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전처럼 여형민을 열정적으로 반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입구에 선 채 여형민을 집안으로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긴 왜 왔어요?” 여형민은 당당하게 말했다. “별이가 초대해서요.” 심유진은 바로 몸을 돌려 그 스파이를 바라봤다. 별이는 여형민의 목소리를 듣고는 신나서 달려왔다. “삼촌!” 별이는 심유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여형민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였다. 여형민은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척하며 심유진을 바라봤다. 왠지 우쭐대는 것 같은 그 눈빛에 심유진은 화가 났지만 별이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실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차마 여형민을 내쫓지 못했다. 여형민은 사양하지 않고 쏘파에 앉아 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여형민의 별이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어. 힘들어서 어떡해.” 별이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가려운 것 빼고는 괜찮아요.” 별이가 이렇게 말하며 심유진의 눈치를 살폈다. 심유진은 별이가 자신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유진은 별이의 마음이 따뜻해져 여형민에 대한 태도도 조금 누그러졌다. “뭐 좀 마실래요?” 심유진이 여형민에게 물었다. “주스랑 커피 있는데.” “따뜻한 물 한잔만 주세요.”여형민이 자신의 목을 잡으며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요즘따라 목이 아프네요.” 심유진은 귀찮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물 끓여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심유진이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여형민은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별이를 찍었다. 얼굴과 목, 팔 쪽에 난 수포까지 모두 찍은 여형민은 그 사진들을 어딘가로 전송하더니 바로 다시 삭제해 버렸다. 별이는 여형민의 이런 이상한 행동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심유진에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심유진이 따뜻한 물을 들고나왔을 때 거실에서 두 사람은 열심히 블록 놀이를 하고있었다. 블록은 못 보던 것이었고 금방 뜯어낸 포장지가 바닥에 놓여있었다
“블록놀이 재밌어?” 여형민의 물음에 별이가 해맑게 웃었다. “엄청!””그래, 그럼 계속 놀아볼까?” 심유진이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여형민의 휴대폰은 계속 별이를 비추고 있었다. 심유진은 거실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심유진은 회사 메일을 전부 답장하고 시간이 늦은 것을 확인하고는 별이를 재우러 나온 것이었다. 별이는 아쉬워하며 블록을 정리하고 여형민과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여형민은 여전히 쏘파에 앉은 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보세요.” 심유진이 단호하게 여형민을 내쫓으려 했지만 여형민은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앉아있었다. “급할 필요 있나요.” 심유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형민 씨는 안 급하겠지만 제가 급해요. 형민 씨 아내분도 급하실걸요.” 나은희에 대해 얘기하자 여형민 얼굴의 미소가 옅어졌다. “어차피 같이 안 사니까 상관없어요.” 그들 부부의 관계가 희한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거기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하진 않았다. “저도 졸려요.” “졸릴 때 됐죠.” 여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가 그러더라고요. 요 며칠 자기 잠자리를 지키느라고 엄마가 한숨도 못 잤다고.” 심유진이 멈칫했다. 별이가 다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별이가 절 초대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엄마 좀 잘 잘 수 있게 설득해 달라고 했어요. 자긴 아직 어리니까 말해도 안 들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제가 말해도 안들을 것 같긴 하지만 별이가 몸도 아픈데 엄마 걱정까지 하게 하지 마세요.” 여형민이 진지하게 얘기하자 심유진도 마음이 움직였다. 아침에 갑자기 쓰러졌던 일이 생각났다. ”낮에 잘게요.” 심유진은 별이의 잠자리를 지켜야 했다. ”유진 씨, 왜 이렇게 자신을 혹사시키는 거예요?” 여형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이비 시터를 구해도 되잖아요. 유진 씨 정도 수입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아요?” 심유진도 당연히 돈을 걱
여형민이 소개한 가정부는 황씨 성을 가지신 여성분이셨다. 경주와 가까운 소도시에 살던 분이셨는데 그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경주로 가서 사업을 하는 편이었다. 황아주머니의 따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둘이 지내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도 하고 경주 본지에 사는 남편과 이미 결혼도 한 상태였다. 사위 되는 분은 경주 사람이었지만 가정이 평범했기에 신혼집도 두 집이 겨우 마련했고 아직도 매달 대출이자를 갚는 중이었다. 딸은 효심이 지극해서 엄마가 혼자 외로울까 봐 경주로 모셔와 함께 지냈다. 그래서 황아주머니도 딸이랑 사위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가정부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이 모든 건 황아주머니가 출근 첫날 심유진에게 해준 얘기들이었다. 이 나이대의 아주머님들이 수다를 떨기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황아주머니는 첫 만남부터 심유진을 딸이라고 부르고 별이는 아기라고 부르며 열정적으로 대해줬다.심유진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별이는 그런 황아주머니가 좋은지 황할머니라고 부르며 벌써부터 잘 따랐다. 황아주머니가 심유진 집에 올 때쯤이면 별이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심유진은 황아주머니가 별이의 잠자리를 지켜줬으면 했지만 황아주머니는 심유진도 재우려고 애썼다.“여사장님이 저에게 내린 임무예요.”