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몹시 의문스러웠다. 그 사람이 왜 갑자기 심청한테 볼일이 있는지, 왜 위에서 직접 해결하지 않았는지, 왜 그녀더러 다른 곳에서 휴식하라고 하는 건지.하지만 필경 경주시는 그의 바닥이었으니 로열호텔에서도 발언권이 있을 것이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허태준은 심유진더러 스위트룸에서 휴식하게 한 후 그녀의 캐리어를 전부 가지런히 옮겨 놓았다.“경주에 있는 동안 여기에 묵도록 해.” 그는 말했다.“네?” 심유진은 이방이 그가 묵을 방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 연속 손을 저었다. “호텔 측에서 주숙을 제공할 겁니다. 사비를 들여 따로 방을 내지 않아도 돼요.”스위트룸은 하룻저녁에 이백만 정도 하였다. 일주일이면 거의 1600만 원 정도 할 것이다. 거의 한 달 치 월급이었다.돈을 지불하는것은 그녀가 아니었지만 심유진은 여전히 돈이 아까웠다.“내가 로열호텔에 묵는 건 돈이 안 드니 호텔에서 안배해준거라고 생각해.”허태준의 말은 심유진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심청 씨랑은 언제 얘기가 끝날 수 있나요?” 그녀는 물었다.허태준은 사고도 하지 않고 바로 답을 주었다. “아마 오래 걸릴 거야. 졸리면 먼저 자도 돼.”“네.”**허태준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시간 동안 연락이 없던 심청한테서 드디어 회신이 왔다.“죄송해요 심 매니저님. 갑자기 급한 컴플레인이 들어와서요. 손님이랑 소통하다가 이제 겨우 문제가 해결이 되었네요. 아직도 아래에 계신가요? 지금 데리러 갈게요!”심청은 아주 겸손한 말투로 말했다. 말에는 온통 미안함이 엿보였다. 심유진의 마음속의 분노의 불길은 삽시간에 꺼졌다.같은 객실부 매니저로서 심유진도 당연히 까다로운 손님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심청이 전화를 안 받고 카톡도 답장을 하지 않는 “예의 없는” 행동도 이해가 갔다.“괜찮습니다.” 그녀는 이해를 표시했다. “저는 지금 아래에 없습니다. 허 대표님과 일
모든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귀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의심을 하면서 말이다.“뭐라고... 하셨나요?” 심청은 소리 내서 물었다. 그리고 허태준 뒤에 서 있는 총지배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총지배인은 원망스런 눈길로 그녀를 노려다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들, 그리고 객실부 사람들 전부 짤렸습니다.” 허태준은 다른 방법으로 말해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으셨나요?”“왜죠?” 심청은 불만스레 질문을 하였다. “객실부가 확실히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회개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부 가라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았나요?”“기회는 회개할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허태준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들은, 자격이 없죠.”심청은 무척이나 황당하였다.“장 지배인님!” 그는 총지배인을 불렀다. “객실부 직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시켜주신다면서요? 저희는 준비가 다 되었는데 지금 이것은 뭐 어쩌자는 거예요?”그녀가 교육을 언급하자 총지배인은 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이 사람들이 성심껏 교육을 받으려 한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겠는가! 그도 덩달아 일자리를 잃게 만들다니!“이제 와서 교육이 생각나나 보지? 아까까지만 해도 본때를 보여준다더니,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심청과 객실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아까전에 너무 격렬하게 토론한 탓에 총지배인이 그곳을 지나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내부적으로나 얘기하고 불평을 표시하는 것쯤은 일이 되지 않았지만 총지배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하다니 이것은 모욕이다.“우리는 그냥...” 심청은 머리를 쥐어짜서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댔다. “네티즌들한테 하도 며칠 동안 욕을 먹었더니 원한이 차서요. 그런 데다 계속 우리 아래였던 대구시 로열이 이제는 우리 머리 위에 기어 올라가는 것 같아서... 저희도 그냥 분풀이로 얘기한 것뿐이에요. 진짜로 그렇게 행동할 생각은 없었어요.”“그냥 얘
