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에 조건이가 주식을 추천한 행적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되고 말았다.내막을 알고 하는 거래는 이미 불법인 데다가 조건이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행동했으니 이상해 할것도 없었다.조건이의 직속 상사는 경영진의 생각을 몰랐기에 당장 조건이를 짜르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경찰은 이미 수사에 들어갔고 지금은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였다.이러한 사실은 금융회사의 총책임자가 허태준을 만나고 나서야 부하직원한테서 전해 들었다.“허대표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총책임자는 사과했다.“더 신경쓰지 못했습니다.”“그 사람 탓이지요.”허태준은 누군가가 조건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해서 조건이가 얌전히 근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어디 제 버릇을 남 주겠는가.“경찰의 수사에 협조를 잘해주세요. 뭐가 필요하면 다 들어주시구요.”허태준은 말을 끊고 정중히 경고했다.“다음부터는 규율을 위반하면 안 됩니다.”총책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기자를 전부 보냈다는 소식을 받고 나서야 허태준은 킹 호텔로 갔다.허태준은 예전처럼 당당히 들어가지 못했다. 호텔의 투숙객은 적지 않았기에 쉽사리 카메라에 찍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허태준은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심유진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머무르고 있는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허태준은 시름을 놓고 벨을 눌렀다.한참 있다가 김욱의 경각성 높은 목소리가 전해왔다.“누구세요?”허태준은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예요.”김욱이 알아듣지 못할가봐였다.허태준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김욱은 허태준을 들여보냈다.“찾으려던 참이었어요.”김욱은 심유진이 안에서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허태준은 방문을 닫고 김욱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심유진은 어때요? 좀 나았나요?”“열은 내렸어요. 기분에는 큰 타격이 없는 듯합니다.”조아주머니가 나타날 때를 제외하고 김욱은 아직 심유진의 기분에 큰 변화가 있는
허태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자 심유진의 마음은 불안해 났다.심유진은 이불을 꽉 잡고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얘기를요?”허태준은 심유진에게 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별이에 관해.”올 것이 왔구나.심유진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마셔야 날뛰고 있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심유진은 말했다.“별이는 당신 아들이 아니에요.”이렇게 해야만 심유진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검사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허태준은 심유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목소리는 낮아서 걸쭉했다.“심유진, 자기기만 하지 마.”“내가 자기기만 한다고요?"이 단어는 심유진의 가슴 깊이에 있는 버튼을 누른 듯 했다. 심유진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새까만 눈동자에는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한기가 등에서부터 올라왔다. 허태준의 동공은 수축하었다. 손톱은 손바닥 안의 살을 파고들었다.“허태준씨,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요. 몇 년 동안 자기기만 해온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예전의 나약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유진의 눈빛은 매서웠고 질문은 허를 찔렀다.허태준은 심유진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무슨 소리야?”허태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의혹스러움으로 무고함을 표시하려 했다.“하!”심유진은 더 크게 비웃었다.“기억이 나지 않나 본데요, 별이는 당신이 다쳐서 기절했을 때 가진 아이예요.”심유진의 뜻은 분명했다. 다쳐서 기절한 사람은 그녀를 임신하게 할 수 없었다.연기였다면 모를까.오랜만의 공포감은 또다시 허태준을 휩싸았다. 허태준은 평온해지려 안간힘을 쓰면서 부정했다.“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심유진은 허태준을 한참 바라보았다.허태준도 침묵으로 대응했다. 한마디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기억이 안 난다면 그만둬요.”심유진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허태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입을 열었다.“이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나 보죠?”풍자하는 기색이 더 짙었다.허태준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심유진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끝도 없는 분노가 그녀를 덮쳤다. 심유진은 아랫입술을 꽉 물어서야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심유진은 허태준이 기절한 척한 원인이 자신한테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허태준은 육 년을 참고 견뎌왔다. 이 육 년 동안 CY그룹이 무너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사실상 CY의 수익은 날로 커졌으며 오히려 같은 자리에 서 있던 YT 그룹이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더니 파산 위기에 처해있었다.심유진은 이 중에 허태준의 계략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래서 심유진의 분노는 허태준이 기절한 척 한데에 있지 않았다. 심유진이 한을 품은 것은 허태준의 무책임한 행위로 하여 자신이 긴 시간 동안 집착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 아이를 하마터면 없애버리려 했어요. 알아요?”억울함이 조금씩 밀려왔다. 심유진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떨렸다.허태준은 소리를 내려 하였지만 결국 의미가 없는 세글자만 튀어나왔다.“미안해.”심유진은 드라마 속의 남자주인공처럼 양아치 같은 말투로 마음속의 말을 했다.“사과가 소용 있다면 경찰을 해서 뭐해요?”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미안해 세글자가 또 나오려고 하자 허태준은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쥔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변했다.심유진은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다.“한평생 속여주길 바랬어요.”심유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허태준의 마음을 심하게 타격했다.“돌아가서 어떻게 별이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심유진은 별이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 별이가 맨날 버릇처럼 부르던 아빠가 진짜로 친부라는 얘기를.“별이한테 가족을 이뤄주고 싶어.”허태준의 목적은 간단하고 순수했다.허태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심유진을 한평생 모르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라는것을.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랜 시간 동안 지지부진하게 될 것이다.허태준은 어영부영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평소 같이 속전속결 하고 싶었다.
