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훈이 서울시에 머무르는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강성연은 문득 레스토랑 밖에서 나유를 마주쳤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 나유는 친구를 만난다고 했었다.“그날 나유 씨가 레스토랑에서 만난 친구가 너야?”진여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왜?”강성연은 팔짱을 낀 채로 아무 말 없다가 말을 보탰다.“나유는 한씨 노부인이 한재욱 씨 곁에 보낸 사람이야. 너 설마... 모르고 있었어?”강성연은 이내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넌 한씨 집안 일에 개입하지 않았지. 나유 씨가 네 차를 빌릴 때 너한테 뭘 하려는 건지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어. 물론 네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넌 네 차를 나유 씨한테 이유를 묻지도 않고 빌려줬어. 그건 두 사람 사이가 엄청나게 가깝다는 걸 의미하지.”일반적으로 차를 빌려주는 건 상대방을 믿을 수 있거나 사이가 아주 가까울 때만 가능했다. 사이가 별로라면 어떻게 자기 차를 상대방에게 빌려주겠는가?진여훈은 코웃음 치면서 웃었다.“너 경찰이야?”강성연은 어깨를 으쓱였다.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잎이 바람에 떨어졌다. 진여훈은 잠깐 침묵하다가 자신과 나유의 일을 먼저 입 밖으로 꺼냈다.진여훈은 당시 학교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뚱보였다. 서울시 고등학교에서 3년을 다녔을 때도 Y대를 다닐 때도, 성적은 좋았지만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에만 몰두하고 친구를 사귈 생각은 없었다.강성연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신경 쓰지 않았냐고 물었다.진여훈은 진씨 집안에 규칙 하나가 있다고 했다. 기준에 부합하는 후계자가 되려면 16살이 되기 전에 집안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목숨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이 규칙은 남자가 16살이 되면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진씨 집안도 자수성가한 부잣집이라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
말을 마친 뒤 진여훈은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바라봤다.“난 나유와 한재욱 씨 일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나유가 한씨 노부인이 키운 사교계의 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강성연은 할 말이 없었다.나유는 어쩌면 한씨 노부인의 계획에 따라 킬러가 되고 자신을 팔았을 것이다. 그녀는 한씨 노부인을 위해 목숨까지 걸면서 단 한 번도 결과 같은 건 신경 써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겉으로 보기에 나유는 나쁜 사람이 맞았다. 한태군의 납치 사건을 계획한 것도, 크리스마스 날 강해신이 사고를 당할 뻔한 것도, 그녀가 한 모든 일은 그저 명령에 복종한 것뿐이었다.하지만 나유가 진짜 철저히 나쁜 사람일까? 아니다. 그녀는 그저 한씨 노부인의 칼이 되었을 뿐이다. 그녀가 정말 철두철미하게 나쁜 사람이었다면 진여훈에게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고 심지어 진여훈을 이용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그녀는 달콤한 말들로 남자들의 환심을 샀지만 진여훈의 진심은 거절했다. 무정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선택한 길에서는 감정이라는 게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섣달그믐날 밤, 온 가족이 모여 떠들썩하게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은 마당으로 나가 불꽃놀이를 했고 그곳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날이 점차 저물면서 네온사인이 켜지기 시작했다. 마당의 불꽃놀이는 어둠 속에서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강성연과 반지훈은 마당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강성연은 반지훈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고 반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반지훈은 긴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오늘 진여훈이랑 마당에서 무슨 얘기 했어?”“당연히...”강성연은 고개를 들어 반지훈을 보며 웃었다.“비밀이죠.”반지훈은 강성연의 코끝을 꼬집었다.“나한테 숨기는 거야?”강성연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흘러넘쳤다.“내가 얼마나 운이 좋아서 당신을 만나게 됐는지 그 얘기 했어요.”반지훈은 시선을 내려뜨리며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그래? 너 처음엔 나 엄청나게 싫어했잖아.”강성연은 코웃음
