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의 까만 눈동자는 빛이 났고,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알고 싶어?”그는 물었다.“물론이죠.”아니면 이렇게 굳이 찾아올 리가 없지.“왜?”허태준은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았고, 눈에는 뭔지 모를 감정이 섞여져 있었다.이상...하기도 하지.“두 분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나중에 어떤 태도로 그분을 대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서요.”심유진은 속내를 털어놓았다.”하지만 진심으로 그분을 좋아한다면 저랑 빨리 이혼하시기를 권고할게요. 진심으로 그분한테 구애를 하세요. 제 눈에는 그분도 허태준 씨한테 마음이 있어 보여요.”그녀는 가슴에서부터 우러러 나오는 말을 했지만 허태준은 감동은커녕 오히려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눈동자의 빛도 점점 어두워졌다.“의견은 고마우니 신중하게 고려해 볼게.”그는 웃는 듯 마는 듯 얘기하고는 이어폰을 다시 꼈다.”일이 있으니 다른 일 없으면...”“아직 대답을 안 해주셨어요. 정소월 씨랑은 어떤 관계인지.”심유진은 딱 잘라 말을 했다.“사촌 형의 와이프, 그뿐이야.”허태준은 이미 모든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서재의 문을 열고 말했다.”지금 당장 나가줘.”그의 대답은 안한 것과 다름이 없었고, 심유진은 아직도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그녀는 앞으로 정소월과의 만남은 되도록 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설 인사를 드리러 가지 않아도 되니 심유진은 한가해졌다.그녀는 남은 날을 헛되이 보낼 줄 알았으나 구정연휴 동안 연예계에 큰 사건이 터져 그녀는 매일 하루를 뜻밖에도 충실히 보냈다.어느 계정에서 탑 남배우 유빈이가 영화 촬영을 할 때 제작사와 손을 쓴 계약서로 탈세를 한 행위를 폭로 당했고, 이 영화만 해도 그가 덜 낸 세금은 몇 억이나 되었다.이 계정에서는 이렇게 말했다:이런 현상은 업계 내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재했고, 이름을 대기만 해도 알만한 연예인들도 각종 수단으로 탈세를 한다.연예인은 고소득 단체이며, 납부해야 할 세금이 높을수록 탈세
**심유진은 정 씨 일가를 욕하고는 더는 이 사건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하지만 정현철을 또 만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그날 심유진은 관례대로 아랫방을 순찰하고 있었다.갑자기 몸 뒤의 어느 객방문이 열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돌리기도 직전에 손이 그녀의 목뒤로부터 넘어와 자극성 냄새가 나는 젖은 걸레로 그녀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심유진은 두어 번을 몸부림쳤으나 금세 기절하고 말았고,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호텔 옥상이었다.그녀는 굵은 동아줄로 손발이 묶여 있었고, 입에는 천 쪼가리가 물려져 있었다.정현철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그는 여전히 깔끔한 옷을 입었지만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졌고, 마른 몸에 얼굴색도 어두웠으며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다.지금 이 몰골은 오히려 그의 실제 나이에 부합했다.심유진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하자 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하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정현철은 점점 초조해졌고, 표정도 점점 흉악해졌다.“씨발!”그는 심하게 욕설을 퍼부으며 분풀이라도 하듯 심유진을 발로 걷어찼다.그는 온 힘을 다해 걷어차 심유진은 한쪽으로 쓰러졌고, 어깨는 땅에 세게 부딪혔다.다행히 다친 곳 은 여러 번 갈라졌던 오른쪽 어깨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너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정현철은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몸을 더듬으면서 뭔가를 찾았다. 그녀의 외투 주머니에서 그녀의 핸드폰을 찾아 꺼냈다.“비밀번호!” 그는 그녀의 입안에 든 천 쪼가리를 빼내고 험상궂게 물었다.심유진은 숫자를 댔다--눈앞의 상황에선 말을 듣는 편이 나았다.안 봐도 심유진은 그가 누구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30초후--“허대표님 접니다. 정현철이요.”정현철은 포악하게 웃었다.”저를 기억하시죠?”“기억하시다니 다행이네요.”“심유진의 핸드폰이 왜 제 손에 있냐고요? 당연히 심유진 본인이 제 손에 있기 때문이죠.”“저는 지금 로열 호텔 옥상에 있습니다. 그녀를 구하고 싶다면
“너희 부부 때문에 내가 집도 잃고 사람도 잃었어. 이제 만족해?”그는 눈을 붉히면서 화를 냈다.