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민은 점점 짜증이 났다.“나랑 나...”그가 입을 열자 마자 허태준은 말을 짤랐다.“우리 둘도 마셔야지.”여형민은 불만스레 허태준을 노려보았다.허태준은 눈빛으로 여형민에게 실수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렸다. 술을 마시자 일부러 물었다.“취했어? 옆에 휴식실에서 쉴래?”허태준의 말로 인해 온 테이블의 시선은 여형민에게로 집중되었다.다들 걱정스레 여형민을 바라보았다.큰 아저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은희야, 형민이의 얼굴색이 빨간 것이 걱정되는구나. 아버지랑 얘기해서 먼저 집에 데려가 휴식하게 해야 하지 않겠냐?”여형민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거절했다.“아닙니다. 취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다들 큰 아저씨의 의견에 찬성하는 것 같았다.나아주버님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형민이 괜찮다고 하자 친히 이쪽으로 와서 여형민을 타일렀다.“여기는 이제 되었으니 은희랑 먼저 가보거라.”그리고 나은희한테 분부했다.“먹을 것을 포장하게 하였으니 조금 이따가 잊지 말고 챙기거라. 그리고 형민이랑 집에 가보거라.”나은희는 대답했다.“네.”장인어른이 입을 열자 여형민도 말을 들었다. 술잔을 들고 조용히 옆에 서 있었을 뿐이다.**포장된 음식은 나은희의 손에 쥐어있었다.나아주버님은 그들을 위해 차량을 안배했다. 나은희가 찾지 못할까 봐 정차된 위치에 대해 중복으로 여러 번 알려주었다.허태준은 다가가서 그들한테 물었다.“저도 태워주면 안 되나요?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가 없어서요.”“그래!”나아주버님은 흔쾌히 대답했다.“어디로 가려거든 기사한테 얘기하면 돼. 너를 먼저 보내주라고 할게.”“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허태준은 감사를 표하며 여형민의 팔을 잡았다.“가자.”여형민은 허태준한테 끌려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나은희는 포장한 음식을 들고 그들 뒤를 따라나섰다.“허대표님이 계시니 바래다 주지 않을게요.”나은희는 포장된 음식을 허태준한테 건네주면서 말했다.“아버지 차를 타고 가세요. 주차된 위치는 아버지가 여러 번 얘기해
”네?”허태준의 입에서 죄송하단 말이 나오다니, 나은희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허태준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죄송합니다.”“뭐가요?”나은희는 의혹이 앞섰다.“오늘 일어난 일은 형민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허태준이 말했다.“다 제가 벌인 일이예요.”그는 옆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일 친한 친구가 자신 때문에 억울함을 당하는 게 더 싫었다.나은희는 눈을 깜빡였지만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왜죠?”허태준은 결혼식을 파괴할 이유가 없었다.그는 두 신인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거니와 두 가족에도 아무런 원한이 없을 것인데.아무리 생각해도 여형민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 같은데.“심연희가 더 괴로워하기를 바랐어요.”심연희 얘기가 나오자 허태준의 눈에는 음침함이 스쳐 지나갔다.심연희는 심유진을 다치게 하고 법정이 열리기 전에 사라져 도주범이 되어 추격당했다. 나은희는 허태준과 심유진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허태준이 심유진을 위해 심연희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하지만 이 일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갔다.“애초에 심연희가 정재하를 버린 건데 그 사람이 속상할 게 뭐가 있어요?”나은희의 인상 속에 헤어지면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생활은 이미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기에 상대방이 잘살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불편할 일도 없다.하필 심연희는 나은희와 상반되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심연희는 정재하를 차버리고 허태서한테 시집간 후 꿈에 그리던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비참하게 살았기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타격이 심했다.각 매체에서 정재하와 나지희의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되니 그녀의 마음은 불공정으로 가득 찼다—나 지혜가 얻게 된 모든 것은 원래 그녀의 것이었다!필경 정재하는 한 마리의 개처럼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그녀가 아니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하지만 막다른 길에 선 심연희에게 정재하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나은희는 몸을 휘청했다. 마음 깊숙이에서부터 희열이 머리를 내밀자마자 나은희는 싹을 잘랐다.여형민이 이혼을 원치 않은 이유는 그녀와 다를 것이다. 그녀는 좋을 대로 해석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할 말은 다 했어요.”허태준은 똑바로 앉고 안전벨트를 맸다.“여형민과 같은 동네에 사니까 집 부근까지 데려다주면 됩니다.”“...네.”나은희는 머리를 흔들면서 쓸데없는 잡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입술을 오므린 채 엑셀을 밟았다. 화려한 슈퍼카는 빨간색 번개마냥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주차장을 떠났다.**나은희는 허태준을 동네 문앞에다가 내려놓았다.허태준은 차에서 내리고 나서 주머니에서 무음모드를 해놓은 핸드폰을 꺼냈다.스크린에는 여형민한테서 온 전화뿐이었다. 삼십몇 통이나 되었다. 안 읽은 메세지도 이십여 개나 되었다. 보지 않아도 이 메세지를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허태준은 무시한 채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와 열정적이게 인사를 나눈 경비한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심연희의 사건을 해결하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또 한 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시름을 놓기에는 일찍 하다. 남은 일들이 더 성가신 일들이기 때문이다.그중 제일 성가신것은...허태준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심유진은 도대체 언제 자신한테 연락을 줄까?** 심연희가 잡힌 뉴스는 금세 각 웹사이트 메인에 떴다.이 사건과 동시에 일어난 일은 바로 사영은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사건은 폭탄과도 같아 그 영향은 어마어마했다.사영은은 머리를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고 의사도 식물인간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사영은은 호흡기와 영양액으로 목숨을 부지했다.하지만 어제저녁에 순찰을 돌던 간호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영은의 호흡기는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녀 침대 옆 계측기에는 아무런 기복이 없는 직선이 그려져 있었다.한차례의 구급을 진행한 후 의사는 정식으로 사영은의 사망을 선고했다.신고를 접수한 경
