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n이 물었다. “별이인가요?” 심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네? 그럼 누구예요?”Allen은 김욱을 보더니 표정이 확 바뀌었다.“남자친구?”심유진은 그의 말투가 달라진 걸 느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제 오빠예요. 이름은 김욱이고요.”심유진이 김욱을 소개했다. Allen은 다시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웃으면서 김욱에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김욱은 예전부터 심유진에게서 자신을 굉장히 잘 챙겨 주는 상사가 있다는 얘기를들었었다.“안녕하세요.”둘이 인사를 마친 후 심유진은 김욱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동기들이랑 밥 먹으러 갈 건데 오빠도 같이 갈래?”김욱도 거절하지 않았다. 회사에 다른 동기들 역시 심유진과 몇 년 동안 함께한 사이이니 심유진이 간다는 말을 듣자 다들 아쉬워하며 그녀와 포옹했다.“Allen이 슬프겠네.”한 동기가 Allen을 놀리려다가 Allen의 눈빛을 보고 급히 말을 보탰다.“그렇게 오랫동안 함께한 부하 직원이 떠나니까 말이야.”Allen이 이어서 말했다.“그러니까요. 그동안 했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갔어요. 어떻게 갚으실 거예요?”Allen은 장난으로 한 말이지만 심유진은 마음이 복잡했다.“어떻게 갚을까요?”심유진이 분위기에 맞춰 웃으면서 농담 식으로 말했다.“생각해보고 알려 줄게요.”Allen이 신비롭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을 재촉했다.“됐어요, 어느 식당으로 갈지 빨리 정합시다.”최종적으로는 꽤나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Allen은 여기 단골이라 미리 예약을 해서 웨이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람들이 Allen을 칭찬했다.“역시 Allen이야. Allen 아니었으면 오늘 스테이크 못 먹을 뻔했네.”심유진은 외국인들의 이런 장난 섞인 아부를 맞춰서 자신도 한마디 하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심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오늘 유진 씨 덕분에 이런 것도 맛 보네.”“고마워 유진 씨!”“이직한다니까 정말 아쉽다. 언제 또 이런 식사를
화제는 점점 산으로 간다.동료들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심유진은 몸 아래의 의자가 유난히 살을 찌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킹 호텔에 입사를 해서부터 줄곧 Allen과 함께했다. 그 사람은 심유진보다 조금 더 나이 많았다. 그 사람도 홀로 아들을 데리고 산다. 그래서 일 얘기를 제외하더라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보다도 할 얘기가 더 많았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얘기일 뿐이다.심유진은 Allen을 높이 보고 그의 업무 능력을 인정했으며 Allen한테 감격스러운 마음이 더 많았다. 그 어떠한 애매모호한 마음도 없었다.심유진은 Allen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심유진은 Allen한테 눈길조차 줄 수 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추측을 제지할 뿐이다.“저랑 Allen은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저희 사이에 대해 잘 아시면서. 저희는 결백해요.”다른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유진의 말을 믿지 않는듯한 눈치였다.심유진은 숨이 막혔다.Allen은 심유진의 빨개진 얼굴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더워서 얼굴이 빨개졌는지 아니면 당황해서 빨개졌는지 모른다.“주문하죠.”Allen은 메뉴판을 펼쳤다.참석한 인원은 Allen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말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찍소리하지 않고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시간이 지나갔다. 이번 송별회는 유쾌한 분위기를 띤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고 가끔 조용히 몇 마디씩 했을 뿐이다. 대화 내용도 커틀러리나 소스를 건네달라는 말이었다.심유진은 겨우 끝날 때까지 앉아있었다.다들 남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인사도 겉치레 인사였다. 한시라도 빨리 떠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결국 심유진, 김욱 그리고 Allen 세 사람이 남았다.Allen은 심유진을 보면서 머뭇거렸다. 아마도 김욱 때문이었는지 Allen은 한마디
