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의 음식솜씨는 좋았다. 하지만 바빠서 음식을 할 기회가 잘 없었다.그는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팔을 드러냈다. 손목에 걸려있던 시계도 풀어서 거실 탁자위에 놓았다.외부 음식 위생이 걱정되어 하은설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매일 음식을 준비하여 별이한테 차려주었다. 그래서 허태준은 냉장고에서 손쉽게 어제 저녁에 사용하다 남은 재료를 찾을수 있었다.물론 허태준이 냉장고에서 스테이크와 새우를 꺼낼 때 별이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실망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스테이크 싫어요. 새우도 싫어요.”별이는 자신의 의견을 소심하게 발표했다.하은설은 요리를 자주 했지만 음식 솜씨는 간단한 서양식에 멈춰있었다. 스테이크랑 새우를 버터에 구워내고 후추를 뿌리면 끝이었다—하은설이 늦게 도착할 때면 늘쌍 이 메뉴를 준비했다.“질려요.”별이는 얼굴을 찌푸린 채 스테이크와 새우를 흘끔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별이는 하은설을 이해하기에 메뉴를 바꿔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매번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오늘 아빠가 왔는데…아빠는 어떠한 요구를 제출해도 다 들어 주겠다고 했는데.허태준은 냉장고를 한참 뒤졌다. 하지만 이 두 재료 외에는 고구마 조금과 토마토밖에 없었다—이 재료는 하은설의 다이어트 식단이었다.그는 근처가 익숙치 않아 슈퍼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밖은 춥고 별이를 데리고 나갔다 오기도 애매했다—방금 돌아와서도 별이의 방한복을 벗겨 내느라 시간을 한참 허비했다.“다르게 한번 해볼게.”허태준은 허리를 굽혀 별이의 눈을 마주보면서 토론을 했다.“이모가 해준 것보다 맛있을거야. 그렇게 할까?”별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골똘히 생각한 후 허태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수락했다.**허태준은 스테이크를 깍뚝 썰기를 한 후 이쑤시개로 연결하여 큐민 등 향신료를 묻히면서 양념을 했다.그리고 새우를 손질하고 고구마도 껍질을 벗겨 깍뚝 썰기를 하고 토마토도 썰었다.별이는 의자를 가져와 주방입구에 앉았다. 두볼을 받쳐 들고 열심히 일하는 허태준을 바
“도대체 무슨 일인데? 아빠한테 얘기해. 아빠가 꼭 해결해줄게.”아빠라는 말을 듣자 별이는 가슴이 더 저려왔다. 금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허태준의 옷깃을 적셨다. 허태준은 어쩔 바를 몰라 별이의 등을 다독이며 눈물을 닦아주었다.“스테이크와 새우가 그렇게 싫으면 당장 나가서 다른 걸로 사오자. 그러니까 울지마. 응?”허태준은 살살 다독였다.그는 별이를 안고 거실로 걸어갔다.“아니예요…”별이는 훌쩍이며 말했다.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허태준의 마음은 아파났다.“그것…때문이…아니라…”별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럼 뭔데?”허태준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전혀 짜증을 내지 않았다.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별이의 눈에는 머뭇거림, 갈등 그리고 무서운 감정이 스쳐지나갔다.허태준은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한참 있다가 별이는 결심을 한 듯 말했다.“그냥…속상해서.”별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허태준은 귀를 별이의 입가에 갖다 대야 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왜 속상한데?”허태준은 물었다.“왜 제 진짜아빠가 아닌거예요?”별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그는 허태준을 아빠라고 부르지만, 모든 사람한테 이렇게 좋은 아빠가 있다고 자랑을 하지만 별이는 잘 알고 있었다—허태준은 진짜 아빠가 아니고 엄마도 허태준을 별이의 진짜 아빠로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그가 한 모든 행동은 자기 기만이었다.허태준만이 그와 함께 이 연기를 계속할 뿐이다.잠깐의 정적이 흐르자 허태준의 가슴에는 커다란 아픔이 전해졌다.한순간—단 한순간만큼 허태준은 별이한테 모든것을 털어놓을 뻔했다.그는 별이한테 알리고 싶었다.“내가 니 진짜 아빠야.”라고.하지만 허태준은 정신을 차렸다.별이의 친부라는것을 인정하는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별이한테 몇년동안 옆에 있어주지 못한데에 대해 설명할수 없었다. 어떻게 얘기해야 별이의 아픔을 최소화 할수 있을까.“나는…”허태준은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말했다.“나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해도 돼
