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연희승은 빠른 걸음으로 책상 앞으로 왔다."대표님, 성운데크의 곽 회장님이 만나 뵙기를 청하십니다."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성운테크라면 우리 AM과 전혀 접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나를 만나려 하는 거지?"연희승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저도 잘 모르겠지만 안내 데스크 직원 말로는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합니다. 요즘 인수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있던데, 혹시 합작을 청하러 온 건 아닐까요?"반지훈은 서류를 내려놓고 뒤로 기대며 말했다."곧 인수되는 회사가 무슨 능력으로 나와 합작하려는 거지? 우리가 무슨 자원봉사자야? 그냥 내보내라고 안내 데스크에 전해."연희승은 반지훈의 말을 그대로 안내 데스크에 전했다. 하지만 곧 무슨 말을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머리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봤다."저... 성운테크 곽 회장님의 따님이 대표님의 대학 동창이라고 합니다."어딘 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강성연은 애써 웃음을 참기 위해 머리를 돌렸지만 파르르 떨리는 어깨가 숨겨지지 않았다.반지훈은 미간을 누르며 물었다."성연아, 재밌어?""미안해요. 순간 참지 못했어요."강성연은 아직도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반지훈은 연희승을 바라보며 말했다."일단 나가."연희승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밖으로 나갔다.반지훈은 강성연을 향해 걸어가서 입술을 겹쳤다. 강성연은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채 그의 어깨를 잡았다. 반지훈은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한참 지난 후, 강성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저 이제 돌아갈래요."반지훈은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조금 더 있지...""지훈 씨 바쁘잖아요. 제가 계속 사무실에 있으면 남들이 어떻게 보겠어요?"강성연은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만약 계속 남아있으면 참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반지훈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우리 회사 사모님을 뭐 어떻게 보겠어?"반지훈은 또 그녀의 목을 살짝 깨물기 시작했다."지훈
곽씨 부녀는 어색한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반지훈은 전혀 개의치 않고 대학 얘기를 건너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오늘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나 말씀해 주시겠어요? 다른 얘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반지훈은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관용을 사려는 것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게다가 반지훈이 인정하지 않는 동창이기도 하고 말이다.반지훈의 단호한 태도에 곽 회장도 그의 뜻을 따랐다."사실 저희 성운테크에 자금 문제가 좀 생겼어요. 대표님이 컴퓨터 학과를 나와서 IT에 대해 잘 안다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도움을 청하러 오게 되었고요."반지훈은 팔짱을 끼며 의자에 기대앉았다."저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성운테크를 도와야 하는 이유가 뭐죠?"곽 회장은 말문이 막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곽의정이 나서서 말했다."AM의 IT 기업이 성운테크보다 훨씬 뛰어나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그 어느 회사에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성운테크에서 출시한 채팅 앱 ksapp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사용자가 2000만 명이나 됩니다. ksapp은 저희 회사 직원이 10년 가까이 지켜온 결과물이고, 저희는 ksapp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반지훈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곽씨 부녀를 묵묵히 바라봤다. 그녀는 채팅 앱이나 IT 업계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ksapp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알았고, 채팅 외에 라이브나 포스팅도 가능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강성연은 반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운테크의 기술은 확실히 나쁘지 않아요. 만약 합작할 수 있다면 기술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곽씨 부녀는 놀란 눈빛으로 강성연을 바라봤다.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에게 다가갔다."더 구체적으로 말해볼래?""ksapp은 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강성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집에 먹여 살려야 하는 애가 셋이나 있는데, 이 정도 도움은 당연히 줘야 하지 않겠어요?"반지훈은 곽씨 부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제 부인이 이렇게 말했으니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곽 회장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금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사모님. 물론 대표님에게도 감사합니다."연희승이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간 후, 강성연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럼 저도 이만..."강성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반지훈이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이만 뭐?"강성연은 몸을 흠칫 떨며 말했다."제 회사로 돌아갈 거라고요!"반지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어디도 갈 생각하지 마."...M국.한지욱은 시우를 데리고 동물원에 왔다. 시우는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신기한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동물원에 처음 와본 시우는 끝도 없이 질문을 했고, 한지욱은 인내심 있게 하나하나 대답해 줬다.윤티파니는 시우의 신난 모습을 보고 그저 뒤에서 묵묵히 따라갔다. 