송아영은 당황하며 다급히 설명했다.“내, 내,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우리 사촌 오빠 나이도 적지 않은데 어렵사리 아빠가 됐으니 좋은 일이잖아!”“그러면 너는?”강성연이 송아영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넌 언제 우리 오빠 아빠 만들어 줄 건데?”송아영은 강성연의 손을 쳐냈다.“짓궂긴.”김아린과 강성연은 더욱 큰 소리로 웃었다.바로 그때 구천광과 육예찬이 들어왔다.“아래층에서도 너희 웃음소리 들려.”송아영은 억울했다.“얘네 둘이 날 웃었어.”구천광은 어깨를 으쓱이며 침대 옆으로 다가가 김아린의 곁에 섰고 육예찬은 일부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송아영은 그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어딜 보고 있는 거야?”송아영은 발을 동동 굴렀다.“왜 나 안 도와줘?”강성연은 웃었다.“아영아, 네 새언니를 일러바치는 건 좋지 않아.”송아영은 강성연을 바라봤다.“나도 네 새언니거든.”그 사실을 떠올린 송아영은 곧바로 강성연과의 항렬을 따졌다.“내가 그때 말했었지? 너 이득 볼 거 없다니까.”강성연은 말문이 막혔다.송아영은 김아린을 힐끗 보고 말했다.“아린은 내 새언니고 난 네 새언니야.”송아영은 강성연을 보며 우쭐해서 말했다.“넌 이득 볼 게 없다니까.”강성연은 웃었다.“그래,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두 커플 사이에 나만 혼자네. 난 내 남편 찾으러 간다.”“성연아, 우리 결혼반지 네가 디자인해 줘!”며칠 뒤, soul 주얼리 공식 홈페이지에 한정판으로 맞춤 제작된 결혼반지 두 쌍이 게재됐고 각기 구천광과 육예찬을 멘션해 그들에게 축하를 전했다.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반지 너무 예뻐요, 부러워요!##얘기 들어보니까 구천광 씨 부부랑 육예찬 씨 부부 같은 날에 결혼한대요. 반지는 soul 브랜드에서 예약했고요. 그리고 soul 브랜드 오너랑 육예찬 씨 약혼녀가 찐친이래요. 우와, 이 두 쌍의 반지는 우정을 위해 맞춤 제작됐대요. 너무 부러워요!”#소문에 의하면 반지훈 씨랑 soul주얼리 사장의 결혼식도
사실 강성연은 이 노트가 X에게 아주 소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챙기지 않았었다. X가 그녀의 어머니를 30여 년 동안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강성연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말했다.“지윤 씨는요? 가족 찾았대요?”X가 지윤의 부모님의 소식을 알아냈고 지윤이 그들을 찾아갔지만 지윤이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지 밝히지 않았는지는 모른다고 리비어가 말했다.말을 마친 뒤 그는 강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리고 너한테 얘기할 일이 하나 더 있다.”강성연은 당황했다.“무슨 일이요?”“너희 외할아버지 아직 살아계셔.”리비어의 말을 들은 강성연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당시 그녀는 외할아버지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체도 찾지 못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건 말이 안 됐다.“그러면 제 외할아버지는...”강성연의 목소리가 떨렸다.리비어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그 사고로 인해 심하게 다치셨어. 몸에 마비가 와서 병상에만 누워계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알리지 않은 이유는 네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잘 지내고 계세요? 간호하는 분은 있어요?”“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 s국 요양원에 계셔.”리비어가 말했다.“너희 외할아버지가 네게 반지를 주셨어. 연씨 집안을 지킨 셈이지. 하지만 물려받을지 말지는 네 뜻에 달렸어. 너희 외할아버지는 네가 억지로 받아들이는 걸 원하지 않아.”연씨 집안은 후계자가 없었고 후계자의 반지는 강성연의 손에 있었다. 강성연은 언제든 연씨 집안 가주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저녁, 반씨 저택.샤워를 마친 뒤 강성연은 화장대 앞에 앉아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냈다.반지훈이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성연이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강성연의 뒤로 걸어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왜 그래?”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반지훈 씨, 우