심유진은 골치가 아팠다.그녀는 이런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Allen은 직접 그녀한테 고백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거절할 수도 없었다.“화나지 않았어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어서 바쁠 거예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문자에서도 그녀의 차가움이 보인다.Allen은 한참 있다가 문자를 보냈다.“집에 도착하면 문자 줘요.”심유진은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김욱은 가슴 아파서 물었다.“해결해 줄까?”심유진은 깜짝 놀라서 손을 저었다.“아니에요!”이런 일로 김욱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김욱은 심유진을 흘끔 보고는 말했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날 찾아.”**병원에 도착할 때는 이미 꽤 늦었다.심유진의 주치의는 진작에 퇴근했다. 심유진을 익히 아는 간호사는 심유진을 보자마자 뜨겁게 반겨주었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닥터 존은 매일 당신 걱정을 했어요. 다음 치료 과정에 참석하지 못할까 봐 얼마나 걱정 했는데요!”“그런데 걷는 자세를 보니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네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퇴원해도 되겠어요.”“퇴원하다니 아쉬워요. 더 이상 키가 크고 마른 아시아 미남을 볼 수 없게 되네요!”키가 크고 마른 아시아 미남은 필시 김욱이 아닐 것이다. 간호사들은 김욱의 이름을 알았으니 말이다.심유진의 병실에 나타난 아시아 미남이란 김욱을 제외하면 허태준밖에 없었다.“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간 것도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건가요?”“우와! 애인을 보기 위해 그 먼 길을 떠나다니. 너무 로맨틱하지 않아요?”“둘이 혹시... 응?”“테크닉이 어때요?”“다리가 다 낫지 않았으니 너무 격렬하게 하면 안 돼요!”미국 사람들은 유난히 개방적이었다. 이런 일을 얘기할 때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심유진은 낯이 부끄러워 핑계를 대고 도망갔다.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유진의 폰은 울렸다.마침 간호사가 말한 키가 크고 마른 아시아 미남이었다.심유진은 흠칫했다. 방금 간호사
허태준의 말투는 여느 때와 다름없다.심유진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었지만 심유진은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했다.“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시니 상속할 사람이 필요해요.”심유진은 둘러댔다.“김욱 씨가 너보다 더 적합해.”허태준은 냉정하게 말했다.“육 대표와 블루항공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미래를 김욱 형한테 맡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일걸.”심유진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그러기에 허태준은 심유진이 킹 호텔의 일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받는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렸다.허태준은 김욱한테 물었었다. 하지만 김욱도 아는 사실이 없었다.“무거운 짐을 오빠한테 전부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요.”심유진은 핸드폰을 더 꽉 잡았다. 긴장한 탓인지 심유진의 손바닥은 땀방울이 맺혔다.허태준은 한참을 침묵했다.“그래.”심유진이 솔직하지 못하다면 더 추궁해봤자 의미가 없다.두 사람은 또 한 번 침묵하였다.전화가 울려왔다. 심유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Allen이었다.심유진은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Allen은 금방 전화를 또 걸어왔다. 심유진이 받지 않으면 온밤 전화를 할 기세다.심유진은 복잡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허태준은 여전히 조용했다. 심유진은 물었다.“더 볼일이 있나요?”전화를 끊으려는 의도가 명확했다.허태준은 말했다.“있어.”“나는 피곤해.”허태준은 말했다.“경찰서에 온밤동안 있다가 눈을 붙이지도 못했어.”심유진은 급했다.“그럼 얼른 자야죠!”“잠이 안 와.”허태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유진아, 보고 싶어.”무언가가 명중한 것처럼 심유진의 가슴은 저릿해 났다. 심유진은 처음으로 허태준의 직설적인 감정표현을 들었다. 심유진은 어쩔줄 몰랐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기뻤다.“아니... ”심유진의 얼굴은 빨갰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아무리 보고 싶어도 잠을 잘 자야죠.”심유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별이를 대할 때처럼 부드러웠다.“곁에 없으니 잠을 잘 잘 수가 없어.”허
