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착륙했다. 다시 대구로 돌아오니 심유진은 방금 전까지 있었던 그 복잡한 일들이 다 잊히는 기분이었다.여형민이 차를 몰고 공항에 데리러 왔다. 여형민이 심유진을 보자마자 물었다.“괜찮아요?”“네.”여형민이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쉬었다.“그럼 됐어요. 이틀 동안 연락도 안 되고 집에 가봐도 없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요. 다행히 태준이가 유진 씨네 호텔 대표님이랑 연락이 돼서 경주로 돌아갔다는 걸 알게 됐어요.”“휴대폰이 꺼져있어서 괴롭힘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네요. 근데 오늘 미팅이 있어서 태준이랑 같이 못 가게 됐어요. 미안하게 됐네요.”심유진이 손을 저었다.“뭐가 미안해요, 괜찮아요.”그저 친구 사이에 이렇게 걱정해 준 것만 해도 심유진은 너무 고마웠다. 심유진은 허태준을 힐끗 쳐다봤다. 아까 했던 얘기들이 다 사실일 줄은 몰랐다.“혹시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심유진이 여형민에게 물었다.“곧 주대영 씨 재판이 열릴 거예요. 그때 가서 미리 월차 쓰세요.”“네.”차량이 시내로 진입했다. 집과 가까운 쇼핑몰 근처를 지날 때 심유진이 갑자기 말했다.“차 좀 세워주세요.”“왜요?”“휴대폰을 새로 사야 돼요.”심유진의 휴대폰은 심훈한테 있었다. 급히 나오다 보니 그걸 찾아오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다행히 휴대폰에 중요한 내용들을 저장해 놓는 편이 아니다 보니 심훈이 비밀번호를 풀어도 얻을 정보가 없을 것이다.“저도 같이 가요. 일이 끝나면 저녁도 먹고요.”여형민이 상가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할 곳을 찾고 있는데 그의 눈에 익숙한 차가 보였다.“어?”하지만 차 번호를 자세히 보고 나서야 여형민은 시선을 돌렸다.“아... 아니네.”“뭐가 아니에요?”심유진이 물었다.“저 스포츠카 말이에요. 전 또 태준이 차인 줄 알았어요.”심유진도 그 차를 바라봤다. 확실히 허태준의 차와 똑같게 생긴 모습이었다. 허태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저 차를 타는 사람이 뭐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까.”여
허태준은 항상 그를 차갑게 대했었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먼저 말을 걸었다.“휴가 때 경주에 가지 않은 건가요?”정재하는 허태준의 이런 모습이 적응되지 않아 웃음마저 경직됐다.“아니요, 일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물었다.“아리 쪽 두 bj들한테 아진 광고를 따내 줬다면서요.”정재하의 얼굴이 붉어졌다.“마침 아진에서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그 bj들이랑 아는 사이라서 추천해 줬을 뿐이에요. 진짜 될 줄은 몰랐네요.”허태준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말이었다. 허태준이 조사해 본 데 따르면 정재하는 태하 그룹의 상당한 금액의 자금을 계약금으로 지불하여 이 광고를 따냈다. 하지만 허태준은 그의 거짓말을 이 자리에서 공개해 버릴 생각은 없었다. 광고비중에 4할은 회사의 몫이다. 즉 정재하는 지금 자신에게 돈을 부단히 입금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태준에게는 굉장한 이득이었다.“심연희 씨랑 결혼하게 되면 축의금은 두둑하게 낼게요. 감사 인사는 확실히 해야죠.” 허태준이 웃었다. 정재하는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그나저나 회사 일이 바쁘긴 하겠지만 여자친구랑도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연희 씨 부모님이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대요. 남은 날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재하 씨가 옆에 있어 주길 원할 거예요.”정재하가 깜짝 놀라 물었다.“언제 진단을 받으신 거예요?”그는 종래로 심연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몰랐어요? 연희 씨 아버님께서 이 일로 대구까지 찾아와서 유진 씨를 집으로 데려갔었는데요.”“맞아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의도가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대표님이랑 저랑 방금 막 경주에서 돌아오는 길이예요.”정재하가 굉장히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알려줘서 고마워요. 저도 바로 경주로 가봐야겠어요.”정재하가 차 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스포츠카가 소리를 냈다.“저 차가 재하씨 꺼예요?”여형민이 물었다.“네.
