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욱 씨...”...서울시 사립학교.강유이가 가방을 메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조민과 선배 여럿이 다가왔다.“강유이.”조민이 강유이를 불렀고 고개를 돌린 강유이는 눈살을 찌푸렸다.“선배가 여긴 왜 왔어요?”조민이 항상 리사를 괴롭혔기 때문에 강유이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회 부회장이 된 건지 의문이었다.조민은 팔짱을 두르고 강유이의 앞에 섰다.“너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야.”강유이는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요?”“당연히 리사 일 때문이지.”“리사 일을 선배가 저한테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강유이가 몸을 돌려 교실로 들어가려 하자 조민이 갑자기 말했다.“리사가 널 속였다면 어떡할래?”강유이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말이에요?”리사가 날 속이다니? 그럴 리가.조민은 강유이가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휴대폰을 꺼내 SNS로 들어갔다.“안 믿네. 그러면 직접 확인해 봐.”조민은 강유이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좋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강유이는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고개를 숙여 화면을 확인한 순간 리사 공주라는 닉네임의 SNS 계정이 보였다.그녀가 게시한 모든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아주 사치스러웠다. 그리고 찍힌 사진들과 동영상은 강유이에게 무척이나 익숙했다.옷, 가방, 신발, 심지어 팔찌까지 전부 강유이가 리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별장 안의 구조는 반씨 저택이었는데 그것은 리사가 강유이의 집에 놀러 왔을 때 찍은 사진인 듯했다. 차 번호판이 가려진 비싼 차 역시 강유이와 오빠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자가용이었다.그러나 영상에는 전부 리사의 것이라고 태그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강유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조민은 강유이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웃었다.“이제야 믿겠어? 네 친한 친구는 이 SNS 계정을 만든 사실을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지?”강유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조민은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뿐만이 아니야. 리사는 부자인
강유이는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비록 믿지는 않았지만 조민의 말 때문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리사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일까?강유이는 리사와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들은 강유이가 리사에게 먼저 준 것들이었고 리사가 먼저 뭔가를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그러니 리사는 분명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저녁, 반씨 저택.밥을 먹을 때 강유이는 줄곧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강성연은 그 점을 눈치채고는 강유이의 그릇에 음식을 집어줬다.“유이야, 왜 그래?”반지훈과 강해신도 강유이를 바라봤다.강유이는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핑계를 댔다.“리사가 보름 뒤면 퇴원할 수 있대요.”강성연은 웃었다.“리사가 퇴원하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이제 친구랑 같이 놀 수 있잖아.”강유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강해신은 강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밥을 다 먹은 뒤 위층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반지훈은 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유이 뭔가 고민이 있나 본데.”강성연은 흠칫했다.“그래요?”아이도 이제 열 살이 넘었으니 고민이 있는 건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성연은 리사가 당한 일 때문에 강유이가 자책할까 봐 걱정되었다. 강유이는 어릴 때부터 그녀와 반지훈, 그리고 오빠들의 보호 아래 자랐기에 순수했다. 리사가 겪은 일 때문에,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는 한동안 미안해했다. 또한 강성연은 강유이가 최대한 리사에게 보상하려 한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갑자기 수연이 했던 미친 말들이 떠올랐다. 사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강성연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그 일 때문에 강유이와 리사의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리사는 무고했다. 단지 강유이와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라고 오해받아 수연 일당에게 잔인한 일을 당했고 리사에게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강해신은 젓가락
강해신은 민서율을 제외하고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남학생이었다. 비록 중학생이긴 하지만 그의 지능은 고교생 수준이었다.고개를 돌린 조민은 강해신을 보고 교과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날 찾아온 거야?”강해신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았다.“어제 제 동생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리사 일 말이에요.”조민은 흠칫하더니 이내 웃었다.“리사 일 말이야? 유이가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나 보네?”강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조민이 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가 직접 확인해서 보면 되잖아.”강해신은 조민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고 그것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조민은 강해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내가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네 여동생 설득 좀 해봐. 