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각종 댓글들을 눈여겨보았다.아마 자신과 허태준이 대중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는지 네티즌들이 한창 논쟁을 벌일 때 심유진은 제삼자의 관점에서 냉정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그녀가 허태준한테 어울리는지에 대해 평가할 때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노가 치밀었고 쪽팔리기도 했다.김욱은 심유진의 저기압을 눈치챌 수 있었다. 네티즌들의 험한 댓글도 물론 봤었다.김욱은 심유진과 달랐다. 그는 모든 아픔과 눈물을 삼키지 않았다.병실에서 조용히 나와 김욱은 전화를 걸었다.반 시간 후 모든 실검은 내려졌다. 이 사건과 관련된 트위터도 모두 삭제되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심유진은 주사를 더 맞아야 했다.인터넷의 열기가 가라앉자 김욱은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심유진은 마스크까지 썼다. 마스크를 하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평범했다.처방대로 약을 끊어주는 간호사 외에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었다.김욱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협박 어린 말투로 말했다.“조용히 주사만 맞고 갈 건데 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다들 직업윤리가 있겠죠?”간호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입니다.”심유진은 구석에 안배되었다. 김욱은 심유진의 사선에 앉았다.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김욱은 심유진이 양다리를 걸친다는 검색어로 실검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다행히 모든 것은 순리로웠다.하지만 호텔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욱은 그들을 따라붙은 차량을 발견했다.차는 보통 차였다. 백미러로는 차 안의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어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유진아, 손잡이를 꽉 잡아.”김욱은 심유진한테 말했다.심유진은 아직 아픈 몸이라 머리가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그녀는 머리 위의 손잡이를 겨우 잡았다.“왜...”왜요라는 두 글자를 채 말하기도 바쁘게 몸은 앞으로 쏠렸다. 김욱은 엑셀을 끝까지 밟았다.오후라서 큰길에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지도 않
오래 못 뵈었던 조아주머니는 왜인지 호텔의 청소부 제복을 입고 있었다.조아주머니는 밀대를 잡고 있었다. 심유진의 방문 앞 바닥은 아직 흥건했다.조아주머니의 등은 예전보다 더 굽어있었고 많이 말라보였다.“유진아!”조아주머니는 심유진이 여태껏 보지 못했던 아냥을 떠는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굴의 주름은 미소 때문에 더 깊어졌다.조아주머니는 밀대를 던지고 심유진 쪽으로 다가왔다. 걸음걸이는 너무나도 빨라 도저히 그 나이대로는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놀라서 연신 뒷걸음질 쳤다. 오른손은 무의식적으로 김욱의 어깨를 꽉 잡았다.김욱은 사진으로만 심유진의 전 시어머니를 본 적이 있었다. 사진 속의 여인은 피부 케어를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눈앞의 이 사람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었다.그래서 김욱은 조아주머니를 못 알아보았다.심유진이 공포감을 드러내자 김욱은 경각성을 높였다. 김욱은 심유진의 앞에 나서서 그녀와 이상한 청소부를 갈라놓았다.조아주머니는 김욱의 행동을 보자 발걸음을 멈췄다. 조아주머니는 김욱과 심유진의 친밀한 자태를 보자 입을 삐죽하였다. 눈가에 혐오감은 언제 그랬나 싶이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유진아!”조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라서 가죽밖에 남지 않은 듯한 두 손은 포개졌고 얼굴에는 슬픔과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엄마가 밥도 안 먹고 여기서 널 하루 종일 기다렸단다.”하지만 토로해낸 어려움은 심유진한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돌아가시지 않는다면 경비를 부를 겁니다.”심유진은 차갑게 협박했다.조아주머니는 심유진이 이렇게 매정하게 나올지 몰랐다. 조아주머니는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이윽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유진아, 예전 일은 엄마가 잘못했다...”조아주머니는 말을 끝내기 바쁘게 바닥에 꿇었다.“엄마가 이렇게 빌게. 용서해다오!”조아주머니의 눈물은 얼굴의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심유진은 차갑게 바라보기만 할 뿐 마음은 호수마냥 잔잔했다.심유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조아주머니가 이런
