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누구랑 결혼하던 정씨네 가문과 심씨네 가문의 혼인이 성사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왜 정현우는 이미 자신과 혼인이 결성된 듯 행동하는 것일까? 아까 서재에서 정현철은 분명 정연우와의 결혼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말이다.정현철이 고개를 돌려 정현우를 노려보며 호통쳤다.“닥쳐!”정현철이 허태준에게 말했다.“당연히 연우지. 부모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자식이 몇이나 되겠나. 이미 이 혼사는 나와 유진이네 이모랑 이모부가 다 동의한 일일세. 유진이도 원하고 있고...”“아니요.”심유진이 정현철의 말을 끊었다.“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심유진이 웃으며 허태준의 어깨에 기댔다.“태준 씨가 20억이나 준다잖아요? 그쪽에서는 10억도 할부로 주겠다고 하시고...”정현철이 얼굴이 벌게져서는 심훈과 사영은을 재촉했다.“이 일을 어떻게 할 건데!”“연우 씨랑 결혼해야 돼 넌.”사영은이 말했다. 심유진이 정연우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심연희는 허태준을 넘볼 수가 없었다. 사영은은 꼭 심연희의 앞길을 잘 다져주고 싶었다. 반대로 심유진은 어디 가서 죽든말든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심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훈은 사영은과 심연희가 세운 계획에 대해 모르고 있었지만 그도 자신만의 계획이 있었다. 허태준의 20억은 큰돈이긴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 푼도 차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씨네 집안이 10억을 전부 심유진에게 준다 해도 적어도 결혼 후 두 회사가 합작하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 수입이 늘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래요, 그럼.”심유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더 큰 요구를 제기했을 뿐이었다.“그럼 20억보다 더 큰돈을 주세요. 일시불로요.”“심유진, 까불지 마.”사영은이 경고했다.“이건 결혼을 하는 거지 몸을 파는 게 아니야.”심유진이 비웃었다.“제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제로 하는 게 몸을 파는 거 아닌가요?”“어차피 팔리게 될 거라면 공평하게 경쟁하죠? 가격을 높이 부르는 사람한테 가는 걸로.”심유진
정현철은 끝내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못했다. 그리고 심훈과 사영은이 붙잡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떠나기 전 정현우는 아쉬워하며 심유진을 바라봤다. 집 문을 나서자마자 정현우가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40억밖에 안 되잖아요... 저번에 영화 찍을 때 사민영 씨한테는 60억이나 줬으면서...”“60억을 준 만큼 몇십억을 번 사람이야. 심유진은 그게 가능해?”정현철이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이 결혼은 꿈도 꾸지 마. 더 좋은 여자 하나 찾아줄 테니까.”“그런데 전 심유진이 좋아요!”정현우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심유진이 아니면 다른 누구라도 싫어요.”“그럼 네가 직접 40억을 벌어다 주던가! 하여튼 난 1전 한 푼도 그 여자한테 쓰고 싶지 않다.”정현철의 입장이 매우 단호했다.“다른 사람한테 장가가던가 아니면 한평생 가지 말던가 네가 선택해.”“아빠!”정현우가 정현철의 손을 잡고 애원하려 했으나 정현철이 그 손은 뿌리쳤다.“아빠라고 부르지 마! 난 너처럼 못난 아들 둔 적 없다.”정현철은 유비의 부축하에 차에 올라 차 문을 쾅 닫았다. 같이 올라타려던 정현우는 하마터면 문에 부딪힐 뻔했다. 정현우가 비굴한 모습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현우야.”정현철의 부름에 운전을 하고 있던 정연우가 고개를 돌렸다.“네?”“방금 허 씨라고 하던 그 남자에 대해 알아봐. 뭐 하는 사람인지.”정현철의 눈에 독기가 어려있었다.“감히 나한테 맞서? 본때를 보여줘야겠어.”그 시각 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잡으며 이만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한 걸음 떼자마자 사영은이 그 앞을 막아섰다.“이 결혼 난 반대야.”사영은의 태도가 결연해 보였다. 허태준은 그런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이건 저랑 유진 씨 사이의 일입니다.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요.”허태준이 사영은을 피해 지나가려는데 사영은이 또다시 심유진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감히 허태준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어 모든 화를 심유진에게 풀었다.“나 화나