“너도 봤지.”송아영은 팔짱을 둘렀다.“미안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더니만 다 거짓말이었어. 하, 참.”강성연은 미간을 구겼다.“언제 있었던 일이야?”“설 지나고 나랑 혼인신고 하기 전에.”송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성연아, 육예찬은 나한테 이 사실을 숨기고 얘기하지 않았어. 이 사진도 다른 사람이 보내줘서 알게 된 거야.”송아영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난 두 사람 함께 있지 말라고 한 적 없어. 내가 빠지면 되잖아. 그런데 왜 날 속인 건지 모르겠어.”강성연은 팔을 뻗어 송아영을 안으며 그녀를 달랬다.“일단은 울지 마, 아영아. 이 일은 내가 널 도와서 확실히 조사해 줄게.”말을 마친 뒤 강성연은 송아영의 눈물을 닦아줬다.“우리 사촌 오빠가 정말 이렇게 쓰레기라면 난 절대 두 사람 결혼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 이 사진들 나한테 보내줘.”송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떠난 뒤 강성연은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대신 명승희에게 연락해달라고 했다.명승희는 만나겠다고 했고 두 사람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명승희와 그녀의 매니저는 룸 안에 앉아있었다.강성연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줬고 명승희는 사진을 들고 보더니 살짝 당황했다.강성연은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어서요. 아영이는 내 친구니까 내가 대신 확인해 보려고요. 의심하려는 건 아니에요. 난 그냥 사실이 알고 싶은 것뿐이에요.”매니저는 그것을 힐끗 보았다.“어, 이건...”명승희는 손을 들어 매니저를 말렸다. 그녀는 사진을 바라보며 웃었다.“만약 정말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런 거라면 강성연 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울시 사람이라면 송씨 집안과 육씨 집안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육예찬이 진짜 명승희와 단둘이 친밀하게 만나고 사진까지 찍혔다면 송아영에게만 보낼 게 아니라 일찍 SNS에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다.그러니 이 사진들은 송아영을 겨냥한
말을 마친 뒤 명승희는 강성연을 보았다.“그래서 그날 감독님이 그들을 초대했어요.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나눈 뒤 우강인 선배가 우리를 콘서트로 초대했고 콘서트를 다 본 뒤 우강인 선배랑 감독님이 밥을 사주셨어요. 밥을 먹을 때 우강인 선배가 내 옆에 앉아있었고 난 육예찬이랑 대화만 했고요. 촬영할 때 육예찬이 내게 음악에 관한 지식을 알려줬거든요.”명승희는 말하면서 웃었다.“육예찬이 송아영 씨를 선택하고 나서 난 우리 둘 사이에 더는 가능성이 없다는 걸 확인했어요. 저번에 나랑 같이 회식했을 때도 그냥 친구라서 도와준 것뿐이에요. 그리고 육예찬은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진짜 아내면 몰라도 제삼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강성연은 상황을 알게 되었다. 공적인 일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같이 촬영했으니 말이다.하지만...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진은 제작진이 일부러 편집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누군가 사진을 찍은 뒤 송아영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송아영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제삼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한 걸 보면 명승희는 인성에 문제가 없었다. 사진을 보낸 것이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누가 그런 걸까?송씨 저택.송아영은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에 앉아 게임을 하면서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육예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으나 송아영은 곁눈질로 힐끗거릴 뿐이었다.“왜 왔어?”육예찬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누가 또 화나게 했어?”송아영은 눈을 흘겼다.“나 화나게 한 사람은 너 아냐?”게임에서 지자 송아영은 휴대전화를 한쪽으로 치운 뒤 몸을 돌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려고 했다.육예찬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내 웃으면서 이불을 잡아당겼다.“내가 뭘 했길래 화가 났어?”송아영은 대꾸하지 않았다.육예찬은 그녀에게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자 그녀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송아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걸 본 육예찬은 그녀의 뺨을 부여잡고 말했다.“아영아,
