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의정은 차가 지나간 방향으로 따라갔다.주차하고 난 이율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곽의정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오랜만이야. 그 새로 차를 바꾼 걸 보니 너도 잘살고 있었나 봐?"이곳에서 곽의정과 마주칠 줄은 몰랐던 이율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내가 당신 돈으로 차를 바꾼 것도 아니잖아요?"이율이 그냥 지나쳐 가려고 하자 곽의정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이 3년 동안, 네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이율은 시선을 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율이 15살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곽 회장과 재혼했다. 그렇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곽씨 저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곽씨 집안에서 언제나 남으로 취급받았다.어머니는 새아버지의 말이라면 전부 따랐고 현모양처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율도 곽씨 집안의 딸로 새아버지의 돈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그녀가 곽씨 집안의 의붓딸이라는 것은 절대 밝혀지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이율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안 됐다.어머니는 이율이 얼른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3년 전의 선 자리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곽의정은 이율을 힐끗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너 설마 슈가 대디를 사귄 건 아니지?"이율은 멈칫하며 되물었다."뭐요?"곽의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비싼 가방에 비싼 차까지... 슈가 대디가 아니면 네 주제에 어떻게 이런 물건들을 사겠어? 내가 네 친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야겠어. 넌 네 어머니가 걱정되지도 않아?"이율은 곽의정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까 봐 황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이건 제가 직접 번 돈으로 산 거예요.""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그걸 알아서 뭐하려고요?"이율은 곽의정을 밀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곽의정은 몰래 이율을 따라갔고, 그녀가 soul 주얼리 안으로 들어가는
곽의정은 유유히 차를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으로는 곽 회장의 말을 듣고는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곽 회장이 AM그룹으로 찾아간 날, 사실 곽의정은 별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비록 같은 학과를 나오기는 했지만 반지훈과 그녀는 거의 남과 다름없었고, 곽 회장이 원하는 일도 일어날 리 없기 때문이다.곽 회장이 곽의정을 AM그룹으로 데려간 것은 '동창'의 이름을 빌리기 위해서도 있지만 이 기회에 자신의 딸을 상류 사회로 이끌기 위해서도 있었다. 만약 AM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미래가 창창할 게 뻔했다.대부분 사람들은 반지훈한테만 다가가기 바빴고 그의 곁에 있는 부인 강성연한테는 입에 발린 말만 건네고 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반지훈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보고 곽 회장은 강성연과 친하게 지낼 생각을 한 것이다.사람들은 강성연을 운 좋은 여자라고 여겼다. 그녀가 AM그룹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주얼리 사업을 하면서도 반지훈에게 시집을 갔으니 말이다.하지만 곽의정은 약간 다르게 생각했다. 강성연이 반지훈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녀의 독립적이고 당당한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반지훈에게 사업적인 의견도 줄 수 있었다.이 세상에 양성 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현실 속에서도 평등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반지훈은 강성연이 여자라고 해서 곽 회장처럼 아내에게 '여자가 하는 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 파트너'였다.대부분 남자가 자신의 아내가 부드러운 사람이기를 바란다. 만약 아내가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일 거다.곽의정은 시선을 떨구며 답했다."네."이틀 후, soul 주얼리.soul은 새로운 시즌의 주얼리를 출시하기 위해 광고 모델을 찾고 있었다. 강성연은 회의를 통해 홍보기획팀에 맡기기로 했다.회의가 끝나고 강성연은 회의실 밖
곽의정은 선물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이건 제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선물 상자만 봐도 비싼 티가 났기에, 강성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감사 인사라면 함께 식사하면서 충분히 했잖아요. 또 선물을 받는 건 좀 부담스럽네요."선물을 주는 것에는 보통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표현이고, 두 번째는 아부이다. 표현은 보통 부탁할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었는데 곽의정은 강성연에게 부탁할 일이 없으니, 그녀는 당연히 두 번째이겠다고 생각했다.곽의정은 아부를 한다고 해서 과하게 하지는 않았다. 강성연이 선물을 받지 않는 것도 예상안의 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강성연을 만나러 왔고, 혹시 모를 생각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거절당한 다음에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바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이 선물은 제가 사모님을 위해 준비한 거예요. 성운테크에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이번 일은 제가 평생 기억하고 있을게요."강성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견만 냈을 뿐이에요. 성운테크에 기회를 준 것도 제가 아닌 지훈 씨고요. 