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능력은 몰라도 김준휘는 적반하장에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다.“그럼 우리가 빠질게, 어때?”이내 선심 쓰는 척 꼬리를 내렸다.“오늘 일은 없었던 거로 해. 즉 나도 못 봤던 거야. 서해시는 여전히 진씨 그리고 공씨 가문이 꽉 잡고 있고, 앞으로 얼씬거리지도 않을게.”그의 말에 끝나기 무섭게 신우영과 안정우 일행은 안색이 돌변했다.김씨 가문을 따라 호의호식할 거로 믿었는데 명성이 자자한 김가네 도련님이 이렇게 빨리 굴복할 줄이야!자신들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걱정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듣자 하니 지금 도망칠 기세이지 않은가?이번에 제대로 망신당한 꼴이었다.“가자.”김준휘가 이동하려고 다리를 움직이자 염무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가도 된다고 한 적이 없는데?”김준휘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버럭 외쳤다.“내가 이미 배려해줬잖아! 게다가 그동안 저지른 짓거리도 용서해줬는데 대체 뭘 원하는 거야?”“둘째 삼촌이랑 재회하게 해줄게.”염무현이 서늘하게 대답했다.김준휘는 겁을 먹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나... 날 죽이려고? 경고하는데 장문주를 이겼다고 해서 내가 안중에도 없다가 큰코다칠 줄 알아. 우리 가문에서 장문주 같은 사람은 개뿔도 아니거든? 김씨 일가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처참한 죽임을 당할 테니까!”염무현이 피식 비웃었다.“김준영을 불구로 만들고 김민재를 죽였는데 털끝이 웬 말이지? 난 여태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김준휘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염무현은 그를 가만두지 않을 작정인 듯싶었다.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이때, 누군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저기 봐! 뭐지?”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빠르게 다가왔다.“세상에, 사람인 것 같은데...”“지금 날아다니는 건가? 설마 이게 바로 전설 속의 경공...?!”“저분 마 선생님 아닌가요? 마스터님께서 오셨으니 이제 구경거리가 생기겠네요.”그를 발견한 김준휘는 반색을 했다.마범구가 나타났다!도움을 구
김준휘가 다시금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했다.“바로 이 자식이 죽였거든요? 이름은 염무현이라고 합니다.”마범구는 버럭 외쳤다.“진짜 네 놈이 죽였어?”염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무심하게 말했다.“네.”70세가 되는 마범구는 회색 무술복을 입고 있었다. 만약 노발대발하며 흉악하게 일그러진 표정만 아니었더라면 나름대로 기력이 정정한 노인처럼 보였을 것이다.“이놈이 간덩이가 부었나?”마범구는 두 눈을 부라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내 마지막 제자는 물론 이제 애제자마저 죽이다니?!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려 두 사람의 원수를 갚아주마!”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서늘한 기운을 뿜어냈다.마범구의 주변에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더니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노여움에 이성을 잃은 마범구를 보자 김준휘는 그가 결코 염무현을 봐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날 죽인다고 하지 않았어? 여기에 가만히 있을 테니까 어디 한번 죽여보던가? 대체 누가 먼저 저세상으로 가는지 두고 보자고. 하하하.”염무현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마범구가 잽싸게 김준휘의 앞을 가로막았다.순간, 경기장에 강풍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람들이 제 몸을 가누지 못했다.링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는 마치 귀신들의 울부짖음처럼 등골이 오싹했다.다들 질세라 뒤로 물러서자 그제야 숨 막히는 압박감에서 벗어났다.“이게 바로 혼원문의 필살기 혼원기공인가요?”“마 선생님께서 직접 손을 쓴 이상 천지가 무너질지도 몰라요. 칠성각에 곧 큰 재앙이 닥치겠네요.”“우리까지 불똥이 튀는 건 아니겠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요. 여기는 너무 위험한 것 같으니 뒤로 물러서야겠어요.”곧 대전이라도 펼쳐질 듯 긴장감이 흘러넘쳤다.이때, 귀청이 울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무량... 천존.”사방에서 들려오는 음파가 천지를 뒤덮었다.마범구의 주변에서 기승을 부리던 강풍이 순식간에 잠잠해지더니 현장에 다시금 평화가 찾아
