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성운테크와 합작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곽 회장이 대학 얘기를 꺼냈을 때는 합작할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그는 HS그룹과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한수찬도 합작을 핑계로 한성연을 그에게 소개해 줬었다. 게다가 그가 기억을 잃은 틈을 타서 말이다. 그 뒤로부터 반지훈은 아무리 실력 좋은 회사라고 해도 사적인 핑곗거리로 찾아온다면 전부 밀어내고 말았다.다행히 성운테크는 눈치를 볼 줄 알았고 강성연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기에, 반지훈은 그녀를 봐서라도 받아들였다.강성연은 웃으면서 말했다."저는 지훈 씨를 따를게요. 지훈 씨가 가면 저도 따라갈래요."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통화가 끝난 다음 이율이 몸을 돌리며 물었다."대표님, 방금 말한 곽 회장님은 어느 회사 회장님인가요?"이율의 안색은 약간 어두웠다. 이상함을 눈치챈 강성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건 왜 물어?"이율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사무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는 순간, 이율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저녁 7시, 강성연은 반지훈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왔다. 곽 회장은 고급 레스토랑의 VIP 룸을 예약했고 딸과 아내도 함께 데리고 왔다.강성연과 반지훈이 온 것을 보고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대표님, 사모님, 어서 앉으세요."반지훈은 곽 회장의 곁에 앉았고, 강성연은 반지훈의 곁에 앉았다. 곽씨 모녀는 곽 회장의 왼쪽에 앉아 그들과 마주 보고 있었다.곽 회장은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저희가 아직 주문을 안 했어요. 대표님과 사모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었어요."반지훈은 메뉴판을 받지도 않으며 말했다."이번 식사 자리를 만든 건 회장님이시고, 또 저희보다 어른이시니 드시고 싶은신 걸로 편히 주문하세요. 저와 제 아내는 못 먹는 음식이 없습니다."반지훈의 말을 들은 곽 회장은 메뉴판을 거두며 말했다."그럼 제가 이 가게에서 가
곽 부인은 멈칫하며 곽 회장을 힐끗 보더니 그저 미소만 지었다.음식이 전부 올라오고, 곽 회장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곽의정도 몇 마디를 보태곤 했다. 강성연은 밥 먹을 때 말을 하지 않는 반지훈을 대신해 대답을 해줬다. 그러다가 내내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곽씨 모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식사가 끝난 다음, 곽 회장이 두 사람을 레스토랑 앞까지 데려다줬다. 강성연도 인사를 나누고 반지훈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차가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하고 강성연은 백미러를 힐끗 보며 물었다."부인이 식사하는 내내 약간 어색해 보이지 않았어요?"반지훈은 무심하게 셔츠 단추를 풀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런 것도 관찰하고 있었어?""그냥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요."강성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부인은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회장님의 눈치를 봤어요. 그리고 딸과도 얘기를 전혀 나누지 않는 것이 어쩐지 남처럼 보인다고 할까요."운전하고 있던 경호원이 뭔가를 아는 듯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회장님은 재혼을 하셨어요. 곽의정 씨는 전처와 낳은 아이이고, 몇 년 전 이혼했다고 하더라고요."강성연이 몸을 앞으로 하며 물었다."이혼은 왜 했대요?"경호원은 반지훈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강성연은 입을 삐죽였다. 곽의정과 반지훈의 나이가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40대밖에 안 돼서 이상하다 했더니 역시나 재혼이었다.반지훈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그런 걸 알아서 뭐하려고?"강성연은 머리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왜요, 재밌잖아요."반지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넌 참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강성연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계속 투덜거릴 거면 지훈 씨랑 얘기 안 할 거예요."반지훈은 큰 소리로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알겠어, 그만할게."이튿날, 곽의정은 친구들과 함께 쇼핑하러 왔다.반
곽의정은 차가 지나간 방향으로 따라갔다.주차하고 난 이율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곽의정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오랜만이야. 그 새로 차를 바꾼 걸 보니 너도 잘살고 있었나 봐?"이곳에서 곽의정과 마주칠 줄은 몰랐던 이율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내가 당신 돈으로 차를 바꾼 것도 아니잖아요?"이율이 그냥 지나쳐 가려고 하자 곽의정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이 3년 동안, 네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이율은 시선을 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율이 15살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곽 회장과 재혼했다. 그렇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곽씨 저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곽씨 집안에서 언제나 남으로 취급받았다.어머니는 새아버지의 말이라면 전부 따랐고 현모양처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율도 곽씨 집안의 딸로 새아버지의 돈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그녀가 곽씨 집안의 의붓딸이라는 것은 절대 밝혀지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이율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안 됐다.