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의 뜨거운 체온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저는... 그러니까...”심유진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심유진.”허태준이 침착함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나 꽤 괜찮은 남자야.”심유진은 그 말에 갑자기 전에 허태준의 목에 보였던 립스틱 자국과 진하게 풍겼던 향수 냄새가 떠올랐다. 그걸 생각하니 좀 전의 수줍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조금 화가 났다.“밖에서 따로 만나는 여자도 있으시잖아요.”허태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질투하는 거야 지금?”“누가 질투를 해요!”심유진은 속마음을 들켜서인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심유진은 잡혔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아무튼 필요하면 그 여성분이나 찾아가세요. 저희는 그냥 동맹관계일 뿐이니까.”혹시 허태준이 다시 잡기라도 할까 봐 심유진은 이 말을 끝으로 신속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허태준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그건 모르지.”정말 심유진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한마디였다.다음날 아침, 심유진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서 나왔다. 허태준이 깔끔한 셔츠에 넥타이까지 하고는 꽃무늬 앞치마를 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보였다.“아침 했으니까 먹고 가.”허태준의 미소와 목소리가 너무 따뜻했다. 심유진은 자신이 잠이 덜 깼나 싶어서 허벅지도 꼬집어 보고 눈도 비벼봤으니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심유진이 여전히 멍하니 서있자 허태준이 그녀의 손을 잡고 식탁에 앉혔다.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가 예쁘게 놓여있었다.허태준도 앞치마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 이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신혼부부 같았다. 심유진은 적응이 되지 않아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경기 참가 자격은 확보했어. 오늘 제로 씨한테 통지할 거야.”허태준은 이 상황에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려져서는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즐겼다. 심유진은 허태준이 이렇게 빨리 일을 처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마...”감사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심유진은 말을 삼켰다.“
출근할 때 심유진은 허태준이 아침을 포장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여형민 꺼야.”허태준이 해석했다. 심유진을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허태준은 여형민에게 문자를 보냈다.“이따가 내 사무실로 잠깐 와. 아침 좀 챙겨 왔으니까.”여형민이 빠르게 답장했다.“오늘 태양이 서쪽에서 솟았나?”허태준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싫으면 말고.”허태준은 휴대폰을 조수석에 던져두고 시동을 걸었다. 가는 길에 휴대폰 알람음이 하도 울려서 허태준은 문자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아니야.”“잘못했어.”“대표님, 죄송합니다.”“정말 천사세요.”“이미 사무실에서 대기 중입니다.”“제 인생의 롤모델이십니다.”“안전 운전하십시오~ 사랑합니다~”허태준은 그 문자를 보고 아침에 먹은걸 전부 토해낼 뻔했다. 여형민은 정말로 사무실에서 허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아침밥을 기다렸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역시 대표님밖에 없습니다.”여형민은 몇 입만에 샌드위치를 해치우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감탄했다.“근데 오늘 기분이 좋은가 봐? 내 아침도 챙겨주고.”“그럭저럭.”허태준은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렇게 허태준을 즐겁게 만들수 있는 일이라면 심유진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형민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왜, 스킨십이라도 했어?”“아니.”“근데 네 말이 맞을 때도 있더라.”“에라이!”여형민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맞을 때도 있더라? 그냥 내가 한 말이 항상 다 맞았는데 네가 안 들었을 뿐이야. 내가 항상 말했지. 여자는 부드럽게, 다정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근데 네가 하는 행동을 봐. 맨날 정색해서는 독한 말로 사람 힘들게 하고. 이쯤 되면 그냥 멀어지고 싶은 거 아니야?”허태준은 정곡을 찔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허태준이 입을 열었다.“네가 말한 것처럼 나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아.”여형민은 전에 몰래카메라의 영상을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내 생각에는 유진 씨도 널
