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수연의 재판 결과는 사형이었다.강성연은 감옥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경찰은 수연을 창구로 데려왔다. 수연은 여전히 침착하고 태연했다. 자신을 사형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수연은 자리에 앉은 뒤 수화기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우습네요. 절 보러 온 사람이 당신이라니.”강성연은 수연을 바라봤다.“후회하지 않아요?”“후회요?”수연은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심했다.“제가 왜 후회해야 하죠? 잘못한 사람이 저인가요? 잘못한 건 이 불공평한 세상이죠.”강성연의 미간이 구겨졌다.“당신의 처지는 동정할 만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사람을 죽이고 복수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당신이 뭘 알겠어요? 당신이 그 일들을 겪어 봤어요?”수연의 안색이 삽시에 차가워지며 음산해졌다.“당시 제가 얼마나 어렸었는데요. 겨우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그렇게 고통스럽고 역겨운 일을 당했어요. 날 침범한 그 남자는 마음이 따뜻하다는 이유로, 또 그의 선한 행위 덕분에 좋은 사람이라고 정의됐죠. 그는 두세 마디 말로 경찰과 이웃들의 신뢰를 얻었어요. 저희 어머니도 그를 믿었죠. 반대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였던 제가 한 말은 거짓말이 되었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어요. 절 침범한 사람이 예의 바르고 겸손한 좋은 사람이란 이유로요.”수연의 눈동자에 감춰져 있던 증오가 점차 드러났다.“그 일을 겪은 건 저예요. 그리고 제 어머니는 절 혐오했죠. 수지는 아무것도 겪지 않아 백지장 같은 사람이었고 저는 더러웠으니까요.”말을 마친 뒤 수연은 음산하게 웃었다.“제가 약을 먹였을 때, 그리고 수지가 불에 타 죽은 사실을 얘기했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제게 사과했어요.”“그만 해요.”강성연은 수연을 애처롭게 바라봤다.“당신 어머니가 정말 당신을 믿지 않아서 당신을 냉대하고 싫어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뇨. 당신은 틀렸어요.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믿지 않은 게 아니라 무력했을 뿐이에요.”“미혼모인 그녀는 타향에서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강성연은 차에 탔다.“얘기 다 나눴어요.”반지훈의 팔이 강성연 등 뒤의 의자 등받이에 가로 놓였다. 반지훈은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와 거리를 좁혔다.“왜 그래?”강성연은 미간을 구겼다.“저렇게 미친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반지훈은 강성연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이미 자신의 결말을 맞이한 사람이야.”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뭔가 보아낸 반지훈은 강성연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아직 의문점이 남아있어요. 수연 씨는 어떻게 우리 일을 알아낸 걸까요?”강성연은 반지훈을 바라봤다. 수연은 그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윤티파니와 강예림의 일을 속속들이 알았던 걸까?반지훈은 강성연의 복슬복슬한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누군가를 따라 하고 연기하면 그 역할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그 역할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가 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우리를 조사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강성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수연은 불쌍한 사람이었고 어렸을 때 겪었던 일도 동정받을 만했지만 그녀가 아주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틀려먹었다.리사라는 아이는 그녀의 광기 때문에 평생 지울 수 없는 그늘이 생겼다.병원. 리사의 두 다리는 붕대로 감겨 있었다. 두 번의 수술 끝에 부러진 다리뼈에 철심을 박았다. 겨우 열세 살짜리 아이가 몽둥이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으니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강성연은 강유이를 데리고 리사를 보러 왔다. 리사는 병상 위에 누워있었는데 얼굴은 붓기가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멍이 들어 있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리사야.”강유이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대로 향했다.“미안해, 나 때문이야. 너한테 내 옷을 입혀서는 안 됐어.”리사는 강유이를 바라보다가 어렵사리 웃음을 쥐어짜 냈다.“괜찮아.”강유이는 리사의 손을 잡았다.“넌 꼭 나을 거야.”리사는 웃기만 할 뿐 더 얘기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병실 밖에서 아
“네, 아줌마. 전 강유이라고 해요.”강유이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리사의 어머니는 병상 곁으로 다가가 리사에게 말했다.“친구를 사귀었으면 집으로 데려와서 아빠랑 엄마한테 소개해 줘야지. 난 네가 학교에서 친구가 없는 줄 알았어.”리사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 리사 집에 놀러 갈게요.”리사의 어머니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그래. 아줌마가 엄청나게 환영해. 우리 리사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앞으로 네가 우리 리사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네, 그럴게요.”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리사는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려 누웠다.“저 피곤해요. 저 자고 싶어요.”리사의 어머니는 리사의 태도에 버럭 화를 냈다.“이것 봐, 아빠랑 엄마가 너 보러 병원까지 왔는데 왜 짜증을 내? 여기 네 친구도 있는데 아빠랑 엄마가 창피해서 그래?”“여보, 리사 몸도 안 좋은데 적당히 해.”리사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안에서는 항상 그의 아내만 발언권이 있었다.“내가 뭐 잘못 말했어? 리사는 지금까지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어. 학부모회 때도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하잖아. 세상에 어떤 자식이 부모를 창피해해?”리사의 어머니는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학부모회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집에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면 리사는 화를 냈다.강유이는 리사의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병상 위에 있는 리사를 힐끗 봤다. 사실 강유이는 예전에 리사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얘기한 적 있었는데 리사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리사는 어머니가 엄격해서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지만 사실 리사의 어머니는 리사가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했다.하지만 강유이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강유이가 리사를 싫어할까 봐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리사의 집안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강유이는 상관없었다.*M국 메이
