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그룹 대표 사무실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와 물건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들! 다 쓰레기야!” 비서들이 눈빛을 교류하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던 일을 계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실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번호를 보고 비서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진 회장님.” “허 대표님은 회사에 안 계십니다.” “대표님 개인 스케줄이라 여쭤보기가 힘들어서요.” “네, 대표님 돌아오시면 전달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 사무실에 직원들이 바로 채팅방에서 물었다. “회장님이 또 이사회 소집하실 거래요?” “제발 그만.” “이 상황에서 뭔가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우린 다 끝장이dp요.” “언제면 이런 생활이 끝날까요.” “진짜 퇴사하고 싶어요. YT그룹 월급은 높은데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상사들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온하루 조마조마하고.” “너네가 나보다 힘들겠냐.” 비서실장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허리를 쭉폈다. 표정은 결연하면서도 절망스러워 보였다. “갈게.” 실장이 말하자 모두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그는 대표님 사무실 입구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사무실 안의 소리가 멈췄다. 이 기회에 실장이 한숨에 하려던 말을 뱉어냈다. “대표님, 좀 전에 회장님이 이사회 소집하실 거라고 언제 시간 되시는지 여쭤보셨습니다.” 실장은 불안한 심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숨 막히는 침묵만 돌아올 뿐이었다. “대표님?” 실장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죠?” 그제야 안에서 쾅하고 뭔가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실장이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꺼져!” 허태서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실장은 바로 자기 자리로 도망갔다. 여전히 심장이 뛰었다. “너무 무서워.” 실장은 떨리는 손으로 채팅방에 문자를 보냈다. “다들 조심해. 오늘은 별다른 일 없
이번에는 정말로 망했다. 한쪽에서는 계획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고 오고 다른 쪽에서는 늙은이들이 압력을 주면서 자신이 회사 직무를 내려놓기를 바라고 있다.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막막했다. “허태준... 다 너 때문이야.” 허태서가 이를 갈며 허태준을 원망했다. 증오심이 하늘로 치솟았다. 허태서는 테이블을 발로 찼다. 의자가 뒤로 밀려 책장에 부딪혔다. 허태서는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하고는 혼자 또 열이 받아 의자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사무실은 난장판이 돼버렸고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허태서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택양아, 형 한 번만 도와줘라.” 굽신거리는 모습이 회사 대표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잡혀간 후 이제 의지할 구석은 동생밖에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회사를 관리하는 면에서 허택양은 자신보다 훨씬 실력이 있었다. 로열은 YT그룹 산하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딱 마지막으로 5천만.”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없어요.” “형, 로열은 은행이 아니에요. 전 도울 수 있는 정도에서 최선을 다해 도왔어요. 저번에 공금도 아직 메꾸지 못했는데 이러다가 들키면 저희 둘 다 회사에서 쫓겨나요.” “택양아, 형 그냥 이렇게 무너지게 내버려 둘 거니?” 허태서가 물었다. “그래도 그동안 회사에서 일하면서 널 많이 도와줬었는데 이제 내가 힘드니까 그냥 모른 척할 거야?” “형님, 전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만 찾으세요. 저도 이젠 형님 도울 능력 없습니다.” 허택양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택양아! 택양아! 택양? 여보세요?” 끊긴 전화를 붙잡고 허태서는 또 분노했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전화를 던지려는 찰나 허태서는 뭔가 번뜩 떠오르는 게 있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직접 허태준을 노리는 거야.” 비행기가 착륙하고 온밤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한 심유진은 하마터
김욱이 철저히 숨겼기 때문에 육윤엽은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도 알지 못했고 바로 회사로 올 거라는 것도 몰랐다. 비서가 실장님이 여성분을 데리고 만나 뵙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을 때 육윤엽은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그는 김욱이 귀국하면서 애인을 데리고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김욱 옆의 심유진을 봤을 때 그건 며느리에 대한 기대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왜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지 않았어. 데리러 갔을 텐데.”그가 김욱을 질책했다. 심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육윤엽은 심유진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냥 살짝 눈을 흘길 뿐이었다. 육윤엽이 걱정하면서 물었다.“몸은 좀 괜찮아?”“괜찮아요.”심유진은 소파에 앉으면서 붕대를 감은 손을 뒤로 감췄다. 육윤엽은 심유진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살이 더 빠졌어. 얼굴이 홀쭉하네.”심유진이 머쓱해하면서 웃었다. “사영은 일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가 봐요.”사영은이라는 이름을 듣자 육윤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심유진은 알아보지 못할 복잡한 감정이었다.“일은 다 처리했어?”그가 물었다. 심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은 곳에서 쉴 수 있도록 했어요. 비싼 곳이 아니라서 안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넌 할 만큼 했어.”육윤엽이 옆에 앉아서 심유진의 손을 토닥였다. 그러다가 결국 일부러 소매에 감춘 그 손목에 시선이 갔다. 육윤엽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소매를 걷어올렸다.“어쩌다 다쳤어!”김욱은 순간 긴장 했다. 그의 비하면 심유진은 상당히 침착했다.“절 납치 하려고 한 사람이 있었어요.” 심유진이 말했다. 육윤엽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누구?”“이미 체포 돼서 경찰에 넘겼어요.”김욱이 대답했다.“근데 그 배후의 진정한 범인은 아직 못 잡았어요.”“그쪽에 사람을 붙여 조사하게 했어?”육윤엽이 물었다.“허 대표님이 조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안 붙였어요.”김욱은 육윤엽이 화를 내기라고 할까 봐 조마조
