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리는 손이 작았지만 심유진은 허아리가 친 손이 너무 아파 인상을 찌푸렸다. “딸!”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심유진은 미처 일어날 틈도 없이 그 여성에게 밀쳐져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누구신데 저희 딸을 괴롭혀요?” 심유진은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괴팍한 여인이 정소월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엄마!” 별이가 얼른 심유진은 부축하고 나서 정소월을 노려봤다. “왜 저희 엄마를 미세요? 엄마가 괴롭힌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과하세요!” “얜 또 뭐야?” 정소월은 가소롭다는 듯 별이를 쳐다봤다. “안 본 사이 많이 변했네요.” 심유진이 차갑게 웃었다. 정소월은 그제야 심유진의 얼굴을 확인했다. “유진 씨?” 정소월은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돌아오신 거예요?” 정소월이 믿기 어렵다는 듯 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진 씨 아들이에요?” “네.” 심유진이 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제 아들이고 소월 씨 딸이랑 같은 반 친구예요. 전에 따님이 저희 아들을 물었다고 하길래 전화드렸었고요.” 정소월은 그 일이 생각났는지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죄송해요.” 정소월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당시 기분이 안 좋아서 전화를 끊었었는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이런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허위적이고 가식적인 모습. 심유진은 그제야 정소월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딸을 대신해서 아드님께 사과할게요.” 정소월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딸을 일으켜세웠다. “저희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다음에 또 봐요.” 정소월은 집으로 간다고 하며 허태준이 사는 쪽으로 걸어갔다. 심유진은 그 두 모녀를 보며 가슴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려왔다. 정소월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눈빛이 증오로 가득했다. 어째서 허태준에게 버림받고도 심유진은 저렇게 잘살고 있
허태준 집 앞에 도착하자 정소월은 다시 표정을 관리했다. 허아리도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울어서 빨개진 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정소월이 허아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따 아빠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지 알지?” 허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가 절 밀어서 넘어진 거예요.” 정소월은 그제야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에서 허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태준아, 나야.” 정소월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누구신데요?” 정소월의 웃음이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저번에 병원에서 말했잖아? 네 아내라고.” “아.” 허태준은 그제야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정소월이 좋아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허아리는 그 뒤를 쫓아가다가 하마터면 자동문에 끼일뻔했다. 하지만 정소월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한참 뒤떨어진 허아리를 재촉했다. “빨리 와! 아니면 혼자 밑에 있던지!” 허아리가 다급히 뛰여갔다. 허태준은 문 앞에 서있다가 정소월을 벨을 누르자마자 문을 열어줬다. “아빠!” 정소월이 시킨 대로 허아리는 바로 허태준에게 달려가서 안기려고 했다. 허태준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가 바로 몸을 틀었기에 허아리는 또 한 번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허아리는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평소처럼 크게 소리 내며 울지도 못하고 그냥 혼자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딸!” 정소월이 달려와서 허아리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다쳤어?” 허아리가 서러워하며 말했다. “나 아파...” “엄마가 호 해줄게.” 정소월은 허아리의 상처를 살피며 허태준을 원망했다. “딸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그걸 피해?” “미안.” 허태준은 여전히 그 둘과 멀리 떨어진 채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 스킨십하는 걸 싫어해. 그리고...” 허태준의 시선이 허아리의 치마에 머물렀다. 더러워진 치마를 보며 정소월은 그제야 자신이 이 부
허아리가 얼른 말을 보탰다. “우리 반 별이라는 애가 그랬어요. 저 맨날 괴롭혀요.” 허태준은 살짝 움찔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허태준은 딱히 이 화제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정소월이 이를 악물었다. “맞아. 반 애들은 선동해서 우리 딸을 따돌린대. 그래서 우리 딸은 친구도 없다고 하더라고. 그 애 엄마를 찾아갔는데 왕따를 당하는 건 자기 아들이랑 상관없는 일이고 다 아리가 잘못한 거라고 그러더라.” “그럼 유치원을 옮기자.” 허태준이 고민도 안 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정소월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가장 급한 건 허태준이 심유진에게 손을 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과 딸을 허태준이 받아들이는 것이 첫 순서였다. 허태준이 둘을 거실로 들였다. 허아리가 소파에 앉으려는데 허태준이 막았다. “너...” 허태준이 정소월에게 말했다. “애를 안고 앉아.” 정소월은 내키지 앉았지만 허아리를 무릎에 앉혔다. 허아리는 5살밖에 안 됐지만 이미 몸무게가 70근은 나갔다. 또래 아이들의 두 배는 되는 몸무게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소월은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허태준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물을 한잔씩 내주고 그 옆에 앉았다. “이왕 왔으니까 나도 할 말 다 할게.” 진지한 허태준의 표정에 정소월은 불안 해났다. “뭔데?” “난 예전의 기억을 잃었어. 근데 어머니가 우리 둘은 결혼한 적도 없고 너도 내 아내가 아니라고 하더라.” 정소월은 심장이 덜컹했지만 억지로 웃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결혼을 준비하던 사이였어. 이미 부부나 다름없는 관계였다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애도 있는데...” 허태준이 말을 끊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결혼은 안 했다는 거야. 전에 어떤 상황이였든 간에 지금 난 너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어. 솔직히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남편의 신분으로 너랑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 낯선 사람이
