 싶어졌고 다시는 Allen과 얽히고 싶지 않아졌다.하지만 이 전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했다.심유진은 기분을 바로 잡고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Allen, 미안해요. 아까 친구랑 통화하느라... ”심유진은 설명을 끝마치지도 못했는데 누군가가 심유진의 말을 잘랐다.“Shen! 잘 있어요? 보고 싶어요!”이 목소리는 Allen이 아니라 별이와 비슷한 또래인 Allen의 아들 F
Freddy는 목적에 달성하였기에 그제야 시름을 놓고 아빠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아빠가 얘기한대요~”심유진이 반응도 하기 전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이미 변했다.“Shen.”심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름없는 말투로 Allen에게 말했다.“Allen.”“미안.”Allen의 말투에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Freddy가 당신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꼭 전화해야겠다고 해서. 쉬는 데 방해했지?”“아니요.”심유진은 어린아이한테는 늘 친절했다. 더욱이 심유진은 Freddy를 예뻐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병원에 금방 도착했어요.”“병원?”Allen은 긴장되었다.“무슨 일이 있는 거야? 어느 병원인데? 지금 갈게.”Freddy도 옆에서 말했다.“Shen이 아프대요? 많이 아프대요? 저도 갈래요!”심유진은 급히 설명했다.“아픈 건 아니예요. 예전에 상처가 아직 덜 나아서 병원에서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할 뿐이에요.”Allen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그럼 디즈니는... ”“갈 수 있어요.”심유진은 Freddy와 약속을 하였으니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오해하지 마. 억지로 가라고 하는 게 아니야.”Allen은 심유진이 오해할까 봐 급히 말했다.“컨디션이 안 좋으면 내가 Freddy한테 잘 말할게.”“괜찮아요. 이번 주면 출원할 수 있을 거예요.”심유진은 자기 몸을 잘 알았다. 걷기가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와 생활은 문제없었다.더욱이 이번 주만 지나면 심유진은 정식으로 블루 항공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때 가서 병원에서 억지로 심유진을 남긴다 해도 심유진은 떠날 것이다.“그럼 부탁 좀 할게.”Allen은 웃으면서 감격을 표했다.“알다시피 나도 업무가 바빠서 Freddy랑 갈 형편이 못되었거든. 지금까지 한 번도 디즈니에 간 적이 없어.”심유진은 공감할 수 있었다. 심유진이 Freddy와 디즈니에 가겠다고 약속한 것도 별이를 데려가면서 몇 년 동안 곁에 없었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였다.별이
”곧 퇴원하잖아?”하은설은 위로했다.“곧 보게 될 테니까 울지마.”“내가 언제 울었다고 그래?!”심유진은 하은설을 노려보았다.“그 얼굴을 하고서는.”하은설은 심유진의 표정을 모방하였다.“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야.”“풋!”심유진은 하은설의 표정 연기에 웃음이 터졌다. 슬펐던 기분은 삽시간에 사라졌다.“토요일에 별이를 데리고 디즈니로 갈 거야.”심유진은 말했다.“어머나!”하은설은 대단한 일이라도 들은 듯했다.“심 대표님이 퇴원해서 출근하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디즈니로 간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하은설은 장난이었지만 듣고 있는 심유진은 가슴이 또 찡해났다.심유진은 업무 때문에 아이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심유진이 블루 항공에 출근하게 되면 예전 업무 상태가 될 것이다. 심유진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심유진이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하은설은 장난을 심하게 친 줄 알고 사과했다.“가슴에 담아두지 마... ”“은설아.”심유진은 정색했다. 하은설은 깜짝 놀랐다.“왜?”하은설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심유진이 절교하자는 얘기를 할 가봐서였다.“너의 의견을 물어봐야 할 일이 있어.”심유진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가까스로 결심을 내렸다.“응?”하은설이 생각했던 반응과는 달랐다. 하은설은 이 초 동안 멈칫하더니 그제야 심유진처럼 정색해서 물었다.“뭔데?”“며칠 전에 허태준 씨가 문서를 줬어. 허태준 씨와 별이의 친자확인 결과였어.”심유진은 평소와 똑같은 말투로 얘기했지만 하은설은 조급해하면서 재촉했다.“그래서 결과는?”“별이가 허태준 씨의 친아들이 맞대.”“Oh! My! God!”하은설은 소리 질렀다.“그래서, 그래서!”하은설은 흥분해서 날뛰었다.“허태준 씨가 별이를 받아들이겠대? 너네 두 사람 재결합하는 거 아니야? 어머 어머! 얼마나 지났다고! 전개가 너무 빠르네!”“진정 좀 해.”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멍멍해진 귀를 막았다.하은설은 호흡을 몇 번이나 가
