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별이가 걱정되어 중도에 핸드폰을 빈번히 꺼내 조수한테서 문자가 오지 않았는지 체크했다.육윤엽은 그녀가 바빠하는 줄 알고 배려심 있게 말했다.“다른 일이 있으신 거라면 먼저 떠나셔도 됩니다.”“제 아들이요...”심유진은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혼자서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네요.”“아들도 있어요?”육윤엽은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 했다.“아직 어리기만 한 줄 알았는데!”겉치레인사라 할지라도 심유진한테는 잘 먹혔다.“저도 삼십대예요.”심유진은 말했다.“삼십대라고요?”육윤엽은 한순간 얼떨떨해졌다. 그리고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내 딸도...아가씨랑 비슷하겠네요! 아가씨처럼 전도가 있을 줄은 모르겠지만.”그의 말에는 소화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심유진은 궁금했지만, 눈치있게 더 묻지 않았다.“저보다 전도가 있을 겁니다.”육윤엽은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얼른 가요! 애가 기다리겠어요.”심유진은 감사 인사를 하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심유진은 급히 되돌아갔다. 조수가 혼자 얼굴을 파묻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옆에 별이는 없었다.조수가 이렇게 담담히 있으니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심유진도 걱정을 하지 않고 다가가서 책상을 두드리면서 물었다.“별이는요?”조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급히 고개를 들었다.“심 매니저님!”그는 마우스를 내려놓고 보고를 했다.“별이는 허씨성을 가진 분이 데려갔습니다. 그분이 매니저님 친구라 하고 별이도 자기가 그분을 오라고 한거라고 해서 막지 않고 보냈습니다.”“왜 미리 저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나요?”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책망하는 말투로 물었다.“가시기 전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셔서...”조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심유진은 기가 막혔다.“별이에 관련된 일이라면 크든 작든 바로 저한테 통지를 주셔야 합니다. 알겠어요?”조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네!”심유진은 사무실에
별이는 허태준과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게임기는 티비와 연결이 되었고 배경음악은 두 사람의 목소리와 어울려져 거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심유진이 도착했을 때는 이런 광경이었다.가슴속의 불꽃은 더 거세졌다. 그녀는 문을 쾅 닫았다. 안에 있던 두 남자는 삽시간에조용해졌다. 얼굴의 웃음기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별이는 게임기를 버리고 바람처럼 달려가 심유진의 품에 안겼다.“엄마 죄송해요!”그는 애교를 부리면서 사과를 했다. 초로초롱한 눈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심유진의 화는 반쯤 가라앉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자신을 설득했다.심유진은 굳은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 별이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났고 눈에는 눈물이 아른거렸다.“엄마...”별이는 입을 삐죽했다. 목소리도 더 작아졌다.잠깐새로 허태준은 티비를 끄고 현관으로 왔다.“미안해.”그는 심유진한테 말했다.그의 눈은 무거웠고 얇은 입술은 오므리고 있었다. 우월한 기럭지와 아우라때문에 사과를 하더라도 비굴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당신 잘못이 아니예요.”심유진은 말했다.그가 진짜 잘못했다 하더라도 별이를 너무 예뻐해 거절을 못한게 잘못일 뿐이다.─심유진은 화가 났지만 이 점만은 잘 알고 있었다.“오늘 고마웠어요. 하지만... 먼저 돌아가 주세요.”허태준이 떠나야 심유진은 별이를 교육할 수 있었다.허태준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불쌍하게 옆에 서 있는 별이를 바라보았다.별이도 그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서로 바라보았다.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그래.”**심유진은 소파에 앉았고 별이는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별이의 머리와 어깨는 축 처졌다.“왜 꼭 허삼촌더러 데려오라고 한 거야?”심유진은 물었다.저번에 하은설이 얘기한 것과 연계를 지으니 심유진도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그녀는 별이가 일찍 철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철이 들 줄은 몰랐다.그녀는 별이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줄 수 있었지만 이것만은...“혼자 있으려니 너무 심심