이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좋아요.”심유진은 흔쾌히 수락했다.“먼저 침대 위에 누워요.”전화기 너머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한참 지나서 허태준은 말했다.“됐어.”“이야기 해줄게요.”심유진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 별이를 재울 때도 이야기를 들려주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허태준한테 해줄 수 있었다.허태준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심유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제일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삼림 속에 토끼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허태준은 호기심이 왕성한 별이보다 다루기 쉬웠다. 허태준은 중간에 그녀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예를 들면 토끼가 어떻게 말을 하고 곰이 왜 토끼를 잡아먹지 않는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심유진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허태준의 경청에 흡족했다.이야기를 순리롭게 마치고 나서 심유진은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허태준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심유진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물었다.“자요?”대답 소리가 없다.잠들었나 보다.심유진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질투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옆에 없으니 잠이 안 온다 해놓고 누구보다 빨리 잠들면 어쩌자는 건지.심유진은 흥하더니 이를 악물면서 전화를 끊었다.핸드폰은 금세 울렸다. 그녀한테 계속 전화 걸었던 Allen이었다.몇 년 동안 Allen이 자신을 돌봐준 데에 대해 감격스러웠고 계속 친구를 할 마음이었지만 이번 전화 사건은 심유진한테 반감만 안겨주었다. 심유진은 Allen을 차단하고 싶어졌고 다시는 Allen과 얽히고 싶지 않아졌다.하지만 이 전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했다.심유진은 기분을 바로 잡고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Allen, 미안해요. 아까 친구랑 통화하느라... ”심유진은 설명을 끝마치지도 못했는데 누군가가 심유진의 말을 잘랐다.“Shen! 잘 있어요? 보고 싶어요!”이 목소리는 Allen이 아니라 별이와 비슷한 또래인 Allen의 아들 F
Freddy는 목적에 달성하였기에 그제야 시름을 놓고 아빠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아빠가 얘기한대요~”심유진이 반응도 하기 전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이미 변했다.“Shen.”심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름없는 말투로 Allen에게 말했다.“Allen.”“미안.”Allen의 말투에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Freddy가 당신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꼭 전화해야겠다고 해서. 쉬는 데 방해했지?”“아니요.”심유진은 어린아이한테는 늘 친절했다. 더욱이 심유진은 Freddy를 예뻐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병원에 금방 도착했어요.”“병원?”Allen은 긴장되었다.“무슨 일이 있는 거야? 어느 병원인데? 지금 갈게.”Freddy도 옆에서 말했다.“Shen이 아프대요? 많이 아프대요? 저도 갈래요!”심유진은 급히 설명했다.“아픈 건 아니예요. 예전에 상처가 아직 덜 나아서 병원에서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할 뿐이에요.”Allen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그럼 디즈니는... ”“갈 수 있어요.”심유진은 Freddy와 약속을 하였으니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오해하지 마. 억지로 가라고 하는 게 아니야.”Allen은 심유진이 오해할까 봐 급히 말했다.“컨디션이 안 좋으면 내가 Freddy한테 잘 말할게.”“괜찮아요. 이번 주면 출원할 수 있을 거예요.”심유진은 자기 몸을 잘 알았다. 걷기가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와 생활은 문제없었다.더욱이 이번 주만 지나면 심유진은 정식으로 블루 항공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때 가서 병원에서 억지로 심유진을 남긴다 해도 심유진은 떠날 것이다.“그럼 부탁 좀 할게.”Allen은 웃으면서 감격을 표했다.“알다시피 나도 업무가 바빠서 Freddy랑 갈 형편이 못되었거든. 지금까지 한 번도 디즈니에 간 적이 없어.”심유진은 공감할 수 있었다. 심유진이 Freddy와 디즈니에 가겠다고 약속한 것도 별이를 데려가면서 몇 년 동안 곁에 없었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였다.별이