밤이 깊었다.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허태준은 파일을 닫고 펜을 놓았다.옆에 놓인 핸드폰은 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별이는 두 날 전 유치원에서 조직한 겨울 캠프를 떠났기에 핸드폰을 가지고 갈 수 없어 연락할 길이 없었다.오랜 습관이 바뀌게 되니 허태준은 정신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잃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업무를 했고 생기를 점점 잃어갔다.그는 피곤하여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두 손가락으로 아픈 눈썹 혈을 지그시 눌렀다.12시가 다가오자 통유리창을 통해 여전히 불빛이 환한 옆 건물 인터넷 회사를 볼수 있었다.마음속의 허전함은 조금 가셔지는 듯했다—적어도 이렇게 깊은 밤에 외로운 사람은 허태준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허태준은 여형민에게 전화했다.그날 대회장 주차장에서 여형민을 버린 채 떠난 후로 그에게서 삼십여 통의 전화가 걸려와도 허태준은 받지 않았다. 그 뒤로 여형민은 허태준을 찾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허태준은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답장이 없다.전화도 무응답이었다.허태준은 지금 남은 게 시간뿐이었다.그래서 그는 전화를 한 통 한 통 걸었고 문자도 한 통 한 통 보냈다. 심지어 심한 말까지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집 앞에까지 찾아갈 거야.”아마도 허태준한테서 광기를 느꼈는지 여형민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상당히 불친절한 말투였다.“저녁인데 뭐 하는 거야? 여자나 찾지! 나를 왜 귀찮게 해!”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금방 잠에서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허태준은 여형민의 분노를 무시한 채 물었다.“술 마실래?”“마시긴 뭘 마셔!”**허태준은 위스키 한 병을 까자마자 룸의 문이 열렸다.여형민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들어왔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 말이다.“미친놈! 이렇게 늦었는데 나를 왜 불러!”허태준은 술이 담긴 잔을 건네면서 말했다.“마셔봐. 비싼 술이야.”비싸다는 말은 마법과도 같아 여형민은 금세 부정적인 정서를 버렸다.그는 천천히 한 모금을 음미하면서 평가를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널 좋아하니까.”허태준의 목소리는 룸 안에 퍼졌다. 은근 질투하는 것 같았다.“누가 나은희를 좋아한대!”여형민은 발칵 뒤집힌 듯했다. 술잔을 탁자에 쾅 하고 놓고 허태준한테 경고했다.“제멋대로 상상하지 마!”하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과 피날 것 같이 빨갛게 물든 귀는 그의 마음을 폭로하였다.“나도 눈이 있어서 볼 수 있어.”허태준은 피식하더니 금세 정색했다.“나한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여형민의 몸은 흠칫했다.허태준의 말은 바늘처럼 그의 몸을 찔러댔다. 그의 모든 기를 방출한 것 같았다.술을 마시자 그는 용기를 얻었다. 자존심 또한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은 게 아니라...내 마음을 아직 잘 모르겠어.”여형민은 솔직하게 말했다.그는 나은희한테 아직 증오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그녀가 하찮은 수법으로 그를 해치고 그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증오했던 마음도 함께 보낸 오랜 시간 동안 점점 옅어만 갔다. 이윽고 무언가 다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여형민은 이게 무슨 감정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그는 단지 나은희가 자신을 오해할 때 화가 나고 슬퍼지고 무서워졌다는 감정을 느낄 뿐이다. 나은희가 이혼 얘기를 꺼낼 때 그의 몸속 모든 세포가 반항을 하는 것 같았다.“그게 좋아하는 거야.”허태준은 결론을 내려줬다.다만 이런 좋아하는 마음은 아직 그가 나은희에 대한 습관적인 반감에 가려져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여형민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허태준한테 정곡을 찔리자 그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화해야만 했다.“좋아한다면 잘해줘.”허태준은 말렸다.“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마누라가 떠나면 후회하게 될 거야.”“너처럼?”여형민은 곁눈질로 허태준을 보면서 장난스레 웃었다.“나는 너랑 달라.”허태준은 당당했다.“심유진은 날 좋아하지 않아.”그는 그녀를 조사했다.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 얼마나 차갑고 매정하게 대했는지를 잘 알았
무슨 일?“무슨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허태준은 자신을 비웃었다.그래야 그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심유진은 하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어 허태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허태준은 또 짜증이 났다.“술이나 줘.”그는 긴 팔을 내밀면서 술잔을 가지려 했다. 여형민은 뒤로 숨으면서 술잔 안의 술을 흘렸다. 두 사람의 옷은 술에 젖었다.질척한 옷감이 피부에 닿자 차가워났다. 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렸다.그는 옷을 벗어 던지고 웨이터를 불렀다.“새것으로 부탁해요.”오늘의 웨이터는 새로 온 사람이었다. 매니저의 귀띔하에 허태준을 기억했지만 여형민은 몰랐다. 이 시각 룸안에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을 한 두 사람을 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이렇게 되니 허태준은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그는 양팔을 안고 여형민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했다.