허태준은 양념된 소고기를 기름에 튀겨내고 손질해 놓은 새우도 구워낸 후 케첩과 설탕으로 만든 소스를 뿌려주었다. 그리고 고구마맛탕과 토마토계란볶음을 해냈다.밥은 이미 다 지어져서 허태준은 두공기를 퍼 담았다. 그리고 다이닝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별이의 앞에 갖다주었다.“와!”별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허태준이 앉기 전에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아빠가 먼저 드세요!”그는 허태준한테 얘기했지만 눈길은 소고기에서 뗄수 없었다.허태준은 웃으면서 고기를 별이의 그릇에 담아주었다.“별이가 먼저 맛있는지 먹어봐.”음식은 조금 식었다. 별이는 고기를 집어 먹었다.고기에 뿌린 소스는 별이의 입가에 가득 묻었다. 하지만 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허태준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맛있어요! 제거 먹어본 것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조금 과장된 듯 했지만 아첨이 다름 없었다. 허태준한테는 효과가 있었다.“별이가 좋아하면 이제 또 해줄게.”별이는 기뻐서 폴짝 뛰었다. 그리고 허태준의 목을 끌어안고 기름진 입술로 뽀뽀를 했다.“아빠 최고!”허태준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엄마보다도 아빠가 더 좋아?”별이는 냉정했다.“엄마만큼 아빠도 좋아해요! 아빠와 엄마는 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예요!“허태준은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칭찬했다.“별이도 최고. 앞으로 이런말을 엄마앞에서 많이 해. 알았지?“—별이가 저번에 질문한것에 대해 허태준은 정확한 답변을 줄수 없었다.언제 심유진의 마음을 얻을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는 별이한테 얘기했다.“내가 별이의 아빠를 할수 있다는 믿음을 엄마한테 준다면 엄마도 더 일찍 나를 받아들일수 있고 나도 하루빨리 별이의 아빠가 될수 있을거야.”심유진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별이다. 별이의 요구라면 뭐든지 들어주려할 것이다.하지만…별이는 허태준이 만든 음식들을 다 잘먹었다. 두사람은 같이 접시를 싹 비웠다.밥을 먹고 나서 별이는 통통한 배를 하고 쇼파에 누워있었다. 허태준은 설거지를 마친 후 냉장고에
하은설은 별이의 핸드폰에서 허태준의 사진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별이도 허태준이 오늘 음식을 해준다고 미리 하은설한테 얘기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빠른 속도로 업무를 마치고 급히 집으로 왔다.다행히도 실물을 보게 되었다.“허태준씨.”하은설은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의 앞에 다가서서 손을 내밀었다.“유진이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허태준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고 멈칫하다가 악수를 했다.하은설은 이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허태준한테 심각한 결벽이 있다는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녀가 손을 내민것은 그가 어떻게 반응을 하나 보기 위함이다.그녀는 그가 거절할줄 알았다. 하지만…하은설은 더 큰 미소룰 지었다.“별이한테 듣자하니 오늘 저녁을 해준다고 했다면서요?”그녀는 식탁을 힐끔 바라보았지만 텅 비어있었다.“아직 다 못했나요?” 별이가 먼저 대답했다.“이미 다 먹었어요! 아빠가 해준 음식이 너무 맛있었어요! 이…밖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었어요!”별이는 원래 이모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었다고 말하려다가 이모가 슬퍼할까봐 말을 바꿨다.별이의 칭찬은 거짓이 아닌것 같았다. 하은설은 허태준같이 바쁜 사람이 언제 요리실력을 갈고 닦겠나 의심했지만 입으로는 유감을 표시했다.“더 일찍 들어왔어야 할텐데.”“하은설씨가 아직 식사를 못했다면 남은 재료로 요리를 해볼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예요.”허태준은 과입접시를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아니예요!”하은설은 다급히 허태준을 불러 세웠다.“다이어트중이라서 나중에 고구마나 쪄 먹으면 돼요.“고구마얘기를 하니 별이는 입을 삐죽했다.“아빠가 해준 고구마맛탕이 진짜 맛있는데! 고구마가 나른한데 설탕을 바르니까—아, 또 먹구싶다!”하은설은 그렇게 열량이 높은 음식은 진작에 끊었다. 하지만 별이의 얘기를 듣고나니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오늘만 예외를 두죠!”그는 하은설을 부추겼다.“요리를 할테니 별이랑 놀고 있어요.”하은설은 결국 고구