그녀는 혼란스러웠다.“그래도 되나요?”별이는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젖은 눈은 갈망스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심유진은 거절할 수 없었다.하지만 여전히 생각이 많아진다.정소월은 잡혔다 하지만 주차장에서의 그 사고는 정소월과 관련이 있는지 확정할 수 없었다.만약 다른사람이라면...“그래.”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유치원은 관리에 있어 엄격하니 수업 시간에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그녀가 제때에 등하교시간을 맞춰 데려다닌다면 위험은 없을 것이다.“완전 좋아요!”별이는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리고 심유진을 끌어안고 뽀뽀를 했다.“엄마 고마워요!”**밖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자 별이는 이불속에 숨어 허태준한테 음성메세지를 보냈다.“허삼촌 저 이제 유치원에 다닐 수 있어요. 삼촌은 일을 열심히 하세요! 저희 둘다 휴식할 때 같이 게임하기로 할까요?”허태준은 전화를 걸어왔다.“엄마가 혼냈어?”그는 별이한테 물었다.“아니요~”별이는 자랑을 했다.“엄마는 자상해서 절때 혼을 안 내고 때리지도 않아요.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도리를 설명해 줘요.”─엄마가 진짜로 때렸다 하더라도 그는 허삼촌한테 꼰지르지 않을 것이다. 허삼촌 마음속에 엄마의 이미지를 망치고 싶지 않거든!허태준은 갑자기 심유진이 길렀던 그 고양이가 생각났다.그녀는 그의 앞에서 항상 거리를 뒀고 아부를 하거나 냉담하거나 강압적이거나 했다. 그 고양이를 마주할 때여야 조그마한 부드러움을 보였다.─그는 질투가 났다.그녀의 부드러움은 지금 별이한테로 전이되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와 거리를 뒀다.그도 여전히 질투를 했다.“그래.”그는 가볍게 웃었다. 눈은 조금 어두워졌다.별이는 그와 오래 얘기하지 않았다.“내일아침 일찍 학교를 가야해서 일찍 자야돼요. 허삼촌도 일찍 주무세요. 잘자요!”허태준은 “응.”하고 대답했다.“잘자.”그는 마음속으로 불렀다. 우리애기라고.**허태준은 심유진이 왜 갑자기 별이를 학교에 보내려
악의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운로드수와 사용자수는 국산게임중 탑이었고 데일리 충전 금액도 쏠쏠했다.매직큐브에서 새 게임을 론칭할 날짜가 다가오자 매직큐브의 공식 계정에서는 사과 성명이 올라왔다. 엔지니어가 큰 기술성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게임론칭이 무제한으로 지연된다는 내용이었다.매직큐브는 업계에서 이미 바닥이었다.매직큐브에서 카피한 게임 회사는 수없이 많았다. 이 성명이 나오자마자 적지 않은 게임 회사 오너와 제작사들이 조롱을 했다.“어느 기업인지 CY의 새 게임을 카피하고 CY보다 먼저 론칭을 할려고 했는데 CY에 뒤통수 맞았네.”“어느 회사인지 딱 한 마디만 할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CY에서 카피 당한 기업을 대신해 복수를 해줬네. 현질로 지지를 해야지!”...네티즌들은 매직큐브가 >을 카피한 줄을 몰랐는데 업계 사람들의 얘기를 듣자, 매직큐브에서 카피를 한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매직큐브게임은 아직 정식 론칭하지 않았지만─심지어 내부 측정도 하지 않았지만 홍보계정을 통해 부분적인 캐릭터 디자인과 시나리오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캐릭터 디자인을 보자 >에서 알맞는 캐릭터를 찾을수 있었고 시나리오도 >과 맞물렸다─한마디로 볼품없는 >이었다.이렇게 되자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매직큐브를 보이콧하기 시작했고 트위터에서도 매직큐브보이콧매직큐브파업등 해시태그들이 난무했다.매직큐브 게임을 다운받았던 유저들도 앱 삭제 스크린샷을 박제하고 앱 마켓에서 그들의 게임에 별 한 개로 평점을 했다. 그리고 각종 부정적인 댓글을 달았다.“카피게임을 하는 것은 카피행위를 지지하는 것이고 오리지널을 죽이는 것입니다!”“여러분들 다운받지 마세요!”“카피회사는 물러나라!”“매직큐브는 쓰레기 회사다! 파업하길 빕니다!”“현질은 매직큐브같은 회사의 장례금이라 치죠. 매직큐브 직원들은 편히 가시길.”...이러한 타격 아래 매직큐브의 각 게임의 사용자
CY는 몇 년 동안 누적한 실적들로 충성 팬들을 확보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충성 팬들은 CY를 위해 자진해서 정의를 선전하고 매직큐브와 맞서 싸웠다.허태준도 이에 대해 감동을 표했다.이번일로 하여금 게임을 더 잘 만들고 품질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세웠다.─그는 유저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허태준은 많이 마셨다. 요즘 매일이다싶이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잘 쉬지도 못해 그의 머리는 드물게 어지러웠다.뒷좌석에 기대서 그는 태양혈 자리를 누르면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전화벨 소리가 울렸다.그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눈을 뜨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어머니한테서 걸려 온 전화다.