마지막 한 계단을 내려왔을 때 위층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심연희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언니 빨리 와봐. 엄마가 쓰러졌어.”하지만 이런 말에 당할 심유진이 아니었다.“쓰러졌으면 구급차를 불러야지. 난 왜 불러?”심훈이 1층에 있는 고용인들에게 명령했다.“유진이 못 가게 막아!”여러 명이 심유진에게 달려들었지만 허태준이 다 밀쳐냈다. 다들 벽에 부딪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더 이상 누구도 그들의 앞길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유진은 허태준의 에스코트하에 안전하게 집을 빠져나왔다.“신분증은 챙겼어?”허태준이 물었다.“네.”심유진이 바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언제든지 도망가기 위해 매번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심유진은 신분증부터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다.“다른 일이 없으면 지금 당장 공항으로 가서 가장 빨리 뜨는 비행기로 대구에 가자.”“좋아요.”심유진이 바라던 바였다. 집을 나서니 이제야 불안에 떨던 마음이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그제야 허태준에게 물었다.“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어요?”아까 비록 대답을 듣긴 했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솔직하게 얘기해 주세요.”허태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아까 말한 그대로야.”심유진은 믿지 않았다. 아무리 연락이 안 돼서 걱정된다 하더라도 대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올 필요까지는 없었다. 심유진은 자신들의 관계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안 믿으면 말고.”허태준은 심유진은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그나저나...”허태준이 심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사람들이랑은 죽어도 연락하지 않겠다더니 경주까지는 왜 왔어?”“새아빠한테 강제로 끌려온 거예요.”심유진은 심훈이 했던 모든 일을 사실대로 허태준에게 털어놓았다.“엄마가 자궁암 말기니까 집에 와보라고 했어요. 근데 다 절 강제로 결혼시키기 위해 설치한 덫인 거 같아요. 아마 저희 엄마는 건강하실걸요.”사영은은 확실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가 저번에 대구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다시 대구로 돌아오니 심유진은 방금 전까지 있었던 그 복잡한 일들이 다 잊히는 기분이었다.여형민이 차를 몰고 공항에 데리러 왔다. 여형민이 심유진을 보자마자 물었다.“괜찮아요?”“네.”여형민이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쉬었다.“그럼 됐어요. 이틀 동안 연락도 안 되고 집에 가봐도 없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요. 다행히 태준이가 유진 씨네 호텔 대표님이랑 연락이 돼서 경주로 돌아갔다는 걸 알게 됐어요.”“휴대폰이 꺼져있어서 괴롭힘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네요. 근데 오늘 미팅이 있어서 태준이랑 같이 못 가게 됐어요. 미안하게 됐네요.”심유진이 손을 저었다.“뭐가 미안해요, 괜찮아요.”그저 친구 사이에 이렇게 걱정해 준 것만 해도 심유진은 너무 고마웠다. 심유진은 허태준을 힐끗 쳐다봤다. 아까 했던 얘기들이 다 사실일 줄은 몰랐다.“혹시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심유진이 여형민에게 물었다.“곧 주대영 씨 재판이 열릴 거예요. 그때 가서 미리 월차 쓰세요.”“네.”차량이 시내로 진입했다. 집과 가까운 쇼핑몰 근처를 지날 때 심유진이 갑자기 말했다.“차 좀 세워주세요.”“왜요?”“휴대폰을 새로 사야 돼요.”심유진의 휴대폰은 심훈한테 있었다. 급히 나오다 보니 그걸 찾아오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다행히 휴대폰에 중요한 내용들을 저장해 놓는 편이 아니다 보니 심훈이 비밀번호를 풀어도 얻을 정보가 없을 것이다.“저도 같이 가요. 일이 끝나면 저녁도 먹고요.”여형민이 상가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할 곳을 찾고 있는데 그의 눈에 익숙한 차가 보였다.“어?”하지만 차 번호를 자세히 보고 나서야 여형민은 시선을 돌렸다.“아... 아니네.”“뭐가 아니에요?”심유진이 물었다.“저 스포츠카 말이에요. 전 또 태준이 차인 줄 알았어요.”심유진도 그 차를 바라봤다. 확실히 허태준의 차와 똑같게 생긴 모습이었다. 허태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저 차를 타는 사람이 뭐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까.”여