“언니, 언니는 정말 최고야!”이른 아침부터 제로가 방방 뛰며 전화를 걸어왔다.“나한테 참가 기회를 준대!”이미 허태준에게 들은 얘기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제로를 보니 심유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축하해, 소원 이뤘네.”제로는 이 기쁜 일에 웃음이 멈추지 않는 느낌이었다. 심유진은 갑자기 총지배인이 회의에 참석하라고 불렀기 때문에 더 이상 길게 얘기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회의실에 도착하자 회사의 각 부문 매니저들이 다 모여있었다. 심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기 전에만 해도 자신을 해고시키려고 부르는 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실의 분위기가 그녀를 여전히 긴장시켰다.이번 회의는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sns에 올린 글 때문에 열린 것이었다. 오늘 새벽에 그 사람이 영상을 하나 올렸는데 국내 여러 유명 호텔들의 위생 상황을 담은 영상이었다. 다행히 대구 쪽의 로열 호텔은 그 블랙리스트에 없었지만 경주 쪽의 호텔은 자신의 명성을 지키지 못했다.“다들 알다시피 경주 쪽 호텔은 우리보다 먼저 설립된 데다가 본사 측에서 각별히 중시했기에 많은 지원을 받았었잖아요. 하지만 이젠 저희도 당당히 그쪽은 별거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총지배인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다들 격앙되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지배인이 심유진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사실 유진 씨 공로가 크죠.”객실의 위생에 대해서 호텔은 항상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매번 새로운 청소부가 들어올 때마다 심유진은 그 규정을 다 외울 때까지 청소를 시작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리고 가끔씩 검사를 진행하면서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세 번 이상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해고까지 했었다.이런 수단은 효과가 매우 좋았지만 심유진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 후 심유진은 청소부가 목걸이를 훔쳤다고 조건이가 음해했던 그 사건을 빌어 경비를 신청해서는 소형 카메라를 여러 개 구매해 모든 청소부들에게 부착하여 촬영된 청소과정을 검사했다.감독이 엄격하니 모든
심지어는 심유진에게 시간이 있는지조차 묻지 않고 내려진 결정이었다. 지배인이 얼굴을 찌푸렸다.“하루 동안 정리할 시간을 주잖아요.”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몇 년 동안 일하면서 출장을 많이 다녔었지만 경주는 무조건 피했었기에 일 때문에 경주로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본사의 지시가 아니고 직원 교육 때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냈을 텐데 이건 심유진이 맡은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일주일 동안 출장을 가야 하니 짐이 캐리어 두 개에 꽉 찼다. 허태준은 집에 돌아와서 현관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깜짝 놀라서는 신발도 갈아 신지 못한 채 침실로 뛰어왔다.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했기에 심유진은 일찍 저녁을 먹고 샤워도 마치고는 팩을 하고 누워있었다. 허태준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심유진은 깜짝 놀라서 팩도 떨어트렸다. 뒷수습을 마치고 나서야 심유진이 물었다.“뭘 그렇게 급하게 들어와요?”허태준은 심유진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망가려는 사람이 잠옷 바람으로 팩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입구에 캐리어 당신 거야?”“맞아요.”심유진은 그제야 허태준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저 내일 경주로 출장 가요. 일주일 정도 있을 것 같아요.”“일주일이나?”허태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제야 여형민 말대로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운다면 계획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네, 직원 교육이 있거든요.”오늘 그 뉴스를 허태준도 봤기에 출장을 왜 가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쉽게도 출장을 막을 수는 없으니 해결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마침 나도 경주에 가야 하거든. 본사에 일이 좀 생겼대. 내일 몇 시 비행기야? 같이 가는 게 좋겠어.”새벽에 비행기표를 예약하라는 회사 대표의 전화를 받는 건 무슨 기분일까? 허태준의 비서는 이미 익숙해져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다. 그는 허태준에게 비행기 시간