어머니는 이율이 얼른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3년 전의 선 자리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곽의정은 이율을 힐끗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너 설마 슈가 대디를 사귄 건 아니지?"이율은 멈칫하며 되물었다."뭐요?"곽의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비싼 가방에 비싼 차까지... 슈가 대디가 아니면 네 주제에 어떻게 이런 물건들을 사겠어? 내가 네 친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야겠어. 넌 네 어머니가 걱정되지도 않아?"이율은 곽의정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까 봐 황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이건 제가 직접 번 돈으로 산 거예요.""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그걸 알아서 뭐하려고요?"이율은 곽의정을 밀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곽의정은 몰래 이율을 따라갔고, 그녀가 soul 주얼리 안으로 들어가는
곽의정은 유유히 차를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으로는 곽 회장의 말을 듣고는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곽 회장이 AM그룹으로 찾아간 날, 사실 곽의정은 별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비록 같은 학과를 나오기는 했지만 반지훈과 그녀는 거의 남과 다름없었고, 곽 회장이 원하는 일도 일어날 리 없기 때문이다.곽 회장이 곽의정을 AM그룹으로 데려간 것은 '동창'의 이름을 빌리기 위해서도 있지만 이 기회에 자신의 딸을 상류 사회로 이끌기 위해서도 있었다. 만약 AM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미래가 창창할 게 뻔했다.대부분 사람들은 반지훈한테만 다가가기 바빴고 그의 곁에 있는 부인 강성연한테는 입에 발린 말만 건네고 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반지훈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보고 곽 회장은 강성연과 친하게 지낼 생각을 한 것이다.사람들은 강성연을 운 좋은 여자라고 여겼다. 그녀가 AM그룹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주얼리 사업을 하면서도 반지훈에게 시집을 갔으니 말이다.하지만 곽의정은 약간 다르게 생각했다. 강성연이 반지훈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녀의 독립적이고 당당한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반지훈에게 사업적인 의견도 줄 수 있었다.이 세상에 양성 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현실 속에서도 평등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반지훈은 강성연이 여자라고 해서 곽 회장처럼 아내에게 '여자가 하는 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 파트너'였다.대부분 남자가 자신의 아내가 부드러운 사람이기를 바란다. 만약 아내가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일 거다.곽의정은 시선을 떨구며 답했다."네."이틀 후, soul 주얼리.soul은 새로운 시즌의 주얼리를 출시하기 위해 광고 모델을 찾고 있었다. 강성연은 회의를 통해 홍보기획팀에 맡기기로 했다.회의가 끝나고 강성연은 회의실 밖
곽의정은 선물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이건 제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선물 상자만 봐도 비싼 티가 났기에, 강성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감사 인사라면 함께 식사하면서 충분히 했잖아요. 또 선물을 받는 건 좀 부담스럽네요."선물을 주는 것에는 보통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표현이고, 두 번째는 아부이다. 표현은 보통 부탁할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었는데 곽의정은 강성연에게 부탁할 일이 없으니, 그녀는 당연히 두 번째이겠다고 생각했다.곽의정은 아부를 한다고 해서 과하게 하지는 않았다. 강성연이 선물을 받지 않는 것도 예상안의 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강성연을 만나러 왔고, 혹시 모를 생각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거절당한 다음에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바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이 선물은 제가 사모님을 위해 준비한 거예요. 성운테크에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이번 일은 제가 평생 기억하고 있을게요."강성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견만 냈을 뿐이에요. 성운테크에 기회를 준 것도 제가 아닌 지훈 씨고요. 그리고 감사의 뜻을 표현하려면 선물을 주는 것보다 앞으로의 합작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곽의정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지훈이 강성연에게 빠진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곽의정은 강성연과 몇 마디 주고받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곽의정이 밖으로 나가고 강성연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미 받은 선물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예의에 어긋났기에 그녀는 그저 지윤에게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전했다.저녁, 강성연은 곽의정에게 선물 받은 일을 반지훈에게 알려줬다. 샤워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반지훈은 머리를 들며 말했다."뭐... 그 여자가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그렇기는 하지만..."강성연은 로션을 다 바르고
