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마음이 아팠지만 일부러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별아, 엄마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나…” 별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렀다.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울면서 얘기하느라 발음이 똑똑하지 않았지먼 심유진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방금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원래는 고아였던 아이가 자신의 친아빠를 다시 만나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전에 하은설은 그 부분을 보면서 펑펑 울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애초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친아빠를 찾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 그저 별이가 생각이 많아질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전에 봤을 때 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심유진은 별이도 자신처럼 아버지의 존재를 딱히 바라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 생각은 틀린 것 같았다. 아마 예전에 볼 때는 나이가 어려서 그랬을 것이다. “왜 아빠가 보고 싶어? 엄마랑 이모로는 부족해?” 심유진이 물었다. 사실 이런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심유진은 5년을 준비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매우 침착할 줄 알았는데 정말 일이 닥치니 당황스러워져 준비해 둔 대사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강하니까 엄마랑 나 지켜줄 수 있잖아.” 울먹이며 한 말이지만 심유진의 마음속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심유진도 눈물을 흘릴뻔했다. 심유진은 엄마도 널 지킬 수 있다고 얘기하려 했지만 오늘 그 일이 있고 나서 심유진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별이의 몸과 마음에 자신이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했다. “엄마…” 별이가 심유진의 손을 잡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아빠 찾아주면 안 돼?” 심유진운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를 찾아주기도 싫었다. “엄마가 조금 생각해 봐도 될까?” “얼마나?” 은근슬쩍 미루려고 했는데 별이는 매우 날카로웠다. 심유진은 별이를 설득했다. “아빠를 찾는 일은 별이한테 장난감을
별이의 친아빠가 누구인지는 심유진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는데 하은설이 어떻게 알수 있을까. 당황한 하은설이 별이에게 되물었다. “그건 왜?” “나 아빠 찾고 싶어.” 하은설은 깜짝 놀랐다. 일단 심유진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별이를 달래는 것이 먼저였다. “왜 갑자기 아빠를 찾고 싶은 거야?” 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별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한 번도 하은설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없었던 아이였다. 다섯 살이 아니었다면 사춘기가 아닐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은설이 별이를 살살 달래며 얘기를 들으려고 했다. 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엄마가 혼자 고생하는 게 싫어.” 하은설은 순간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뻔했다. “이모도 별이 마음 다 알아.” 사실 하은설도 정말 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전에도 여러 번 심유진에게 믿을만한 남자를 만나라고 얘기한 적 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아마 두 번의 혼인이 심유진에게 준 충격이 컸던 탓인지 심유진은 그 누구와도 감정을 쌓아보려 하지 않았다. “난 별이만 있으면 돼.”심유진은 항상 이렇게 말했지만 별이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근데 아빠를 찾으려면 먼저 엄마랑 얘기해 봐야 할 텐데 얘기했어?” 하은설이 묻자 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생각해 보겠대.” 하은설은 심유진을 잘 알았다. 아마 당장 별이를 달래기 위해 해본 말일 것이다. 하지만 별이를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우리 엄마를 조금 기다려 볼까?” “이모.” 별이는 다 아는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속이지 마. 엄마가 아빠 안 찾아줄 거라는 거 나도 알아.” 하은설이 놀라서 얼른 해명했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면서. 그럼 꼭 약속을 지킬 거야.” 단지 그 생각의 결과가 별이가 원한 방향이 아닐
“이모 또 거짓말!” 별이가 화를 냈다. “거짓말 아니야!” 하은설이 두 손을 들어 맹세했다. 그러고는 그 책임을 심유진에게 넘겼다. “너네 엄마가 한 번도 알려준 적 없어.” 별이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으니 이런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별이가 심유진에게 아빠가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별이는 아직도 의심하는 눈치였다. “엄마랑 아빠가 결혼할 때도 못 봤어?” 결혼식을 할 때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가서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별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었다. 엄마는 가족이 없고 친한 친구는 하은설뿐이니 결혼식에 이모가 참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모는 미국에 있고 별이 엄마는 국내에 있었어. 둘 다 바빠서 연락도 잘 못할 때여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도 못 들었고. 별이 엄마가 이혼하고 미국에 온 다음에 이모랑 다시 친해진 거야. 근데 별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고 이모도 물어보지 못했어. 그러니까 별아, 아빠는 안 찾는 게 어때? 엄마가 이혼한 것도 다 별이 아빠가 큰 잘못을 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러니까 별이가 아빠를 찾는 게 오히려 엄마를 속상하게 만드는 일일 것 같은데?” 별이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아빠를 찾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럼...” 하지만 별이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아?” 사실 이 질문도 하은설은 대답하기 힘들었다. 심유진이 좋아했었던 남자는 두 명, 조건웅과 허태준이었다. 이 두 명은 성별만 같을 뿐이지 다른 부분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심유진은 허태준을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조건웅과 이혼하고 나서는 대구에서 계속 출근했으면서 허태준과 이혼하니 미국까지 날아온 것만 봐도 알수 있었다. “어... 잘생긴 사람?” 하은설이 대답했다. 허태준처럼 잘생긴 사람이라면 심유진은 좋아할 것이다. 별이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반짝였다.
