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설은 별이의 핸드폰에서 허태준의 사진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별이도 허태준이 오늘 음식을 해준다고 미리 하은설한테 얘기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빠른 속도로 업무를 마치고 급히 집으로 왔다.다행히도 실물을 보게 되었다.“허태준씨.”하은설은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의 앞에 다가서서 손을 내밀었다.“유진이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허태준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고 멈칫하다가 악수를 했다.하은설은 이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허태준한테 심각한 결벽이 있다는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녀가 손을 내민것은 그가 어떻게 반응을 하나 보기 위함이다.그녀는 그가 거절할줄 알았다. 하지만…하은설은 더 큰 미소룰 지었다.“별이한테 듣자하니 오늘 저녁을 해준다고 했다면서요?”그녀는 식탁을 힐끔 바라보았지만 텅 비어있었다.“아직 다 못했나요?” 별이가 먼저 대답했다.“이미 다 먹었어요! 아빠가 해준 음식이 너무 맛있었어요! 이…밖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었어요!”별이는 원래 이모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었다고 말하려다가 이모가 슬퍼할까봐 말을 바꿨다.별이의 칭찬은 거짓이 아닌것 같았다. 하은설은 허태준같이 바쁜 사람이 언제 요리실력을 갈고 닦겠나 의심했지만 입으로는 유감을 표시했다.“더 일찍 들어왔어야 할텐데.”“하은설씨가 아직 식사를 못했다면 남은 재료로 요리를 해볼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예요.”허태준은 과입접시를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아니예요!”하은설은 다급히 허태준을 불러 세웠다.“다이어트중이라서 나중에 고구마나 쪄 먹으면 돼요.“고구마얘기를 하니 별이는 입을 삐죽했다.“아빠가 해준 고구마맛탕이 진짜 맛있는데! 고구마가 나른한데 설탕을 바르니까—아, 또 먹구싶다!”하은설은 그렇게 열량이 높은 음식은 진작에 끊었다. 하지만 별이의 얘기를 듣고나니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오늘만 예외를 두죠!”그는 하은설을 부추겼다.“요리를 할테니 별이랑 놀고 있어요.”하은설은 결국 고구
허태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쩌다가 심유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허태준이 물음표를 보내고 나서 심유진은 더 답장이 없었다.하은설은 오히려 허태준을 달갑게 대해줬다. 대접을 받았으니 집안에 소장해온 진귀한 차를 내왔다.그들은 쇼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별이는 허태준의 품에서 장난감을 놀고 있었다.하은설은 화제를 별이에게로 돌렸다.“얘가 허태준씨를 많이 좋아해요.”허태준은 듣고는 자상한 얼굴로 별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네.”“무슨 계획이예요?”하은설은 물었다.허태준은 그녀의 말뜻을 몰랐다.“네?”“심유진과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계획이 있나요?”하은설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두 눈은 허태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허태준은 간신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손가락은 찻잔의 변두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무슨 계획이냐고?그는 당연히 심유진과의 미래를 그리고 있지.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지만, 심유진도 아직 완전한 배척감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무서웠다. 다시 함께 있게 되면 그녀가 또 한 번 그를 멀리 밀어낼까 봐.그리고…별이의 비밀도 있고.한평생 그녀를 속인 채로 산다면…마음이 평생 편치 못할 것이다.“심유진과 허태준씨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어요.”하은설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허태준은 멈칫했다. 별이를 안고 있는 두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일 년 전까지만해도 여기에 나타나자마자 쫓아내는 건데.” 하은설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가볍게 웃었다.별이는 하은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망연하게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의혹스런 눈빛으로 허태준을 바라보았다.허태준은 더욱 난처해했다. 하은설은 그의 당황함과 불안감을 눈치챘다.그녀가 원하는 바다. 그녀는 별이가 허태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기에 그가 별이의 마음속 이미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별이는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이모랑 삼촌이랑 할 얘기가 있어.”별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입을 삐죽하면서 쇼파에서 뛰어 내려왔다.“얘
“미안해요.“허태준은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몇 년 전에 사고가 나서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그는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반응을 둔갑했다.“아…”하은설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심유진이 피뜩 얘기를 했었던 것 같았다.그녀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그러니까 아까 한 얘기는 다 소귀에 경을 읽은 셈인가?허태준은 기억을 상실한척했다.“제가 예전부터 심유진을 알았나요? 얘기해준 사람이 없어서요. 방금 한 얘기를 자세히 해줄 수 있나요?”하은설은 그들 사이에 엮인 일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잊으셨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하은설은 오히려 시름이 놓였다.“심유진을 좋아해요?”그녀는 정중하게 허태준한테 물었다.심유진을 맞이할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은설한테는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좋아합니다.”—허태준은 여전히 얼굴을 붉혔다.“심유진과 같이 있고 싶으신가요?”“네.”“별이를 친아들처럼 편견 없이 돌봐줄 수 있으신가요?”“그럼요.”“좋아요.”하은설은 그의 솔직함에 만족했다.“도와줄게요.”허태준은 오히려 의외였다.그는 더 정력을 들여야 심유진의 절친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라도 한 듯 하은설은 강조했다.“제가 도와주는 것은 허태준씨때문이 아니예요. 별이가 허태준씨를 너무 좋아하니까...별이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거예요.”허태준은 대답했다.“어떤 이유에서든지 고맙습니다.”“고마움을 표시하려거든 심유진과 별이한테나 잘해주세요.”하은설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고 또 허태준을 가리켰다.“제가 계속 보고 있을 겁니다! 예전처럼 허튼짓을 한다면 그들 둘을 당신한테서로부터 떼어갈 겁니다!”“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허태준은 웃었다.“육아저씨가 그전에 제 다리를 분질러버릴 겁니다.”하은설은 육윤엽이 심유진을 대할 때 긴장했던 자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허태준과 같이 웃었다.“그렇겠네요.”**허태준은 별이와 한참 놀다가 떠났다.다시 호텔로 돌아와서야