허태준은 항상 그를 차갑게 대했었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먼저 말을 걸었다.“휴가 때 경주에 가지 않은 건가요?”정재하는 허태준의 이런 모습이 적응되지 않아 웃음마저 경직됐다.“아니요, 일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물었다.“아리 쪽 두 bj들한테 아진 광고를 따내 줬다면서요.”정재하의 얼굴이 붉어졌다.“마침 아진에서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그 bj들이랑 아는 사이라서 추천해 줬을 뿐이에요. 진짜 될 줄은 몰랐네요.”허태준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말이었다. 허태준이 조사해 본 데 따르면 정재하는 태하 그룹의 상당한 금액의 자금을 계약금으로 지불하여 이 광고를 따냈다. 하지만 허태준은 그의 거짓말을 이 자리에서 공개해 버릴 생각은 없었다. 광고비중에 4할은 회사의 몫이다. 즉 정재하는 지금 자신에게 돈을 부단히 입금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태준에게는 굉장한 이득이었다.“심연희 씨랑 결혼하게 되면 축의금은 두둑하게 낼게요. 감사 인사는 확실히 해야죠.” 허태준이 웃었다. 정재하는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그나저나 회사 일이 바쁘긴 하겠지만 여자친구랑도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연희 씨 부모님이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대요. 남은 날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재하 씨가 옆에 있어 주길 원할 거예요.”정재하가 깜짝 놀라 물었다.“언제 진단을 받으신 거예요?”그는 종래로 심연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몰랐어요? 연희 씨 아버님께서 이 일로 대구까지 찾아와서 유진 씨를 집으로 데려갔었는데요.”“맞아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의도가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대표님이랑 저랑 방금 막 경주에서 돌아오는 길이예요.”정재하가 굉장히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알려줘서 고마워요. 저도 바로 경주로 가봐야겠어요.”정재하가 차 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스포츠카가 소리를 냈다.“저 차가 재하씨 꺼예요?”여형민이 물었다.“네.
”네?”심유진이 놀라서 물었다.“제가 그 집에 왜 가요?”허태준은 질문과 맞지 않는 답을 했다.“내일은 혼인신고 하러 가자.”“네? 뭘 한다고요?”심유진은 그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혼인신고.”허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나빠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심유진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40억이 카드에 송금되었다고 은행에서 보낸 메시지였다.심유진은 0이 몇 개나 붙어있는지 한참을 세고 나서야 얼마인지가 계산됐다.“40억...”심유진은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 했다.“전 그저 정현철 씨가 포기했으면 해서 40억이라고 한 건데...”심유진은 이 돈을 정말 받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 허태준과 결혼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돈만 받으면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나?”허태준은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했는지, 그녀가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아니면...”허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목소리를 낮췄다.“정말 정연우에게 시집가고 싶었던 건가?”“아니요!”심유진이 빠르게 부정했다. 정연우와 결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나. 겨우 벗어난 집안을 자기 발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잘 생각해. 정연우가 아니어도 그쪽에서는 다른 사람을 또 찾을 거야. 당신이 결혼을 해야 이 지긋지긋한 굴레가 끝날 거라고.”심유진도 허태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허태준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크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재벌 집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조금 두려웠을 뿐이었다.사영은이 바로 그 실례이기도 했다. 심유진은 심훈의 부모님이 사영은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던 여신이 집안에서는 하인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어쩌면 그로 인해 사영은도 점점 더 예민해지면서 작은 일에도 크게 화내는 사람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심유진은 사영은처럼 끔찍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결혼은 우리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잖아요.”심유