병원에서의 시간은 항상 늦게 갔다.심유진은 재활 외에 김욱더러 회사의 운영체계라든지 경영 범위라든지 등에 대해 수업하게 했다. 그래야 입사 전 준비를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유로움이 사라지자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심유진은 일찍 출원하게 해달라고 했고 의사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대신 정기적으로 복진하러 와야 한다고 했고 주의 사항도 적어주었다.심유진이 출원을 하는 날에 육윤엽은 업무를 팽개치고 직접 데리러 왔다.“네 방은 이미 사람을 시켜서 꾸며놓았다. 생필품도 준비해 놓았으니 바로 입주해도 될 거야.”육윤엽은 신이 났다.“유진아, 내가 이날만을 삼십 년 넘게 기다렸단다.”육윤엽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니 심유진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윤엽의 호의를 거절했다.“저도 제집이 있어요. 별이가 다니는 학교랑도 가깝구요. 그래서... 당분간은 그쪽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육윤엽의 심정을 고려하여 심유진은 당분간이라는 어휘를 썼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주말에는 별이도 휴식하니까 집에 돌아와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육윤엽은 실망하는 표정이었다.“어쩔 수 없지.”육윤엽은 타협했다. 그리고 조건을 달았다.“별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는 내가 고르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든 우리 쪽으로 건너와서 지내려무나.”심유진은 대답했다.“네.”육윤엽의 웃음은 그제야 돌아왔다.**평일 점심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심유진은 문밖 카펫 아래서 하은설이 숨겨놓은 비상열쇠를 꺼내 아파트 문을 열었다.일 년 만에 돌아와서 익숙한 풍경을 보니 심유진은 코끝이 찡해났다.육윤엽과 김욱은 먼저 들어왔다. 그들은 신발장에서 일회용 슬리퍼를 꺼내서 갈아신고 제집 마당을 돌듯 이 작은 아파트를 돌아보았다. 이 아파트는 거실 두 개와 방 세 개로 이루어졌으며 작은 아파트였다.육윤엽은 별이의 방에 제일 오래 머물렀다.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침대 위에 놓인 인형을 만지작거리다가 책상 위에 놓여진 회화책도 펼쳐보았다.“애는 언제 하교해? 나
육윤엽이 사영은을 버린 것은 아니다. 육윤엽이 죽음과 맞서 싸울 때 사영은이 남몰래 벌인 짓이였다.육윤엽은 사영은을 몇 년이나 찾았다. 두 사람이 또다시 만나기 전까지 줄곧 그녀를 찾고 있었다.심유진의 마음속에 육윤엽에 대한 미움은 이 몇 달간의 지극정성인 보살핌과 관심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이제는 미움 대신 가슴만 아팠다.육윤엽은 심유진한테 보상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심유진 또한 육윤엽한테 보상하고 싶었다. 그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사실 별이는 제가 어릴 때랑 많이 달라요.”심유진은 앞으로 다가가 육윤엽의 시선이 멈춰있는 곳을 바라보았다.별이의 오관은 심유진과 허태준의 좋은 점만 모아놓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보면 누구를 닮았는지 말하기 곤란하다.그래서 몇 년 동안 심유진은 별이와 허태준을 연관 짓지 못했다.“제가 어릴 때는 진짜 못났어요. 저를 못 본 것도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에요.”심유진은 육윤엽을 위로하였다.육윤엽은 심유진을 노려보았다.“얘는 무슨 말을! 네 엄마 아빠가 다 잘났는데 네가 어떻게 못났을 수 있겠니?”심유진은 멈칫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부끄럽지도 않으세요?”김욱도 육윤엽을 거들었다.“삼촌이 젊었을 적 사진이 집에 있는데. 어느 스타 못지않아.”사실 심유진도 육윤엽의 얼굴에서 왕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 사영은의 허영심으로는 육윤엽이 어지간히 잘생기지 않고서야 가난하기 그지없는 육윤엽에게 시집가지 않았을 것이다.심유진은 육윤엽이 자기 자랑을 이렇게 할 줄 몰랐다. 육윤엽을 달리 보게 된다.“맞다.”육윤엽은 갑자기 생각났다.“네 어릴 적 사진첩이... 있을까?”심유진 얼굴의 미소는 옅어졌다.“없어요.”심유진이 어릴 때에는 사처에 사진관이 들어섰었다. 심훈은 옛날식 카메라도 여러 대를 샀었다.하지만 심유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사영은이 심유진을 욕할 때 늘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얼굴만 봐도 재수가