하은설은 별이가 보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심유진을 졸라 허태준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비록 그때 사진에서 본 사람보다 마르긴 했지만 누가 봐도 허태준이었다. 하지만 별이가 왜 허태준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때 별이가 또 문자를 보냈다. “이모, 왼쪽 삼촌은 어때? 잘생겼어?” 하은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별이는 심유진과 허태준을 만나게 하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하은설도 심유진에게서 대략 저 둘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허태준은 마음에 두고 있는 첫사랑이 있었고 그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심유진과 이혼했다. 심유진이 허태준에게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심유진이라면 깨진 거울을 다시 붙이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삼촌은 잘생기긴 했는데 별이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야.”하은설은 별이를 설득하려 했다. 그 말을 듣고 별이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 하지만 이 삼촌은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잘생겼는걸.” 엄마가 허태준조차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좋아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별이가 만난 사람이 너무 적은가 보지.” 하은설이 별이를 위로했다. “그리고 이모가 알기로는 이 삼촌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것 같던데?” “응?” 별이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여형민 삼촌이 결혼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 놀이공원 밖에서 마주쳤던 이쁜 이모일 것이다. 하지만 태준 삼촌은... “아닐걸?” “사실이야.” 하은설이 진지하게 말했다.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봐.” 별이는 정말 물어보러 갔다. 다만 허태준이 아닌 여형민에게 물었을 뿐이다. “삼촌, 태준 삼촌은 이미 결혼했어요?” 아직도 여형민의 휴대폰은 허태준 손에 있었다. 허태준은 이 문자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여형민이 자신의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서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했다. “그건 왜 물어?”별이는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요?” 별이는 다시 희망이 생겼다. “그럼!” 허태준이 또 한 번 확신을 주자 별이는 기뻐서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니까 이모 말이 틀렸다는 뜻이고 즉 태준 삼촌이 엄마가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라는 그 말도 틀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결론을 얻자 별이는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당장 엄마랑 태준 삼촌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심스레 진행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됐다. 본사에서 신청해 준 보디가드는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심유진 집으로 왔다. 매일 출퇴근을 도와주던 기사님도 더욱 프로페셔널한 분으로 바뀌여졌다. 심유진은 조금이나마 덜 불안해졌다. 하지만 정소월의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완전히 걱정이 안 되는 건 또 아니었다. 어제 정소월이 경찰에 잡혀갈 때도 호텔에서 꽤나 큰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미 소문은 심유진과 별이랑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파다하게 퍼졌다. 심유진은 별이랑 호텔에 도착하고부터 주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심유진은 웃느라 경직된 볼의 근육을 풀어줬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화가 걸려 왔다. 경찰 두 명이 심유진을 찾아왔다는 전화였다. 어제 보안실에서 오늘 중으로 경찰들이 사건의 경과를 물어보러 방문할 것이라고 전달했었다. 심유진은 경찰들을 사무실로 모셨다. 하지만 경찰들은 심유진에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별이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심유진이 얼른 별이를 가로막았다.“어제 사건은 cctv에 이미 다 찍히지 않았나요?”별이는 아직 어리기에 심유진은 별이가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cctv자료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호텔방 안에 cctv가 없었어요.”경찰들도 입장이 난감했다. “저희는 정소월씨가 아드님을 방 안으로 데려가서 뭘 했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정소월 측 변호인의 입장에 따르면
하루가 지났는데 별이 몸에 생긴 멍자국들은 옅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어졌다. 경찰들도 그걸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잠시 옷을 벗겨주시겠어요? 사진 좀 찍겠습니다.” 심유진은 별이의 옷을 벗겨 상처들을 드러냈고 경찰들은 꼼꼼히 사진을 찍었다. “제가 방에 들어갔을 때 정소월이 저희 아들을 심하게 때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달려가서 정소월이 행동을 멈추도록 끌어안았고요. 때린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없어요.” 심유진은 당시 동영상을 찍어두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하지만 별이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호텔 보안인원들이 들어와서 정소월을 제압했어요. 그때 심한 말들을 해서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렸습니다.” 심유진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만약 그걸 고의상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네요.” 