정소월은 허아리를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에 숨어있던 여형민이 나왔다. “둘 다 연기가 대단한데?” 허태준은 바닥에 던져진 카드를 주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오늘 너네 집에서 잘게.” 허태준이 말했다. “왜?” 허태준이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는 여형민이 가장 잘 알았다. 그래서 여형민은 허태준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소독해야 돼.” 허태준은 바로 소독업체에 전화를 걸어 예약했다. “정소월한테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굴면 허태서가 의심하지 않겠어?” 여형민이 걱정했다. “마침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잖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허태준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난 내려가볼 건데. 넌?” 허태준이 여형민에게 물었다. “내려가서 뭐 하려고? 소독하러 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거야?” “아직 오려면 멀었어. 심유진이랑 별이가 아직 있는지 보고 올게.” 허아리의 치마가 확실히 더러웠었다. 비록 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런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별이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심유진이 별이를 혼자 외출하게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다. “만나면 어쩌려고.” 여형민은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너도 알잖아. 유진 씨는 지금 너랑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어.” “그래서?” 허태준의 눈빛이 서늘했다. “내가 장소를 바꿔서 사진만 들여다보려고 병원에서 나온 줄 알아?” 심유진과 별이가 갑자기 귀국하면서 허태준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소식을 모를 때는 그리운 감정을 간신히 참았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당장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허태준은 여형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획을 바꿨다. 기억을 잃은 척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유진과 우연히 만날 기회가 많을 줄 알았는데 심유진이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밖에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고정된 시간에 외출하
사실 처음부터 심유진은 뒤에 서 있는 허태준에게 시선이 갔다. 여기에서 만난 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여형민이 허태준을 데려온 건 무조건 고의였을 것이다. 허태준도 내내 심유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정말 자신과 만나기 싫었던 건지 방금까지 얼굴에 걸려있던 환한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허태준은 마음이 아팠다. “안녕하세요.” 허태준이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 저번에 만났었는데 기억해요?” 심유진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었다. “네.” 심유진은 짧게 대답했다. “둘이 만났었어? 언제?” 허태준이 말해준 적 없었기에 여형민은 매우 놀랐다. “며칠 전에.” 허태준의 시선이 심유진을 떠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안 좋으셨는지 쓰러져 계시는데 마침 마주쳤어.” 여형민은 그제야 왜 허태준이 가정부를 찾아 별이를 돌보게 하라고 했었는지 이해가 갔다. “기막힌 우연이네.” “그러게.”허태준이 미소를 지었다. “이분이 마침 네 친구일 줄은 몰랐네.” “사실...” 여형민이 말을 꺼내려는데 심유진이 여형민을 노려봤다. 여형민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오래전부터 친구였는데 6년 전에 해외로 나갔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더라고.”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심유진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심유진은 아는척도 하지 않았다. 허태준은 계획대로 여형민에게 말했다. “소개 좀 시켜줘.” “이쪽은 심유진 씨. 내 친구고 킹 호텔의 총지배인이셔. 이쪽은 제 친구 허태준인데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얼마 전에 퇴원했어요. 아직 집에서 요양 중이고요. 아, 그리고...” 여형민이 별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쪽은 별이. 유진 씨 아들이고 올해 다섯 살.” 심유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 없어요.” 허태준이 허리를 숙여 별이와 눈을 맞추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별아, 안녕? 난 허