”네?”심유진이 놀라서 물었다.“제가 그 집에 왜 가요?”허태준은 질문과 맞지 않는 답을 했다.“내일은 혼인신고 하러 가자.”“네? 뭘 한다고요?”심유진은 그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혼인신고.”허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나빠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심유진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40억이 카드에 송금되었다고 은행에서 보낸 메시지였다.심유진은 0이 몇 개나 붙어있는지 한참을 세고 나서야 얼마인지가 계산됐다.“40억...”심유진은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 했다.“전 그저 정현철 씨가 포기했으면 해서 40억이라고 한 건데...”심유진은 이 돈을 정말 받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 허태준과 결혼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돈만 받으면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나?”허태준은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했는지, 그녀가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아니면...”허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목소리를 낮췄다.“정말 정연우에게 시집가고 싶었던 건가?”“아니요!”심유진이 빠르게 부정했다. 정연우와 결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나. 겨우 벗어난 집안을 자기 발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잘 생각해. 정연우가 아니어도 그쪽에서는 다른 사람을 또 찾을 거야. 당신이 결혼을 해야 이 지긋지긋한 굴레가 끝날 거라고.”심유진도 허태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허태준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크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재벌 집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조금 두려웠을 뿐이었다.사영은이 바로 그 실례이기도 했다. 심유진은 심훈의 부모님이 사영은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던 여신이 집안에서는 하인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어쩌면 그로 인해 사영은도 점점 더 예민해지면서 작은 일에도 크게 화내는 사람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심유진은 사영은처럼 끔찍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결혼은 우리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잖아요.”심유
허태준이 쐐기를 박았다.“우리 둘이 결혼한 사실은 가족들 말고 다른 그 누구도 모르게 할 거야. 만약 우리 가족들이 마음에 안 든다면 언제든지 취소해도 좋아.”심유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좋아요.”원래대로라면 구청이 문을 닫는 날일 테지만 허태준은 어떻게 사람을 찾았는지 구청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심유진은 나름 경험이 있었지만 허태준은 하도 긴장해서 표정이 너무 어색해 사진도 한참을 찍었다. 허태준은 같이 찍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심유진은 그저 허태준이 신기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제가 운전할게요. 사진에 푹 빠지신 거 같은데.”“그래.”허태준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차에 올라탄 후 사진을 찍어 여형민에게 자랑까지 했다.“축하해. 소원 이뤘네.”허태준은 가만히 심유진의 눈치를 보면서 답장했다.“응.”“저녁 같이 먹을래?”여형민이 물었다.“아니.”허태준이 휴대폰을 꽉 잡았다. 심장이 너무 뛰어 잠시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다른 일정이 있어.”여형민이 음흉하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그를 놀렸다. 허태준은 해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심유진은 19층을 누른 다음 허태준을 대신해 20층도 눌렀다. 하지만 허태준이 20층 버튼을 취소해 버렸다. 심유진이 고개를 들어 허태준을 쳐다봤다.“이사.”“네? 무슨 이사요?”허태준이 혼인신고서를 들어 보였다.“이제 결혼했는데 같이 살아야지.”“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자희가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들은 모르잖아요.”한층에 한집밖에 없었기에 다른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지 않는 이상 심유진이 몇 층에서 내리는지도 모를 것이다.“심연희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거 몰라? 찾아오면 어떡하려고.”심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골치 아픈 일이긴 했다.“우리 집으로 이사 오면
심유진은 결국 허태준의 집으로 이사했다. 원래 짐이 많지 않았기에 금방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허태준도 더 이상 선을 넘지 않고 심유진에게 거실 옆의 빈방을 내어줬다.정리를 마치자마자 심유진은 혼인신고서를 꺼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더니 서재로 가서 허태준을 찾았다.“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요?”허태준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으나 그 말을 듣고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허태준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어떤 사진?”“음...”심유진이 머뭇거렸다.“그러니까... 다정해 보이는 사진?”심유진의 얼굴이 빨개지는 게 보였다.“그래.”허태준이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심유진 옆에 섰다.“얼마나 다정하게?”허태준은 심유진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어...”심유진이 다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메마른 입술만 만지작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머리를 맞대는 정도?”“그럼 거실에 나가서 찍자.”허태준이 성큼성큼 거실로 나갔고 심유진이 다급히 그 뒤를 쫓았다. 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심유진은 자기가 먼저 머리를 맞대자고 했음에도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심유진이 휴대폰을 들었고 두 사람이 같은 화면에 들어왔다. 심유진과 허태준의 머리가 10만 리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이게 맞댄 거야?”허태준이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심유진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아니면 그냥 이렇게 찍을까요?”“이렇게 찍으면 누가 부부라고 믿을 것 같아?”허태준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심유진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아니에요, 안 찍을래요.”심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허태준이 그녀의 허리를 덥석 잡고는 품에 안았다. 허태준이 심유진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뺏어 높이 들었다.허태준이 턱을 심유진의 머리에 올려놓은 채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심유진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그의 심장 소리와 싱그러운 체향을 맡으며 저도 모르게 두근거림을 느꼈다.“웃어.”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그제야
