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셔서 저녁 9시가 되자 잠자리에 드셨다. 허태준은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심유진에게 말했다. “식탁 좀 치워줘.” 심유진은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할아버지를 따라 나가고 이 큰 방에 심유진 혼자만 남았다. 저녁을 풍성하게 차렸으나 다들 얼마 먹지 않았기에 거의 반은 넘게 남겼다. 심유진은 이 남은 음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집사님이 직원들을 몇 명 데려오더니 신속하게 남은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만두를 버리려고 하자 심유진이 다급히 달려가 제지했다. “혹시 이건 제가 포장해 가도 될까요?” 오후 내내 고생해 가며 만든 음식인데 그냥 이렇게 버려지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집사님은 친절하게 포장 용기까지 가져다가 남은 만두를 포장해 줬다. “혹시 부족하시면 다른 반찬들도 더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에요, 이것만 있으면 돼요.” 얘기를 나누는데 밖에서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들이 가시려나 봐요.” 집사님이 말씀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태준이 돌아왔다. “다 치웠어?” “네. 거의 다 직원분들이 치우셨어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면 심유진은 그걸 꼭 짚고 넘어가는 스타일이었다. 허태준은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호텔로 돌아가자.” 차가운 밤공기와 그 차가운 목소리가 심유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둘은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태준은 내일 일찍 일어나라고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해석도 없었다. 또 최악의 연말이다. 사실 익숙했으나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유진은 포장해온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덮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TV로 예능을 틀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예능을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것 외에는 할 일이 없을 뿐이었다. 심
심유진은 멍하니 그 봉투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용돈이었다. 설날마다 심연희를 부러워했었다. 심연희가 받았던 수많은 봉투 중에 심유진 건 하나도 없었다. 심유진은 그냥 모른 척 받고 싶었으나 간신히 그 충동을 참아냈다. “제가 나이가 얼만데 무슨 용돈이에요.” 심유진은 웃으며 봉투를 밀어냈다. “할아버지한테 돌려드리세요.” “그럼 직접 돌려드려.” 허태준은 억지로 심유진 손에 봉투를 밀어 넣었다. “난 심부름 안 해.” 허태준은 말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봉투가 무척 두꺼운 걸 보니 금액도 꽤 될 것 같았다. 심유진은 정말로 받을 생각이 없었기에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탁자에 올려두었다. 벌써 시간은 12시가 되었다. TV에서는 다들 한데 모여 큰소리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5,4,3,2,1!” 종소리와 함께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을 열어보니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근방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건 금지되어 있기에 아마 호텔에서 하는 이벤트일 것 같았다. 심유진은 베란다에 나가 난간에 기대선 채 폭죽을 바라봤다.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심유진은 주방에서 와인을 가져다가 컵도 없이 병째로 마셨다. “진짜 예쁘네” 그녀는 손을 뻗어서 폭죽을 만져보려 했다. “아쉽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그녀와 함께 구경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슬픔이 휘몰아쳐서 그녀를 덮쳤다. 술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심유진은 손이 미끄러져 술병을 놓치고 말았고 병은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병이 깨지는 소리는 폭죽 소리에 묻혀 허태준의 주의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심유진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파편을 줍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조심하지 않아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알싸한 고통이 손가락을 타고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 기쁘기만 해야 할 밤에 그녀는 취기를 빌려 무릎을 끌어안은 채 펑펑 울었다. 올해는 다를 줄 알았다. 올해는 같이 새해를 맞을 가족이 생겼으니
심유진은 간신히 눈을 떴지만 허태준이 여러 개로 보였다. 그녀는 어젯밤에 토한 탓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저… 몸이 안 좋아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허태준은 불을 켜고 그녀에게로 가까이 갔다. 심유진의 창백한 얼굴색을 보고 허태준은 깜짝 놀랐다. 이마를 짚어보니 몸이 불덩이 같았다. 허태준은 얼른 심유진에게 두꺼운 패딩을 입히고 그녀를 꽁꽁 싸매고 나서 그녀를 안은 채 병원으로 향했다. 휴가철이 되니 경주는 인구가 반은 준 것 같았다. 게다가 이른 아침이니 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고 가끔 버스 몇 대만이 통행할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심유진이 어젯밤 폭식을 한 데다가 술을 마시고 찬바람을 맞아서 급성 위장염에 고열이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심한 병은 아니었지만 수액을 맞아야 했다. 심유진은 머리가 아팠지만 아침에 허태준이 일어나라고 재촉했던 일은 기억이 났다. 허태준은 오늘 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했었다. 어쩌면 허태준 부모님은 지금도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 가봐요.” 심유진이 말했다. “전 혼자 있으면 돼요.” 어제 할아버지와 있었던 일로 인해 심유진은 이 집안이 슬슬 두렵기까지 했다. 