“그게 뭐가 중요하지?”마범구는 씩씩거리며 말했다.“두 명 다 내 애제자였는데, 염무현이라는 개 같은 놈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어.”태일 도사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엄청난 차이점이 있죠.”마범구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말해 보거라.”만약 다른 내용이었다면 마범구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애제자 두 명에 관한 일인 이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차원에서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어볼 심산이었다.태일 도사가 정색하며 말했다.“허문정은 성격이 제멋대로에 건방지기 짝이 없고, 예의는 물론 입만 열면 욕을 달고 살죠. 그런 사람의 스승으로서 제자가 어떤 놈인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미 예견된 죽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마 사람이라면 다들 따귀라도 후려치고 싶어서 근질근질했을걸요? 그런데 무현 님이 대신 죽여줬으니 모두를 위해 봉사한 셈이죠. 그나마 내가 결벽증 때문에 당시 손이 더러워질까 봐 가만히 있어 그렇지, 허문정이 살아서 고성 옛 거리를 벗어났을 것 같아요? 이런 자식은 죽어도 싸요! 화근을 없앴으니 유죄는커녕 오히려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죠.”마범구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애송이 도사 주제에 감히 내 제자를 함부로 비난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태일 도사가 즉시 반박했다.“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에요.”“그래? 두고 봐!”마범구는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헛웃음이 났다.“설령 허문정에게 단점이 있다고 해도 스승인 내가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지, 외부인으로서 왈가불가할 입장은 아니야!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지!”“제자 관리에 실패했으니 누군가 대신 가르쳐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죠.”태일 도사가 맞받아쳤다.마범구의 미소가 점점 더 흉측해졌다.“오늘 네 놈을 염무현과 함께 죽여주마. 둘이 손잡고 황천길로 떠나게 해줄게. 곧 죽게 될 사람인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디 마음껏 나불대 보거라!”태일 도사는 여전히 꿈쩍도 안 하고 입을
양팔을 휘두르며 흔들자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는 동작과 함께 마범구의 기운이 극치로 도달하더니 태일 도사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무량천존!”태일 도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웅!이때, 기운이 모여들며 금색 빛이 번쩍였다.슉!수많은 금빛이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마범구의 공격을 뚫고 지나갔다.“도가의 계승자였어?”마범구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했고,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코딱지만 한 사원에 이런 고수가 숨어 있을 줄이야. 나이도 어린 애송이가 무시무시한 실력의 소유자이면서 왜 굳이 진흙탕 싸움에 뛰어드는 거지?”비록 마범구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지만, 상급자 마스터 이하의 고수들을 물리치기에는 식은 죽 먹기였다.그러나 눈앞의 젊은 도사는 주술만으로도 그의 공격을 타파했으니 결코 얕잡아볼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신성한 사원에서 이렇게 큰 소란을 피우는데 사원장으로 어찌 마냥 지켜만 보겠습니까?”태일 도사가 손을 들어 링을 가리켰다.“공정한 대결을 펼친다면 당연히 할 말이 없을 테지만, 심지어 우두머리 집회의 참가자도 아닌 마 선생이 갑자기 튀어나와 소란을 피운다면 납득하기 어렵지 않나요?”마범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애송이가 나이는 어린데 뭐가 이리 깐깐한지. 네 체면을 봐서라도 일단 염무현이라는 놈은 살려줄게. 하지만 제자를 죽인 원한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니 언젠간 죽여버릴 거야!”“그리고 너! 3일 뒤에 혼원문에 찾아와 네 운명을 받아들여. 아니면 모든 지인을 죽여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똑같이 체험하게 해 줄 테니까.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백희연이 염무현의 옆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늙은이가 노망났나? 내가 대신 죽여줘?”“괜찮아. 태일 도사의 체면은 나도 봐줘야 하니 3일 더 살게 내버려둬.”염무현이 태연하게 말했다.김준휘는 생각지도 못한 이변에 잽싸게 무릎 꿇고 마범구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마 선생님, 어떻게 저 자식을 그냥 봐줄 수 있죠? 물론 가는 사람을 막을 자격은 없지만, 저도