그녀는 그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못 믿는게 아니라…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육예찬이 돌아서서 떠나려 할 때, 마침 강성연이 문 앞에 기대어 있었다. “어디가?” 송아영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뒤척였다. 매우 억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성연아…” 강성연은 힐끗 그녀를 보고 육예찬 앞으로 다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명승희한테 가서 따질려고?” 육예찬은 코를 문지르며 답했다. “그냥 물어보러 가는거야…” “사진은 그 여자 짓이 아니야.” 강성연은 그를 지나쳐 송아영에게 갔다. 그는 당황했다. 송아영 역시 어리둥절했다. 강성연은 송아영이 코를 흘리며 운 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바보야, 예찬 오빠가 이 일 때문에 명승희를 찾아가려는 거 안 보여? 나 안 왔으면 일이 더 커질뻔했네.” 송아영은 약간 의심했다. “성연아,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육예찬이 다가오다가 방금 그녀의 말에 멈춰섰다. “무슨 사진?” 강성연이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건네주었고, 그는 이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송아영이 그녀의 팔을 끌었다. “성연아, 무슨 일인데?” 강성연이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를 밀었다. “앞으로 잘 알아본 뒤에 울어. 네가 몇 살인데 내가 이렇게 엄마처럼 돌봐줘야 해? 강유이도 아니고.” 송아영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럼 내가 지훈 씨를 아빠라고 불러야하나?” 강성연이 질색했다. “그 사람도 너 같이 바보 같은 딸은 싫대.” 이어 육예찬을 향해 말했다. “내가 명승희를 찾아가 물어봤어. 당신들이 음악영화 예고편을 찍고 있었고, 당시 제작진들이랑 우강인 선배도 현장에 있었다며.” 육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사진은 그때 촬영 기간에 찍힌 거야. 하지만 사진처럼 이러지는 않았어. 이 사진은…포토샵의 흔적이 보여. 그때 내 옆에는 우강인 선배도 있었거든.” 우강인 선배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편집된 채, 마치 둘만의 '데이트' 현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송아영은
반지훈은 고개를 숙여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들어와.”강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고, 반지훈은 테이블 위의 커피를 들어 마셨다. 시선은 계속 서류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당연히 연희승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야?” 강성연은 테이블을 돌아 그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손을 뻗었고, 반지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반지훈은 그녀를 보고는 품에 안고 앉혔다. 그녀의 콧등을 간지럽히며 말했다. “깜짝 서프라이즈?”강성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당신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나인 줄 몰랐나 봐요.” 그녀가그에게 밀착했다. “혹시 내가 연희승 씨인 줄 안거예요?” 그는 웃었다. “만약 연희승이었으면, 바로 아프리카로 보내버리려 했지.” 강성연의 손끝이 그의 뺨을 스쳤고,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했다. “성연이가 또 나를 녹이려고 온건가?” 강성연은 그의 품에서 일어나 그의 뒤로 가 그를 안았다. “머리 속이 꽃밭이네요. 남편한테 이메일 계정 좀 알아봐 달라고 온 거예요.” 반지훈은 강성연에게 이메일 주소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녀는 옆에서 그가 이메일 계정의 IP 주소를 알아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순간 그녀는 당황했다. “사립 초등학교? 시언이랑 유이네 학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반지훈은 그녀를 끌어안고 앉았다. “남편한테 상 안 줄 거야?” 그가 그녀의 귀를 물자, 강성연은 간지러워 웃으며 그를 피했다. “장난치지 마요, 나 진지해요.” 반지훈은 그녀에게 키스하며 괴롭혔다. “난 성연이한테 진지한데.” 강성연은 그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는 순간 숨이 막혔고, 그녀는 그의 목에서 머물러 있었다. 손은 정장을 탐하고 있었고, 반지훈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표정을 숨겼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연이 정말 나빴네.” 그녀의 이름이 불리자 그녀는 일어나 그를 힐끗 보고는 눈썹을 움직였다. “아 그래요? 그럼 혼자 놀고 있어요.” 반지훈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강성연이 도망갔다. 그는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