그녀는 다정한 부자 사이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동물원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고 한지욱과 시우는 어느새 윤티파니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을 찾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와서 손을 잡았다.윤티파니는 머리를 돌려 한 손으로 시우를 안고 있는 한지욱을 바라봤다."얼른 따라오지 않고 뭐 해요?"윤티파니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아, 미안해요."한지욱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얼른 가요."한지욱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윤티파니의 손을 잡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펭귄월드에 도착한 한지욱은 시우를 내려놨다. 시우는 쪼르르 유리 앞으로 달려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펭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엄마, 펭귄이 엄청 많아요!"윤티파니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이때 시우가 재채기하더니 콧물이 다 흘러나왔다. 윤티파니는 바로 종
한지욱이 천천히 말했다."시우는 내가 필요해요. 한창 온전한 가족이 필요할 때이니까요."윤티파니는 심장이 욱신거리는 것 같아 자신의 손을 빼내며 말했다."저는 결혼하기 싫어요."윤티파니는 더 이상 결혼할 용기가 없었다. 한지욱도 물론 자신이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럼 결혼하지 마요. 나는 티파니 씨가 원하는 대로 할 거예요. 모든 선택권이 티파니 씨한테 있고 나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게요."한지욱이 윤타피니의 차가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치 따듯하게 만들어 주려는 것처럼 말이다.윤티파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물론이죠."한지욱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티파니 씨와 시우가 없다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어요?"윤티파니는 멈칫하다가 그의 눈을 바라봤다."저희가 결혼해도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을 거예요. 그런 아내, 그런 혼인이라도 괜찮겠어요?""네."한지욱은 그녀의 얼굴을 들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남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상관없어요. 나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뿐이에요."윤티파니는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욱은 그녀의 볼에 짧게 뽀뽀했다가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찰나의 접촉에 윤티파니는 몸을 흠칫 떨며 그를 밀어내고는 머리를 숙여버렸다."미안해요..."한지욱은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무섭게 한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아니에요, 내가 기다릴게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3일 후, 연희승은 계약서를 들고 성운테크로 찾아갔다.사무실에서 비서가 따듯한 차를 내오고 곽 회장은 계약서를 훑어봤다.얼마 후 연희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만약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곽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아주 만족스러워요."곽 회장은 사인을 하고 다시 계약서를 연희승에게 건네줬다.계약서를 확인하고 난 연희승은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밀었다."그럼 앞으로 잘
반지훈은 성운테크와 합작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곽 회장이 대학 얘기를 꺼냈을 때는 합작할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그는 HS그룹과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한수찬도 합작을 핑계로 한성연을 그에게 소개해 줬었다. 게다가 그가 기억을 잃은 틈을 타서 말이다. 그 뒤로부터 반지훈은 아무리 실력 좋은 회사라고 해도 사적인 핑곗거리로 찾아온다면 전부 밀어내고 말았다.다행히 성운테크는 눈치를 볼 줄 알았고 강성연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기에, 반지훈은 그녀를 봐서라도 받아들였다.강성연은 웃으면서 말했다."저는 지훈 씨를 따를게요. 지훈 씨가 가면 저도 따라갈래요."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통화가 끝난 다음 이율이 몸을 돌리며 물었다."대표님, 방금 말한 곽 회장님은 어느 회사 회장님인가요?"이율의 안색은 약간 어두웠다. 이상함을 눈치챈 강성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건 왜 물어?"이율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사무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는 순간, 이율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저녁 7시, 강성연은 반지훈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왔다. 곽 회장은 고급 레스토랑의 VIP 룸을 예약했고 딸과 아내도 함께 데리고 왔다.강성연과 반지훈이 온 것을 보고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대표님, 사모님, 어서 앉으세요."반지훈은 곽 회장의 곁에 앉았고, 강성연은 반지훈의 곁에 앉았다. 곽씨 모녀는 곽 회장의 왼쪽에 앉아 그들과 마주 보고 있었다.곽 회장은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저희가 아직 주문을 안 했어요. 대표님과 사모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었어요."반지훈은 메뉴판을 받지도 않으며 말했다."이번 식사 자리를 만든 건 회장님이시고, 또 저희보다 어른이시니 드시고 싶은신 걸로 편히 주문하세요. 저와 제 아내는 못 먹는 음식이 없습니다."반지훈의 말을 들은 곽 회장은 메뉴판을 거두며 말했다."그럼 제가 이 가게에서 가