자신이 또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허태준은 의자에 앉은 채 가만히 있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예요.” “네, 오늘 가기로 했는데 좀 늦을 것 같아요.” “급한 일이 생겼는데 아마 점심 전에는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사 일은 아니고요.” “네.” “네, 그럼 이따 뵐게요.” 허태준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더니 심유진을 차갑게 바라봤다. “많이 컸네? 와인을 한 병이나 마시고?” 심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그녀의 눈에 어린 슬픔을 가려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허태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또 힘을 풀었다. “어제저녁부터 아팠는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자는 줄 알았어요
“아!” 간호사가 주머니에서 쪽지 한 장과 지폐 몇 장을 꺼냈다. “뭔가 급한 일이 있으신지 전화를 받더니 나가셨어요. 혹시 깨어나시면 이걸 건네주라고 하시더라고요. 택시를 타고 여기에 적힌 주소로 오면 된다고 전해달라 하셨어요.” 심유진은 쪽지를 건네받고 대충 한번 보고는 접어서 버려버렸다. 그리고 현금은 옷주 머니에 잘 넣어뒀다. 아마 부모님 집 주소인 것 같았다. 혹시 쪽지를 실수로 잃어버렸다고 얘기하면 믿을지 궁금했다. 심유진은 열이 너무 높은 건 아니었다. 38도 정도였기에 수액을 맞고 나서는 열이 거의 다 내렸다. 병원에서도 퇴원해도 된다고 했기에 심유진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방은 이미 청소를 끝냈는지 어제 그 난장판이던 공간이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심유진은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병원에서 받은 약도 챙겨 먹었다. 약기운이 금방 몰려와서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졸렸다. 이번에 심유진은 굉장히 오래 잤다. 밖이 어둑어둑해져서야 그녀는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렸다. 심유진은 한참을 찾아서야 거실 소파에서 언제 내팽개친 건지도 모를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전화를 건 사람은 허태준이었다. 심유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허태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차갑다 못해 무서울 지경이었다. 심유진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호텔이에요.” “간호사가 쪽지 주지 않았어?” “줬는데 제가 잃어버렸어요.” “그럼 호텔로 돌아와서 나한테 전화했어야지.”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가 아팠어요. 그리고 감기약을 먹었더니 졸려서 까먹었고요.” 심유진은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수화기 반대편이 한참 조용하더니 허태준의 무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분명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사실 심유진은 여전히 그가 무서웠다. 하지만 그쪽 부모님을 뵙는다는 사실이 훨씬 더 두려웠다. “태준아~” 허태준 쪽에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
앞으로도 허태준의 부모님을 못 만난다는 건 사실 심유진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사실 허태준과 진짜 부부 사이인 것도 아니고 허태준이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언젠가는 분명 헤여질 것이다. 하지만 허태준의 강압적인 태도에 심유진은 조금 당황해서 당장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갈게요.” 허태준이 문자로 주소를 보내줬다. 택시 기사는 그 주소를 보고 고개를 돌려 심유진을 자세히 살펴보기까지 했다. 호기심과 부러움이 공존하는 눈빛이었다. 허태준의 부모님은 시 중심의 별장에 살고 계셨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내로라하는 부자였다. 보안이 철저한 곳이어서 택시는 절대 못 들어가기도 했다. 심유진은 입구에서 내려서 찬바람을 맞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깊숙이 자리 잡은 집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30분은 걸어야 했을 것이다. 매 별장마다 마당이 딸려있었다. 비록 면적이 작지 않았지만 허 씨 할아버지 집이나 심 씨네의 대저택에 비할 수는 없었다. 대문 앞에 서있으니 집의 대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아왔다. 그리고 창문 쪽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노란색 불빛도 보였다. 벨을 누르니 집안의 사람이 빠르게 대답했다. “누구세요?” 낯선 목소리에 심유진이 조심스레 자신의 이름을 댔다. “안녕하세요, 심유진이라고 하는데요.” “아!” 상대방은 이 이름을 들은 적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열어드릴게요!” 철제 대문이 바로 열렸다. 심유진은 좁은 돌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집문 앞까지 갔다. 허태준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문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리 와.” 허태준이 심유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이마로 향했다. 찬 바람을 한참 맞았더니 허태준 손의 온도보다 이마가 훨씬 차가웠다. 다행히 열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허태준은 다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들어와.” 심유진도 그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쪽에서