육윤엽은 별이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하교 시간이 한 시간 넘짓 남았지만 육윤엽은 심유진을 재촉해서 문을 나섰다.예외 없이 그들이 도착했을 때 유치원 문어구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심유진은 이마를 짚으며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육윤엽은 경비 아저씨와 한참을 얘기하다가 풀이 죽어 돌아왔다.“이 학교 경비는 왜 이렇게 인정이 없어? 학부모가 들어가서 애들이 수업하는 것도 못 보게 해!”육윤엽은 차문을 넘어 심유진한테 푸념했다.“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잖아요.”심유진은 위로했다.“이제 반 시간만 더 기다리면 돼요. 빨리 지나갈 거예요.”육윤엽은 여기서 기다리기만 싫었다. 그래서 김욱더러 근처의 쇼핑몰로 가게 했다. 반 시간도 안 돼 각종 장난감이 트렁크를 가득 메웠다.심유진은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육윤엽은 당당했다.“처음으로 외손주를 보는 건데 좋은 인상을 남겨야 나를 좋아하지.”심유진은 어쩔 수 없었다.“이러다가 별이의 버릇을 잘못 들일 거에요.”“그때 가서 보지.”육윤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심유진의 태양혈은 아파 났다.그들이 다시 유치원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하교 시간을 넘었다. 문어구에는 오가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있었다.심유진은 사람들이 육윤엽을 밀치게 될까 봐 육윤엽더러 차에 앉아 있으라 하고 자신이 별이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육윤엽은 한사코 거절하면서 기어이 같이 가겠다고 했다.육윤엽은 걸어가는 내내 긴장하였다. 그래서 심유진한테 끊임없이 질문했다.“별이가 날 좋아할까?”“장난감을 좋아할까?”“날 무서워하지 않겠지?”...심유진은 한번 또 한 번 반복했다.“별이는 아버지를 좋아할 거예요.”**심유진이 별이를 데리러 온 횟수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하은설이 데리러 왔다. 그래서 심유진은 별이를 찾는 데 시간을 좀 들였다.심유진이 올 때마다 별이의 반 아이들은 대부분 떠나고 없었다. 별이는 여전히 얌전하게 의자에 앉아서 블록을 놀고 있었다.별이의 반의 선생님은 심유진을 알고 있었다. 별이가 유치원
차에 탄 후 심유진은 별이의 등을 다독이면서 말했다.“자, 고개 들어.”별이는 그제야 토끼같이 빨간 눈을 드러냈다. 그리고 차 안을 호기심에 차서 바라보았다. 옆에 수상한 할아버지도 바라보았다.“엄마...”별이는 심유진의 팔을 찌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할아버지는 누구야?”갑자기 자기 얘기가 나오자 육윤엽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나, 나는...”육윤엽은 혀가 마비된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완전한 말을 구사하지 못했다.심유진은 육윤엽의 말을 이어 했다.“이 사람은 엄마의 아버지야. 별이의 외할아버지지.”별이는 재빨리 이 소식을 소화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달콤하게 육윤엽을 불렀다.“외할아버지~”육윤엽의 몸은 흠칫하였다.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찼다. 그는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목이 멘 채로 대답했다.“그래!”자신과 상봉하던 때를 빼고 심유진은 육윤엽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 마음이 저릿하더니 심유진은 고개를 숙여 별이와 의논했다.“할아버지는 별이를 좋아하는데, 할아버지가 별이를 안아도 될까?”별이는 낯을 가리지 않았다. 별이는 기대에 찬 눈으로 육윤엽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육윤엽의 몸은 또 한 번 흠칫했다.육윤엽은 눈을 깜빡이더니 눈가의 눈물은 속눈썹에 붙었다.별이는 놀라서 말했다.“엄마! 외할아버지가 울어요!”별이는 안간힘을 들여 심유진의 품을 떠나 육윤엽의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육윤엽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외할아버지, 울지 마요! 제가 맛있는 것을 사줄게요! 저 용돈 많아요! 절반 나눠줄게요, 네?”별이는 육윤엽을 아기 달래듯이 달래줬다. 육윤엽의 눈물은 더 많아졌다.그는 억지로 웃어 보였으나 예쁜 미소는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려왔다.“외할아버지는 별이의 용돈을 갖고 싶지 않아. 그냥 우리 별이를 보니까 너무 기뻐서 그래.”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기쁜데 왜 울어요?”누구도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육윤엽은 재빨리 기운을 차리고 별이를 안고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