허태준은 갑자기 짜증이 났다.요즘 들어 어머니가 그를 찾는 것은 전부 허아리에 관련된 일이었다.“여보세요.”그는 성질을 죽이고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는 피로가 가득했다.“태준아...”허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떨렸고 울먹였다.허태준은 정신을 차렸다. 초점이 없던 눈동자도 또렷해졌다.“왜 그러세요?”그는 목소리를 깔면서 물었다.허아주머니는 훌쩍이면서 힘겹게 입을 뗐다.“할아버지가...너네 할아버지가...”허태준은 황급해났다. 정서를 숨겨야 한다는 것도 까먹고 물었다.“할아버지가 왜요?”그는 긴장했다.“할아버지가...돌아가셨어!”허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소리 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벼락에 맞은 것처럼 허태준은 멍해졌다.그의 머리는 삽시간에 하얘졌다. 눈은 둥그렇게 떠졌고 입은 살짝 벌려졌으며 아무것도 없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럴리가...그럴리가!그는 믿지 못했다.눈가는 빨개졌다. 허태준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눈물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참았다.한참이 지나 그는 진정하려고 애쓰면서 허 아주머니한테 물었다.“언제 돌아가셨는데요?”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쉬었다.“방...방금. 아주버님한테서 온 전화를 받았어.”허아주머니는 훌쩍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얼마 지나지 않자 또 훌쩍이기 시작했다.
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누가 퍼뜨렸는지 허태준이 도착했을 때 골목 입구에는 차들로 가득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기사더러 차를 한 블록 건너서 세워두게 하고 직접 걸어갔다.밤은 이미 깊었다. 여느 때 같으면 허 할아버지는 이미 주무셨고 한옥집에는 불빛 한점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마당에는 불빛이 반짝였고 들어오고 나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모든 이들이 짙은 계열의 옷을 입고 골목을 돌아다녔으며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아주버님은 마당 입구에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그의 눈은 눈물때문인지 부었고 얼굴도 슬픔으로 가득 찼다.허태준을 보자 아주버님은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작은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허태준은 입을 굳게 닫고 굳은 얼굴을 하였다. 한 쌍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아주버님을 바라보았다─낯선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허태준이 기억을 잃은 일은 아주버님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 시각 아주버님의 눈물은 더욱 거세졌다.“어서 들어가 보세요! 할아버님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허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길을 안내해 주세요.”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아주버님은 멍해 있다가 금세 반응을 했다. 하지만 더 서글퍼졌다.그는 몸을 돌려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따라오시지요.”허태준은 육 년 동안 여기에 발을 붙이지 않았다.나무가 더 파래 진것 외에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은 저번에 왔을 때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그는 아주버님을 따라 수도 없이 걸어본 거리를 거닐면서 제일 깊은곳에 위치한 방에왔다.할아버지의 빈소는 한옥안 면적이 제일 큰 안방에 있었다. 지인분들이 여기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관은 할아버지의 방에 놓아 친한 사람들만 가서 볼 수 있었다.허씨 집안 모든 사람은 이 시각 안방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어 할아버지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아주버님은 방 중앙에 놓여진 관짝을 보자 더는 주제할 수 없어졌다. 그는 서둘러 도망