심유진은 허태준이 신분을 낮춰 그녀랑 이코노미좌석에 앉을 줄은 몰랐다.그는 다리가 길었기 협소한 좌석에 앉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심유진은 보다 못해 통로쪽에 위치한 자신의 좌석을 양보하였다.“경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왜 퍼스트 클래스석을 사지 않았나요?”그녀는 궁금했다.그녀가 그와 같은 신분이었다면 퍼스트 클래스가 아니라 아예 비행기를 통째로 샀을 것이다.“너랑 있으려고.” 허태준은 재빨리 대답했다.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그는 고개를 돌려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심유진의 마음은 흠칫하다가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장난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을 가리려고 애썼다.“사실 돈을 더 들여서 제 좌석을 업그레이드시킬 수도 있는데요.”허태준은 멈칫했다. 그러고는 지갑을 꺼냈다.“지금 해도 돼.”—뇌정지가 온 듯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됐어요.” 심유진은 그가 스튜어디스를 부르기 전에 막아 나섰다.“두 시간밖에 안 걸리는데요, 뭐. 금방이면 가요.”아마도 허태준처럼 돈만 많은 총재만이 비행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현금만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혜택도 없고 포인트 적립도 안 되니 말이다.그녀는 이코노미석이 습관 되었다. 그만 불편하지 않다면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었다.허태준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심유진의 손을 바라보았다. 딱딱한 의자도 배기지는 않는 것만 같았다.“그럼 안하지.”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심유진은 손을 놓기도 전에 허태준한테 다시 잡혀 그의 몸쪽으로 기울었다.그의 큰손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손가락은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깍지를 꼈다.비행기에는 사람이 많아 심유진은 티 나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잠깐 움직이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하지만 허태준은 못 본 듯 의자를 눕히고 눈을 감았다.“불량배!”심유진은 작은 소리로 욕했다.허태준의 입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올라갔다. **
심유진은 갑자기 귀찮아졌다. 그래서 담요를 그에게 던지다 싶이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허태준의 웃음소리가 생생히 그녀의 귀에 들렸다.그는 입술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댔다. 조금 더 가까이 댔으면 그녀의 귓방울에 입을 맞출 수 있는 지경이었다.“질투나?” 그의 콧김은 전부 그녀의 말랑한 피부에 닿았다. 그녀의 체온은 삽시간에 또 상승하였다.심유진의 마음은 짜릿해 났다. 그녀는 그를 노려보고는 그의 추측을 부정하였다. “누가 질투하나요? 상상하지 마세요!”“그래.” 허태준은 이럴 때만큼은 자상했다.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심유진은 입술을 깨물고는 백팩에서 야구모자와 안대를 꺼내고 자신을 전신 무장시켰다. 이어폰을 끼고는 음량을 제일 높게까지 올렸다. 그와 교류할 수 없게 말이다.허태준은 더욱 크게 웃었다.그의 눈 안에 따스한 빛은 주변 승객들의 주의를 끌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핸드폰을 들어 셔터를 누르려 했다. 하지만 누르기도 전에 허태준의 경고 어린 차가운 눈빛을 받았다.승객은 손이 떨려 핸드폰을 도로 내려다 놓았다.**심유진은 원래 자는 척 하였으나 중도에 아예 잠이 들어버렸다. 허태준이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심유진을 깨웠다.그들의 맞잡은 손은 떨어진 적이 없었다.비행기에서 내릴 때 심유진은 부끄러워 손을 빼내려 하였으나 허태준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나중에 한 손으로 카트를 끄는 것이 불편하여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았을 뿐이다.경주시 로열에서 심유진을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총지배인은 그녀더러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영수증은 대구에서 처리하여야 했다.그녀는 허태준과 같이 탑승하려 하였으나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차 번호가 4개의 8로 이루어진 검은색 마이바흐 차량이 급정거하여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심유진은 이 차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저번에 허태준이 심씨가에 몰고 간 차량이 바로 이 차량이었다.