거물들은 하나같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평소에는 다들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며 다녔지만 지금은 초라한 몰골로 머리를 부여잡고 도망치기 바빴다.그러나 어디로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여기는 무려 서해시로서 그들이 판을 칠만 한 곳이 아니었다.김범식의 인솔하에 부하들은 무자비하게 거물을 일제히 체포했고, 감히 반항하거나 발악하는 자는 모두 호되게 당했다.신우영과 안정우를 포함한 일행은 피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 맞았는데 그야말로 쌤통이었다.김씨 가문에 복종했을뿐더러 진경태와 공규석을 해칠 계획까지 짰으니 이러한 수모를 당한 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설령 공규석이 이 자리에서 처형하라고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공규석, 당신 너무한 거 아니야?”안정우가 목청 높이 말했다.“다들 그래도 명성이 자자한 거물들인데 우리를 이렇게 대하고도 보복이 두렵지 않아?”신우영도 질세라 맞장구쳤다.“서해시 세력 범위에 있다고 해서 눈에 뵈는 게 없어? 우린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언젠간 다시 마주치기에 십상인데 너무 몰인정하게 처리하지 말자고. 옛말에 체면을 지켜줘야 나중에 서로 좋게 만난다고 했잖아.”공규석이 싸늘하게 비웃었다.“마치 내가 배려해 주면 적대시하는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말하네요? 당신들이 먼저 공격 태세를 취했다는 걸 벌써 까먹었어요?”진경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오늘 모든 사람한테 서해시를 탐나는 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본때를 보여주자고.”공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양아버지, 말씀만 하세요. 이 개자식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이제 칼자루는 공규석이 쥐고 있으니 남은 사람은 도마 위의 생선과 다름없었다.거물들은 비록 겉으로 억울한 척 굴복하지 않은 듯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자존심과 우두머리로서 체면이 걸렸기 때문이다.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패닉에 빠지고도 남았다.물론 다들 능구렁이가 따로 없는지라 하나같이 약삭빨라서 바로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우선 진경태의 입장
손형석이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만약 도움만 주신다면 거액을 기부할 테니 칠성각 자체를 사원의 성지로 만들어 줄게요. 이곳의 주인장으로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는 광경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잖습니까! 사원장님께서 저희를 도와 이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신다면 반드시 후한 사례를 올리겠습니다.”젊은 도사가 단 한 방에 마범구를 물리쳤으니 결코 호락호락 실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만약 그가 기꺼이 나선다면 진경태와 공규석을 말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태일 도사는 누가 봐도 거물들의 마지막 지푸라기였다.다들 남은 삶 동안 휠체어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태일 도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저한테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여기에 경기장을 설치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칠성각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랐나요? 세상만사는 규칙에 따라야 하는 법이죠. 경기장 대결도 본인들이 룰을 정했으면서 번복하는 건 그렇다 쳐도 애먼 사람까지 끌어들일 작정인가요? 꿈도 참 야무지네요. 당신들이 무슨 일을 당하든 전 일절 관심 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거물들은 절망에 빠졌다.“성인이라면 본인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죠.”진경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규석아, 시작해.”공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때, 공중에 수많은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모두 멈춰!”우렁찬 외침은 귀청이 떨어질 지경이었다.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눈앞에 인영이 불쑥 나타났다.검은색 제복을 입은 사내들의 가슴 앞에는 금색 명주실로 ‘무림’이라는 두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무림 연맹이에요!”“무림 연맹에서 웬일이죠? 우두머리 집회랑 무림 연맹은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아요? 이 사람들도 연루가 되어 있나요?”“보아하니 진경태와 공규석을 노리고 온 곳 같은데 아니면 왜 애초에 멈추라고 했겠어요?”“흥미롭군요. 아까는 혼원문의 마범구가 찾아오더니 이제는 무림 연맹인가요? 서해시가 이처럼 주목받는 도시였나?”공규석은 의혹이