“오빠가 체크아웃을 하던 사이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에요.” 심유진이 다급히 김욱을 감쌌다. “아빠, 오빠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육윤엽은 김욱에게 화가 났지만 심유진이 이렇게 감싸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화를 억누르며 심유진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내가 뭘 해주면 되는 거니?” 육윤엽은 심유진과 알게 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심유진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심유진은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니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걸 좋아하 지 않았다. 그래서 납치될 뻔했다는 말을 들었 을때도 분노와 걱정 외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사실을 먼저 말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말이다. 상처를 들켜도 다른 변명을 하거나 다 아물기 전까지 자신을 만나지 않을 사람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심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를 물려받고 싶어요.” 육윤엽과 김욱 모두 놀라서 얼어 불었다. “왜?” 육윤엽은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말은 심유진을 알게 된 후 수없이 많이 제안한 일이지만 심유진은 매번 거절했다. 자신의 사업과 꿈이 있는데 심유진에게 항공사업이란 너무 낯선 일이라 아예 발을 내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육윤엽도 이제는 아예 포기를 하고 심유진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미리 변호사에게 자신 명의하의 블루항공의 모든 재산을 심유진에게 물려줄 거라고 유언도 남겼었다. “권력을 얻고 제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요.” 심유진은 다친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육윤엽은 아끼는 사람이라고 한데 초점을 뒀다. “혹시 그 사람이 허태준이니?” 육윤엽이 이를 악물었다. 혹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온다면 당장 허태준의 다리라도 부러트릴 생각이었다. 심유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아끼는 사람이 많죠. 별이랑 은설이랑 오빠 그리고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아빠예요.” 육윤엽도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블루 항공을 물려받기로 결심했으니 킹 호텔의 업무를 빨리 마무리 지어야 했다. 김욱은 심유진을 혼자 내 보낼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붙이기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음에도 직접 심유진을 킹 호텔에까지 데려다줬다. 몇 년을 일한 곳이었지만 1년 동안 오지 않으니 조금 낯설게 느껴져 심유진은 회사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들어가.”김욱이 심유진을 살짝 밀었다. 킹 호텔 본사는 심유진이 경주에 가기 전과 똑같았다. 심지어 상사 Allen의 사무실까지 아직도 원래 위치 그대로였다. 심유진은 김욱에게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미리 비서의 통지를 받았던 Allen이 직접 문을 열어줬다.“유진 씨!”그가 열정적으로 허그를 하며 물었다.“이제 돌아온 거예요?”심유진은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호텔의 업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본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퇴사를 신청했었다. 하지만 퇴사 신청을 Allen이 접수하지 않았고 대신 시간 제약이 없는 휴가로 바꿔버렸다. Allen은 여러 번 병원의 주소를 물어보며 동기들과 병문안을 가겠다고 했지만 육윤엽은 사람이 많으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할까 봐 김욱에게 심유진을 대신해 거절하라고 했었다.“아니요.”심유진이 대답했다. Allen은 심유진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난 가장 다정하고 직원들을 걱정할 줄 아는 상사였다. 심유진은 그가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Allen은 붕대를 감은 심유진의 손을 보더니 물었다.“아직도 다 낫지 않은 거예요?”실망한 게 표정에서 드러났다.“유진 씨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줄 알았어요.”심유진은 미안한 마음이 더 깊어졌다.“사실은...”심유진은 고개를 숙인 채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퇴사하러 왔어요.”Allen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왜요? 만약에 건강 때문이라면 기다릴 수 있다고 분명히 얘기했는데요.”그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할수록 심유진은 더 마음이