심유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를 화나게 할까 봐 그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현철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그는 한 발 두 발 그녀를 걷어찼다. 그녀의 다리, 팔, 복부 심지어 얼굴까지 그의 발자국이 찍혔다.“미천한 년,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저번에는 잘도 지껄였잖아? 지금은 왜 한마디도 안 해?”정현철의 힘은 점점 커져갔고 표정도 점점 흉폭해졌다.심유진의 입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그녀의 몸은 아파서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이 시각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허태준이 조금이라도 빨리 와서 그녀를 구출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드디어 옥상의 문이 열렸다.하지만 온 사람은 허태준이 아닌 그의 조수였다.정현철은 바닥에서 심유진을 끌어올려 자신의 앞에 막아 세웠다.“누구야?”그는 물었다.“허태준은?”“허 대표님은 지금 다른 일이 있어 떠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허태준의 조수는 말했다.“저는 허 대표님의 조수입니다. 허대표님을 대표할 수 있기에 어떠한 요구라도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일이 있어? 떠나지 못해?”정현철은 크게 웃었다.”이년아 들었니?“그는 심유진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네 목숨이 네 남편 눈에는 다른 일보다도 못한 거야! 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사람이랑 결혼한 게 후회되지?“심유진은 바닥을 바라보면서 낮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하하하하하하하하하!“정현철은 더욱 통쾌하게 웃었다.”내 아들을 눈에 차지 않아 하더니! 내아들…“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에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고, 웃는 듯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아들은 너 같은 미친년 때문에 망했어! 내 아들 인생을 네년이 망쳐놓은 거라고!“심유진은 무서워서 떨었다.정현철의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정현철 씨!“허태준의 조수는 더 가까
그녀의 가슴은 답답했고, 답답해서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조수는 무의식적으로 심유진을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이렇게 잔인한 결정을 그더러 하게 하다니.하지만…“심유진한테 전해. 내가 꼭 복수를 해준다고. 마음 놓고 가라고 해.”단호한 말이 스피커 너머로 전해왔다. 심유진의 마음은 천천히 식어가 먼지가 되었다.“허태준 이 쫄보 같으니!”정현철은 크게 소리쳤다.“여자를 대신 죽게 하다니!”전화기 너머에는 몇 초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나는 쫄보가 아닙니다.”허태준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정현철한테 전혀 도발되지 않았다.“제가 살아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쪽 아들을 감옥에서 죽기보다도 못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그 말을 정현철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연우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그는 다급히 난간에서 뛰어내려 허태준의 조수한테 달려가서 전화를 빼앗으려 했다.허태준의 조수는 몸을 피해 전화를 손에 잡고 놓치지 않았다. “알아맞혀 보세요.”허태준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허태준, 내가 경고하는데 허튼짓하려고 하지 마!”정현철은 당황했다.“정 대표님, 허튼짓을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허태준은 웃었다.“생각을 바꿨다!”정현철이 말했다.“너희들 목숨은 필요 없어! 내 아들이 잘 살아야 해! 보장이 필요해!”“보장할게요.”허태준은 말했다.“좋아!”정현철은 눈을 감았다.“당신이 한 말을 기억해!”그는 얘기를 하고는 난간으로 달려가 기어 올라갔다.“허태준, 내 아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너를 놓치지 않을 거야!”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잠시 후 심유진은 아래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를 들었다.허태준의 조수는 그녀를 안아 내려 주었고, 손발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전화는 연결 상태였고, 이번에는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태준 씨, 심유진 씨는 어떻게 되었어요?”정소월이었다!허태준의 “일이 있어 바쁘다”는 핑계는 정소월이랑 같이 있기 위한