윤티파니는 순간 몸이 굳었다.한지욱은 그녀를 바짝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입술을 붙였다. 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살이 빠졌네요.”윤티파니를 찾으러 오기 전 그는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미친 듯이 얘기할 수도, 또는 다시 한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녀를 자기 곁에 묶어뒀을 수도 있었다.수없이 생각해봤지만 다시금 만났을 때 한지욱은 두려웠다.그는 윤티파니가 거절할까 봐, 그를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윤티파니는 그의 품에 안겨 몸이 굳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앙다문 채로 그의 손을 떼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한지욱 씨.”윤티파니는 그를 보지 않았다.“왜 또 절 찾아온 거예요? 우리는 다 끝난 사이잖아요.”한지욱은 순간 움츠러들면서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아직도 제가 밉나 보네요.”“안 미워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침착한 척 말했다.“전 이미 과거를 떨쳐냈어요.”한지욱은 거리를 좁혔다.“전 떨쳐내지 못했어요.”윤티파니는 당황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당신이 왜요? 한지욱 씨, 당신에게 전 죄인이예요. 만약 그 정략결혼이 없었다면 당신과 유혜선 씨는 아주 행복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절 미워했죠.”“전 단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어요.”한지욱은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밉다는 건 그저 핑계였어요.”한지욱은 윤티파니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며 무겁게 숨을 내뱉었다.“티파니 씨, 전 빌어먹을 개자식이에요. 제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인지했을 때, 전 이미 당신을 잃었어요. 당신이 떠난 3년 동안, 전 매일을 괴로움 속에서 보냈어요. 전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돌렸다.“제겐 아이가 있어요.”“하지만 결혼하지는 않았잖아요.”한지욱의 손끝이 윤티파니의 입가에 멈췄다.“당신은 지난 3년간 곁에 다른 남자를 두지 않았어요. 만약 그때 임신
“한지욱 씨...”...서울시 사립학교.강유이가 가방을 메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조민과 선배 여럿이 다가왔다.“강유이.”조민이 강유이를 불렀고 고개를 돌린 강유이는 눈살을 찌푸렸다.“선배가 여긴 왜 왔어요?”조민이 항상 리사를 괴롭혔기 때문에 강유이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회 부회장이 된 건지 의문이었다.조민은 팔짱을 두르고 강유이의 앞에 섰다.“너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야.”강유이는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요?”“당연히 리사 일 때문이지.”“리사 일을 선배가 저한테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강유이가 몸을 돌려 교실로 들어가려 하자 조민이 갑자기 말했다.“리사가 널 속였다면 어떡할래?”강유이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말이에요?”리사가 날 속이다니? 그럴 리가.조민은 강유이가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휴대폰을 꺼내 SNS로 들어갔다.“안 믿네. 그러면 직접 확인해 봐.”조민은 강유이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좋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강유이는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고개를 숙여 화면을 확인한 순간 리사 공주라는 닉네임의 SNS 계정이 보였다.그녀가 게시한 모든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아주 사치스러웠다. 그리고 찍힌 사진들과 동영상은 강유이에게 무척이나 익숙했다.옷, 가방, 신발, 심지어 팔찌까지 전부 강유이가 리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별장 안의 구조는 반씨 저택이었는데 그것은 리사가 강유이의 집에 놀러 왔을 때 찍은 사진인 듯했다. 차 번호판이 가려진 비싼 차 역시 강유이와 오빠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자가용이었다.그러나 영상에는 전부 리사의 것이라고 태그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강유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조민은 강유이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웃었다.“이제야 믿겠어? 네 친한 친구는 이 SNS 계정을 만든 사실을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지?”강유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조민은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뿐만이 아니야. 리사는 부자인
강유이는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비록 믿지는 않았지만 조민의 말 때문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리사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일까?강유이는 리사와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들은 강유이가 리사에게 먼저 준 것들이었고 리사가 먼저 뭔가를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그러니 리사는 분명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저녁, 반씨 저택.밥을 먹을 때 강유이는 줄곧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강성연은 그 점을 눈치채고는 강유이의 그릇에 음식을 집어줬다.“유이야, 왜 그래?”반지훈과 강해신도 강유이를 바라봤다.강유이는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핑계를 댔다.“리사가 보름 뒤면 퇴원할 수 있대요.”강성연은 웃었다.“리사가 퇴원하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이제 친구랑 같이 놀 수 있잖아.”