심유진의 침착함이 정소월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리고 누구를 대하든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정소월과 달리 아무리 화가 나도 예의 있고 조리 있게 얘기하는 심유진의 모습에 경찰들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심유진 쪽으로 기울었다. “상황은 잘 알았습니다. 혹시 사건수사에 다른 진전이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들이 떠나고 심유진은 별이에게 옷을 다시 입히고 꼭 안아줬다. “아직 많이 힘들어?” 심유진이 걱정하자 별이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별이가 자신을 살짝 꼬집었다.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심유진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정소월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더 가득해졌다. “엄마, 나 피자 먹고 싶어.” 별이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래.” 심유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피자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최고!” 별이가 활짝 웃으며 심유진에게 입을 맞췄다. 그 웃음을 보니 심유진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별이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도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고 싶었다. 별이가 기쁘기만 하면
“다 오래전에 로그인한 계정들인데 로그인 시간이 비슷하고 IP주소도 한동안 같았습니다. 왠지 같은 회사에서 악의적으로 쓴 악플들 같은데...” 담휘가 허태준에게 악플에 관한 상황을 보고했다. “주소가 경주와 멀어서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하는 건지 찾기도 힘들고요.” “찾지 마세요.” 허태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누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사실 그건 담휘도 마찬가지였다. “매직큐브 쪽은 게임 출시일이 언제죠?” 허태준이 물었다. “미뤄졌다는 것 같습니다.” 담휘는 CY가 이겼다는 생각에 조금 우쭐해진 것 같았다. “그래요.”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세요. 저쪽은 수단이 많을 테니까.” “네.” 허태준이 “산과 바람”에 대한 평가들을 좀 더 물어보려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이 휴대폰은 허태준이 퇴원하고 새로 바꾼 개인휴대폰이었다. 저장해 둔 연락처도 여형민과 별이것밖에 없었다. 둘 중 누구든지 허태준이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기 충분했다. “잠시만요.” 허태준이 문자를 확인했다. 별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허태준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담휘는 깜짝 놀랐다. CY에서 허태준과 함께 일을 하는 내내 지금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허태준은 그제야 담휘가 아직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이와 연락을 나눈다는 건 될수록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여러 귀찮은 상황과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일단 나가 계세요. 나머지는 이따 회의할 때 다시 얘기하죠.” “알겠습니다.” 담휘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바빠. 왜?” 허태준이 문자를 보냈다. 별이는 일부러 우물쭈물 물었다. “혹시...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그럼!”허태준은 얼른 비서에게 연락했다. “오늘 저녁 일정 다 취소하고 내일로 미루세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심유진은 미리 퇴근했다. 원래는 가까운 곳에 별이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별이는 가고 싶은 가게가 있는지 굳이 럭키쇼핑몰로 가자고 했다. 사실 항상 사람이 많은 쇼핑몰이라 심유진은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별이가 가고 싶어 하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별이가 선택한 피자가게는 굉장히 인기가 많았지만, 다행히 일찍 도착했기에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구역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별이가 갑자기 밖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태준 삼촌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확실히 허태준이 있었다. 혼자 왔는지 고독하게 앉아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범한 검은 양복을 입었음에도 그 특유의 분위기는 감출 수가 없었다. 허태준은 그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존재였다. 지나가는 이성들은 모두 그를 한 번씩 돌아봤고 앞자리에 앉아있는 여자들도 같이 수군대며 허태준을 힐끔거렸다. 마침내 그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휴대폰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허태준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삼촌도 줄 서나 봐!” 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심유진이 반응할 새도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삼촌도 불러와서 같이 앉자!” 심유진이 다급히 불렀지만 별이는 이미 뛰여나간 뒤였다. 별이가 허태준과 신이 나서 이야기하며 자신이 앉아있는 쪽을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허태준이 고개를 들자 심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허태준은 인사라도 하듯 미소를 지어 보였고 심유진도 억지로 웃으며 인사했다. 별이는 허태준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야근 안 해요?” 허태준이 심유진에게 물었다. “별이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일찍 퇴근했어요.”허태준은 대답하며 별이와 함께 심유진의 맞은쪽에 앉았다. 허태준과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심유진은 너무 불편했지만 그래도 예의상 메뉴판을 허태준 쪽으로 밀어주었다. “뭐 드시고 싶으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