심유진은 여형민을 자상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쓸데없는 일에 간섭한다고 나무라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황아주머니는 맡은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매일 밤 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방에 급습했는데 만약 그때까지 자고 있지 않으면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다. “밤을 새우는 게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데요. 고작 몇 시간 동안 일 좀 안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저희 조카도 맨날 밤새다가 저번에 쓰러져서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리고 또...” 심유진은 끊이지 않는 잔소리에 컴퓨터를 끄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니 심유진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길들일 수 있었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허아리는 손이 작았지만 심유진은 허아리가 친 손이 너무 아파 인상을 찌푸렸다. “딸!”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심유진은 미처 일어날 틈도 없이 그 여성에게 밀쳐져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누구신데 저희 딸을 괴롭혀요?” 심유진은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괴팍한 여인이 정소월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엄마!” 별이가 얼른 심유진은 부축하고 나서 정소월을 노려봤다. “왜 저희 엄마를 미세요? 엄마가 괴롭힌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과하세요!” “얜 또 뭐야?” 정소월은 가소롭다는 듯 별이를 쳐다봤다. “안 본 사이 많이 변했네요.” 심유진이 차갑게 웃었다. 정소월은 그제야 심유진의 얼굴을 확인했다. “유진 씨?” 정소월은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돌아오신 거예요?” 정소월이 믿기 어렵다는 듯 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진 씨 아들이에요?” “네.” 심유진이 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제 아들이고 소월 씨 딸이랑 같은 반 친구예요. 전에 따님이 저희 아들을 물었다고 하길래 전화드렸었고요.” 정소월은 그 일이 생각났는지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죄송해요.” 정소월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당시 기분이 안 좋아서 전화를 끊었었는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이런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허위적이고 가식적인 모습. 심유진은 그제야 정소월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딸을 대신해서 아드님께 사과할게요.” 정소월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딸을 일으켜세웠다. “저희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다음에 또 봐요.” 정소월은 집으로 간다고 하며 허태준이 사는 쪽으로 걸어갔다. 심유진은 그 두 모녀를 보며 가슴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려왔다. 정소월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눈빛이 증오로 가득했다. 어째서 허태준에게 버림받고도 심유진은 저렇게 잘살고 있
허태준 집 앞에 도착하자 정소월은 다시 표정을 관리했다. 허아리도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울어서 빨개진 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정소월이 허아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따 아빠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지 알지?” 허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가 절 밀어서 넘어진 거예요.” 정소월은 그제야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에서 허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태준아, 나야.” 정소월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누구신데요?” 정소월의 웃음이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저번에 병원에서 말했잖아? 네 아내라고.” “아.” 허태준은 그제야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정소월이 좋아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허아리는 그 뒤를 쫓아가다가 하마터면 자동문에 끼일뻔했다. 하지만 정소월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한참 뒤떨어진 허아리를 재촉했다. “빨리 와! 아니면 혼자 밑에 있던지!” 허아리가 다급히 뛰여갔다. 허태준은 문 앞에 서있다가 정소월을 벨을 누르자마자 문을 열어줬다. “아빠!” 정소월이 시킨 대로 허아리는 바로 허태준에게 달려가서 안기려고 했다. 허태준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가 바로 몸을 틀었기에 허아리는 또 한 번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허아리는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평소처럼 크게 소리 내며 울지도 못하고 그냥 혼자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딸!” 정소월이 달려와서 허아리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다쳤어?” 허아리가 서러워하며 말했다. “나 아파...” “엄마가 호 해줄게.” 정소월은 허아리의 상처를 살피며 허태준을 원망했다. “딸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그걸 피해?” “미안.” 허태준은 여전히 그 둘과 멀리 떨어진 채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 스킨십하는 걸 싫어해. 그리고...” 허태준의 시선이 허아리의 치마에 머물렀다. 더러워진 치마를 보며 정소월은 그제야 자신이 이 부
