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월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내 연락처를 전부 다 차단했잖아? 그리고 나를 만나기 싫어서 숨어놓고선.”그녀의 어깨를 잡은 허태준의 손에는 힘이 더 들어갔고, 그는 비통하게 말했다.“미안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자책하지 마.” 정소월은 상냥하게 말했다.“내가 한 선택이었어.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 마땅해.”허태준은 물었다.“앞으로 어떻게 하려고?”“내가 뭘 어쩌겠어?”정소월의 눈에는 삭막함이 가득했다.“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계속 그 사람이랑 살아야지.”“이혼을 할 수도 있잖아.”허태준이 말했다.“이혼? 하!“정소월은 비웃었다.”허 씨 집안의 세력이 얼마나 큰데, 내가 그 사람들한테 그런 모욕을 주겠어. 그때 가서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내가 도와줄게.“허태준은 약속했다.“이혼하는 걸 도와주고, 그 다음에는?”정소월이 물었다.“난 이혼을 한 여자가 되는데 누가 날 데려가겠어?”이 말을 하면서 정소월은 허태준을 빤히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에는 희망의 빛이 있었다.허태준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고 그녀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었다.“나는 이미 결혼을 했어.”허태준은 말했다.“하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잖아, 안 그래?”“이 결혼에 책임을 져야만 해.”허태준은 말했다.정소월의 눈은 어둡게 변했다.“알았어.”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슈퍼로 가자. 더 늦으면 의심을 사겠어.”**슈퍼에서 재료를 사고 돌아와서 허태준은 차를 세워두었지만, 정소월은 차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왜?”그는 물었다.정소월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난 요리를 할 줄 몰라…”그녀는 모두에게 직접 차린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허태준은 한숨을 쉬었다.“내가 할게.”정소월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웃었다.“태준아 너는 나를 정말 잘 챙겨줘!”허태준은 그녀의 뜨거운 눈빛을 피하면서 먼저 차에서 내렸다.정소월의 눈은 어둡게 변했다. 그녀는 달갑지 않았지만 안전벨트를 풀었다.**“태준 형
심유진은 도와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거실에 앉아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들 둘이서 주방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게 뭐람.무작정 들어갔다가 못 볼 꼴이라도 본다면…비위가 상해서 밥도 안 넘어갈 것 같았다. **오후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모든 음식이 완성되어 정소월은 올라가서 사람을 부르려 했지만, 거실에 심유진이 홀로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심유진?”그녀는 발걸음을 멈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어머님이랑 같이 놀지 않았어요?”“택양 씨한테 부탁했어요.”심유진이 말했다.“제가 잘 못해서 너무 많이 잃었거든요.”“네.”정소월은 따로 의심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다 함께 식탁에 앉았다. 허아주머니의 안색이 나빠 보였고, 평소에 말씀이 잘 없으신 허아주버님이 참다못해 물었다.“돈을 전부 잃었나?”허아주머니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허태준을 노려 보았다.허태준은 이유를 몰라 심유진을 바라보았고, 그녀에게서 답을 얻으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었고,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소월아 음식이 너무 맛있다.”둘째 아주머니는 모든 시선을 자신의 식구한테 집중하게 했다. “고급 레스토랑보다도 맛이 좋다 얘!“그녀가 입을 열었으니 다른 가족들도 같이 칭찬하기 시작했고, 유독 심유진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셋째 아주머니는 눈치 없이 하필이면 심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유진아 소월이가 한 음식 맛이 어떠니?“”좋네요.“심유진은 웃으면서 대답했고, 한마디를 더 보충했다.”우리 태준 씨가 한 음식 맛이랑 비슷하네요. 소월 씨가 직접 한게 아니라면 태준 씨가 한건 줄 알겠어요!”정소월의 웃음은 몇 초동안 멈췄고, 그녀는 곧 합리적인 핑계를 댔다.“ 태준 씨가 가르쳐 준 대로 한 음식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허아주머니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허아주머니는 집을 나서려 했다. “몸이 안 좋아서요.”그는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일찍 돌아가서