“객실부 매니저가 다 이런 태도로 일을 하니 아랫사람들이 얼렁뚱땅 넘어가고 뉴스에까지 나와 그룹에 먹칠하는 것이 놀랍지 않네요.” 허태준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그는 더 이상 이 사람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가서 이직 수속을 밟으세요. 반 시간만 줄 겁니다. 반시간후에 여기 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보안요원이 올라와서 짐을 챙기는 것을 도와줄 겁니다.”객실부 사람들 모두 어쩔 수 없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유독 심청만이 이 결과가 믿기지 않는 듯 허태준이 떠나간 후 총지배인을 붙잡고 울분을 토로했다. “장 지배인님, 방금 그 이상한 사람은 누구예요? 누군데 우리를 짤라라 한다고 짜르나요? 무슨 권리로?”이때가 되어서야 총지배인은 반성하기 시작했다.얼마나 눈이 멀었으면 심청을 객실부 매니저로 승급시켜 줬을까?“그룹 허 대표님이야.” 그는 심청의 손을 떨쳐내고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룹 아래 모든 호텔은 다 그분 것이야. 무슨 권리로 널 짜르겠니?”심청은 멍해졌다. 마음은 바닥으로 떨어졌다.감히... 그런 분의 심기를 거슬렀다니?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총지배인의 분노어린 마음은 조금씩 통쾌해졌다. 내뱉는 말도 더욱 신랄했다. “아래 안내데스크한테서 들었는데 허 대표가 대구시의 심 매니저와 같이 왔다고 하네. 아까 자네들이 여기서 했던 말들은 나뿐만 아니라 허 대표도 한 글자 빼놓지 않고 다 들었다네. 로열을 떠나면 아예 다른 업계에 종사하도록 해. 허 대표 스타일로 봐서 자네는 국내 호텔업계에서 일자리를 얻기 힘들걸세. 그리고 자네들은——” 그의 눈길은 심청처럼 질겁해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했다. “계속 심 매니저를 따라서 시중이나 들어주게나!”**심유진은 혼자 방안에서 좌불안석이었다.심청이 중도에 전화를 끊었지만 들어야 할 포인트는 전부 들었다.허태준이 객실방 사람을 전부 짜른 데에는 아무래도 심청이 바람을 놓은 데 있을 것이다.그녀 때문에 한 개 부서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탓인지
“심청은 약속대로 당신을 맞이하지 않았어. 고객의 컴플레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당신을 난처하게 하고 싶은 거야. 회사도 계열호텔지간에 경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 해. 하지만 그것은 다같이 성장하기 위함이지 서로를 억누르라는 게 아니야. 심청이 오늘 한 행동과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회개심마저 없는 점은 로열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해. 그녀의 팀도 똑같이 로열에 맞지 않을 거야. 물론 내가 이렇게까지 한데에도 이유가 있어——다른 부서 사람들도 알아야지. 그룹 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태업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심유진은 시름이 놓이는 동시에 조금 실망했다——허태준은 역시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그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것이 그녀를 위한것이라고 생각했다——어리석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였다. 긴 머리카락은 부끄러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럼 새로 온 직원들은 언제 도착하나요? 저는 심청의 업무를 잠시 대신해 줄 수 있지만 객실부에는 저 혼자라... 아마 어려울 것 같은데요.”“다른 호텔의 직원을 잠시 데려오라고 했어. 한 군데에서만 오진 않을 거야. 신입사원의 적응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게 조금 더 신경 써줘야 할 것 같아.”“네.” 심유진은 대답했다.“좋아. 그럼 일 얘기는 다 된 것 같고.” 허태준은 더 이상 진지한 표정을 하지 않았다. 얼굴 윤곽은 부드러워졌다.그는 심유진한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심유진은 그의 크고 건조한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허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자고 싶지 않다며? 오후에 일도 없는데 나랑 같이 본가에 갔다 오자.”심유진은 지금 자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잡고 문을 나섰다. 그녀를 차에 “압송”하였다.**인왕동은 경주시의 시내 중심에 있다. 경주시에서도 이름있는 부자 동네다.신문에 나는 정치계 유명 인사도 여