곽 부인은 멈칫하며 곽 회장을 힐끗 보더니 그저 미소만 지었다.음식이 전부 올라오고, 곽 회장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곽의정도 몇 마디를 보태곤 했다. 강성연은 밥 먹을 때 말을 하지 않는 반지훈을 대신해 대답을 해줬다. 그러다가 내내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곽씨 모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식사가 끝난 다음, 곽 회장이 두 사람을 레스토랑 앞까지 데려다줬다. 강성연도 인사를 나누고 반지훈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차가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하고 강성연은 백미러를 힐끗 보며 물었다."부인이 식사하는 내내 약간 어색해 보이지 않았어요?"반지훈은 무심하게 셔츠 단추를 풀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런 것도 관찰하고 있었어?""그냥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요."강성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부인은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회장님의 눈치를 봤어요. 그리고 딸과도 얘기를 전혀 나누지 않는 것이 어쩐지 남처럼 보인다고 할까요."운전하고 있던 경호원이 뭔가를 아는 듯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회장님은 재혼을 하셨어요. 곽의정 씨는 전처와 낳은 아이이고, 몇 년 전 이혼했다고 하더라고요."강성연이 몸을 앞으로 하며 물었다."이혼은 왜 했대요?"경호원은 반지훈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강성연은 입을 삐죽였다. 곽의정과 반지훈의 나이가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40대밖에 안 돼서 이상하다 했더니 역시나 재혼이었다.반지훈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그런 걸 알아서 뭐하려고?"강성연은 머리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왜요, 재밌잖아요."반지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넌 참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강성연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계속 투덜거릴 거면 지훈 씨랑 얘기 안 할 거예요."반지훈은 큰 소리로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알겠어, 그만할게."이튿날, 곽의정은 친구들과 함께 쇼핑하러 왔다.반
곽의정은 차가 지나간 방향으로 따라갔다.주차하고 난 이율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곽의정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오랜만이야. 그 새로 차를 바꾼 걸 보니 너도 잘살고 있었나 봐?"이곳에서 곽의정과 마주칠 줄은 몰랐던 이율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내가 당신 돈으로 차를 바꾼 것도 아니잖아요?"이율이 그냥 지나쳐 가려고 하자 곽의정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이 3년 동안, 네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이율은 시선을 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율이 15살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곽 회장과 재혼했다. 그렇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곽씨 저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곽씨 집안에서 언제나 남으로 취급받았다.어머니는 새아버지의 말이라면 전부 따랐고 현모양처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율도 곽씨 집안의 딸로 새아버지의 돈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그녀가 곽씨 집안의 의붓딸이라는 것은 절대 밝혀지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이율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안 됐다.어머니는 이율이 얼른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3년 전의 선 자리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곽의정은 이율을 힐끗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너 설마 슈가 대디를 사귄 건 아니지?"이율은 멈칫하며 되물었다."뭐요?"곽의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비싼 가방에 비싼 차까지... 슈가 대디가 아니면 네 주제에 어떻게 이런 물건들을 사겠어? 내가 네 친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야겠어. 넌 네 어머니가 걱정되지도 않아?"이율은 곽의정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까 봐 황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이건 제가 직접 번 돈으로 산 거예요.""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그걸 알아서 뭐하려고요?"이율은 곽의정을 밀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곽의정은 몰래 이율을 따라갔고, 그녀가 soul 주얼리 안으로 들어가는
곽의정은 유유히 차를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으로는 곽 회장의 말을 듣고는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곽 회장이 AM그룹으로 찾아간 날, 사실 곽의정은 별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비록 같은 학과를 나오기는 했지만 반지훈과 그녀는 거의 남과 다름없었고, 곽 회장이 원하는 일도 일어날 리 없기 때문이다.곽 회장이 곽의정을 AM그룹으로 데려간 것은 '동창'의 이름을 빌리기 위해서도 있지만 이 기회에 자신의 딸을 상류 사회로 이끌기 위해서도 있었다. 만약 AM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미래가 창창할 게 뻔했다.대부분 사람들은 반지훈한테만 다가가기 바빴고 그의 곁에 있는 부인 강성연한테는 입에 발린 말만 건네고 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반지훈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보고 곽 회장은 강성연과 친하게 지낼 생각을 한 것이다.사람들은 강성연을 운 좋은 여자라고 여겼다. 그녀가 AM그룹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주얼리 사업을 하면서도 반지훈에게 시집을 갔으니 말이다.하지만 곽의정은 약간 다르게 생각했다. 강성연이 반지훈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녀의 독립적이고 당당한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반지훈에게 사업적인 의견도 줄 수 있었다.이 세상에 양성 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현실 속에서도 평등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반지훈은 강성연이 여자라고 해서 곽 회장처럼 아내에게 '여자가 하는 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 파트너'였다.대부분 남자가 자신의 아내가 부드러운 사람이기를 바란다. 만약 아내가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일 거다.곽의정은 시선을 떨구며 답했다."네."이틀 후, soul 주얼리.soul은 새로운 시즌의 주얼리를 출시하기 위해 광고 모델을 찾고 있었다. 강성연은 회의를 통해 홍보기획팀에 맡기기로 했다.회의가 끝나고 강성연은 회의실 밖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