음력 1월 3일, 허아주버님과 허아주머니는 허아주머니의 처가에 가야 해서 아침 일찍 떠났다.문을 나서기 전 허아주머니는 잊지 않고 문을 두드려 허태준에게 당부했다.“잊지 말거라. 오늘 너네 집으로 돌아가!”허태준은 오후가 되어서야 옷을 갈아입고 심유진과 떠나려 했다.심유진은 그와 합의를 보려 했다.“당신은 먼저 집에 가고 저는 호텔에 계속 있으면 안 되나요?”“안돼.”허태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이미 경주로 넘어왔으면 출장이 아니지. 호텔 측에서도 예외로 공짜 거처를 제공해 줄 수는 없어. 나랑 같이 있는 게 싫다면 나가서 집을 구하도록 해봐. 정을 생각해서 귀띔하나 해줄게. 로열 근처 동네는 월 이백만 원 정도 할 거야. 잘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해.“내키지 않았지만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하기로 했다. **허태준의 경주에 있는 집은 대구 집과 같았고, 인테리어도 거의 똑같았다.불현듯 심유진은 대구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그들은 각방을 썼다.심유진이 머무는 객실은 금방 배치를 한 것이었기에 대부분 물건들은 전부 새것이었고, 금방 포장을 뜯은 듯한 냄새가 났다.그녀는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밤을 새웠더니 지금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은 잠을 자는 것이었다.그녀가 막 침대에 눕자 정소월한테서 전화가 왔다.전화기 너머로 정소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유진은 조금 놀랐다.전에 몇 번의 만남에서 그들 둘은 연락처를 교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정소월은 물었다.”혹시 잠시 얘기할 시간이 있나요?“ 심유진은 그녀와 얘기하기 싫었으나 거절을 한다면 쪼잔하게 보일 것만 같았다.“어떤 얘기가 하고 싶으신 건가요?”“태준이요.”정소월은 말했다.그녀가 돌직구를 날렸기에 심유진도 겉치레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졌다.”다른 여자와 제 남편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지 않네요.”“심유진 씨. 태준이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과 결혼한 건 단지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예요.”정소월의 말투에는 우월감이 녹여져 있어 심유진은 화가 났다.“무슨 이유로
허태준의 까만 눈동자는 빛이 났고,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알고 싶어?”그는 물었다.“물론이죠.”아니면 이렇게 굳이 찾아올 리가 없지.“왜?”허태준은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았고, 눈에는 뭔지 모를 감정이 섞여져 있었다.이상...하기도 하지.“두 분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나중에 어떤 태도로 그분을 대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서요.”심유진은 속내를 털어놓았다.”하지만 진심으로 그분을 좋아한다면 저랑 빨리 이혼하시기를 권고할게요. 진심으로 그분한테 구애를 하세요. 제 눈에는 그분도 허태준 씨한테 마음이 있어 보여요.”그녀는 가슴에서부터 우러러 나오는 말을 했지만 허태준은 감동은커녕 오히려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눈동자의 빛도 점점 어두워졌다.“의견은 고마우니 신중하게 고려해 볼게.”그는 웃는 듯 마는 듯 얘기하고는 이어폰을 다시 꼈다.”일이 있으니 다른 일 없으면...”“아직 대답을 안 해주셨어요. 정소월 씨랑은 어떤 관계인지.”심유진은 딱 잘라 말을 했다.“사촌 형의 와이프, 그뿐이야.”허태준은 이미 모든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서재의 문을 열고 말했다.”지금 당장 나가줘.”그의 대답은 안한 것과 다름이 없었고, 심유진은 아직도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그녀는 앞으로 정소월과의 만남은 되도록 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설 인사를 드리러 가지 않아도 되니 심유진은 한가해졌다.그녀는 남은 날을 헛되이 보낼 줄 알았으나 구정연휴 동안 연예계에 큰 사건이 터져 그녀는 매일 하루를 뜻밖에도 충실히 보냈다.어느 계정에서 탑 남배우 유빈이가 영화 촬영을 할 때 제작사와 손을 쓴 계약서로 탈세를 한 행위를 폭로 당했고, 이 영화만 해도 그가 덜 낸 세금은 몇 억이나 되었다.이 계정에서는 이렇게 말했다:이런 현상은 업계 내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재했고, 이름을 대기만 해도 알만한 연예인들도 각종 수단으로 탈세를 한다.연예인은 고소득 단체이며, 납부해야 할 세금이 높을수록 탈세