Allen이 물었다. “별이인가요?” 심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네? 그럼 누구예요?”Allen은 김욱을 보더니 표정이 확 바뀌었다.“남자친구?”심유진은 그의 말투가 달라진 걸 느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제 오빠예요. 이름은 김욱이고요.”심유진이 김욱을 소개했다. Allen은 다시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웃으면서 김욱에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김욱은 예전부터 심유진에게서 자신을 굉장히 잘 챙겨 주는 상사가 있다는 얘기를들었었다.“안녕하세요.”둘이 인사를 마친 후 심유진은 김욱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동기들이랑 밥 먹으러 갈 건데 오빠도 같이 갈래?”김욱도 거절하지 않았다. 회사에 다른 동기들 역시 심유진과 몇 년 동안 함께한 사이이니 심유진이 간다는 말을 듣자 다들 아쉬워하며 그녀와 포옹했다.“Allen이 슬프겠네.”한 동기가 Allen을 놀리려다가 Allen의 눈빛을 보고 급히 말을 보탰다.“그렇게 오랫동안 함께한 부하 직원이 떠나니까 말이야.”Allen이 이어서 말했다.“그러니까요. 그동안 했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갔어요. 어떻게 갚으실 거예요?”Allen은 장난으로 한 말이지만 심유진은 마음이 복잡했다.“어떻게 갚을까요?”심유진이 분위기에 맞춰 웃으면서 농담 식으로 말했다.“생각해보고 알려 줄게요.”Allen이 신비롭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을 재촉했다.“됐어요, 어느 식당으로 갈지 빨리 정합시다.”최종적으로는 꽤나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Allen은 여기 단골이라 미리 예약을 해서 웨이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람들이 Allen을 칭찬했다.“역시 Allen이야. Allen 아니었으면 오늘 스테이크 못 먹을 뻔했네.”심유진은 외국인들의 이런 장난 섞인 아부를 맞춰서 자신도 한마디 하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심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오늘 유진 씨 덕분에 이런 것도 맛 보네.”“고마워 유진 씨!”“이직한다니까 정말 아쉽다. 언제 또 이런 식사를
화제는 점점 산으로 간다.동료들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심유진은 몸 아래의 의자가 유난히 살을 찌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킹 호텔에 입사를 해서부터 줄곧 Allen과 함께했다. 그 사람은 심유진보다 조금 더 나이 많았다. 그 사람도 홀로 아들을 데리고 산다. 그래서 일 얘기를 제외하더라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보다도 할 얘기가 더 많았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얘기일 뿐이다.심유진은 Allen을 높이 보고 그의 업무 능력을 인정했으며 Allen한테 감격스러운 마음이 더 많았다. 그 어떠한 애매모호한 마음도 없었다.심유진은 Allen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심유진은 Allen한테 눈길조차 줄 수 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추측을 제지할 뿐이다.“저랑 Allen은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저희 사이에 대해 잘 아시면서. 저희는 결백해요.”다른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유진의 말을 믿지 않는듯한 눈치였다.심유진은 숨이 막혔다.Allen은 심유진의 빨개진 얼굴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더워서 얼굴이 빨개졌는지 아니면 당황해서 빨개졌는지 모른다.“주문하죠.”Allen은 메뉴판을 펼쳤다.참석한 인원은 Allen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말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찍소리하지 않고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시간이 지나갔다. 이번 송별회는 유쾌한 분위기를 띤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고 가끔 조용히 몇 마디씩 했을 뿐이다. 대화 내용도 커틀러리나 소스를 건네달라는 말이었다.심유진은 겨우 끝날 때까지 앉아있었다.다들 남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인사도 겉치레 인사였다. 한시라도 빨리 떠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결국 심유진, 김욱 그리고 Allen 세 사람이 남았다.Allen은 심유진을 보면서 머뭇거렸다. 아마도 김욱 때문이었는지 Allen은 한마디
심유진은 골치가 아팠다.그녀는 이런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Allen은 직접 그녀한테 고백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거절할 수도 없었다.“화나지 않았어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어서 바쁠 거예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문자에서도 그녀의 차가움이 보인다.Allen은 한참 있다가 문자를 보냈다.“집에 도착하면 문자 줘요.”심유진은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김욱은 가슴 아파서 물었다.“해결해 줄까?”심유진은 깜짝 놀라서 손을 저었다.“아니에요!”이런 일로 김욱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김욱은 심유진을 흘끔 보고는 말했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날 찾아.”**병원에 도착할 때는 이미 꽤 늦었다.심유진의 주치의는 진작에 퇴근했다. 심유진을 익히 아는 간호사는 심유진을 보자마자 뜨겁게 반겨주었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닥터 존은 매일 당신 걱정을 했어요. 다음 치료 과정에 참석하지 못할까 봐 얼마나 걱정 했는데요!”“그런데 걷는 자세를 보니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네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퇴원해도 되겠어요.”“퇴원하다니 아쉬워요. 더 이상 키가 크고 마른 아시아 미남을 볼 수 없게 되네요!”키가 크고 마른 아시아 미남은 필시 김욱이 아닐 것이다. 간호사들은 김욱의 이름을 알았으니 말이다.심유진의 병실에 나타난 아시아 미남이란 김욱을 제외하면 허태준밖에 없었다.“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간 것도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건가요?”“우와! 애인을 보기 위해 그 먼 길을 떠나다니. 너무 로맨틱하지 않아요?”“둘이 혹시... 응?”“테크닉이 어때요?”“다리가 다 낫지 않았으니 너무 격렬하게 하면 안 돼요!”미국 사람들은 유난히 개방적이었다. 이런 일을 얘기할 때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심유진은 낯이 부끄러워 핑계를 대고 도망갔다.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유진의 폰은 울렸다.마침 간호사가 말한 키가 크고 마른 아시아 미남이었다.심유진은 흠칫했다. 방금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