아침 일찍 허태준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포장하여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텅 빈 병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여기에 있던 환자는 어디에 갔나요?”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었고 나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겪은 중년 백인 여성도 허태준의 얼굴을 보자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잘생긴 얼굴을 본 데에 대한 반응이었다.“영어를 참 잘하시네요. 그리고...억양도 매력 있어요.”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칭찬을 했다.허태준은 유학을 간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허할아버지가 그룹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하여 허태준이 어릴 시적부터 외국어 가정교사를 모셔왔다.그 가정교사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었기에 아름답고 섹시한 런던 발음을 다뤘다. 허태준도 그 교사한테서 그대로 따라 배웠다.허태준은 외국 사업 파트너들이 그의 발음을 칭찬하는 것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차갑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는 되물었다.“여기에 있던 환자가 어디에 갔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간호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Shen을 말하시는 건가요? 그분 오빠와 함께 회복훈련을 하러 갔습니다.”허태준은 김욱한테서 들어서 알았다. 장기간 침대에 누워만 있어 심유진의 다리근육은 위축되었다—다행히도 미세하게 위축되었다.그녀의 골격은 이미 다 회복되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매일 걷기 훈련을 하여 다리에 힘을 기르는 것이다.“나간 지 얼마나 되나요? 언제 돌아오나요?”허태준은 또 물었다.“한 시간이 되어가네요. 곧 돌아올 겁니다. 당신은...”간호사는 허태준과 더 얘기하려 하였으나 다른 간호사가 급히 뛰어와 그녀의 소매를 잡고 재촉했다.“Shelly, Ramond의사가 한참을 찾았는데 왜 아직 여기에 있나요?”끌려가는 와중에도 Shelly는 뒤돌아보며 허태준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무슨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세요. 기억하세요. 저는 Shelly예요.”잘난 얼
심유진은 침대에 앉았다. 육윤엽은 뜨거운 물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김욱은 화장실에서 타올을 가져다가 심유진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허태준은 옆에서 묵묵히 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심유진의 관심은 줄곧 허태준한테 집중되었다.그가 어색해하자 심유진은 입을 열었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허태준은 도시락을 들면서 씁쓸하게 말했다.“아직 안 일어난 줄 알고 아침배달을 하려고 했는데.”“아...”심유진은 난데없이 미안해졌다.“매일 아침 일곱 시면 일어나요. 그리고 아침을 먹고 훈련을 해요.”그녀는 병원 안의 모범환자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고 회복도 상당했다. 의사도 그녀의 사례로 다른 환자들을 격려하곤 했다.“그래.”허태준은 웃어 보이고는 도시락을 쓰레기통으로 가져갔다.그가 손을 놓기 전 심유진은 다급히 소리쳤다.“잠깐!”허태준은 멈췄다.“왜?”그리고는 의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운동을 하고 나니 또 배고파요.”심유진은 배를 만지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든 도시락을 보면서 물었다.“먹어도 되나요?”허태준은 멈칫한 후 도시락을 열면서 말했다.“물론이지.”하지만 심유진은 김이 폴폴 나는 계란후라이, 베이컨 그리고 갖가지 신선한 과일을 보자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허태준도 자연히 그녀의 변화를 알아챘다.하지만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몰랐다.레스토랑의 아침을 먹어봤는데 맛도 좋았고 품질도 좋았는데.그리고...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인데.“왜 스테이크가 없어요? 고구마맛탕은요? 적어도 토마토 계란볶음은 있어야지 않나요?”심유진은 이를 악물고 질문했다.어제 하은설이 보내온 사진을 보면서 심유진은 온 저녁 입맛을 다셨다. 꿈에서까지 그 세 가지 요리를 먹었다.“허태준씨는 너무 편애하는거 아닌가요?”심유진은 화가 났다.왜 별이한테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자신한텐 레스토랑 아침으로 때우려 하는가?“응?” 허태준은 멈칫하다가 어제 그녀가 보낸
육윤엽은 아직 미팅 중이다. 심유진한테 교육을 당한 후 화를 삼키면서 김욱을 데리고 나갔다.허태준은 남아서 심유진과 얘기를 하고 해빛쪼임하러 데려가곤 했다.병원의 작은 공원은 N시티에 몇 없는 생활 리듬이 늦은 곳이다.주변에는 고층 건물들이 막혀있지 않아 포근한 해빛이 내리쬐고 있어 공원안의 묻 사람들을 금빛으로 물들게 했다.병실을 나서기 전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크고 두꺼운 롱패딩을 입혔다. 그리고 다리에 두꺼운 담요를 깔아주었다. 해빛아래 이분도 앉아있지 않아서 심유진은 더위에 지퍼를 내렸다.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휠체어를 돌아 그녀한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지퍼를 그녀의 턱까지 올렸다.그의 손가락은 하얗고 길어 패딩의 빨간색으로 인해 더 하얘 보였다. 피부 아래 혈관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심유진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탓했다—허태준한테 모든 것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질투도 못하게 하다니.