허 할아버지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 쌍의 눈은 처음에는 허태준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아예 심유진한테 고정되었다.“이분은?” 허태준한테 묻는 말이었지만 눈길만은 심유진한테서 떨어지지 않았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자신과 더 가까이 붙게 하고 대답했다. “제 색시 심유진이예요.”허 할아버지는 놀랐다. 목소리도 높아졌다. “색시?!”심유진도 놀랐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허태준한테 달라붙었다.허태준이 데려가려는 곳이 경주에 독거하고 있는 집인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 집으로 올 줄은 몰랐다.진작 알았다면 죽어도 그이를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이다.“네.”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3일에 혼인신고 하였습니다.”허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는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허리 위치까지 들고는 심유진을 의식하고 도로 내려놓았다.그는 허태준한테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는 심유진한테 말을 걸었다.“유진이?” 그는 삽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방금 전의 냉정함은 온데간데없고 말투는 무척이나 상냥스러웠다. 심유진이 놀라서 달아날까 봐서였다. “어떤 한자를 쓰는고?”심유진은 허태준의 손을 꽉 잡았다. 손바닥은 그의 것과 빈틈없이 붙어있었다. 맞잡은 손에서 그의 몸에서 전해져오는 에너지를 받았다——이 기운은 그녀한테 안정감을 주었다.오랜 직장 생활은 그녀한테 남들보다 강한 임기응변 능력을 갖추게 하였다. 심유진은 방긋 웃고는 조심스레 얘기했다. “달이라는 뜻으로 유진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약간의 떨림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였다.“그렇구나.” 허 할아버지는 실눈을 하면서 웃었다. “아름다운 이름이로구나. 뜻도 좋고.”겉치레 인사라는 것을 알지만 심유진은 여전히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경주는 북방에 위치하여 있어 경주의 겨울은 바다 근처에 있는 남방 도시 대구의 겨울보다 훨씬 추웠다. 공기도 건조하여 찬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면 칼로 베인 듯 아파
허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봐오던 차가운 손주가 심유진 앞에서는 이리도 따뜻하고 자상하게 행동하여 심유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너희들 결혼문제는 부모님이 아셔?” 할아버지는 허태준한테 물었다. 강경한 태도는 심유진을 대할 때와의 자상함과는 전혀 달랐다.“아직은 모릅니다.” 허태준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구정이 지나서 심유진을 데려가고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알리려 했는데 급히 경주에 출장을 오게 되어서요. CY에도 일이 있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 아침에 경주에 도착해서 오후에 바로 할아버지 뵈러 왔습니다. 어때요, 할아버지는 제 마음속에 영원한 일등이에요.”그는 일부러 예쁜 척을 했다. 할아버지의 안색도 좋아지셨다.그는 손에 든 지팡이를 흔들고는 허태준을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뭔 바보 같은 소리냐! 결혼을 했으면 색시가 일등이어야지.”허태준은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말씀이 지당한 말씀입니다.”그는 옆의 심유진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그녀도 쑥스러운지 고개를 깊이 파고들었다. 귀 끝은 빨개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앞으로는 색시가 제 마음속의 일등입니다.”그는 심유진의 늘어진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겨주었다. 손끝은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쳐 지나 소름이 났다.허태준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일부러 “색시.” 하고 불렀다.심유진의 가슴은 더 빠르게 뛰었다. 체온도 상승하는 것 같았다.“네?” 그녀는 억지로 대답을 하였지만 허태준의 눈을 마주 볼 용기가 안 났다.“나도 당신 마음속의 일등인가?” 그는 물었다.이런 쑥스러운 질문이라니... 심유진은 이 질문을 한 사람이 허태준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연기를 잘해서 몰입이 된다하면 끝까지 하는 타입이다.그녀는 불편함을 참고 맞춰주었다. “물론이죠.”진짜인 것처럼 보이려고 그녀는 그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허태준의 까만 눈동자는 반짝였고 웃음이 가득했다.“색시...” 그의 눈빛은 부드럽게 변했다. 말을