심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심장이 뛰었다.“어때? 잘 나왔어?”허태준이 물었다. 사진을 보기 위해 허태준이 얼굴을 가깝게 댔다.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심유진은 다급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심장박동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잘 나왔어요.”심유진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말했다. 허태준은 그런 그녀의 변화를 알아채고 작게 웃었다.“그럼 됐어.”심유진은 휴대폰에 주의력을 집중하느라 노력했다. 안 그러면 옆에 있는 허태준이 너무 신경 쓰였다. 심유진은 SNS에 혼인신고서와 방금 같이 찍은 사진을 심연희만 볼 수 있게 설정한 뒤 업로드 했다.허태준은 분명 심유진이 게시물을 올리는 걸 봤는데 자기 휴대폰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혹시 난 못 보게 설정한 거야?”“아니에요, 연희만 볼 수 있게 설정해 뒀어요.”허태준은 이 결혼을 가족들 외에 다른 누구도 모르게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한 심정이었다.“지우고 나랑 여형민도 볼 수 있게 다시 올려.”심유진은 힘든 일도 아니니 바로 다시 올렸고 허태준은 가장 먼저 좋아요를 눌렀다. 한참 지나서야 심연희에게서 문자가 왔다.“언니, 정말 대표님이랑 결혼한 거야?”“응.”심유진은 일부러 40억이 입금된 내역을 찍어 보냈다.“정씨네보다 훨씬 시원시원하더라고.”심연희는 더 이상 문자가 없었다. 심유진은 조금 실망했다.저녁 6시쯤 되자 허태준이 방문을 두드렸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도 손질한 모습이었다.“준비하고 나와, 밥 먹으러 가자.”심유진은 이사 오고 나서 냉장고를 살펴봤었다. 물과 맥주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장을 봐올 생각이었으나 하도 바쁘다 보니 잊어버리고 말았다. 심유진은 이 시간에 장을 봐오기엔 늦었으니 나가서 먹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네, 가요.”허태준은 뭔가 말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는 몸을 돌려 심유진이 보지 못하는 틈
리친시아 부근에만 해도 꽤 많은 식당들이 있었다. 심유진은 허태준이 대충 아무 곳이나 골라 저녁을 해결할 줄 알았는데 그는 차를 몰고 번화가를 지나 CY빌딩까지 가서야 멈춰 섰다.“야근이라도 하려는 거예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질문을 못 들은 척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며 심유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유진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 손을 잡았다. 허태준은 자기 손에 쏙 들어오는 그 자그마한 손을 꽉 잡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따라와.”휴가일인 데다가 저녁 6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CY빌딩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보안실에서도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허태준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의 버튼을 눌렀다.“70층이요?”심유진은 허태준이 잘못 누른 줄 알았다. 허태준의 사무실은 69층이었기 때문이다. 70층이라면 아마 전망대일 것이다.“응.”심유진은 조금 설레 보였다.“우리 야경 보러 가는 거예요?”이곳에 처음 왔을 때 여형민이 알려준 적 있었다. 전망대에서는 대구 시내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지만 그곳은 고위층 임원들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다.“응.”허태준이 담담히 대답하며 엘리베이터가 몇 층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심유진은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우와!”엘리베이터와 똑같이 전망대도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투명한 유리로 제작되어 있었다. 밤하늘에 걸려있는 달과 별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높이였다. 심유진은 바닥을 한번 쳐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온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심유진은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저희가 여기 있으면 직원들한테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고개를 들면 저희가 보일 텐데요.”“아니.”허태준이 심유진의 손을 꽉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으며 대답했다.“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 보이게 특수제작한 유리야. 그러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허태준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그가 손벽을 탁 치자 어디서인지 웨이터 두 명이 나타나 그들에게 음식을 올렸다.메인디쉬는 부드럽게 잘 익은 스테이크였다. 그리고 옆에는 오래된 와인이 있었다.허태준은 잔을 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안에는 밝은 별빛이 담겨있었다.“결혼을 축하해.” 그는 심유진한테 얘기했다.심유진은 그와 잔을 부딪히면서 얘기했다. “결혼 축하해요.”두 사람은 마주보면서 웃고는 반 잔 담긴 와인을 한 번에 다 마셨다. 먼 곳에 있는 네온 등불이 어두움을 뚫고 반짝이고 있었다.심유진은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여기 진짜 아름답네요.” 그녀는 마음속으로부터 감탄했다.“마음에 들면 앞으로 자주 오면 되지.” 허태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투는 저도 모르게 따뜻하게 변했다.심유진은 놀라서 머리를 돌렸다. 그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치자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울렸다. 얼굴은 점점 뜨거워났다.“좋아요.” 그녀는 머리를 숙였다.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이때 음악 소리가 갑자기 끊겼고 등불도 갑자기 꺼졌다.심유진은 놀랐다. “정전인가요?”“위를 봐봐.” 허태준은 말했다.그녀는 머리를 올려 바라보았다. 한 줄기의 빛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곡선을 남겼다.“별똥별!” 심유진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손에 든 포크랑 나이프를 던지고 핸드폰을 잡았다.허태준은 빠르게 그녀의 왼손을 잡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네 번째 손가락에 딱딱하고 차가운 무엇인가가 끼워졌다. 달빛 때문에 어둠 속에서 유난히 눈이 부셨다.다이아몬드였다!그것도 엄청 큰 다이아몬드!티비에서나 보던 큰 다이아몬드는 아니었지만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심유진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별똥별은 금방 사라졌고 하늘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등불은 다시 밝아오고 커튼 뒤의 연주악단은 사라졌다.심유진은 허태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걸 왜 저한테 주는거죠?” 그녀는 물었다.“프러포즈를 보충하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