심유진이 거절하기도 전에 여형민은 별이를 안아 들었다. 심유진이 아무리 불러도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유괴범인줄 알았을 것이다. 심유진은 고민 됐지만 여형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따라갔다. 허태준도 그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심유진은 허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고 허태준은 그녀는 잘 모르는 척 연기를 해야 했기에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여형민은 차를 몰고 멀지 않은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은 회원가입을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회원이라 하더라도 하루 전에 예약하고 셰프와 메뉴를 정해야 했다. 여형민은 당연히 미리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여형민은 별이와 나란히 앉아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별이가 흥미를 가지는 주제들이 위주였다. 별이는 슈퍼맨을 가장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빨간 망토를 쓰고 악당을 물리치는 흉내를 내군 했었다. 하지만 보통 별이 또래 애들 중에는 슈퍼맨을 좋아하는 아이가 없었기에 여형민을 만나고 나서야 마음껏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여형민도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었다. 그냥 유행 따라 영화를 몇 편 봤을 뿐이었기에 별이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신이 이 방면에 대한 지식이 옅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어 여형민이 화제를 바꿨다. “슈퍼맨 피규어 좋아해?” 별이가 흥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는 매우 좋아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기에 심유진에게 사달라는 말을 못 했다. 여형민이 허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삼촌 집에 엄청 많아. 다음에 같이 가서 보자.” 심유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애한테 거짓말하지 마요.” 허태준의 집에 피규어가 있을 리가 없었다. “거짓말 아닌데.” 허태준이 말했다. 가만히 심유진을 쳐다보는 눈빛이 제법 진지했다. 여형민이 해석했다. “지금 사는 집에는 없어요, 어릴 때는 피규어를 좋아했었는데 창피하다고 나중에 빈집에 다 옮겨뒀거든요.” 심유진은 그 말을 듣고
“삼촌, 정말 피규어 많아요?”별이가 눈을 반짝이며 허태준을 바라봤다. 아까 한번 실수를 한 탓에 허태준은 더조심스러워졌다. “미안해, 삼촌은 사실 슈퍼맨이 어떻게 생걌는지 잘 기억이 안 나.” 난감해하며 얘기하는 허태준을 보며 심유진은 마음이 무거워났다. 여형민이 허태준을 대신해서 별이의 물음에 대답했다. “슈퍼맨 있어!” “그럼 배트맨도?” “그럼.” “스파이더맨도?” “엄청나지.” 별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허삼촌, 저 삼촌집에 놀러 가도 돼요?” 이 질문만큼은 허태준이 직접 대답했다. “언제든지.” 반시간 후 미리 예약해 둔 음식들이 나왔다. 아이 입맛에 맞을 음식들이 많이 보였다. 심유진은 왠지 미리 짜놓은 계획에 걸려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형민과 허태준 모두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오늘 음식들은 다 달달한 것들이 많았다. 심유진은 여형민이 왜 별이에게 이렇게 잘해주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우리랑 가까이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었는데 계속 엮이고 있었다. 사실 여형민은 허아리를 더 챙기는 게 도리에 맞았다. 허아리는 허태준의 친딸인 데다가 여형민은 자신보다 허태준과 더 각별한 사이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저번에 별이는 여형민이 허아리를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얘기했었다. 심유진은 고뇌에 빠졌다. 그리고 별이와 여형민이 점점 더 친해지는 것을 보며 불안해지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고 여형민이 계산을 하러 갈 때 심유진도 그를 쫓아갔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심유진이 여형민을 잡고 심각하게 물었다.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6년 전에 허태준 병실에서 혹시 저한테...” 허태준 병실 밖은 경비가 삼엄했기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심유진과 여형민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형민은 매일 밤 심유진에게 우유를 건넸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우유를 마실 때마다 졸음이 몰려왔었던 것 같다. 여형민이 우유에 뭔가를 탄 것이 틀림없었다
심유진은 여형민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순간 긴장이 되어 시선을 피했다. “그냥 물어본 거예요.” 여형민은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문득 황당한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별이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죠?” 딱 맞춘 여형민 때문에 심유진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여형민의 입부터 막았다. “조용히 해요!” “엄마랑 삼촌은 거기서 뭐 해?”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별이와 허태준이 멀지 않은 곳에 서있었다. 둘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심유진이 얼른 손을 내렸다. “삼촌이 나쁜 말을 해서 혼내는 중이었어.” 별이는 그 말을 믿었다. 집에서 하은설이 무의식간에 험한 말을 뱉을 때마다 심유진이 방금처럼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별이도 여형민을 혼냈다. “삼촌, 착한 어린이는 욕하면 안 돼요.” “알겠어. 앞으로 안 그럴게.” 별이가 속아 넘어가자 심유진이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왜 내려왔어요?” 심유진이 허태준에게 물었다. 허태준의 깊은 눈동자가 이상하게 심유진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길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와봤어요. 아무 일도 없다니 다행이네요.” 허태준이 자연스럽게 웃었다. 계산을 마치고 심유진과 별이를 집에 돌려보낸 뒤에야 허태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여형민에게 물었다. “심유진이랑 무슨 얘기했어?” 여형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유진 씨가 내가 별이 아빠라고 착각했어.” 허태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왜?’ “그걸 몰라서 물어?” 여형민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잘 생각해 봐. 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허태준은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았다. 심유진은 당시 허태준이 의식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여형민밖에 없었다. 비록 이 일이 여형민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허태준은 그래도 질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