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별이를 품에 안고 최대한 빨리 유치원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병원에 도착해서 소아과로 예약을 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은 병원인만큼 소아과 역시 사람으로 가득했다. 별이는 어릴 때부터 잘 아프지 않는 건강한 아이였다. 아파봤자 며칠 동안 약만 먹으면 낫는 가벼운 감기 정도였기에 병원에 간 적도 몇 번 없었고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의 초조함 역시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자기가 아픈 거면 모를까 아이가 아프니 심유진은 더욱 초조해져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초라도 늦으면 별이의 병이 더 심각해질 것만 같았다. 심유진은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자리에 앉아 오고 가는 환자들을 살펴보며 자기 차례가 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진료실로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모두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에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렸다. 그때 한 사람이 심유진의 눈길을 끌었다. 분명 여름인데 긴팔 긴바지에 외투를 걸치고 모자와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아주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체형으로 봐서는 여성일 것 같았다. 그 여성은 목을 움츠린 채 바닥만 쳐다보며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기에 심유진이 앉은자리에서 그 여성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눈만 밖에 내놓은 상태였지만 심유진은 그 여성이 심연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유진은 심연희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얼른 고개를 숙이고 별이의 얼굴도 가렸다. 하지만 심연희는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심연희가 시야에서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별이가 진찰받을 순서가 왔다. 사실 의사의 시선에서는 수두가 그렇게 심각한 병이 아니었기에 2분도 안 되는 사이에 진찰은 끝이 났고 약을 처방받고 나서 집에 갈 수 있었다. 심유진은 별이를 안은 채 겨우 집까지 도착했다. 옷을 벗기고 샤워를 시키려는데 아까보다 몸에 수
별이를 돌보기 위해 심유진은 본사에 휴가를 몰아서 신청했다. 수두는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굉장히 힘든 병이다. 다행히도 별이가 가려워도 긁지 않고 잘 참아주었다. 심유진은 별이가 잠이 들면 온밤 그 옆을 지켰다. 야근에 익숙해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며칠을 이어서 밤을 새우니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심유진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앞이 새까매져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아파트 주민들 대부분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오는 직장인들이라 점심때는 동네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심유진은 이 장면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심했다. 근데 그때 갑자기 검은색 남성 구두가 시야가 들어왔다. 심유진은 다급히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떨어트린 물건들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괜찮아요?” 심유진이 행동을 멈췄다. 이 세상이 갑자기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리 쪽에 시선이 갔을 때쯤 그 사람의 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그 손을 봐서는 아마 몇 년 동안 해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심유진은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겁쟁이처럼 숨기도 싫었다. 심유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덤덤한 척 고개를 들었다. 허태준은 6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르다 못해 뼈만 남은 것 같은 앙상한 몸에 펑퍼짐한 옷을 걸쳤고 양 볼도 움푹 파여 들어간 상태였다. 만약 그 날카로운 눈매가 여전하지 않았다면 심유진은 못 알아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심유진은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허태준이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 “바닥이 더러워요, 잡고 일어나세요.” 심유진은 그 손을 2초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자신과 선을 긋는 그 모습에 허태준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비꼈다. 심유진은 겨우 몸을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 거죠?” 허태준이 물었다. “그리고 저희가 전에 알던 사이였나요? 제 아내는 또 누구고요?” 심유진은 멍해졌다. 그녀는 허태준을 빤히 쳐다보며 진짜 기억을 잃은 건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건지 알아보려 했다. 허태준의 눈빛이 정말 당황한 사람 같았다. 심유진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얘기했다. “CY 그룹 대표님이시잖아요. 한번 뵌 적이 있는 것 같아 이름이 기억났어요. 그리고 아까는 제가 말실수했네요. 저희는 아무 사이도 아니고요, 그냥 결혼하셨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 아내분이 오해하실까 봐 한 얘기예요.” 허태준은 한마디도 안 하며 심유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심유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더 이상 그와 함께 있기가 힘들었다.“하여튼 따라오지 마세요.”심유진은 거의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잠그고 나서야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점점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별이는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다급히 뛰여 들어온 심유진을 보고 걱정하며 물었다. “엄마, 왜 그래?””아니야, 아무것도.” 심유진이 억지로 웃어 보이며 장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엄마가 우리 별이 좋아하는 스테이크랑 간식들 잔뜩 사 왔어.” “오예!” 별이가 신나서 냉큼 달려와 간식들을 가져갔다. 평소에 간식을 잘 사주지 않지만 몸이 안 좋으니 특별히 사 온 것들이었다. 심유진은 별이가 간식을 다 챙겨가고 난 뒤에야 점심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내내 허태준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형민이 허태준은 여전히 병원에 누워있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었는데 의식을 되찾은 데다 기억까지 잃은 상태였다. 이런 결말이 허태준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심유진에게는 좋은 점이 많았다. 적어도 앞으로 만났을 때 어색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유진은 왠지 모르게 속상한 감정이 들었다. 손가락에 아릿한 통증이 전