**심유진은 정 씨 일가를 욕하고는 더는 이 사건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하지만 정현철을 또 만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그날 심유진은 관례대로 아랫방을 순찰하고 있었다.갑자기 몸 뒤의 어느 객방문이 열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돌리기도 직전에 손이 그녀의 목뒤로부터 넘어와 자극성 냄새가 나는 젖은 걸레로 그녀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심유진은 두어 번을 몸부림쳤으나 금세 기절하고 말았고,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호텔 옥상이었다.그녀는 굵은 동아줄로 손발이 묶여 있었고, 입에는 천 쪼가리가 물려져 있었다.정현철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그는 여전히 깔끔한 옷을 입었지만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졌고, 마른 몸에 얼굴색도 어두웠으며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다.지금 이 몰골은 오히려 그의 실제 나이에 부합했다.심유진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하자 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하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정현철은 점점 초조해졌고, 표정도 점점 흉악해졌다.“씨발!”그는 심하게 욕설을 퍼부으며 분풀이라도 하듯 심유진을 발로 걷어찼다.그는 온 힘을 다해 걷어차 심유진은 한쪽으로 쓰러졌고, 어깨는 땅에 세게 부딪혔다.다행히 다친 곳 은 여러 번 갈라졌던 오른쪽 어깨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너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정현철은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몸을 더듬으면서 뭔가를 찾았다. 그녀의 외투 주머니에서 그녀의 핸드폰을 찾아 꺼냈다.“비밀번호!” 그는 그녀의 입안에 든 천 쪼가리를 빼내고 험상궂게 물었다.심유진은 숫자를 댔다--눈앞의 상황에선 말을 듣는 편이 나았다.안 봐도 심유진은 그가 누구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30초후--“허대표님 접니다. 정현철이요.”정현철은 포악하게 웃었다.”저를 기억하시죠?”“기억하시다니 다행이네요.”“심유진의 핸드폰이 왜 제 손에 있냐고요? 당연히 심유진 본인이 제 손에 있기 때문이죠.”“저는 지금 로열 호텔 옥상에 있습니다. 그녀를 구하고 싶다면
“너희 부부 때문에 내가 집도 잃고 사람도 잃었어. 이제 만족해?”그는 눈을 붉히면서 화를 냈다.심유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를 화나게 할까 봐 그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현철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그는 한 발 두 발 그녀를 걷어찼다. 그녀의 다리, 팔, 복부 심지어 얼굴까지 그의 발자국이 찍혔다.“미천한 년,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저번에는 잘도 지껄였잖아? 지금은 왜 한마디도 안 해?”정현철의 힘은 점점 커져갔고 표정도 점점 흉폭해졌다.심유진의 입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그녀의 몸은 아파서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이 시각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허태준이 조금이라도 빨리 와서 그녀를 구출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드디어 옥상의 문이 열렸다.하지만 온 사람은 허태준이 아닌 그의 조수였다.정현철은 바닥에서 심유진을 끌어올려 자신의 앞에 막아 세웠다.“누구야?”그는 물었다.“허태준은?”“허 대표님은 지금 다른 일이 있어 떠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허태준의 조수는 말했다.“저는 허 대표님의 조수입니다. 허대표님을 대표할 수 있기에 어떠한 요구라도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일이 있어? 떠나지 못해?”정현철은 크게 웃었다.”이년아 들었니?“그는 심유진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네 목숨이 네 남편 눈에는 다른 일보다도 못한 거야! 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사람이랑 결혼한 게 후회되지?“심유진은 바닥을 바라보면서 낮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하하하하하하하하하!“정현철은 더욱 통쾌하게 웃었다.”내 아들을 눈에 차지 않아 하더니! 내아들…“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에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고, 웃는 듯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아들은 너 같은 미친년 때문에 망했어! 내 아들 인생을 네년이 망쳐놓은 거라고!“심유진은 무서워서 떨었다.정현철의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정현철 씨!“허태준의 조수는 더 가까