운전자석에서 정장을 입은 젊은 남성이 내려와 허태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허태준은 로비에 웨이터를 불러세웠다. “여기 객실부 매니저 사무실이 몇 층인가요?”웨이터는 그의 기세에 눌려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꼭대기 층은 통일로 된 사무공간이고 객실부 매니저도 거기에 있을 겁니다.”“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허태준은 심유진에게 분부하였다. “내가 올라가 보도록 하지.”심유진은 다급히 그를 잡았다. “제가 올라가도 돼요!”허태준은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캐리어를 흘끔 보았다. “이렇게 많은 짐을 들고 올라가게?”심유진은 손을 움츠리고는 소파에 앉았다. **허태준은 바로 제일 위층까지 올라갔다.사무공간에는 태깅이 필요하여 카드를 찍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주시 로열호텔 총지배인이 마중 나왔다.“허 대표님!” 총지배인은 아첨이 가득한 미소를 띠고 허태준에게 손을 건넸다. 하지만 이내 그가 심각한 결벽증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손을 재빨리 치웠다.“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어요?”허태준이 차갑게 대답했다. “사람 하나 찾으러.”이 대답은 총지배인의 예상 밖이었다.“누구를 찾으세요?” 그는 물었다.“여기 객실부 매니저가 있는가?”허태준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총지배인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객실부에 의견이 있으신가요? 저한테 얘기해주시면 제가 객실부 사람들이랑 미팅을 해서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그쪽 객실부에 의견이 엄청나지.” 허태준이 그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트위터에 일을 준비하시고 한 시간 내로 상세한 설명을 하도록 하세요.”총지배인은 눈앞이 깜깜해났다. 심지어 한 시간 후 그 참혹한 광경을 기절로 도피하고 싶어졌다——허태준과 일했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그가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지를.“하지만 객실부 매니저를 찾는 것은 사적인 일이니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시면 됩니다.”허태준이 또 얘기했다.총지배인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심 매니저는 지금 사무실에 있을 겁니다. 대구시에서 여기로 트레이닝 시키러 파견해 온 분을 맞이
총지배인은 어딘가에서 싸늘한 기운이 풍기는것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살며시 틀어 허태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중간에 둘러싸인 심청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너무 차가워 무서울 지경이었다.“심...”총지배인이 그들의 대화를 간섭하려 하자 허태준이 제지 시켰다.심청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인지 표창을 받은 것뿐이잖아? 대단한 명예를 가진 것마냥! 그 미친 사람이 대구시 사람이래! 대구시쪽에 미리 뭔가 수를 썼을 거야. 아니면 업계에서 유명한 호텔이 전부 말썽을 일으켰는데 대구시 로열만 무탈할 수 있겠어?”“그렇죠! 돈을 먹여서 뭔가를 해서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거겠죠. 그러고도 무슨 낯짝으로 저희한테 트레이닝을 시켜줘요! 창피하지도 않은가 봐!”“총지배인님도 그래요. 보완을 하면 되잖아요? 대구시에서 직접 와서 우리를 조롱하게 하다니! 화가 나요!”총지배인의 얼굴색도 허태준처럼 안 좋아졌다.심청앞에 탁자위에 핸드폰이 “웅웅”하고 울리자 그녀는 흘끔 쳐다보고는 아무일 없듯이 계속 매니큐어를 발랐다.“대구시 그 사람이예요?” 누군가가 물었다.“응.” 심청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반 시간만 더 내버려 두지. 매니큐어가 다 마르면 내려가려고.”허태준은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총지배인은 마음속으로 ‘망했다’라고 생각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객실부 사람들한테 쌍욕을 퍼붓고 싶었으나 허태준을 먼저 따라나섰다.“허 대표님... 제가 설명을 해드릴게요!”허태준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멈춰 섰다.“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객실부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태도를 잘 알겠습니다. 보고는 하지 마세요. 직접 사직서를 저한테 내세요.”총지배인 얼굴의 혈색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허 대표님!” 그는 몇 번이고 허태준의 팔소매를 잡아당겨 애원하려 하였으나 허태준의 심기를 건드려 사태가 더 엄중해질 것 같아 무서웠다. “객실부의 이번 실수는 제가 비평을 하였습니다! 진심으로 호텔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