허태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쩌다가 심유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허태준이 물음표를 보내고 나서 심유진은 더 답장이 없었다.하은설은 오히려 허태준을 달갑게 대해줬다. 대접을 받았으니 집안에 소장해온 진귀한 차를 내왔다.그들은 쇼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별이는 허태준의 품에서 장난감을 놀고 있었다.하은설은 화제를 별이에게로 돌렸다.“얘가 허태준씨를 많이 좋아해요.”허태준은 듣고는 자상한 얼굴로 별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네.”“무슨 계획이예요?”하은설은 물었다.허태준은 그녀의 말뜻을 몰랐다.“네?”“심유진과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계획이 있나요?”하은설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두 눈은 허태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허태준은 간신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손가락은 찻잔의 변두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무슨 계획이냐고?그는 당연히 심유진과의 미래를 그리고 있지.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지만, 심유진도 아직 완전한 배척감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무서웠다. 다시 함께 있게 되면 그녀가 또 한 번 그를 멀리 밀어낼까 봐.그리고…별이의 비밀도 있고.한평생 그녀를 속인 채로 산다면…마음이 평생 편치 못할 것이다.“심유진과 허태준씨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어요.”하은설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허태준은 멈칫했다. 별이를 안고 있는 두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일 년 전까지만해도 여기에 나타나자마자 쫓아내는 건데.” 하은설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가볍게 웃었다.별이는 하은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망연하게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의혹스런 눈빛으로 허태준을 바라보았다.허태준은 더욱 난처해했다. 하은설은 그의 당황함과 불안감을 눈치챘다.그녀가 원하는 바다. 그녀는 별이가 허태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기에 그가 별이의 마음속 이미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별이는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이모랑 삼촌이랑 할 얘기가 있어.”별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입을 삐죽하면서 쇼파에서 뛰어 내려왔다.“얘
“미안해요.“허태준은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몇 년 전에 사고가 나서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그는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반응을 둔갑했다.“아…”하은설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심유진이 피뜩 얘기를 했었던 것 같았다.그녀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그러니까 아까 한 얘기는 다 소귀에 경을 읽은 셈인가?허태준은 기억을 상실한척했다.“제가 예전부터 심유진을 알았나요? 얘기해준 사람이 없어서요. 방금 한 얘기를 자세히 해줄 수 있나요?”하은설은 그들 사이에 엮인 일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잊으셨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하은설은 오히려 시름이 놓였다.“심유진을 좋아해요?”그녀는 정중하게 허태준한테 물었다.심유진을 맞이할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은설한테는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좋아합니다.”—허태준은 여전히 얼굴을 붉혔다.“심유진과 같이 있고 싶으신가요?”“네.”“별이를 친아들처럼 편견 없이 돌봐줄 수 있으신가요?”“그럼요.”“좋아요.”하은설은 그의 솔직함에 만족했다.“도와줄게요.”허태준은 오히려 의외였다.그는 더 정력을 들여야 심유진의 절친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라도 한 듯 하은설은 강조했다.“제가 도와주는 것은 허태준씨때문이 아니예요. 별이가 허태준씨를 너무 좋아하니까...별이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거예요.”허태준은 대답했다.“어떤 이유에서든지 고맙습니다.”“고마움을 표시하려거든 심유진과 별이한테나 잘해주세요.”하은설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고 또 허태준을 가리켰다.“제가 계속 보고 있을 겁니다! 예전처럼 허튼짓을 한다면 그들 둘을 당신한테서로부터 떼어갈 겁니다!”“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허태준은 웃었다.“육아저씨가 그전에 제 다리를 분질러버릴 겁니다.”하은설은 육윤엽이 심유진을 대할 때 긴장했던 자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허태준과 같이 웃었다.“그렇겠네요.”**허태준은 별이와 한참 놀다가 떠났다.다시 호텔로 돌아와서야