여형민은 잘못을 인지하고 더 까불지 않았다.“옷은 내가 빨아줄게.”웨이터는 나가자마자 다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여형민의 빨아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웨이터의 머릿속에는 피 끓는 드라마가 스쳐 지나갔다.허태준은 차갑게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는 몸을 흠칫했다.그는 미소를 띠면서 물었다.“허대표님,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나요?”허태준은 사이즈를 얘기하였고 웨이터는 받아적었다. 그리고 급히 떠났다.옷이 더러워지자 허태준은 계속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결산하고 웨이터가 보내온 새 옷을 들고 떠나려 했다.여형민은 금세 따라붙었다.“나도 데려다주지?”그는 예쁘게 웃었다.두 사람은 모두 술을 마셨기에 운전을 할 수 없었다. 허태준은 데리러 올 기사가 있었지만 여형민은 없었다.웨이터는 문밖에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 사람은 너무 주동적인 게 아닐까?더 놀라운 것은 허태준이 거절하지 않은 것이다.**경주의 상류층에는 금세 CY 허대표가 게이라는
코를 찌르는 향수냄새에 허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태준은 그녀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꺼져.” 여자들을 옆에 끼고 좋아하던 다른 사람들도 허태준의 목소리에 숨을 죽였다. 대표는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내 기억 좀 봐.” 그는 아가씨들을 내보내고 직원을 불러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 크고 마른 체형의 젊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20대 정도 돼보였는데 값싼 정장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모습이 무척 느끼했다. 그들은 아까 들어온 여자들처럼 허태준에게 들러붙었다. 허태준은 예상도 못하고 있다가 그들이 자신에게 달라붙고 나서야 화가 나서 몸을 일으켰다. 허태준은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왔다. 허태준은 화장실부터 갔다. 그는 수도꼭지를 틀고 아까 남자들이 입을 맞춘 얼굴을 벅벅 씻어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아까의 그 구역질 나는 상황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지만 허태준은 얼굴을 씻느라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대표님?” 놀란듯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세요?” 허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김욱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태준이 급히 피했다. 그는 휴지를 뽑아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언제 귀국하셨어요?” 허태준이 침착한 척하며 김욱에게 물었다. 하지만 심장은 계속 거세게 뛰고 있었다.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머니에 꽂은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제요.” 김욱이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비약회사와의 합작을 논하려고 들어왔어요.” 비약은 무역회사였는데 CY 그룹과도 합작한 적이 있었기에 허태준도 낯설지 않았다. “그렇군요.”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유진의 상황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유진의 일에 관해서 허태준은 직접 들은 사실만 믿을 수 있었다. 직접 들은 것이 없다면 그는 계속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욱이
“무슨 일인데?” 허태준이 물었다. 여형민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어제 킹 호텔에서 유진 씨를 만났어.” 허태준은 심장이 덜컹했다. 잠시 뇌가 멈춘 것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온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허태준은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여형민은 한번 더 방금 했던 말을 중복했다. “어제 고객님 한 분을 킹 호텔에 모셔다 드렸는데 체크인할 때 유진 씨 오빠를 만났어. 이름이 뭐더라? 김... “김욱.” 허태준이 먼저 대답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내가 인사를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까 옆에 누굴 부축하고 있더라고.” 여형민이 뒤의 말을 이어가지 않아도 허태준은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허태준은 손발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심유진이 귀국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김욱과 만났지만 그 역시도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거리감은 허태준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그는 이 원인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의자에 걸린 외투를 들고 허태준이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켜서인지 아니면 너무 불안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행히 얼른 테이블을 붙잡았기에 여형민 앞에서 주저앉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여형민이 얼른 달려와서 부축했다. “괜찮아. 나 나갔다 올게. 오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비서한테 대신 전달해 줘. 중요한 일은 일단 부대표한테 전달하고 급하지 않은 건 나 돌아와서 다시 보자고.” “지금 킹 호텔로 갈 거야?” 여형민이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 시밖에 안 됐어. 유진 씨가 일어나지도 않았겠다.” “집에 가서 씻으려고.” 허태준은 지금 온몸에 술냄새와 향수냄새가 가득했다. 일에 집중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왠지 그 코를 찌르는 냄새가 너무 불편했다. 여형민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같이 갈까?”여형민은 허태준이 순간 흥분해서 심유진을 자극할만한 말을 내뱉을까 봐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