심유진은 전처럼 여형민을 열정적으로 반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입구에 선 채 여형민을 집안으로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긴 왜 왔어요?” 여형민은 당당하게 말했다. “별이가 초대해서요.” 심유진은 바로 몸을 돌려 그 스파이를 바라봤다. 별이는 여형민의 목소리를 듣고는 신나서 달려왔다. “삼촌!” 별이는 심유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여형민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였다. 여형민은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척하며 심유진을 바라봤다. 왠지 우쭐대는 것 같은 그 눈빛에 심유진은 화가 났지만 별이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실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차마 여형민을 내쫓지 못했다. 여형민은 사양하지 않고 쏘파에 앉아 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여형민의 별이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어. 힘들어서 어떡해.” 별이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가려운 것 빼고는 괜찮아요.” 별이가 이렇게 말하며 심유진의 눈치를 살폈다. 심유진은 별이가 자신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유진은 별이의 마음이 따뜻해져 여형민에 대한 태도도 조금 누그러졌다. “뭐 좀 마실래요?” 심유진이 여형민에게 물었다. “주스랑 커피 있는데.” “따뜻한 물 한잔만 주세요.”여형민이 자신의 목을 잡으며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요즘따라 목이 아프네요.” 심유진은 귀찮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물 끓여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심유진이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여형민은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별이를 찍었다. 얼굴과 목, 팔 쪽에 난 수포까지 모두 찍은 여형민은 그 사진들을 어딘가로 전송하더니 바로 다시 삭제해 버렸다. 별이는 여형민의 이런 이상한 행동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심유진에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심유진이 따뜻한 물을 들고나왔을 때 거실에서 두 사람은 열심히 블록 놀이를 하고있었다. 블록은 못 보던 것이었고 금방 뜯어낸 포장지가 바닥에 놓여있었다
“블록놀이 재밌어?” 여형민의 물음에 별이가 해맑게 웃었다. “엄청!””그래, 그럼 계속 놀아볼까?” 심유진이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여형민의 휴대폰은 계속 별이를 비추고 있었다. 심유진은 거실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심유진은 회사 메일을 전부 답장하고 시간이 늦은 것을 확인하고는 별이를 재우러 나온 것이었다. 별이는 아쉬워하며 블록을 정리하고 여형민과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여형민은 여전히 쏘파에 앉은 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보세요.” 심유진이 단호하게 여형민을 내쫓으려 했지만 여형민은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앉아있었다. “급할 필요 있나요.” 심유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형민 씨는 안 급하겠지만 제가 급해요. 형민 씨 아내분도 급하실걸요.” 나은희에 대해 얘기하자 여형민 얼굴의 미소가 옅어졌다. “어차피 같이 안 사니까 상관없어요.” 그들 부부의 관계가 희한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거기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하진 않았다. “저도 졸려요.” “졸릴 때 됐죠.” 여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가 그러더라고요. 요 며칠 자기 잠자리를 지키느라고 엄마가 한숨도 못 잤다고.” 심유진이 멈칫했다. 별이가 다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별이가 절 초대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엄마 좀 잘 잘 수 있게 설득해 달라고 했어요. 자긴 아직 어리니까 말해도 안 들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제가 말해도 안들을 것 같긴 하지만 별이가 몸도 아픈데 엄마 걱정까지 하게 하지 마세요.” 여형민이 진지하게 얘기하자 심유진도 마음이 움직였다. 아침에 갑자기 쓰러졌던 일이 생각났다. ”낮에 잘게요.” 심유진은 별이의 잠자리를 지켜야 했다. ”유진 씨, 왜 이렇게 자신을 혹사시키는 거예요?” 여형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이비 시터를 구해도 되잖아요. 유진 씨 정도 수입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아요?” 심유진도 당연히 돈을 걱
여형민이 소개한 가정부는 황씨 성을 가지신 여성분이셨다. 경주와 가까운 소도시에 살던 분이셨는데 그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경주로 가서 사업을 하는 편이었다. 황아주머니의 따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둘이 지내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도 하고 경주 본지에 사는 남편과 이미 결혼도 한 상태였다. 사위 되는 분은 경주 사람이었지만 가정이 평범했기에 신혼집도 두 집이 겨우 마련했고 아직도 매달 대출이자를 갚는 중이었다. 딸은 효심이 지극해서 엄마가 혼자 외로울까 봐 경주로 모셔와 함께 지냈다. 그래서 황아주머니도 딸이랑 사위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가정부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이 모든 건 황아주머니가 출근 첫날 심유진에게 해준 얘기들이었다. 이 나이대의 아주머님들이 수다를 떨기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황아주머니는 첫 만남부터 심유진을 딸이라고 부르고 별이는 아기라고 부르며 열정적으로 대해줬다.