괜히 농부와 독사에서 그 농부가 되지 않게 말이야.”병원 병실 안.리사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걷는 걸 연습했다. 똑바로 설 수는 있었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리가 아팠다.병실 밖에서 리사가 침대에서 내려와 걷는 모습을 본 강유이는 곧바로 다가가 리사를 부축했다.“리사야, 왜 내려왔어?”리사가 말했다.“좀 걸어보려고. 누워있고 싶지 않아서.”강유이는 리사를 부축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래도 조급해하면 안 돼. 천천히 해야지.”리사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어 강유이를 바라봤다.“유이야, 혹시 날 탓하는 거야?”강유이는 당황하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왜 널 탓해?”“그 사람들은 나보고 네게 연락해서 날 데리러 오라고 말하라고 했어. 그때 난 조금 망설였어. 진짜 자칫하면 널 배신할 뻔했는데, 내가 밉지 않아?”리사가 물었다.강유이는 그 얘기를 듣고 허탈한 듯 웃었다.“내가 왜 널 탓해? 네가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 나도 알아.”리사는 강유이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리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날 탓하지 않는다니 다행이야.”“참, 어제 조민 선배가 날 찾아왔는데...”리사의 안색이 살짝 달
“시우야, 그렇게 막 부르면 안 돼.”윤티파니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때렸다.“앞으로 다른 사람을 멋대로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윤티파니는 아이가 한지욱을 아빠라고 부를 줄은 몰랐다.확실히 아빠가 맞긴 했지만 윤티파니는 한지욱이 그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녀는 한지욱이 자신의 아이인 걸 알면 어떻게 할까 걱정됐다.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시우는 아빠가 갖고 싶어요.”윤티파니는 당황했다. 아이가 더욱더 크게 울자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책임감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매번 아이가 울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가 대신 아이를 달랬었다.윤티파니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한지욱이 다가와 팔을 뻗어 아이를 안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남자는 울면 안 돼.”시우는 울음을 뚝 끊고 눈물을 글썽이며 한지욱을 바라봤다.“아빠.”한지욱은 시우를 안아 들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 여기 있어.”시우가 진짜 울지 않자 윤티파니는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거실에서 시우는 줄곧 한지욱과 붙어 있었고 한지욱도 계속 아이를 안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진과 강현숙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강현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시우에게 말했다.“시우야, 자. 할머니한테 안겨.”시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지욱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전 아빠한테 안겨있을래요.”강현숙은 뻘쭘하게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녀는 심경이 복잡했다. 아이는 태어난 뒤로 단 한 번도 아빠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한지욱을 보자마자 그를 아빠라고 부른 걸까?윤진은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자네도 티파니가 자네를 떠난 이유를 알겠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티파니도 이젠 과거를 떨쳐냈어. 너희들 일은 나도 티파니 엄마도 더는 간섭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도울 생각도 없어. 티파니가 자네를 용서할지 안 할지는 자네 일이니까
평범한 목제 가구는 반씨 가문 별장의 가구에 비해 훨씬 퀄리티가 떨어졌다.리사의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유이야, 오늘은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자. 너 뭐 좋아해? 아주머니가 다 해줄게."강유이는 웃으며 답했다."저는 뭐든 다 잘 먹어요!"리사의 어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아주머니가 먼저 장 보고 올게."리사의 어머니는 나가기 전까지도 리사에게 친구를 잘 대접하라고 일렀다.리사는 강유이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녀의 방은 강유이의 방보다 훨씬 작았지만 아주 따듯한 느낌이 있었다.리사의 방에는 또 2층짜리 침대가 있었는데, 위층을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짐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강유이는 그녀의 책상 앞에 앉으며 물었다."위층 침대는 누구 거야? 너도 형제자매가 있었어?"리사가 머리를 끄덕였다."근데 왜 한 번도 말한 적 없어?"리사가 입을 삐죽이며 답했다."오빠는 우리랑 같이 사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강유이는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리사는 오빠와 사이가 아주 안 좋아 보였다. 오죽하면 오빠가 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겠는가.'오빠라면 가족이 아닌가? 왜 같이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거지?'강유이는 궁금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리사에게 하기 싫은 말을 하도록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리사의 어머니는 장을 보고 돌아왔다. 그녀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풍성한 한 상을 차렸다. 리사의 아버지도 퇴근하고 돌아오셨다.딸이 처음으로 친구를 데리고 왔으니 두 사람은 기분이 몹시 좋아보이셨다. 특히 리사의 어머니는 강유이에게 반찬까지 집어주며 말했다."유이야, 많이 먹어."강유이는 웃으며 답했다."감사합니다."강유이는 어른들의 예쁨을 잘 받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예쁨을 잔뜩 받았다.리사는 그런 강유이가 아주 부러웠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췄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성공적인 인생을 보낼 수 있었다."리사야, 너도 많이