역시 낯짝이 두꺼운 데는 조씨가족 사람이 제일이었다. 타인은 말을 타고 쫓아가려 해도 못 따라잡을 정도다.심유진이 말문이 막히자 조아주머니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심유진, 솔직히 얘기하마.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널 신고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 앞에서 고상한 척 하지 마!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서 다시는 무슨 총매니저를 못 하게 할 테니까!”“하세요.”심유진은 조아주머니의 협박에 신경 쓰지 않았다.조건웅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 난 안건이다. 조건웅의 가족도 인정을 하고 싸인을 했다. 이제 와서 다시 뒤집으려면 어려울 것이다.더군다나 심유진이 조아주머니가 바라던 대로 바닥까지 끌려내려 온다면 조아주머니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조아주머니는 멈칫했다.“물...”조아주머니는 열심히 언어를 조직했다.“물론 널 신고할 수야 있지. 하지만 너한테 기회를 한번 줄 거야! 네가 건이를 위해 힘써준다면 말이다. 허대표보고 건이를 봐줘라고 해라!”심유진이 아는 허대표는 한 사람뿐이다. “허태준이요?”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렸다.이 사람이 언제부터 조씨 가족 사람과 연관이 있었지?조아주머니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랑 허대표랑 친하다며? 뉴스에서...”조아주머니는 말하다 말고 김욱을 바라보았다.“흠...아무튼, 나를 안 도와준다면 너를 신고해 버릴 거야!”심유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조씨가문 사람한테는 절대 마음을 나약하게 먹지 않았다.“얘기했잖아요? 신고하세요.”조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반응에 이를 악물었다.“심유진, 이 괘씸한 것! 그때 가서 내가 언질을 안 해줬다고 탓하지 마라!”심유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욱의 뒤에 숨어서 경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경비는 나름 빨리 도착했다. 조아주머니가 김욱을 타파해서 심유진을 잡기 전에 무사히 조아주머니를 제압했다.조아주머니는 발버둥 치면서 소리 질렀다.“살려줘요! 경비가 사람을 죽이려 들어요!”돼지 멱따는 소리
김욱은 경찰서로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이번 일은 호텔 경비를 탓할 일이 아니야.”김욱은 말했다.조아주머니는 실제로 킹 호텔의 청소부였다. 심유진이 귀국하기 전에 이미 입사 하였고 한달 가까이 일을 했다고 한다.“하지만 조아주머니가 킹 호텔에 오게 된 이유는 널 찾기 위해서야.”김욱은 경비팀 팀장과 얘기를 나눴었다. 경비팀 팀장은 아는 것을 모두 김욱한테 알려주었다.“저를 찾아서 뭐 하려는데요?”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렸다.김욱은 어깨를 으쓱하였다.“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대.”조아주머니는 호텔에서 며칠 소란 피웠었다. 그리고 며칠을 잠잠하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는 이미 입사를 한 후였다.호텔은 늘 일손이 부족했다. 조아주머니는 일을 잘했기에 삼일 수습 기간을 순리롭게 통과하여 호텔과 계약을 맺었다.조아주머니의 아들한테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조아주머니와 같은 시프트 근무를 하는 아줌마는 조아주머니가 늘 아들이 잘났고 CY에서 일하면서 높은 월급을 받는다고 자랑했다고 한다.“CY에서 일한다구요?”심유진은 포인트를 잡았다.그래서 조아주머니가 자신더러 허태준한테 부탁하라고 했구나.“이 일은 허대표랑 얘기해 볼게.”김욱은 말했다.“어떻게 해결할지 보자구.”“아니. 얘기하지 마요!”심유진은 급히 막아 나섰다.조건이가 CY에서 일한다는 것을 빼면 이 사건은 허태준과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심유진은 허태준과 관련도 없는 일로 허태준을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김욱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래.”김욱은 언제든지 허태준한테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다른 한편.조아주머니가 경찰에 실려서 호텔을 나갈 때 허태준은 이미 소식을 받았다.허태준은 업무교대를 하고 급히 문을 나섰다.허태준은 호텔로 바로 가지 않았다.허태준과 심유진은 실검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많은 기자들이 CY와 킹 호텔의 문어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허태준은 파파라치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아