심유진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별이는 그런 황아주머니가 좋은지 황할머니라고 부르며 벌써부터 잘 따랐다. 황아주머니가 심유진 집에 올 때쯤이면 별이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심유진은 황아주머니가 별이의 잠자리를 지켜줬으면 했지만 황아주머니는 심유진도 재우려고 애썼다.“여사장님이 저에게 내린 임무예요.”심유진은 여형민을 자상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쓸데없는 일에 간섭한다고 나무라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황아주머니는 맡은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매일 밤 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방에 급습했는데 만약 그때까지 자고 있지 않으면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다. “밤을 새우는 게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데요. 고작 몇 시간 동안 일 좀 안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저희 조카도 맨날 밤새다가 저번에 쓰러져서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리고 또...” 심유진은 끊이지 않는 잔소리에 컴퓨터를 끄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니 심유진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길들일 수 있었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허아리는 손이 작았지만 심유진은 허아리가 친 손이 너무 아파 인상을 찌푸렸다. “딸!”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심유진은 미처 일어날 틈도 없이 그 여성에게 밀쳐져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누구신데 저희 딸을 괴롭혀요?” 심유진은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괴팍한 여인이 정소월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엄마!” 별이가 얼른 심유진은 부축하고 나서 정소월을 노려봤다. “왜 저희 엄마를 미세요? 엄마가 괴롭힌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과하세요!” “얜 또 뭐야?” 정소월은 가소롭다는 듯 별이를 쳐다봤다. “안 본 사이 많이 변했네요.” 심유진이 차갑게 웃었다. 정소월은 그제야 심유진의 얼굴을 확인했다. “유진 씨?” 정소월은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돌아오신 거예요?” 정소월이 믿기 어렵다는 듯 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진 씨 아들이에요?” “네.” 심유진이 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제 아들이고 소월 씨 딸이랑 같은 반 친구예요. 전에 따님이 저희 아들을 물었다고 하길래 전화드렸었고요.” 정소월은 그 일이 생각났는지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죄송해요.” 정소월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당시 기분이 안 좋아서 전화를 끊었었는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이런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허위적이고 가식적인 모습. 심유진은 그제야 정소월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딸을 대신해서 아드님께 사과할게요.” 정소월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딸을 일으켜세웠다. “저희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다음에 또 봐요.” 정소월은 집으로 간다고 하며 허태준이 사는 쪽으로 걸어갔다. 심유진은 그 두 모녀를 보며 가슴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려왔다. 정소월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눈빛이 증오로 가득했다. 어째서 허태준에게 버림받고도 심유진은 저렇게 잘살고 있
허태준 집 앞에 도착하자 정소월은 다시 표정을 관리했다. 허아리도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울어서 빨개진 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정소월이 허아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따 아빠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지 알지?” 허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가 절 밀어서 넘어진 거예요.” 정소월은 그제야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에서 허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태준아, 나야.” 정소월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누구신데요?” 정소월의 웃음이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저번에 병원에서 말했잖아? 네 아내라고.” “아.” 허태준은 그제야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정소월이 좋아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허아리는 그 뒤를 쫓아가다가 하마터면 자동문에 끼일뻔했다. 하지만 정소월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한참 뒤떨어진 허아리를 재촉했다. “빨리 와! 아니면 혼자 밑에 있던지!” 허아리가 다급히 뛰여갔다. 허태준은 문 앞에 서있다가 정소월을 벨을 누르자마자 문을 열어줬다. “아빠!” 정소월이 시킨 대로 허아리는 바로 허태준에게 달려가서 안기려고 했다. 허태준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가 바로 몸을 틀었기에 허아리는 또 한 번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허아리는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평소처럼 크게 소리 내며 울지도 못하고 그냥 혼자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딸!” 정소월이 달려와서 허아리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다쳤어?” 허아리가 서러워하며 말했다. “나 아파...” “엄마가 호 해줄게.” 정소월은 허아리의 상처를 살피며 허태준을 원망했다. “딸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그걸 피해?” “미안.” 허태준은 여전히 그 둘과 멀리 떨어진 채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 스킨십하는 걸 싫어해. 그리고...” 허태준의 시선이 허아리의 치마에 머물렀다. 더러워진 치마를 보며 정소월은 그제야 자신이 이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