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수연의 재판 결과는 사형이었다.강성연은 감옥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경찰은 수연을 창구로 데려왔다. 수연은 여전히 침착하고 태연했다. 자신을 사형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수연은 자리에 앉은 뒤 수화기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우습네요. 절 보러 온 사람이 당신이라니.”강성연은 수연을 바라봤다.“후회하지 않아요?”“후회요?”수연은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심했다.“제가 왜 후회해야 하죠? 잘못한 사람이 저인가요? 잘못한 건 이 불공평한 세상이죠.”강성연의 미간이 구겨졌다.“당신의 처지는 동정할 만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사람을 죽이고 복수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당신이 뭘 알겠어요? 당신이 그 일들을 겪어 봤어요?”수연의 안색이 삽시에 차가워지며 음산해졌다.“당시 제가 얼마나 어렸었는데요. 겨우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그렇게 고통스럽고 역겨운 일을 당했어요. 날 침범한 그 남자는 마음이 따뜻하다는 이유로, 또 그의 선한 행위 덕분에 좋은 사람이라고 정의됐죠. 그는 두세 마디 말로 경찰과 이웃들의 신뢰를 얻었어요. 저희 어머니도 그를 믿었죠. 반대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였던 제가 한 말은 거짓말이 되었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어요. 절 침범한 사람이 예의 바르고 겸손한 좋은 사람이란 이유로요.”수연의 눈동자에 감춰져 있던 증오가 점차 드러났다.“그 일을 겪은 건 저예요. 그리고 제 어머니는 절 혐오했죠. 수지는 아무것도 겪지 않아 백지장 같은 사람이었고 저는 더러웠으니까요.”말을 마친 뒤 수연은 음산하게 웃었다.“제가 약을 먹였을 때, 그리고 수지가 불에 타 죽은 사실을 얘기했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제게 사과했어요.”“그만 해요.”강성연은 수연을 애처롭게 바라봤다.“당신 어머니가 정말 당신을 믿지 않아서 당신을 냉대하고 싫어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뇨. 당신은 틀렸어요.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믿지 않은 게 아니라 무력했을 뿐이에요.”“미혼모인 그녀는 타향에서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강성연은 차에 탔다.“얘기 다 나눴어요.”반지훈의 팔이 강성연 등 뒤의 의자 등받이에 가로 놓였다. 반지훈은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와 거리를 좁혔다.“왜 그래?”강성연은 미간을 구겼다.“저렇게 미친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반지훈은 강성연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이미 자신의 결말을 맞이한 사람이야.”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뭔가 보아낸 반지훈은 강성연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아직 의문점이 남아있어요. 수연 씨는 어떻게 우리 일을 알아낸 걸까요?”강성연은 반지훈을 바라봤다. 수연은 그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윤티파니와 강예림의 일을 속속들이 알았던 걸까?반지훈은 강성연의 복슬복슬한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누군가를 따라 하고 연기하면 그 역할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그 역할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가 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우리를 조사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강성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수연은 불쌍한 사람이었고 어렸을 때 겪었던 일도 동정받을 만했지만 그녀가 아주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틀려먹었다.리사라는 아이는 그녀의 광기 때문에 평생 지울 수 없는 그늘이 생겼다.병원. 리사의 두 다리는 붕대로 감겨 있었다. 두 번의 수술 끝에 부러진 다리뼈에 철심을 박았다. 겨우 열세 살짜리 아이가 몽둥이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으니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강성연은 강유이를 데리고 리사를 보러 왔다. 리사는 병상 위에 누워있었는데 얼굴은 붓기가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멍이 들어 있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리사야.”강유이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대로 향했다.“미안해, 나 때문이야. 너한테 내 옷을 입혀서는 안 됐어.”리사는 강유이를 바라보다가 어렵사리 웃음을 쥐어짜 냈다.“괜찮아.”강유이는 리사의 손을 잡았다.“넌 꼭 나을 거야.”리사는 웃기만 할 뿐 더 얘기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병실 밖에서 아
“네, 아줌마. 전 강유이라고 해요.”강유이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리사의 어머니는 병상 곁으로 다가가 리사에게 말했다.“친구를 사귀었으면 집으로 데려와서 아빠랑 엄마한테 소개해 줘야지. 난 네가 학교에서 친구가 없는 줄 알았어.”리사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 리사 집에 놀러 갈게요.”리사의 어머니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그래. 아줌마가 엄청나게 환영해. 우리 리사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앞으로 네가 우리 리사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네, 그럴게요.”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리사는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려 누웠다.“저 피곤해요. 저 자고 싶어요.”리사의 어머니는 리사의 태도에 버럭 화를 냈다.“이것 봐, 아빠랑 엄마가 너 보러 병원까지 왔는데 왜 짜증을 내? 여기 네 친구도 있는데 아빠랑 엄마가 창피해서 그래?”“여보, 리사 몸도 안 좋은데 적당히 해.”리사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안에서는 항상 그의 아내만 발언권이 있었다.“내가 뭐 잘못 말했어? 리사는 지금까지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어. 학부모회 때도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하잖아. 세상에 어떤 자식이 부모를 창피해해?”리사의 어머니는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학부모회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집에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면 리사는 화를 냈다.강유이는 리사의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병상 위에 있는 리사를 힐끗 봤다. 사실 강유이는 예전에 리사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얘기한 적 있었는데 리사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리사는 어머니가 엄격해서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지만 사실 리사의 어머니는 리사가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했다.하지만 강유이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강유이가 리사를 싫어할까 봐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리사의 집안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강유이는 상관없었다.*M국 메이