그녀의 가슴은 답답했고, 답답해서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조수는 무의식적으로 심유진을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이렇게 잔인한 결정을 그더러 하게 하다니.하지만…“심유진한테 전해. 내가 꼭 복수를 해준다고. 마음 놓고 가라고 해.”단호한 말이 스피커 너머로 전해왔다. 심유진의 마음은 천천히 식어가 먼지가 되었다.“허태준 이 쫄보 같으니!”정현철은 크게 소리쳤다.“여자를 대신 죽게 하다니!”전화기 너머에는 몇 초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나는 쫄보가 아닙니다.”허태준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정현철한테 전혀 도발되지 않았다.“제가 살아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쪽 아들을 감옥에서 죽기보다도 못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그 말을 정현철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연우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그는 다급히 난간에서 뛰어내려 허태준의 조수한테 달려가서 전화를 빼앗으려 했다.허태준의 조수는 몸을 피해 전화를 손에 잡고 놓치지 않았다. “알아맞혀 보세요.”허태준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허태준, 내가 경고하는데 허튼짓하려고 하지 마!”정현철은 당황했다.“정 대표님, 허튼짓을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허태준은 웃었다.“생각을 바꿨다!”정현철이 말했다.“너희들 목숨은 필요 없어! 내 아들이 잘 살아야 해! 보장이 필요해!”“보장할게요.”허태준은 말했다.“좋아!”정현철은 눈을 감았다.“당신이 한 말을 기억해!”그는 얘기를 하고는 난간으로 달려가 기어 올라갔다.“허태준, 내 아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너를 놓치지 않을 거야!”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잠시 후 심유진은 아래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를 들었다.허태준의 조수는 그녀를 안아 내려 주었고, 손발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전화는 연결 상태였고, 이번에는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태준 씨, 심유진 씨는 어떻게 되었어요?”정소월이었다!허태준의 “일이 있어 바쁘다”는 핑계는 정소월이랑 같이 있기 위한
정현철의 자살 소식은 뉴스 헤드라인에 떴고, 그가 심유진을 납치했다는 소식도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이런 일로 또 뉴스에 오르니 심유진은 곤혹스러웠다.더 곤혹스러운 것은 주변 친구들 그리고 예전 부하직원들한테서 오는 위로 문자와 전화였다.허아주머니는 일부러 그녀를 보러 병원에 왔고, 눈물을 머금으면서 한참을 신신당부를 했다.그러고는 보온병에 든 몸보신용 곰탕을 건넸다. 허아주머니가 나가자마자 허택양이 도착했고, 그는 장미꽃 한 다발을 안고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유진아.”그는 친근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많이 다쳤어?”심유진은 머리가 아파졌다. “아니요.”그녀는 최대한 냉담하게 그를 대했다.“안 다치기는!”허택양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고는 말했다.“얼굴을 봐봐. 다 멍이 들었네! 다리도 깁스를 하고!”그는 분에 차서 말했다.“그 사람이 죽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너한테 한 짓을 봐서 그 사람이 죽지 않아도 죽여버릴 거야!”심유진은 생각했다.‘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 정현철한테는 더 나은 결과일지도 몰라.’허택양은 꽃다발을 침대 옆 책상에 놓고는 불만을 늘어놓았다.“이게 무슨 병실이야. 꽃병 하나 없고!”“허 지배인님 여기는 병원이지 호텔이 아닙니다.”심유진이 말했다.그녀는 요양하러 온 것이지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허택양은 그녀를 흘긋 보고는 전화를 했다.“이봐, 가서 꽃병을 좀 올려보내라고 해!”그러고는 의기양양해서 자랑했다.“완성!”심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역시 돈이 있으니 안되는 일이 없었다.허택양은 의자를 침대 쪽으로 끌고 와 그녀와 나란히 앉았고, 그녀에게 물었다.“저기, 이렇게 다쳤는데 태준이 형은 왜 안 왔어?”심유진은 아무 이유나 골랐다.“업무가 바빠서요.”“근데 듣자 하니 어제 납치됐을 때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면서.”허택양은 내막을 들은 듯 했다.“그때 그 사람이 분명히 직접 구하러 오라고 했지? 근데 왜 조수가 간 거야?”심유진은 똑같은 이유를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