정현철의 자살 소식은 뉴스 헤드라인에 떴고, 그가 심유진을 납치했다는 소식도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이런 일로 또 뉴스에 오르니 심유진은 곤혹스러웠다.더 곤혹스러운 것은 주변 친구들 그리고 예전 부하직원들한테서 오는 위로 문자와 전화였다.허아주머니는 일부러 그녀를 보러 병원에 왔고, 눈물을 머금으면서 한참을 신신당부를 했다.그러고는 보온병에 든 몸보신용 곰탕을 건넸다. 허아주머니가 나가자마자 허택양이 도착했고, 그는 장미꽃 한 다발을 안고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유진아.”그는 친근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많이 다쳤어?”심유진은 머리가 아파졌다. “아니요.”그녀는 최대한 냉담하게 그를 대했다.“안 다치기는!”허택양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고는 말했다.“얼굴을 봐봐. 다 멍이 들었네! 다리도 깁스를 하고!”그는 분에 차서 말했다.“그 사람이 죽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너한테 한 짓을 봐서 그 사람이 죽지 않아도 죽여버릴 거야!”심유진은 생각했다.‘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 정현철한테는 더 나은 결과일지도 몰라.’허택양은 꽃다발을 침대 옆 책상에 놓고는 불만을 늘어놓았다.“이게 무슨 병실이야. 꽃병 하나 없고!”“허 지배인님 여기는 병원이지 호텔이 아닙니다.”심유진이 말했다.그녀는 요양하러 온 것이지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허택양은 그녀를 흘긋 보고는 전화를 했다.“이봐, 가서 꽃병을 좀 올려보내라고 해!”그러고는 의기양양해서 자랑했다.“완성!”심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역시 돈이 있으니 안되는 일이 없었다.허택양은 의자를 침대 쪽으로 끌고 와 그녀와 나란히 앉았고, 그녀에게 물었다.“저기, 이렇게 다쳤는데 태준이 형은 왜 안 왔어?”심유진은 아무 이유나 골랐다.“업무가 바빠서요.”“근데 듣자 하니 어제 납치됐을 때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면서.”허택양은 내막을 들은 듯 했다.“그때 그 사람이 분명히 직접 구하러 오라고 했지? 근데 왜 조수가 간 거야?”심유진은 똑같은 이유를 댔다.
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관심 없어요.”심유진은 말했다.“칫!”허택양은 한쪽 팔을 의자에 올려둔 채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큰형수가 큰형한테 친구랑 쇼핑하러 간다고 얘기했는데 CY에서 태준이 형과 같이 있는 걸 들켰대. 거기서 하루종일 있었다는데. 네가 납치당했을 때 아마도 같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너를 구하러 못 간 걸 수도 있어.“심유진은 말해주고 싶었다.”아마도“가 아니라고.”큰형이 지금 큰형수랑 태준이 형이랑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옛날에 한참 썸을 탔었거든. 하지만 나중에 큰형수는 결국 큰형님과 결혼했지만 말야.“허택양은 턱을 살짝 들고 거만하게 얘기했다.“그때는 큰형님이 태준이 형보다 매력이 있었지. 근데 지금은 아니야…”그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말했다.“지금은 태준이 형의 재산이 더 많아. 그래서 여자들도 태준 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심유진은 허택양이 허태서를 치켜세우려고 허태준을 폄하하는 행위가 싫었다.그녀의 팔은 당연히 안쪽으로 굽었다.“여자들이 태준 씨를 더 좋아하는 건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니에요.”“그럼 말해 봐. 너는 태준이 형 어디가 좋아?”허택양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웃는 듯 마는 듯 물었다.이렇게 간단한 질문에 심유진은 서로 다른 이유를 180여가지나 댈 수 있었다.“잘생겨서 좋아요.”허택양은 이어 말했다.“나도 잘생겼어. 어려서부터 허 씨 집안 애들 중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하던데.”“차가운 기질이 좋아요.”허택양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1초 만에 차가워질 수 있어.”“태권도, 레슬링, 복싱할 즐 아는 게 좋아요. 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저를 보호할 수 있어서요.”“나도 태권도를 배웠었어. 검은띠야. 나도 널 지켜줄 수 있어.”…심유진이 뭐라고 하든 허택양은 자신을 대입할 수 있었다.그러자 심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를 안 좋아하는 게 좋아요.”허택양은 드디어 “나도”로 말을 시작하지 않았다.그는 불쌍하게 그녀를 바라보고는 타일렀다