윤티파니는 순간 몸이 굳었다.한지욱은 그녀를 바짝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입술을 붙였다. 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살이 빠졌네요.”윤티파니를 찾으러 오기 전 그는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미친 듯이 얘기할 수도, 또는 다시 한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녀를 자기 곁에 묶어뒀을 수도 있었다.수없이 생각해봤지만 다시금 만났을 때 한지욱은 두려웠다.그는 윤티파니가 거절할까 봐, 그를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윤티파니는 그의 품에 안겨 몸이 굳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앙다문 채로 그의 손을 떼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한지욱 씨.”윤티파니는 그를 보지 않았다.“왜 또 절 찾아온 거예요? 우리는 다 끝난 사이잖아요.”한지욱은 순간 움츠러들면서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아직도 제가 밉나 보네요.”“안 미워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침착한 척 말했다.“전 이미 과거를 떨쳐냈어요.”한지욱은 거리를 좁혔다.“전 떨쳐내지 못했어요.”윤티파니는 당황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당신이 왜요? 한지욱 씨, 당신에게 전 죄인이예요. 만약 그 정략결혼이 없었다면 당신과 유혜선 씨는 아주 행복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절 미워했죠.”“전 단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어요.”한지욱은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밉다는 건 그저 핑계였어요.”한지욱은 윤티파니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며 무겁게 숨을 내뱉었다.“티파니 씨, 전 빌어먹을 개자식이에요. 제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인지했을 때, 전 이미 당신을 잃었어요. 당신이 떠난 3년 동안, 전 매일을 괴로움 속에서 보냈어요. 전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돌렸다.“제겐 아이가 있어요.”“하지만 결혼하지는 않았잖아요.”한지욱의 손끝이 윤티파니의 입가에 멈췄다.“당신은 지난 3년간 곁에 다른 남자를 두지 않았어요. 만약 그때 임신
“한지욱 씨...”...서울시 사립학교.강유이가 가방을 메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조민과 선배 여럿이 다가왔다.“강유이.”조민이 강유이를 불렀고 고개를 돌린 강유이는 눈살을 찌푸렸다.“선배가 여긴 왜 왔어요?”조민이 항상 리사를 괴롭혔기 때문에 강유이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회 부회장이 된 건지 의문이었다.조민은 팔짱을 두르고 강유이의 앞에 섰다.“너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야.”강유이는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요?”“당연히 리사 일 때문이지.”“리사 일을 선배가 저한테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강유이가 몸을 돌려 교실로 들어가려 하자 조민이 갑자기 말했다.“리사가 널 속였다면 어떡할래?”강유이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말이에요?”리사가 날 속이다니? 그럴 리가.조민은 강유이가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휴대폰을 꺼내 SNS로 들어갔다.“안 믿네. 그러면 직접 확인해 봐.”조민은 강유이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좋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강유이는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고개를 숙여 화면을 확인한 순간 리사 공주라는 닉네임의 SNS 계정이 보였다.그녀가 게시한 모든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아주 사치스러웠다. 그리고 찍힌 사진들과 동영상은 강유이에게 무척이나 익숙했다.옷, 가방, 신발, 심지어 팔찌까지 전부 강유이가 리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별장 안의 구조는 반씨 저택이었는데 그것은 리사가 강유이의 집에 놀러 왔을 때 찍은 사진인 듯했다. 차 번호판이 가려진 비싼 차 역시 강유이와 오빠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자가용이었다.그러나 영상에는 전부 리사의 것이라고 태그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강유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조민은 강유이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웃었다.“이제야 믿겠어? 네 친한 친구는 이 SNS 계정을 만든 사실을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지?”강유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조민은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뿐만이 아니야. 리사는 부자인
강유이는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비록 믿지는 않았지만 조민의 말 때문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리사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일까?강유이는 리사와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들은 강유이가 리사에게 먼저 준 것들이었고 리사가 먼저 뭔가를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그러니 리사는 분명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저녁, 반씨 저택.밥을 먹을 때 강유이는 줄곧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강성연은 그 점을 눈치채고는 강유이의 그릇에 음식을 집어줬다.“유이야, 왜 그래?”반지훈과 강해신도 강유이를 바라봤다.강유이는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핑계를 댔다.“리사가 보름 뒤면 퇴원할 수 있대요.”강성연은 웃었다.“리사가 퇴원하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이제 친구랑 같이 놀 수 있잖아.”