허태준은 아무 표정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기계처럼 위로를 건넸다. “명복을 빕니다.” 그 냉담함이 허태준의 어머니를 슬프게 했다. 어머니는 뭔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준이 왔니?” 삼촌 두 분이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다들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있었다. 슬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둘째 삼촌이 허태준의 어머니를 책망했다. “제가 호상이라고 했잖아요. 어르신 편안하게 가셨는데 이렇게 우시면 황천길도 편하게 못 가실 거예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허태준의 손을 더 꼭 잡을 뿐이었다. 허태준은 참지 않고 받아쳤다.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는 슬퍼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근데 이렇게 좋아하시는 건 호상이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곧 재산을 상속받을 생각에 기뻐서 그러시는 건가요?” “너!” 삼촌이 눈을 부릅떴다. “어디 어른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허태준 아버지가 허태준을 말렸다. “일이 바쁘다며.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먼저 돌아가.” 허태준은 가기 싫었지만, 삼촌들 얼굴이 보기 싫었다. “네.” 허태준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허태준이 떠나자, 삼촌네 가족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살아생전에 쟤를 그렇게 이뻐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래. 돌아가시니 장례식장도 안 지키려는 것 봐.”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그 대화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아버지가 말리는데도 그들에게 달려가 울면서 소리쳤다. “태준이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그때 그 일이 있을 때 너희 중 누구 한 명이라도 관심해 준 적 있어? 다들 뒤에서 사실은 좋아하고 있는 거 우리가 모를 것 같아? 우린 너희들이랑 아버님 재산으로 다툴 생각 없어.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랑 다르게 우리 태준이는 엄청 대단하거든. 근데 너희는 남 등골 빼먹는 것 빼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 화가 나서 뱉어내
여형민은 허태준과 안지 몇십 년이 되었지만 허태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그의 기억 속에 허태준은 늘 침착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형민도 당연히 어르신이 허태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고 허태준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도 이해가 갔다. 여형민은 더 이상 허태준을 말리지 않았다. 그저 허태준이 취해서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이 몸집이 큰 데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니 여형민도 그를 움직이기 힘들었다. 여형민은 직원에게 부탁해서 허태준을 연회장 내부의 소파에 눕혀 하룻밤 재웠다.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허태준은 새벽에 열이 펄펄 끓었고 헛소리까지 했다. 할아버지를 부르다가 심유진을 부르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흘렸다. 여형민은 허태준이 걱정되어 잠을 설쳤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무력감이 몰려왔다. 친구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비참했다. 허태준을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만약 병원에 데려간다면 허태준 집안사람들이 또 뭔가를 알아낼지도 모른다. 여형민은 직원에게 해열제와 얼음물을 부탁했다. 그리고 허태준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얼음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줬다. 새벽 네다섯 시가 되여서야 허태준은 깊게 잠들었다. 여형민도 지쳐서 주저앉았다.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여형민은 아는 의사에게 연락했다. 지금 허태준의 상황을 봐서는 진료를 받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허태준은 아무리 취했어도 어김없이 아침 여덟 시에 눈을 떴다.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팠고 몸은 불덩이 같았다. 손에 수액바늘이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여형민은 한시도 허태준 곁을 떠나지 않다가 허태준이 일어난 것을 보고 급히 말했다. “일어나지 마. 바늘 뽑히면 어떡해.” 허태준이 다시 눕더니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나 어떻게 된 거야?”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목이 불타는듯한 느낌이어서 말하기도 힘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