허태준 한 사람만 있었다면 허 할아버지의 지팡이는 아마 진작에 내려쳐졌을 것이다.하지만 심유진도 허태준과 전선을 통일한 것 같아 허태준한테 화를 내면 심유진한테도 화를 내게 된 것 같았다.몇 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주며느리인데 함부로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그럼 지금부터 조율을 하거라.” 허 할아버지는 명령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은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허태준한테 말했다. “유진이한테 맞춰줘라. 그러면 날짜는 정해지지 않겠느냐?”“네.” 허태준은 잘도 대답을 하였다.이제 모든 압력은 심유진한테로 돌아왔다.그녀는 화가 나 그를 노려보았다. “팀원”을 버리고 도망가는 행위는 비열한 행위였다.“유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허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물었다.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정이 지나면 상사한테 물어볼게요. 결혼 휴가는 언제 써도 될지를요.”“좋다.” 허 할아버지는 드디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는 또 내가 죽을 때까지도 이 불효 손주가 장가가는 것을 못 보나 했다!”“할아버지는 오래 앉으셔야죠! 못 보긴 뭘 못 봐요!” 허태준은 말하면서 심유진과 맞잡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손주며느리를 이렇게 데려왔잖아요?”허 할아버지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지만 눈가에 미소는 가려지지 않았다.**허 할아버지는 말씀을 잘하셨다. 심유진을 붙잡고 온 오후를 얘기 나눴다. 물을 마실 때 빼고는 입이 쉴 새가 없었다. 그는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 심유진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바로 다른 화제로 뛰어넘어 한시도 분위기가 가라앉은 적이 없었다.그의 언행과 행동거지는 심유진이 “재벌 가족”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자상하고 귀여운 어르신이 좋았다.저녁을 먹고 나서 허 할아버지는 둘을 자고 가라 하였으나 허태준은 거절했다. “심유진이 내일 아침부터 일하러 가야 해서요. 호텔에 묵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요. 너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어서요.”심유진은 그의 옆에서 멋쩍게 웃었다.여기에서 로열
“그렇겠지.” 허태준도 돌아보고 나서는 한숨을 쉬었다. “부모님이랑 삼촌들도 모시고 살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해봤는데 할머니와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하시겠대.”물론 더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할아버지가 대표하는 것은 YT그룹에서의 최고 권력자다. 어느 아들 집에 가서 살든지 타인의 의심과 불만을 사는 것은 뻔한 일이다.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집안 파벌 싸움은 심유진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심유진은 감탄했다. “이 세상에 아직도 할아버지 같은 순정남이 있다니!”허태준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도 있는데”라는 말을 뱃속으로 삼켰다.“남으려면 남든지.” 그는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심유진은 다급히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됐어요. 할아버지도 휴식하고 계실 텐데. 나중에 또 오면 때는 묵도록 할게요.”허태준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허태준은 심유진과 얘기를 나눴다.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허태준의 마음속에 있었다.“좋지요.” 심유진은 전혀 감추려는 마음이 없었다. “솔직히 처음 뵜을 때는 어려운 분인 줄 알았어요!”“사실 상대하기 어려운 분이야.”허태준은 할아버지 뒷담화를 하였다. “성격도 괴팍하고 꼭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셨어. 나도 어릴 때부터 맞으면서 자랐는데. 지팡이를 몇 개 날려 먹었는지 몰라.”“네?”심유진은 허태준이 묘사한 인물과 허 할아버지를 연계시키기 어려웠다.“진짜로요? 거짓말이 아니고요?”“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허태준은 웃었다. “네 앞이라 많이 약해지셨어. 아마도 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나 봐.”심유진은 얼굴이 빨개졌다. “허태준 씨를 예뻐하시니 저도 예뻐하는 거겠죠.”이러한 이유도 없지 않아 있지만 허태준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손주며느리”가 아닌 심유진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사촌 형제들도 다들 장가가고 애들을 낳았지만 할아버지는 그들의 와이프한테는 심유진한테 대하는 것마냥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