그리고 감사의 뜻을 표현하려면 선물을 주는 것보다 앞으로의 합작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곽의정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지훈이 강성연에게 빠진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곽의정은 강성연과 몇 마디 주고받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곽의정이 밖으로 나가고 강성연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미 받은 선물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예의에 어긋났기에 그녀는 그저 지윤에게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전했다.저녁, 강성연은 곽의정에게 선물 받은 일을 반지훈에게 알려줬다. 샤워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반지훈은 머리를 들며 말했다."뭐... 그 여자가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그렇기는 하지만..."강성연은 로션을 다 바르고
반지훈은 강성연의 허리를 감싸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틀린 말은 아니잖아."강성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정말요?"반지훈은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꼬리에 짧게 입을 맞췄다."그럼."강성연은 그를 살짝 밀어내고 머리를 들었다."그것도 억지를 부리지 않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거죠?"억지를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부처님이 와도 매번 다 받아주기는 힘들 것이다.반지훈이 강성연의 말을 듣는 것은 그녀를 존중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자가 남들 앞에서 남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자도 와이프한테 막 대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반지훈은 달랐다.반지훈과 강성연은 어디에서나 서로를 존중했다. 그리고 그는 남자가 존중받는 것도 여자에게 달린 것이 아닌 남자에게 달렸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여자를 존중하면, 여자도 자연스레 남자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남자가 가장 기본적인 존중도 해주지 않는다면 여자도 똑같지 않을까? 여자가 패악을 부리며 되돌릴수 없는 관계로 헤어지는 부부가 바로 그 예가 아닌가 싶다.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을 화장대 위로 안아 올렸다."너라면 억지를 부려도 괜찮을 것 같아."강성연은 눈썹을 들썩이며 반지훈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그럼 지금 한 번 부려볼까요?"반지훈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이튿날, 곽씨 저택.이율은 문밖에 서서 들어갈지 말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곽 부인이 문을 열고 그녀에게 말했다."왔으면 얼른 들어오지 않고 여기서 뭐해?"이율은 말없이 곽 부인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곽 회장과 곽의정은 소파에 앉아있었다. 곽 부인은 이율의 등을 떠밀며 인사를 하라고 했다. 이율은 아버지라는 말을 입밖으로 억지로 꺼내며 인사했다.곽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오랜만에 보는구나. 네 어머니가 너를 많이 그리워했어. 온 김에 밥 먹고 가."이율은 어머니의 기분 좋으신 모습을 보고 그러기로 했다.점심 밥을 먹
이율은 시선을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곽 부인은 이율의 태도에 곽 회장이 화를 낼까 봐 그녀를 살짝 밀며 말했다."아버지가 묻잖니."이율이 대답하려고 하자 곽의정이 갑자기 끼어들었다."그다지 유명한 회사는 아니에요."곽의정의 말을 들은 곽 회장은 원래도 별로 없던 관심을 바로 접었다. 만약 대기업 관리직이라면 도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이율은 곽의정을 바라봤지만 곽의정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점심 식사가 끝난 후, 이율은 저택에서 나왔다. 곽 부인은 그녀를 대문까지 바래다줬고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이율아, 넌 엄마가 밉지는 않아?"이율은 성격이 순한 편이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어머니를 탓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점점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엄마는 후회 안 하세요?"이율이 되물었다.곽 부인은 그저 자신의 배를 쓰다듬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율도 더이상 묻지 않고 인사를 하곤 몸을 돌려 떠났다.그렇게 길을 따라 걷고 있을때 차 한 대가 유유히 다가와 곁에 멈춰서더니 창문이 스르르 내려졌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곽의정이었다."차는 두고 온거야? 너희 엄마한테 새 차 자랑이라도 하지 그래? 네가 잘 사는 걸 보면 선 보라고 강요하지도 않을 거 아니야."이율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오늘따라 운전하기 싫어서요."곽의정이 말했다."타, 데려다줄게."이율은 잠깐 고민했지만 물어볼 것도 있어서 차에 올라탔다."어제는 무슨 일로 soul 주얼리에 왔어요?""반 대표님의 부인을 만나러. 너네 대표님 말이야."곽의정이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평소에 꽤 잘해주지?"역시 곽의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이율은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그럼 아까는 왜...""너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네가 능력 있다는 걸 아빠가 아시면 내가 난감해지니까 그런거고. 곽씨 집안의 딸은 영원히 나 하나뿐이