그러기에 조건이가 주식을 추천한 행적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되고 말았다.내막을 알고 하는 거래는 이미 불법인 데다가 조건이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행동했으니 이상해 할것도 없었다.조건이의 직속 상사는 경영진의 생각을 몰랐기에 당장 조건이를 짜르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경찰은 이미 수사에 들어갔고 지금은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였다.이러한 사실은 금융회사의 총책임자가 허태준을 만나고 나서야 부하직원한테서 전해 들었다.“허대표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총책임자는 사과했다.“더 신경쓰지 못했습니다.”“그 사람 탓이지요.”허태준은 누군가가 조건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해서 조건이가 얌전히 근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어디 제 버릇을 남 주겠는가.“경찰의 수사에 협조를 잘해주세요. 뭐가 필요하면 다 들어주시구요.”허태준은 말을 끊고 정중히 경고했다.“다음부터는 규율을 위반하면 안 됩니다.”총책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기자를 전부 보냈다는 소식을 받고 나서야 허태준은 킹 호텔로 갔다.허태준은 예전처럼 당당히 들어가지 못했다. 호텔의 투숙객은 적지 않았기에 쉽사리 카메라에 찍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허태준은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심유진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머무르고 있는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허태준은 시름을 놓고 벨을 눌렀다.한참 있다가 김욱의 경각성 높은 목소리가 전해왔다.“누구세요?”허태준은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예요.”김욱이 알아듣지 못할가봐였다.허태준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김욱은 허태준을 들여보냈다.“찾으려던 참이었어요.”김욱은 심유진이 안에서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허태준은 방문을 닫고 김욱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심유진은 어때요? 좀 나았나요?”“열은 내렸어요. 기분에는 큰 타격이 없는 듯합니다.”조아주머니가 나타날 때를 제외하고 김욱은 아직 심유진의 기분에 큰 변화가 있는
허태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자 심유진의 마음은 불안해 났다.심유진은 이불을 꽉 잡고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얘기를요?”허태준은 심유진에게 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별이에 관해.”올 것이 왔구나.심유진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마셔야 날뛰고 있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심유진은 말했다.“별이는 당신 아들이 아니에요.”이렇게 해야만 심유진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검사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허태준은 심유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목소리는 낮아서 걸쭉했다.“심유진, 자기기만 하지 마.”“내가 자기기만 한다고요?"이 단어는 심유진의 가슴 깊이에 있는 버튼을 누른 듯 했다. 심유진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새까만 눈동자에는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한기가 등에서부터 올라왔다. 허태준의 동공은 수축하었다. 손톱은 손바닥 안의 살을 파고들었다.“허태준씨,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요. 몇 년 동안 자기기만 해온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예전의 나약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유진의 눈빛은 매서웠고 질문은 허를 찔렀다.허태준은 심유진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무슨 소리야?”허태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의혹스러움으로 무고함을 표시하려 했다.“하!”심유진은 더 크게 비웃었다.“기억이 나지 않나 본데요, 별이는 당신이 다쳐서 기절했을 때 가진 아이예요.”심유진의 뜻은 분명했다. 다쳐서 기절한 사람은 그녀를 임신하게 할 수 없었다.연기였다면 모를까.오랜만의 공포감은 또다시 허태준을 휩싸았다. 허태준은 평온해지려 안간힘을 쓰면서 부정했다.“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심유진은 허태준을 한참 바라보았다.허태준도 침묵으로 대응했다. 한마디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기억이 안 난다면 그만둬요.”심유진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허태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입을 열었다.“이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나 보죠?”풍자하는 기색이 더 짙었다.