아침 일찍 허태준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포장하여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텅 빈 병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여기에 있던 환자는 어디에 갔나요?”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었고 나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겪은 중년 백인 여성도 허태준의 얼굴을 보자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잘생긴 얼굴을 본 데에 대한 반응이었다.“영어를 참 잘하시네요. 그리고...억양도 매력 있어요.”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칭찬을 했다.허태준은 유학을 간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허할아버지가 그룹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하여 허태준이 어릴 시적부터 외국어 가정교사를 모셔왔다.그 가정교사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었기에 아름답고 섹시한 런던 발음을 다뤘다. 허태준도 그 교사한테서 그대로 따라 배웠다.허태준은 외국 사업 파트너들이 그의 발음을 칭찬하는 것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차갑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는 되물었다.“여기에 있던 환자가 어디에 갔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간호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Shen을 말하시는 건가요? 그분 오빠와 함께 회복훈련을 하러 갔습니다.”허태준은 김욱한테서 들어서 알았다. 장기간 침대에 누워만 있어 심유진의 다리근육은 위축되었다—다행히도 미세하게 위축되었다.그녀의 골격은 이미 다 회복되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매일 걷기 훈련을 하여 다리에 힘을 기르는 것이다.“나간 지 얼마나 되나요? 언제 돌아오나요?”허태준은 또 물었다.“한 시간이 되어가네요. 곧 돌아올 겁니다. 당신은...”간호사는 허태준과 더 얘기하려 하였으나 다른 간호사가 급히 뛰어와 그녀의 소매를 잡고 재촉했다.“Shelly, Ramond의사가 한참을 찾았는데 왜 아직 여기에 있나요?”끌려가는 와중에도 Shelly는 뒤돌아보며 허태준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무슨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세요. 기억하세요. 저는 Shelly예요.”잘난 얼
심유진은 침대에 앉았다. 육윤엽은 뜨거운 물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김욱은 화장실에서 타올을 가져다가 심유진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허태준은 옆에서 묵묵히 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심유진의 관심은 줄곧 허태준한테 집중되었다.그가 어색해하자 심유진은 입을 열었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허태준은 도시락을 들면서 씁쓸하게 말했다.“아직 안 일어난 줄 알고 아침배달을 하려고 했는데.”“아...”심유진은 난데없이 미안해졌다.“매일 아침 일곱 시면 일어나요. 그리고 아침을 먹고 훈련을 해요.”그녀는 병원 안의 모범환자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고 회복도 상당했다. 의사도 그녀의 사례로 다른 환자들을 격려하곤 했다.“그래.”허태준은 웃어 보이고는 도시락을 쓰레기통으로 가져갔다.그가 손을 놓기 전 심유진은 다급히 소리쳤다.“잠깐!”허태준은 멈췄다.“왜?”그리고는 의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운동을 하고 나니 또 배고파요.”심유진은 배를 만지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든 도시락을 보면서 물었다.“먹어도 되나요?”허태준은 멈칫한 후 도시락을 열면서 말했다.“물론이지.”하지만 심유진은 김이 폴폴 나는 계란후라이, 베이컨 그리고 갖가지 신선한 과일을 보자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허태준도 자연히 그녀의 변화를 알아챘다.하지만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몰랐다.레스토랑의 아침을 먹어봤는데 맛도 좋았고 품질도 좋았는데.그리고...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인데.“왜 스테이크가 없어요? 고구마맛탕은요? 적어도 토마토 계란볶음은 있어야지 않나요?”심유진은 이를 악물고 질문했다.어제 하은설이 보내온 사진을 보면서 심유진은 온 저녁 입맛을 다셨다. 꿈에서까지 그 세 가지 요리를 먹었다.“허태준씨는 너무 편애하는거 아닌가요?”심유진은 화가 났다.왜 별이한테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자신한텐 레스토랑 아침으로 때우려 하는가?“응?” 허태준은 멈칫하다가 어제 그녀가 보낸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