심유진이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머님” 어머니도 기쁘신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심유진의 손을 덥석 잡으셨다. 심유진은 좁은 공간에 겨우 끼여 앉아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심유진을 한참 보시더니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태준이가 아팠다고 하던데 이제 괜찮아?” 심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에 어머니가 심유진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이제 가족인데 당연히 걱정해야지.” 심유진은 순간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이런 “당연”한 일들을 자기 친엄마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앉아계시던 또 다른 어머님도 말을 보탰다. 앉은 위치를 봐서는 허태서와 허택양의 어머님이신 것 같았다. “소원 이루셔서 좋겠어요! 그렇게 며느리를 바라시더니 태준이가 드디어 데려왔네!” “그러니까요!” 허태준 어머니는 내내 웃으면서 시선을 심유진에게서 한순간도 떼지 않았다. “배는 안 고파? 배고프면 지금 당장 밥상 차리라고 하게.” 어머님의 열정에 심유진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다른 가족들이 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을 보고 심유진이 얼른 손을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하지만 옆에 앉아 계시던 아버님이 일어서며 말했다. “식사부터 하죠, 다들 오래 기다렸으니까.” 그가 일어서자 모두가 따라서 일어섰다. 어머님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가며 내내 집안사람들을 소개해 줬다. “이쪽은 둘째 삼촌, 이쪽은 셋째 삼촌…” 정소월을 소개할 차례가 되었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쪽은 태서 와이프, 정소월이라고 하고.” 표정을 보아하니 허태준과 정소월 사이의 일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름을 불리자 정소월은 걸음을 멈춰 서서 미소를 짓고는 어머니한테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 “전 어제 할아버지 댁에서 이미 만났어요. 그렇죠 유진 씨?” 심유진도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사영은”이라는 이름은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태준네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워하지 않았다. 허태준 부모님은 오히려 표정이 확연히 어두워진 것 같았다. 몇 명은 아예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기까지 했다. 이 반응은 심유진이 예상한 것과 반대였다 뭐가 문제인지 몰라 심유진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우연이네요!” 허태서가 이 적막을 깨뜨리며 말했다. 왠지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였다. “태준이도 그때…” “태서야!” 허태준의 아버지가 말을 끊었다. 위엄 있는 목소리에 허태서도 목덜미를 긁적이며 입을 다물었다. 어머님이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꿨다. “왜 이렇게 말랐어. 많이 먹어 얼른.” 어머니는 계속 심유진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줬다. 더 이상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이 일 때문에 식사 자리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고, 그 뒤로 아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다시 거실에 모여들었다. 심유진은 여전히 어머님 곁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님이 여러 가지 과일을 접시에 담아 가지고 왔다. 심유진은 딸기를 좋아했기에 시선이 저도 모르게 딸기에 꽂혔다. 허태준 어머니는 그런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심유진의 마음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딸기는 유진이 앞에 놔줘.” 하지만 집사님이 그쪽으로 다가가기도 전에 허태준이 이를 제지했다. “손님 먼저 드려야죠. 소월이 앞에 놔주세요.” 정소월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허태준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에요! 유진 씨한테 드리세요. 처음 온 건데 더 챙겨줘야죠.” 정소월은 친절하게 얘기했지만 심유진은 그 말속에 자신을 향한 도발이 숨겨져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허태준은 아예 과일 접시를 가져다가 정소월 앞에 내려놓았다. “딸기 좋아하잖아.” 중저음의 그 목소리가 유달리 따뜻하게 느껴졌다. 정소월은 얼굴을 붉히면서
심유진은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허태준의 둘째 삼촌, 셋째 삼촌집식구들은 여덟시 반까지 앉아있다가 모두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손님들을 보낸 후 허아주버님이 허태준에게 말했다."서재로 따라오너라."말투를 들어보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허아주머니도 심유진을 데리고 위로 향했고, 그녀는 방문을 열고 유진에게 말했다."이게 바로 태준이 방이란다."방안의 인테리어 분위기는 대구의 집과는 다르게 모두 따뜻한 색조로 꾸몄으며, 방의 인테리어는 허 씨네 부모님의 스타일과 같았다."걔가 대학까지 살다가 나가고 나서 후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회수가 점차 줄어들었단다."허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렸다."너도 알다시피 걔가 결벽증이 좀 심하잖니. 방안에 물건도 남들은 못 다치게 하고. 걔 나간 후에 내가 직접 이 방 청소했어."말을 마친 후 그녀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어봤다."걔랑 같이 사는 거 힘들지?"심유진은 빙긋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심유진과 허태준은 사실 같은 방에서 같이 자지도 않거니와 그녀 또한 그의 개인 용품을 잘 건들지 않았다.그리고 집안 청소는 청소 아주머니가 따로 있었기에 이런 일로 싸우는 일은 절대 없었다."그럼 다행이구나."허아주머니는 한숨 놨다는 듯 말했다."나는 계속 걔가 그놈의 결벽증 때문에 결혼 못할 줄 알았거든."심유진은 살짝 웃기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허아주머니는 유진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고, 그곳에는 태준의 어릴 적 흔적이 묻어있었다.물건 하나를 쥘 때마다 허아주머니는 심유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건 태준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상이란다. 그 아이 성적은 늘 좋았어, 늘 일등이었지. 우리 부부가 걱정할 일이 없었단다.""태준이가 중학교 때 갑자기 레고 맞추기에 빠져서는 밤낮없이 이 서랍장만큼이나 맞췄단다. 집에 하도 많길래 태준이 동생들을 줬더니 글쎄 싸웠지 뭐니.""태준이가 취미가 많아, 특히 운동을 좋아해. 태권도, 씨름, 권투 이런 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