신우영과 안정우는 잔뜩 흥분했다. 염무현이 김씨 가문과 혼원문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무림 연맹의 회원까지 죽였으니 말이다.정말 죽으려고 환장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원수가 있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오만하게 굴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염무현이 죽기만 하면 진경태와 공규석은 뒷배를 잃게 된다. 모두 힘을 합쳐 김범식을 처리하는 날에는 손쉽게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이래서 젊은이는 오만하게 굴면 안 된다는 거야. 괜히 오만하게 굴었다가 죽는 날만 앞당겨질 테니까.’사람들은 일제히 염무현을 향해 걸어갔다. 손승현의 눈빛도 덩달아 예리해졌다.“그쪽이 염무현인가?”염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다.”“그쪽이 크루즈에서 맹승준과 여도혁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바다에 던졌다는 거지?”손승현의 말투는 아주 처리했다.사실 손승현은 그저 맹승준을 크게 다치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을 때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가 수영할 줄 몰라서 익사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물론 이제 와서 이런 디테일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염무현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인정한다면 지금 당장 항복하고 무림 연맹의 처벌을 받아들여.”“무림 연맹 따위가 감히 무슨 담으로 나한테 명령을 내리지? 더군다나 당신은 지부의 팀장이 아닌가?”“내가 만만해 보여? 당장 저 자식을 제압해!”손승현은 허리춤의 검을 빼 들었다. 예리한 칼날은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무양... 천존!”익숙한 구호가 들려왔다. 태일 도사가 아직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그는 신우영과 안정우를 거절하고 나서 분명히 몸을 돌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부 그가 떠난 줄 알았다.사실 태일 도사는 그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떠난 척했을 뿐이다.“불청객 주제에 이곳에서 시끄럽게 구는 건 도에 어긋나는 것 같은데요.”태일 도사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사람들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것으로 태일 도사는 두 번째로 염무현의 편에 서
태일은 미간을 찌푸렸다.“확실해요?”“그럼요.”염무현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태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도움이 필요할 때 다시 불러주세요.”이 장면을 보고 손승현은 오만한 표정으로 외쳤다.“자식, 그래도 책임감은 있네. 그렇다면 아프지 않게 죽여주도록 하겠어! 덤벼!”염무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당신과 같은 아무개는 나랑 겨룰 자격이 없어.”“뭐?”손승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동자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말해 봐.”원래도 없었던 염무현에 대한 호감은 만회가 불가능할 정도로 바닥 쳤다.“조금 전의 말은 없던 거로 하지. 넌 오늘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염무현은 그의 협박을 완전히 무시한 채 백희연을 향해 가볍게 말했다.“네가 처리해.”“왜?! 나 같은 미인한테 싸움질을 시키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지 않아?”“저 인간들이 날 왜 찾아왔을 것 같아?”염무현이 되물었다. 그러자 백희연은 곧장 대답했다.“맹 뭐시기 때문에 복수하러 왔다고 했잖아.”“내가 맹 뭐시기와 왜 싸우게 되었지?”염무현의 질문에 백희연은 크루즈에서 일어났던 일을 되새기며 대답했다.“청교인 때문에 여도혁과 다툼이 있었고... 또 여우령 정기 때문에 맹 뭐시기랑 싸웠던 것 같은데...”염무현은 눈썹을 튕기며 말을 잘랐다.“그러니까 너 때문이라는 거네.”“쳇!”반박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 백희연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손승현을 향해 걸어갔다.“이건 무슨 뜻이지?”손승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름다운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니 저도 모르게 시선이 흔들렸다.다른 사람들도 뽀얀 피부에 그림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를 바라봤다. 산들바람이 지나가며 치맛자락은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예쁘게 흩날렸다.가느다란 허리는 움직일 때마다 예쁘게 흔들렸다. 백희연은 마치 사람 마음을 홀리는 구미호라도 된 것처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그녀를 싫어하는 공규석도 지금은 그녀의 미모를 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