허태준의 얼굴은 가까이에 확대되었고 까만 눈동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블랙홀 같았다. 그 눈 안에는 심유진이 알 듯 말 듯한 정서가 담겨져 있었다.심유진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발버둥 치려는 것조차 까먹었다.허태준의 혀끝은 심유진의 입술을 파고들어 갔다. 한 손은 그녀의 고개를 받쳐 들면서 이 입맞춤을 더 깊게 했다.심유진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허태준의 어깨에 대고 그를 밖으로 밀어냈다.하지만 허태준은 추호도 움직임이 없었다. 심유진은 혀끝이 저려났다. 허태준은 그제야 심유진을 놓아주었다.허태준은 심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턱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볼로 그녀의 목을 부비댔다.찌릿찌릿한 전류가 심유진의 온몸에 전해졌다. 심유진은 손끝이 오그라들었다.“그런 말 하지 마.”허태준의 낮은 목소리에는 나약함이 섞여 있었다.“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무언가가 심장을 명중한 것같았다. 심유진은 아픔에 이불 시트를 부여잡았다.“잘못을 많이 저질렀어.”허태준은 고백했다.“네가 날 용서하기를 바라지 않을게. 다만 기회를 줘. 너랑 별이한테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심유진의 마음은 쉽게 녹아내렸다.허태준의 뉘우치는 모습은 또 한 번 심유진의 마음을 흔들었다.하지만...“나와 별이는 앞으로 미국에 살게 될 거예요.”그녀의 가족,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는 다 그쪽에 있다. 허태준은 아직 심유진한테 그들을 버릴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허태준 또한 심유진을 위해 자신이 건립한 상업제국을 포기할 리 없었다.“우리는 이미 잘살고 있어요. 행복한걸요. 허태준씨가 더 잘해주지 않아도 돼요.”몇 년간 심유진은 하은설의 도움하에 혼자 별이를 데리고 무탈히 보내왔다. 별이는 그들 옆에서 지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것 외에는 부족함이 없었다.“요즘 미국의 게임 회사와 인수합병을 할 계획에 대해 논하고 있어. 잘 되면 사업 중심을 그쪽에 옮기게 될 거야.”허태준은 말했다.육윤엽이 심유진을 한
갑자기 또 곤두선 심유진을 보면서 허태준은 자신을 믿지 않는 심유진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나한테 기대도 돼.”허태준은 말했다.“별이를 보호할 책임을 다 나한테로 돌려.”그녀의 가냘픈 어깨로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심유진은 멈칫했다. 코끝이 찡해 나자 심유진은 급히 고개를 숙여 눈물을 숨겼다.**“허대표와 얘기는 잘 마무리됐어?”김욱은 썬 사과를 내와 심유진한테 한 조각 건네주었다.심유진은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사과즙이 뿜어져 나오면서 새하얀 이불커버에 노란 자국을 남겼다.“그런 셈이죠.”심유진은 사과를 오물거리면서 말했다.심유진의 마음속에는 사실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왜 허태준의 아이를 임신하게 했는지, 왜 정소월한테 그렇게까지 했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한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기억을 잃었다는 전제가 사라지니 예전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도 가늠할 수 없게 변해버렸다.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이런 것들을 물을 수는 없었다.“무슨 계획이야?”김욱은 물었다.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갑자기 생각나서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심유진도 진지하게 답장해야 했다.심유진은 머리가 복잡했다. 오늘 마주한 메세지는 너무 많아 아직 소화할 수 없었다.“돌아가서 얘기해요.”심유진은 하은설과 상의를 해야 했다. 심유진 혼자서는 결정을 짓기 어려웠다.어쨌든 허태준이 심유진한테 요구하는 것은 따로 없으니 심유진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계획대로 진행하면 된다.“응?”김욱은 그녀의 대답에 멍해졌다.“뭐라고?”심유진도 멍해졌다.“뭐라 했어요?”두 사람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김욱은 의혹스레 입을 열었다.“허대표가 널 찾은 이유가 이소연씨때문이 아니었어?”이소연은 조건웅의 어머니였다. 심유진의 전전 시어머니의 이름이다.“네?”심유진은 놀랐다. 이 일을 아예 까먹었다.김욱은 심유진의 표정을 보니 허태준이 이 일에 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머리가 아팠다. 허태준은 왜 이렇게
김욱이 예상했던 것처럼 경찰은 조아주머니를 불러 얘기를 하고 훈육을 한 후 풀었다. 심지어 그들더러 화해하라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호텔 측의 반응은 빨랐다. 당장에서 조아주머니를 짤랐다. 아마도 돌아와서 귀찮게 할 것 같아서인지 그달 월급까지 주었다.심유진이 머무른 층의 경비는 눈에 띄게 많아졌다. 호텔 부총매니저는 부하들을 이끌고 위문과 사과를 했고 선물까지 배달해 왔다.옛 동료들이었으니 심유진도 모두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다들 모여 앉아 얘기를 했다. 부총매니저는 심유진한테 물었다.“심매니저님, 앞으로 돌아올 생각이신가요?”심유진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아니요! 부총매니저님은 열심히 하면 총매니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겁니다!”부총매니저도 심유진처럼 로열호텔에서 온 사람이었다. 로열에서 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고 업무능력도 강했다.그는 심유진보다도 나이가 많았고 심유진보다 경험이 몇 년 더 많았다. 하지만 심유진이 총매니저가 된 이유는 그녀가 본부에서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부총매니저는 푸념하지 않았지만 심유진은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제가 본부에서 정식으로 이직 절차를 밟으면 재촉할게요. 부총매니저를 승진하게 하라구요!”모두들 부총매니저가 하루빨리 승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부총매니저는 웃고 있었지만 딱히 기쁜 모습이 아니었다.**김욱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끊었다.원래 김욱은 심유진이 이 기회를 빌어 허태준과 잘해보기를 바랬기에 급히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골칫덩어리가 찾아오니 김욱이 지금 떠나지 않고 아저씨가 오라고 할 때 간다면 다리가 끊어질 것이다.심유진은 김욱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떠나는 날, 호텔 문어구에는 적지 않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유진과 허태준의 스캔들은 랭킹에서 없어졌지만 모두들 끊임없이 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김욱은 심유진을 지하 주차장까지 데려다주고 심유진이 차에 무사히 타는 것까지 본 후 일층으로 돌아가 퇴실수속을 했다.지하 주차장의 신호는 있다가도 없어졌