허태준이 쐐기를 박았다.“우리 둘이 결혼한 사실은 가족들 말고 다른 그 누구도 모르게 할 거야. 만약 우리 가족들이 마음에 안 든다면 언제든지 취소해도 좋아.”심유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좋아요.”원래대로라면 구청이 문을 닫는 날일 테지만 허태준은 어떻게 사람을 찾았는지 구청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심유진은 나름 경험이 있었지만 허태준은 하도 긴장해서 표정이 너무 어색해 사진도 한참을 찍었다. 허태준은 같이 찍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심유진은 그저 허태준이 신기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제가 운전할게요. 사진에 푹 빠지신 거 같은데.”“그래.”허태준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차에 올라탄 후 사진을 찍어 여형민에게 자랑까지 했다.“축하해. 소원 이뤘네.”허태준은 가만히 심유진의 눈치를 보면서 답장했다.“응.”“저녁 같이 먹을래?”여형민이 물었다.“아니.”허태준이 휴대폰을 꽉 잡았다. 심장이 너무 뛰어 잠시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다른 일정이 있어.”여형민이 음흉하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그를 놀렸다. 허태준은 해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심유진은 19층을 누른 다음 허태준을 대신해 20층도 눌렀다. 하지만 허태준이 20층 버튼을 취소해 버렸다. 심유진이 고개를 들어 허태준을 쳐다봤다.“이사.”“네? 무슨 이사요?”허태준이 혼인신고서를 들어 보였다.“이제 결혼했는데 같이 살아야지.”“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자희가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들은 모르잖아요.”한층에 한집밖에 없었기에 다른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지 않는 이상 심유진이 몇 층에서 내리는지도 모를 것이다.“심연희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거 몰라? 찾아오면 어떡하려고.”심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골치 아픈 일이긴 했다.“우리 집으로 이사 오면
심유진은 결국 허태준의 집으로 이사했다. 원래 짐이 많지 않았기에 금방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허태준도 더 이상 선을 넘지 않고 심유진에게 거실 옆의 빈방을 내어줬다.정리를 마치자마자 심유진은 혼인신고서를 꺼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더니 서재로 가서 허태준을 찾았다.“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요?”허태준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으나 그 말을 듣고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허태준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어떤 사진?”“음...”심유진이 머뭇거렸다.“그러니까... 다정해 보이는 사진?”심유진의 얼굴이 빨개지는 게 보였다.“그래.”허태준이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심유진 옆에 섰다.“얼마나 다정하게?”허태준은 심유진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어...”심유진이 다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메마른 입술만 만지작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머리를 맞대는 정도?”“그럼 거실에 나가서 찍자.”허태준이 성큼성큼 거실로 나갔고 심유진이 다급히 그 뒤를 쫓았다. 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심유진은 자기가 먼저 머리를 맞대자고 했음에도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심유진이 휴대폰을 들었고 두 사람이 같은 화면에 들어왔다. 심유진과 허태준의 머리가 10만 리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이게 맞댄 거야?”허태준이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심유진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아니면 그냥 이렇게 찍을까요?”“이렇게 찍으면 누가 부부라고 믿을 것 같아?”허태준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심유진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아니에요, 안 찍을래요.”심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허태준이 그녀의 허리를 덥석 잡고는 품에 안았다. 허태준이 심유진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뺏어 높이 들었다.허태준이 턱을 심유진의 머리에 올려놓은 채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심유진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그의 심장 소리와 싱그러운 체향을 맡으며 저도 모르게 두근거림을 느꼈다.“웃어.”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