허태준은 몸을 숙이고는 그녀의 턱을 잡았고, 꽉 잡은 탓에 그녀의 입술까지 변형이 되었다.“몇 번을 말해, 허택양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그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목구멍에서 겨우 짜낸 듯했다.“알아듣지 못해?”그의 눈빛은 엄했으며 차가움이 흘러넘쳤다.심유진은 반발심이 생겨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노려보았다.“허택양 씨가 저한테 불리하게 행동한다고 했는데 허택양 씨랑 지내본 결과 저한테 어떠한 불리한 일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허태준 씨야말로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제 생사에 관심이 없으셨죠.”허태준은 멍해 있다가 몸을 일으켜 웃으며 말했다.”까먹었네. 너는 항상 눈이 멀었지.”그는 가져온 점심을 침대 옆 책상에 놓고 말했다.”허택양과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네 일에 내가 간섭을 못할 것 같네. 간섭하고 싶지도 않고.”그는 말을 하고는 떠났다.오후가 되어서 의사가 심유진에게 허태준이 그녀를 대신해서 퇴원 수속을 밟았으니 그의 조수가 와서 집으로 모시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전했다. 허태준의 조수는 한 시간 후에 왔고, 여전히 저번에 봤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성심성의껏 심유진의 짐을 정리했지만 유독 침대 옆의 장미만은 빼놓았다.그러자 심유진이 말했다.저것도 부탁드려요.”조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허 대표님께서 워낙에 꽃을 안 좋아하셔서요. 특별히 꽃은 집까지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어요.”“네.”심유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녀의 다리는 아직 낫지 않아 퇴원을 해도 침대에서 쉬어야 했다.병원과 유일한 다른 점은 위문을 오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심유진은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허태준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그런 심한 말을 내뱉었지만 그는 암암리에 그녀와 허택양을 갈라놓았다.허아주머니는 여전히 매일 심유진을 찾아와 각종 보신용 국물을 끓여다 주었다. 심유진은 고마웠지만 허아주머니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비출 수 없었다. 허아주머니도 허할아버지처럼 갑자기 그녀를 쌀쌀맞게 대할까 봐 두려웠다. 허택양은 그
심유진은 입을 삐죽거렸다.”집에 먹을 게 없어요.”이 라면 하나도 그녀가 금방 이사 왔을 때 허태준 몰래 산 것이었다. 그녀는 줄곧 그녀의 방에 숨겨놓았다.오늘에야 그 진가를 발휘하나 싶었는데 결국...괜히 좋아했다.“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배달을 시키면 되잖아? 거실에서 한 발로 주방까지 뛰어왔으면 대문까지 몇 발 더 뛰어갈 수 있는 거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겠으면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밥을 갖다 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허태준은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고, 심유진은 멍해졌다.그녀는 한참 동안 반박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됐어요, 됐어요.”정소월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어쩌다 라면 한 번 먹는 것쯤은 괜찮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노려보았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심유진은 조리대를 짚고 앉으려 했지만 허리를 굽히자마자 허태준한테 뒷깃이 잡혔다.“또 뭘 하려고?”그는 짜증 나서 말했다.심유진은 바닥을 가리켰다.”쓰레기를 치우려고요.”“됐어.”그는 그녀를 한쪽에 밀어버리고 말했다.”몸이 그 지경인데 뭘 그렇게 신경 써. 나가서 기다려. 배달을 시키든지.”그가 일을 도맡아 한다니 그녀는 말리지 않았다.“그럼...고마워요.”그녀는 한쪽 다리로 힘겹게 앞으로 뛰어갔다. 정소월이 이를 보고 다가가서 부축하려 하였다.심유진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됐어요. 제가 하면 돼요.”정소월은 돌아서서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억울한 척 허태준을 바라보았다.허태준은 손에 일을 멈추고 긴 다리로 가서 심유진의 앞을 가로막았다.“소월이한테 사과해.”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얘기했고, 숨소리마저 차가움이 흘러넘쳤다.심유진은 넋을 잃었고, 마음속으로부터 밀려온 억울함은 정소월보다 적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죄송해요.”그녀는 정소월한테 말했다.정소월은 대인배인 척했다.”괜찮아요!”그리고는 허태준을 원망했다.”왜 사과하라고 했어요! 내가 뭘 어쩌지도 않았는데!”심유진은 그곳에 서서 둘의 사랑싸움을 보고 싶지 않아 더욱 빨리 뛰어갔고,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