반지훈은 강성연의 허리를 감싸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틀린 말은 아니잖아."강성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정말요?"반지훈은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꼬리에 짧게 입을 맞췄다."그럼."강성연은 그를 살짝 밀어내고 머리를 들었다."그것도 억지를 부리지 않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거죠?"억지를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부처님이 와도 매번 다 받아주기는 힘들 것이다.반지훈이 강성연의 말을 듣는 것은 그녀를 존중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자가 남들 앞에서 남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자도 와이프한테 막 대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반지훈은 달랐다.반지훈과 강성연은 어디에서나 서로를 존중했다. 그리고 그는 남자가 존중받는 것도 여자에게 달린 것이 아닌 남자에게 달렸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여자를 존중하면, 여자도 자연스레 남자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남자가 가장 기본적인 존중도 해주지 않는다면 여자도 똑같지 않을까? 여자가 패악을 부리며 되돌릴수 없는 관계로 헤어지는 부부가 바로 그 예가 아닌가 싶다.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을 화장대 위로 안아 올렸다."너라면 억지를 부려도 괜찮을 것 같아."강성연은 눈썹을 들썩이며 반지훈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그럼 지금 한 번 부려볼까요?"반지훈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이튿날, 곽씨 저택.이율은 문밖에 서서 들어갈지 말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곽 부인이 문을 열고 그녀에게 말했다."왔으면 얼른 들어오지 않고 여기서 뭐해?"이율은 말없이 곽 부인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곽 회장과 곽의정은 소파에 앉아있었다. 곽 부인은 이율의 등을 떠밀며 인사를 하라고 했다. 이율은 아버지라는 말을 입밖으로 억지로 꺼내며 인사했다.곽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오랜만에 보는구나. 네 어머니가 너를 많이 그리워했어. 온 김에 밥 먹고 가."이율은 어머니의 기분 좋으신 모습을 보고 그러기로 했다.점심 밥을 먹
이율은 시선을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곽 부인은 이율의 태도에 곽 회장이 화를 낼까 봐 그녀를 살짝 밀며 말했다."아버지가 묻잖니."이율이 대답하려고 하자 곽의정이 갑자기 끼어들었다."그다지 유명한 회사는 아니에요."곽의정의 말을 들은 곽 회장은 원래도 별로 없던 관심을 바로 접었다. 만약 대기업 관리직이라면 도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이율은 곽의정을 바라봤지만 곽의정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점심 식사가 끝난 후, 이율은 저택에서 나왔다. 곽 부인은 그녀를 대문까지 바래다줬고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이율아, 넌 엄마가 밉지는 않아?"이율은 성격이 순한 편이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어머니를 탓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점점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엄마는 후회 안 하세요?"이율이 되물었다.곽 부인은 그저 자신의 배를 쓰다듬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율도 더이상 묻지 않고 인사를 하곤 몸을 돌려 떠났다.그렇게 길을 따라 걷고 있을때 차 한 대가 유유히 다가와 곁에 멈춰서더니 창문이 스르르 내려졌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곽의정이었다."차는 두고 온거야? 너희 엄마한테 새 차 자랑이라도 하지 그래? 네가 잘 사는 걸 보면 선 보라고 강요하지도 않을 거 아니야."이율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오늘따라 운전하기 싫어서요."곽의정이 말했다."타, 데려다줄게."이율은 잠깐 고민했지만 물어볼 것도 있어서 차에 올라탔다."어제는 무슨 일로 soul 주얼리에 왔어요?""반 대표님의 부인을 만나러. 너네 대표님 말이야."곽의정이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평소에 꽤 잘해주지?"역시 곽의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이율은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그럼 아까는 왜...""너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네가 능력 있다는 걸 아빠가 아시면 내가 난감해지니까 그런거고. 곽씨 집안의 딸은 영원히 나 하나뿐이
“결혼 한 여자라면 응당 너희 어머니처럼 절개를 지켜야 해. 가정을 보살피고 자식을 돌보며 남편을 섬겨야 하는 거 맞아. 하지만 남편이란 작자는 그게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줄 알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어. 너도 알지? 너희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 아버지의 뜻을 어긴 적이 없다는 걸.”차가 아파트 아래에 도착했다. 안전벨트를 푼 이율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곽의정을 돌아보았다.“그래서 지금 그게 언니가 우리 엄마를 싫어하는 원인이라는 거예요?”조용한 정막 속에서 이율은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곽의정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난 그냥 너희 어머니가 고개만 푹 수그린 채 남의 비위나 맞추며 사는 태도가 눈에 거슬릴 뿐이야.”이율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라고 자신의 어머니의 서러움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재혼 후,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 곽 회장은 그녀가 가정주부로만 있을 것을 원했고, 심지어 그녀의 인간관계마저 깨끗이 정리하도록 했다.그녀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재혼하는 입장으로서 자신한테 곽 회장은 과분한 사람이라고, 심지어 이렇게 큰 딸까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곽 회장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남자라면 응당 밖에서 보이는 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곽 회장이 그녀한테 자신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한 원인은 단지 그녀가 곽 씨 가문의 체면을 깎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시집오고 난 후 줄곧 보모에 불과하지 않았다.모든 일은 남편이 위주였고 가장 기본적인 자기만의 생각조차 함부로 갖지 못했다.이율은 어머니한테 후회하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본인도 후회를 했을 것이다. 단지 본인 스스로가 택한 선택이었기에 후회해 봤자 또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이율은 곽의정이 탄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돌려 아파트로 들어갔다.그 시각, soul 주얼리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