허태준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심유진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끝도 없는 분노가 그녀를 덮쳤다. 심유진은 아랫입술을 꽉 물어서야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심유진은 허태준이 기절한 척한 원인이 자신한테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허태준은 육 년을 참고 견뎌왔다. 이 육 년 동안 CY그룹이 무너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사실상 CY의 수익은 날로 커졌으며 오히려 같은 자리에 서 있던 YT 그룹이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더니 파산 위기에 처해있었다.심유진은 이 중에 허태준의 계략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래서 심유진의 분노는 허태준이 기절한 척 한데에 있지 않았다. 심유진이 한을 품은 것은 허태준의 무책임한 행위로 하여 자신이 긴 시간 동안 집착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 아이를 하마터면 없애버리려 했어요. 알아요?”억울함이 조금씩 밀려왔다. 심유진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떨렸다.허태준은 소리를 내려 하였지만 결국 의미가 없는 세글자만 튀어나왔다.“미안해.”심유진은 드라마 속의 남자주인공처럼 양아치 같은 말투로 마음속의 말을 했다.“사과가 소용 있다면 경찰을 해서 뭐해요?”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미안해 세글자가 또 나오려고 하자 허태준은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쥔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변했다.심유진은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다.“한평생 속여주길 바랬어요.”심유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허태준의 마음을 심하게 타격했다.“돌아가서 어떻게 별이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심유진은 별이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 별이가 맨날 버릇처럼 부르던 아빠가 진짜로 친부라는 얘기를.“별이한테 가족을 이뤄주고 싶어.”허태준의 목적은 간단하고 순수했다.허태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심유진을 한평생 모르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라는것을.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랜 시간 동안 지지부진하게 될 것이다.허태준은 어영부영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평소 같이 속전속결 하고 싶었다.
허태준의 얼굴은 가까이에 확대되었고 까만 눈동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블랙홀 같았다. 그 눈 안에는 심유진이 알 듯 말 듯한 정서가 담겨져 있었다.심유진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발버둥 치려는 것조차 까먹었다.허태준의 혀끝은 심유진의 입술을 파고들어 갔다. 한 손은 그녀의 고개를 받쳐 들면서 이 입맞춤을 더 깊게 했다.심유진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허태준의 어깨에 대고 그를 밖으로 밀어냈다.하지만 허태준은 추호도 움직임이 없었다. 심유진은 혀끝이 저려났다. 허태준은 그제야 심유진을 놓아주었다.허태준은 심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턱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볼로 그녀의 목을 부비댔다.찌릿찌릿한 전류가 심유진의 온몸에 전해졌다. 심유진은 손끝이 오그라들었다.“그런 말 하지 마.”허태준의 낮은 목소리에는 나약함이 섞여 있었다.“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무언가가 심장을 명중한 것같았다. 심유진은 아픔에 이불 시트를 부여잡았다.“잘못을 많이 저질렀어.”허태준은 고백했다.“네가 날 용서하기를 바라지 않을게. 다만 기회를 줘. 너랑 별이한테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심유진의 마음은 쉽게 녹아내렸다.허태준의 뉘우치는 모습은 또 한 번 심유진의 마음을 흔들었다.하지만...“나와 별이는 앞으로 미국에 살게 될 거예요.”그녀의 가족,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는 다 그쪽에 있다. 허태준은 아직 심유진한테 그들을 버릴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허태준 또한 심유진을 위해 자신이 건립한 상업제국을 포기할 리 없었다.“우리는 이미 잘살고 있어요. 행복한걸요. 허태준씨가 더 잘해주지 않아도 돼요.”몇 년간 심유진은 하은설의 도움하에 혼자 별이를 데리고 무탈히 보내왔다. 별이는 그들 옆에서 지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것 외에는 부족함이 없었다.“요즘 미국의 게임 회사와 인수합병을 할 계획에 대해 논하고 있어. 잘 되면 사업 중심을 그쪽에 옮기게 될 거야.”허태준은 말했다.육윤엽이 심유진을 한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