“결혼 한 여자라면 응당 너희 어머니처럼 절개를 지켜야 해. 가정을 보살피고 자식을 돌보며 남편을 섬겨야 하는 거 맞아. 하지만 남편이란 작자는 그게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줄 알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어. 너도 알지? 너희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 아버지의 뜻을 어긴 적이 없다는 걸.”차가 아파트 아래에 도착했다. 안전벨트를 푼 이율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곽의정을 돌아보았다.“그래서 지금 그게 언니가 우리 엄마를 싫어하는 원인이라는 거예요?”조용한 정막 속에서 이율은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곽의정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난 그냥 너희 어머니가 고개만 푹 수그린 채 남의 비위나 맞추며 사는 태도가 눈에 거슬릴 뿐이야.”이율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라고 자신의 어머니의 서러움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재혼 후,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 곽 회장은 그녀가 가정주부로만 있을 것을 원했고, 심지어 그녀의 인간관계마저 깨끗이 정리하도록 했다.그녀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재혼하는 입장으로서 자신한테 곽 회장은 과분한 사람이라고, 심지어 이렇게 큰 딸까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곽 회장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남자라면 응당 밖에서 보이는 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곽 회장이 그녀한테 자신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한 원인은 단지 그녀가 곽 씨 가문의 체면을 깎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시집오고 난 후 줄곧 보모에 불과하지 않았다.모든 일은 남편이 위주였고 가장 기본적인 자기만의 생각조차 함부로 갖지 못했다.이율은 어머니한테 후회하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본인도 후회를 했을 것이다. 단지 본인 스스로가 택한 선택이었기에 후회해 봤자 또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이율은 곽의정이 탄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돌려 아파트로 들어갔다.그 시각, soul 주얼리
강성연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곽의정 씨,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아요?”지윤이 고개를 저었다.“자세한 건 묻지 않았는데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곽의정 씨와 곽 회장이 회사에서 가끔 싸우기도 한답니다. 곽의정 씨가 여자라 참 안타깝다고 직원들이 수군거리기도 했고요.”곽의정이 여자라 안타깝다고?강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곽 회장이 곽의정을 후계자로 키우지 않는 건 단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장차 시집가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한평생 성운 테크에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윤한테 말했다.“곽의정 씨를 만나야겠어요. 약속 잡아주세요.”며칠 후.성운 테크.곽의정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손에 쥐고 곽 회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부서 내 직원들도 이 상황이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곽 회장의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곽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곽의정,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지금 무슨 짓인지 물으셨어요? 본인한테 물어보세요. 지난 몇 년간 ksapp 기획 성과는 제가 IT 부서 직원들을 이끌어서 이루어낸 거예요. 제 의견을 묻지 않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마음대로 제 부서를 옮길 수 있어요!”곽의정의 고함 소리가 사무실 밖까지 흘러나왔다. 밖에 앉아있던 직원들은 닫히지 않은 블라인드를 통해 곽 회장의 사무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내부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그들은 하나 둘 귓속말로 의논하기 시작했다.“회장님이 부사장님의 부서를 옮겼어요?”“부사장님은 회장님의 따님이시잖아요. 부사장님이 IT 팀원들을 이끌어서 성운 테크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데요. 그 공을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서 이동을 시키는 건 너무하셨어요.”경영진이면서, 부서 내에서 일도 잘하고 공로도 가장 큰 사람이면 뭐 하나. 아무리 큰 성과를 내도
곽의정은 물러서지 않았다.“아빠, 전 아빠의 그 이기심과 가부장적인 모습이 너무 싫어요. 엄마가 아빠와 이혼한 건 정말 백번 천 번 잘한 일이에요.”그녀가 사원증을 잡아뜯더니 바닥에 내던졌다.“여자라서 만만하게 보셨죠? 좋아요. 오늘부로 저 이 회사 사직할게요. 그리고 똑똑히 보여드릴게요. 여자인 내가 절대 남자한테 뒤지지 않는다는걸!”그녀는 곽 회장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갔다.그런데 밖으로 나가려고 막 고개를 든 그녀의 눈앞에 강성연의 모습이 보였다.곽의정이 순간 멈칫거리다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아버지 찾으러 오셨어요? 마침 안에 계세요.”강성연이 싱긋 미소 지었다.“전 당신을 만나러 왔는데요?”곽의정이 얼어붙었다.곽의정은 근처에 있는 한 평범한 음식점에 강성연을 데리고 왔다. 비록 고급 레스토랑만큼 우아하고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게였다. 곽의정이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오더니 커다란 잔에 가득 따랐다.“사모님께서 저더러 고르라고 하셔서 이곳으로 모셨는데 불편하시진 않으세요?”강성연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저 곽의정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까다롭지 않아요.”포장마차나 길거리 음식도 먹어봤던 그녀였다.곽의정이 잔을 들더니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강성연은 그녀가 원래 이렇게 호탕한 성격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술 한 잔을 다 비운 그녀가 빈 컵을 내려놓았다.“사모님 저한테 볼 일 있으세요?”“원래는 비서한테 의정 씨와 만날 약속을 잡아달라고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직접 오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어요.”강성연이 맥주병을 들고 자신의 잔에 따랐다.“오랜만에 이렇게 편한 곳에서 맥주를 마시네요. 오늘 곽의정 씨와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다 제 복이네요.”곽의정이 멈칫하더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성연이 잔에 담긴 맥주를 깔끔하게 비워내더니 얕은 탄성을 지른 후 씩 웃었다.“역시 맥주가 시원해요!”간단한 안줏거리 몇 개를 시킨 후 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