강유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강해신은 강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밥을 다 먹은 뒤 위층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반지훈은 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유이 뭔가 고민이 있나 본데.”강성연은 흠칫했다.“그래요?”아이도 이제 열 살이 넘었으니 고민이 있는 건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성연은 리사가 당한 일 때문에 강유이가 자책할까 봐 걱정되었다. 강유이는 어릴 때부터 그녀와 반지훈, 그리고 오빠들의 보호 아래 자랐기에 순수했다. 리사가 겪은 일 때문에,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는 한동안 미안해했다. 또한 강성연은 강유이가 최대한 리사에게 보상하려 한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갑자기 수연이 했던 미친 말들이 떠올랐다. 사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강성연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그 일 때문에 강유이와 리사의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리사는 무고했다. 단지 강유이와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라고 오해받아 수연 일당에게 잔인한 일을 당했고 리사에게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강해신은 젓가락
강해신은 민서율을 제외하고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남학생이었다. 비록 중학생이긴 하지만 그의 지능은 고교생 수준이었다.고개를 돌린 조민은 강해신을 보고 교과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날 찾아온 거야?”강해신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았다.“어제 제 동생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리사 일 말이에요.”조민은 흠칫하더니 이내 웃었다.“리사 일 말이야? 유이가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나 보네?”강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조민이 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가 직접 확인해서 보면 되잖아.”강해신은 조민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고 그것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조민은 강해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내가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네 여동생 설득 좀 해봐. 괜히 농부와 독사에서 그 농부가 되지 않게 말이야.”병원 병실 안.리사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걷는 걸 연습했다. 똑바로 설 수는 있었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리가 아팠다.병실 밖에서 리사가 침대에서 내려와 걷는 모습을 본 강유이는 곧바로 다가가 리사를 부축했다.“리사야, 왜 내려왔어?”리사가 말했다.“좀 걸어보려고. 누워있고 싶지 않아서.”강유이는 리사를 부축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래도 조급해하면 안 돼. 천천히 해야지.”리사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어 강유이를 바라봤다.“유이야, 혹시 날 탓하는 거야?”강유이는 당황하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왜 널 탓해?”“그 사람들은 나보고 네게 연락해서 날 데리러 오라고 말하라고 했어. 그때 난 조금 망설였어. 진짜 자칫하면 널 배신할 뻔했는데, 내가 밉지 않아?”리사가 물었다.강유이는 그 얘기를 듣고 허탈한 듯 웃었다.“내가 왜 널 탓해? 네가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 나도 알아.”리사는 강유이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리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날 탓하지 않는다니 다행이야.”“참, 어제 조민 선배가 날 찾아왔는데...”리사의 안색이 살짝 달
“시우야, 그렇게 막 부르면 안 돼.”윤티파니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때렸다.“앞으로 다른 사람을 멋대로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윤티파니는 아이가 한지욱을 아빠라고 부를 줄은 몰랐다.확실히 아빠가 맞긴 했지만 윤티파니는 한지욱이 그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녀는 한지욱이 자신의 아이인 걸 알면 어떻게 할까 걱정됐다.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시우는 아빠가 갖고 싶어요.”윤티파니는 당황했다. 아이가 더욱더 크게 울자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책임감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매번 아이가 울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가 대신 아이를 달랬었다.윤티파니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한지욱이 다가와 팔을 뻗어 아이를 안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남자는 울면 안 돼.”시우는 울음을 뚝 끊고 눈물을 글썽이며 한지욱을 바라봤다.“아빠.”한지욱은 시우를 안아 들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 여기 있어.”시우가 진짜 울지 않자 윤티파니는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거실에서 시우는 줄곧 한지욱과 붙어 있었고 한지욱도 계속 아이를 안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진과 강현숙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강현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시우에게 말했다.“시우야, 자. 할머니한테 안겨.”시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지욱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전 아빠한테 안겨있을래요.”강현숙은 뻘쭘하게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녀는 심경이 복잡했다. 아이는 태어난 뒤로 단 한 번도 아빠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한지욱을 보자마자 그를 아빠라고 부른 걸까?윤진은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자네도 티파니가 자네를 떠난 이유를 알겠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티파니도 이젠 과거를 떨쳐냈어. 너희들 일은 나도 티파니 엄마도 더는 간섭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도울 생각도 없어. 티파니가 자네를 용서할지 안 할지는 자네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