소년은 다리를 꼬며 말했다."쯧쯧,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리염아, 돌아왔으면 얌전히 밥이나 먹어. 안 먹겠으면 그냥 나가고."리사의 아버지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그는 이 못난 아들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리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아들한테 너무 매정한 거 아니에요?""주제도 모르고 아들 소리를 운운하는구나."리사의 어머니가 걸어오며 말했다."집에는 돌아오지도 않으면서 뻔뻔하게 돈 달란 소리만 하고 말이야. 일이라도 찾아서 동생 뒷바라지하면 좀 좋니?"리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까지 뒷바라지할 필요 있어요? 리사는 좋은 학교에서 부자 친구들이랑 놀고 있다면서요."그는 리사의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말했다."그것도 몇백만 원짜리 시계지?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명품 시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된 거야?"리사는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감췄다.리사의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리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동생한테 명품 시계를 사줄 수 있는 사정이면... 저한테 용돈 줄 수도 있겠네요.""너...!"리사의 아버지는 화난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던지고는 몸을 일으켰다. 리사도 이 자리가 불편했는지 강유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가자, 유이야."리사는 강유이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뒤에서 리염과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사는 살짝 머리를 돌려 멍한 표정으로 집을 바라보더니, 강유이를 데리고 계단를 내려갔다."미안해, 유이야. 나도 오늘 오빠가 갑자기 돌아올 줄 몰랐어."강유이는 리사를 바라보며 물었다."네 오빠는 항상 저래?""미안해, 많이 놀랐지? 내가 이래서 오빠를 싫어해."리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래서 강유이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리사는 강유이가 가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달려가 리염을 막아섰다."오빠, 이게 뭐 하는 짓이
반씨 저택으로 돌아온 강유이는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는데 바로 앞에서 기다리는 강해신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오빠, 왜 여기서 폼 잡고 있어?""누가 폼을 잡았다고 그래?"강해신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리사 집에서 밥 먹고 온다며. 왜 벌써 돌아왔어?""밥을 다 먹었으니까 돌아왔지."강유이는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멈춰서서 말했다."오빠,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워."강유이는 리사의 오빠를 보고 나서야 강해신의 소중함을 알았다.강해신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처음으로 동생한테 인사말을 들은 그는 약간 새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네가 웬일이야?""아무것도 아니야."강유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강해신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이튿날, 강성연은 강해신과 강유이를 학교로 보내고 반지훈의 회사로 도시락 배달을 왔다.사무실에서 나온 연희승이 강성연을 발견하고 물었다."사모님, 어쩐일로...?"강성연이 도시락을 들어 보이자 그는 이내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아... 도시락 배달 오셨군요. 대표님은 좋으시겠어요."강성연이 웃으며 말했다."부러우면 희승 씨도 얼른 결혼해요.""..."연희승은 시도 때도 없이 눈꼴신 짓을 하는 잉꼬부부가 어이없기만 했다.
강성연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지훈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강성연과 연희승의 대화를 들은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러다 또 선자리를 주선하는 거 아니야?"강성연은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희승 씨는 당신 직원이에요. 주선자는 당연히 지훈 씨가 되어야죠."반지훈은 피식 웃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주선자가 되기에 나는 아는 여자가 없어."강성연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확실히 반지훈이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거의 남자들뿐이었다.강성연은 책상을 짚으며 말했다."지훈 씨 대학 다닐 때 엄청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요. 쫓아다니던 여자는 없었어요?"반지훈은 그녀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없었어."반지훈은 대학교에 다닐 때도 공부와 회사 일에만 신경 쓰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강성연은 그의 손을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같은 반 친구 연락처도 없어요?"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강성연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너는 내가 다른 여자랑 연락했으면 좋겠어?""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죠."강성연은 몸을 일으키며 도시락통을 열었다."이건 제가 지훈 씨를 위해 직접 만든 계란 볶음밥이에요.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어요."반지훈은 숟가락을 들고 한 입 먹어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괜찮네.""정말요?"강성연은 반지훈이 거짓말이라도 할까봐 빤히 쳐다봤다."많이 늘었네."이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강성연은 반지훈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얌전히 소파로 가서 앉았다."들어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