강유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강해신은 강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밥을 다 먹은 뒤 위층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반지훈은 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유이 뭔가 고민이 있나 본데.”강성연은 흠칫했다.“그래요?”아이도 이제 열 살이 넘었으니 고민이 있는 건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성연은 리사가 당한 일 때문에 강유이가 자책할까 봐 걱정되었다. 강유이는 어릴 때부터 그녀와 반지훈, 그리고 오빠들의 보호 아래 자랐기에 순수했다. 리사가 겪은 일 때문에,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는 한동안 미안해했다. 또한 강성연은 강유이가 최대한 리사에게 보상하려 한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갑자기 수연이 했던 미친 말들이 떠올랐다. 사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강성연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그 일 때문에 강유이와 리사의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리사는 무고했다. 단지 강유이와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라고 오해받아 수연 일당에게 잔인한 일을 당했고 리사에게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강해신은 젓가락
강해신은 민서율을 제외하고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남학생이었다. 비록 중학생이긴 하지만 그의 지능은 고교생 수준이었다.고개를 돌린 조민은 강해신을 보고 교과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날 찾아온 거야?”강해신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았다.“어제 제 동생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리사 일 말이에요.”조민은 흠칫하더니 이내 웃었다.“리사 일 말이야? 유이가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나 보네?”강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조민이 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가 직접 확인해서 보면 되잖아.”강해신은 조민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고 그것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조민은 강해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내가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네 여동생 설득 좀 해봐. 괜히 농부와 독사에서 그 농부가 되지 않게 말이야.”병원 병실 안.리사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걷는 걸 연습했다. 똑바로 설 수는 있었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리가 아팠다.병실 밖에서 리사가 침대에서 내려와 걷는 모습을 본 강유이는 곧바로 다가가 리사를 부축했다.“리사야, 왜 내려왔어?”리사가 말했다.“좀 걸어보려고. 누워있고 싶지 않아서.”강유이는 리사를 부축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래도 조급해하면 안 돼. 천천히 해야지.”리사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어 강유이를 바라봤다.“유이야, 혹시 날 탓하는 거야?”강유이는 당황하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왜 널 탓해?”“그 사람들은 나보고 네게 연락해서 날 데리러 오라고 말하라고 했어. 그때 난 조금 망설였어. 진짜 자칫하면 널 배신할 뻔했는데, 내가 밉지 않아?”리사가 물었다.강유이는 그 얘기를 듣고 허탈한 듯 웃었다.“내가 왜 널 탓해? 네가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 나도 알아.”리사는 강유이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리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날 탓하지 않는다니 다행이야.”“참, 어제 조민 선배가 날 찾아왔는데...”리사의 안색이 살짝 달
“시우야, 그렇게 막 부르면 안 돼.”윤티파니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때렸다.“앞으로 다른 사람을 멋대로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윤티파니는 아이가 한지욱을 아빠라고 부를 줄은 몰랐다.확실히 아빠가 맞긴 했지만 윤티파니는 한지욱이 그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녀는 한지욱이 자신의 아이인 걸 알면 어떻게 할까 걱정됐다.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시우는 아빠가 갖고 싶어요.”윤티파니는 당황했다. 아이가 더욱더 크게 울자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책임감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매번 아이가 울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가 대신 아이를 달랬었다.윤티파니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한지욱이 다가와 팔을 뻗어 아이를 안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남자는 울면 안 돼.”시우는 울음을 뚝 끊고 눈물을 글썽이며 한지욱을 바라봤다.“아빠.”한지욱은 시우를 안아 들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 여기 있어.”시우가 진짜 울지 않자 윤티파니는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거실에서 시우는 줄곧 한지욱과 붙어 있었고 한지욱도 계속 아이를 안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진과 강현숙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강현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시우에게 말했다.“시우야, 자. 할머니한테 안겨.”시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지욱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전 아빠한테 안겨있을래요.”강현숙은 뻘쭘하게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녀는 심경이 복잡했다. 아이는 태어난 뒤로 단 한 번도 아빠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한지욱을 보자마자 그를 아빠라고 부른 걸까?윤진은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자네도 티파니가 자네를 떠난 이유를 알겠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티파니도 이젠 과거를 떨쳐냈어. 너희들 일은 나도 티파니 엄마도 더는 간섭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도울 생각도 없어. 티파니가 자네를 용서할지 안 할지는 자네 일이니까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