심유진이 따라갈 리가 없었다. 비록 차는 망가졌지만 김욱이 오기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유진이 한참 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자 그 검은 옷의 사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그가 곤봉으로 차창을 내리쳤다. 유리 파편이 차 내부로 튀였다. 심유진은 그 사내의 험악한 웃음이 더 잘 보였다. “이래도 안 내려와?” 그가 위협하자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침착함을 찾으려고 애썼다. “여기 사방이 cctv예요.” 심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경찰이 못 찾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내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웃기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그가 우쭐거리며 심유진을 쳐다봤다. “지금 이 주차장의 모든 cctv는 다 꺼졌어. 내가 여기서 널 죽여도 경찰은 못 찾는다는 뜻이야.” 심유진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당당한데다가 차도 함부로 부수는 걸 보면... “너 호텔 직원이지.” 심유진이 물었다. 자유롭게 호텔 주차장에 들어오고 cctv도 끌 수 있는 사람은 호텔 직원 빼고는 없었다. 사내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자 심유진은 더 확신이 생겼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 머리를 굴렸다.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는 거야.” 사실 심유진은 호텔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고위급 간부들과 접촉하다 보니 직원들과는 만날 기회가 적었다. 지금 이 사내와도 뭔가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심유진은 그 어떤 직원과도 낯을 붉힌 적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아니면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건가?” 아파서 오랫동안 일을 쉬었지만 본사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자리를 채울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경주 킹 호텔의 총지배인은 여전히 심유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그 속사정을 모른 채 호텔에 대한 불만을 자신에게 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사내가 다시 차창을 두드렸다. 파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차를 쾅쾅 두드리자 지하주차장에 메아리가 울렸다. 심유진은 조수석의 틈 사이에 몸을 웅크리며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몸이 차와 같이 흔들렸다. “이래도 안 나와?” 차창은 모두 박살이 났고 차 안에 유리파편이 가득했다. 그냥 심유진이 숨어있는 곳만 간신히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죽고 싶어?” 그가 또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심유진은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그와 대항할 수 없었기에 그냥 최대한 피하며 누군가가 구하러 오기까지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오면 안 건드린다고 약속할게.” 심유진이 물러서지 않자 그가 살짝 태도를 바꿨다. “어차피 널 다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냥 나랑 같이 가주기만 하면 돼.” 심유진은 귀를 틀어막으며 애초에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김욱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사내도 이제는 심유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직도 누가 구해주러 올 거라고 생각해?” 사내의 웃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심유진은 귀를 막고 있던 손을 살짝 풀었다.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이미 고장 났어. 계단 쪽 문도 이미 잠갔고.” 사내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 오빠가 먼저 도착할지 아니면 내가 먼저 널 잡아갈지 맞춰봐.” 심유진이 멈칫했다. 킹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두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만 지하주차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그게 고장 나고 계단으로 통하는 문도 잠겼다면 호텔 정문과 2,300 메터정도 떨어진 입구로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주차한 위치는 그 입구와 가장 먼 곳이었다. 사내가 심유진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곧 잡힐 것만 같았다. 추위에 얼어서 파래진 사내의 손끝을 보면서 심유진은 그 손을 덥석 잡고는 꽉 물었다. 그가 비명을 질렀다. “이 년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심유진은 손을 문채 놓지 않았다. 사내도 더 이상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김욱이 가면서 차 키를 가져갔기에 문이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