“바람 때문에 추워.”허태준의 목소리가 심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의사가 아직 몸이 약하니 저항력도 일반인보다 못하대.”그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가볍고 부드럽고 인내심 있게 어린아이를 달래듯 얘기했다.이 순간만큼 심유진은 별이가 허태준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그녀는 순종적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만 한 얼굴의 절반은 패딩 속에 감춰져 맑고 밝은 두 눈만이 허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렇게 순수하고 아무런 정서도 섞여 있지 않은 두눈에 허태준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이런 시간 참 오랜만이었다. 허태준은 얼굴까지 붉혔다.그는 일어나 고개를 피하고 화제를 돌렸다.“별이의 눈은 당신과 똑같아.”그는 침을 삼켰고 목소리도 굵어졌다.심유진은 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내가 별이의 엄마니까요!”직장생활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그런지 엘리트다운 차가운 아우라는 이미 가셔져 영락없는 소녀 같았다.허태준의 목은 바짝 타들어 갔다. 심유진은 아직도
“여형민에게서 저희 예전 이야기를 들었어요.” 허태준은 결국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여형민 핑계를 댔다. 심유진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심유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억을 잃은 후의 허태준은 심 유진에게 완전 다른 사람과도 같았다. 지금의 허태준은 심유진과의 안 좋은 기억을 다 잊었기에 그녀를 전처럼 차갑게 대하지도 않았다. 지금 그들의 관계가 조금 나아진 것도 기억을 잃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허태준의 기억이 돌아왔다면 상황은 달라졌다. 그녀는 지금의 허태준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전에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는 잊을 수 없었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표정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가슴이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그냥 일부만 전해 들었어요.”허태준이 다급히 말을 돌렸으나 심유진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은 오늘 다 얘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는 기회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허태준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우리가 결혼을 했다고 말했어요.” 심유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허태준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뱉었다.“미안해요.”심유진은 허태준이 무엇 때문에 사과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다 지난 일이에요.”심유진이 시선을 피했다.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기분 나쁘라고 한 얘기가 아니에요.” 허태준이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그냥 혹시 저희가 결혼했던 사이라면 별이가 제 아들을 가능성은 없을까 싶어서 하는 얘기예요.”심유진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등뒤의 의자에 부딪쳤다. 허태준이 잽싸게 의자를 잡았다.“그럴 리가 없어요.”심유진은 금방 진정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별이 아빠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아니에요.”심유진이 별이를 임신했을 때 허태준은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저희가 이혼한 뒤에 별이가 생겼어요.”“이혼을 했어도 제 아들이 아니라고는 보장하지 못하잖아요.”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심유진은 기억을 부분적으로 찾은 허태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비록 허태준은 신유진과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나 심유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과거는 심 유진이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심유진은 입을 가리며 하품을 하는척 했다.“저 좀 졸려요.”심유진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전 좀 잘 테니까 일 보세요.”허태준은 당연히 심유진이 지금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네, 그럼 쉬세요.”허태준이 N시티로 온 목적은 두 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심유진을 보기 위해서이고 하나는 육윤엽과 협상하여 허태서와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후자는 이미 어제 해결했기에 허태준이 여기에 남아 있었던 것은 심유진 곁을 지키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심유진은 한동안 그를 피할 것만 같았다.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병원에서 한동안 지낼 줄 알았기에 허태준은 많은 일들을 미뤘었다. 그러기에 호텔로 돌아와서 허태준은 바로 비서에게 연락하여 미룬 일들을 다시 처리하기 시작했다. 회사 직원들도 갑작스러운 일정 변동에 앓는 소리를 냈다. 기나긴 회의가 끝나고 비서가 허태준에게 말했다.“대표님, 태하그룹에 아드님이 다음 주 토요일에 결혼을 한대요. 청첩장이 사무실로 도착을 했는데 참석하실 겁니까?”허태준은 이 이름을 들은 지도 한참 된 것 같았다. 몇 년간 회사가 계속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올해 정재하가 나씨네 집안 딸에게 장가를 가고 나서야 조금 상황이 나아진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형민에게서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나씨네 집안은 정재하를 별로 탐탁지 않아 한다고 했다. 가정배경을 제외하고 정재하 이 사람만 놓고 본다고 해도 그는 학벌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심연희와의 과거도 있으니 좋은 사윗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씨네 집 딸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