허아리가 얼른 말을 보탰다. “우리 반 별이라는 애가 그랬어요. 저 맨날 괴롭혀요.” 허태준은 살짝 움찔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허태준은 딱히 이 화제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정소월이 이를 악물었다. “맞아. 반 애들은 선동해서 우리 딸을 따돌린대. 그래서 우리 딸은 친구도 없다고 하더라고. 그 애 엄마를 찾아갔는데 왕따를 당하는 건 자기 아들이랑 상관없는 일이고 다 아리가 잘못한 거라고 그러더라.” “그럼 유치원을 옮기자.” 허태준이 고민도 안 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정소월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가장 급한 건 허태준이 심유진에게 손을 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과 딸을 허태준이 받아들이는 것이 첫 순서였다. 허태준이 둘을 거실로 들였다. 허아리가 소파에 앉으려는데 허태준이 막았다. “너...” 허태준이 정소월에게 말했다. “애를 안고 앉아.” 정소월은 내키지 앉았지만 허아리를 무릎에 앉혔다. 허아리는 5살밖에 안 됐지만 이미 몸무게가 70근은 나갔다. 또래 아이들의 두 배는 되는 몸무게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소월은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허태준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물을 한잔씩 내주고 그 옆에 앉았다. “이왕 왔으니까 나도 할 말 다 할게.” 진지한 허태준의 표정에 정소월은 불안 해났다. “뭔데?” “난 예전의 기억을 잃었어. 근데 어머니가 우리 둘은 결혼한 적도 없고 너도 내 아내가 아니라고 하더라.” 정소월은 심장이 덜컹했지만 억지로 웃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결혼을 준비하던 사이였어. 이미 부부나 다름없는 관계였다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애도 있는데...” 허태준이 말을 끊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결혼은 안 했다는 거야. 전에 어떤 상황이였든 간에 지금 난 너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어. 솔직히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남편의 신분으로 너랑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 낯선 사람이
정소월은 허아리를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에 숨어있던 여형민이 나왔다. “둘 다 연기가 대단한데?” 허태준은 바닥에 던져진 카드를 주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오늘 너네 집에서 잘게.” 허태준이 말했다. “왜?” 허태준이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는 여형민이 가장 잘 알았다. 그래서 여형민은 허태준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소독해야 돼.” 허태준은 바로 소독업체에 전화를 걸어 예약했다. “정소월한테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굴면 허태서가 의심하지 않겠어?” 여형민이 걱정했다. “마침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잖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허태준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난 내려가볼 건데. 넌?” 허태준이 여형민에게 물었다. “내려가서 뭐 하려고? 소독하러 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거야?” “아직 오려면 멀었어. 심유진이랑 별이가 아직 있는지 보고 올게.” 허아리의 치마가 확실히 더러웠었다. 비록 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런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별이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심유진이 별이를 혼자 외출하게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다. “만나면 어쩌려고.” 여형민은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너도 알잖아. 유진 씨는 지금 너랑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어.” “그래서?” 허태준의 눈빛이 서늘했다. “내가 장소를 바꿔서 사진만 들여다보려고 병원에서 나온 줄 알아?” 심유진과 별이가 갑자기 귀국하면서 허태준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소식을 모를 때는 그리운 감정을 간신히 참았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당장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허태준은 여형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획을 바꿨다. 기억을 잃은 척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유진과 우연히 만날 기회가 많을 줄 알았는데 심유진이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밖에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고정된 시간에 외출하
사실 처음부터 심유진은 뒤에 서 있는 허태준에게 시선이 갔다. 여기에서 만난 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여형민이 허태준을 데려온 건 무조건 고의였을 것이다. 허태준도 내내 심유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정말 자신과 만나기 싫었던 건지 방금까지 얼굴에 걸려있던 환한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허태준은 마음이 아팠다. “안녕하세요.” 허태준이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 저번에 만났었는데 기억해요?” 심유진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었다. “네.” 심유진은 짧게 대답했다. “둘이 만났었어? 언제?” 허태준이 말해준 적 없었기에 여형민은 매우 놀랐다. “며칠 전에.” 허태준의 시선이 심유진을 떠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안 좋으셨는지 쓰러져 계시는데 마침 마주쳤어.” 여형민은 그제야 왜 허태준이 가정부를 찾아 별이를 돌보게 하라고 했었는지 이해가 갔다. “기막힌 우연이네.” “그러게.”허태준이 미소를 지었다. “이분이 마침 네 친구일 줄은 몰랐네.” “사실...” 여형민이 말을 꺼내려는데 심유진이 여형민을 노려봤다. 여형민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오래전부터 친구였는데 6년 전에 해외로 나갔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더라고.”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심유진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심유진은 아는척도 하지 않았다. 허태준은 계획대로 여형민에게 말했다. “소개 좀 시켜줘.” “이쪽은 심유진 씨. 내 친구고 킹 호텔의 총지배인이셔. 이쪽은 제 친구 허태준인데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얼마 전에 퇴원했어요. 아직 집에서 요양 중이고요. 아, 그리고...” 여형민이 별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쪽은 별이. 유진 씨 아들이고 올해 다섯 살.” 심유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 없어요.” 허태준이 허리를 숙여 별이와 눈을 맞추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별아, 안녕? 난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