”곧 퇴원하잖아?”하은설은 위로했다.“곧 보게 될 테니까 울지마.”“내가 언제 울었다고 그래?!”심유진은 하은설을 노려보았다.“그 얼굴을 하고서는.”하은설은 심유진의 표정을 모방하였다.“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야.”“풋!”심유진은 하은설의 표정 연기에 웃음이 터졌다. 슬펐던 기분은 삽시간에 사라졌다.“토요일에 별이를 데리고 디즈니로 갈 거야.”심유진은 말했다.“어머나!”하은설은 대단한 일이라도 들은 듯했다.“심 대표님이 퇴원해서 출근하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디즈니로 간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하은설은 장난이었지만 듣고 있는 심유진은 가슴이 또 찡해났다.심유진은 업무 때문에 아이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심유진이 블루 항공에 출근하게 되면 예전 업무 상태가 될 것이다. 심유진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심유진이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하은설은 장난을 심하게 친 줄 알고 사과했다.“가슴에 담아두지 마... ”“은설아.”심유진은 정색했다. 하은설은 깜짝 놀랐다.“왜?”하은설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심유진이 절교하자는 얘기를 할 가봐서였다.“너의 의견을 물어봐야 할 일이 있어.”심유진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가까스로 결심을 내렸다.“응?”하은설이 생각했던 반응과는 달랐다. 하은설은 이 초 동안 멈칫하더니 그제야 심유진처럼 정색해서 물었다.“뭔데?”“며칠 전에 허태준 씨가 문서를 줬어. 허태준 씨와 별이의 친자확인 결과였어.”심유진은 평소와 똑같은 말투로 얘기했지만 하은설은 조급해하면서 재촉했다.“그래서 결과는?”“별이가 허태준 씨의 친아들이 맞대.”“Oh! My! God!”하은설은 소리 질렀다.“그래서, 그래서!”하은설은 흥분해서 날뛰었다.“허태준 씨가 별이를 받아들이겠대? 너네 두 사람 재결합하는 거 아니야? 어머 어머! 얼마나 지났다고! 전개가 너무 빠르네!”“진정 좀 해.”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멍멍해진 귀를 막았다.하은설은 호흡을 몇 번이나 가
병원에서의 시간은 항상 늦게 갔다.심유진은 재활 외에 김욱더러 회사의 운영체계라든지 경영 범위라든지 등에 대해 수업하게 했다. 그래야 입사 전 준비를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유로움이 사라지자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심유진은 일찍 출원하게 해달라고 했고 의사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대신 정기적으로 복진하러 와야 한다고 했고 주의 사항도 적어주었다.심유진이 출원을 하는 날에 육윤엽은 업무를 팽개치고 직접 데리러 왔다.“네 방은 이미 사람을 시켜서 꾸며놓았다. 생필품도 준비해 놓았으니 바로 입주해도 될 거야.”육윤엽은 신이 났다.“유진아, 내가 이날만을 삼십 년 넘게 기다렸단다.”육윤엽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니 심유진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윤엽의 호의를 거절했다.“저도 제집이 있어요. 별이가 다니는 학교랑도 가깝구요. 그래서... 당분간은 그쪽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육윤엽의 심정을 고려하여 심유진은 당분간이라는 어휘를 썼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주말에는 별이도 휴식하니까 집에 돌아와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육윤엽은 실망하는 표정이었다.“어쩔 수 없지.”육윤엽은 타협했다. 그리고 조건을 달았다.“별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는 내가 고르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든 우리 쪽으로 건너와서 지내려무나.”심유진은 대답했다.“네.”육윤엽의 웃음은 그제야 돌아왔다.**평일 점심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심유진은 문밖 카펫 아래서 하은설이 숨겨놓은 비상열쇠를 꺼내 아파트 문을 열었다.일 년 만에 돌아와서 익숙한 풍경을 보니 심유진은 코끝이 찡해났다.육윤엽과 김욱은 먼저 들어왔다. 그들은 신발장에서 일회용 슬리퍼를 꺼내서 갈아신고 제집 마당을 돌듯 이 작은 아파트를 돌아보았다. 이 아파트는 거실 두 개와 방 세 개로 이루어졌으며 작은 아파트였다.육윤엽은 별이의 방에 제일 오래 머물렀다.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침대 위에 놓인 인형을 만지작거리다가 책상 위에 놓여진 회화책도 펼쳐보았다.“애는 언제 하교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