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은 시선을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곽 부인은 이율의 태도에 곽 회장이 화를 낼까 봐 그녀를 살짝 밀며 말했다."아버지가 묻잖니."이율이 대답하려고 하자 곽의정이 갑자기 끼어들었다."그다지 유명한 회사는 아니에요."곽의정의 말을 들은 곽 회장은 원래도 별로 없던 관심을 바로 접었다. 만약 대기업 관리직이라면 도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이율은 곽의정을 바라봤지만 곽의정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점심 식사가 끝난 후, 이율은 저택에서 나왔다. 곽 부인은 그녀를 대문까지 바래다줬고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이율아, 넌 엄마가 밉지는 않아?"이율은 성격이 순한 편이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어머니를 탓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점점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엄마는 후회 안 하세요?"이율이 되물었다.곽 부인은 그저 자신의 배를 쓰다듬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율도 더이상 묻지 않고 인사를 하곤 몸을 돌려 떠났다.그렇게 길을 따라 걷고 있을때 차 한 대가 유유히 다가와 곁에 멈춰서더니 창문이 스르르 내려졌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곽의정이었다."차는 두고 온거야? 너희 엄마한테 새 차 자랑이라도 하지 그래? 네가 잘 사는 걸 보면 선 보라고 강요하지도 않을 거 아니야."이율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오늘따라 운전하기 싫어서요."곽의정이 말했다."타, 데려다줄게."이율은 잠깐 고민했지만 물어볼 것도 있어서 차에 올라탔다."어제는 무슨 일로 soul 주얼리에 왔어요?""반 대표님의 부인을 만나러. 너네 대표님 말이야."곽의정이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평소에 꽤 잘해주지?"역시 곽의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이율은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그럼 아까는 왜...""너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네가 능력 있다는 걸 아빠가 아시면 내가 난감해지니까 그런거고. 곽씨 집안의 딸은 영원히 나 하나뿐이
“결혼 한 여자라면 응당 너희 어머니처럼 절개를 지켜야 해. 가정을 보살피고 자식을 돌보며 남편을 섬겨야 하는 거 맞아. 하지만 남편이란 작자는 그게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줄 알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어. 너도 알지? 너희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 아버지의 뜻을 어긴 적이 없다는 걸.”차가 아파트 아래에 도착했다. 안전벨트를 푼 이율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곽의정을 돌아보았다.“그래서 지금 그게 언니가 우리 엄마를 싫어하는 원인이라는 거예요?”조용한 정막 속에서 이율은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곽의정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난 그냥 너희 어머니가 고개만 푹 수그린 채 남의 비위나 맞추며 사는 태도가 눈에 거슬릴 뿐이야.”이율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라고 자신의 어머니의 서러움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재혼 후,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 곽 회장은 그녀가 가정주부로만 있을 것을 원했고, 심지어 그녀의 인간관계마저 깨끗이 정리하도록 했다.그녀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재혼하는 입장으로서 자신한테 곽 회장은 과분한 사람이라고, 심지어 이렇게 큰 딸까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곽 회장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남자라면 응당 밖에서 보이는 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곽 회장이 그녀한테 자신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한 원인은 단지 그녀가 곽 씨 가문의 체면을 깎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시집오고 난 후 줄곧 보모에 불과하지 않았다.모든 일은 남편이 위주였고 가장 기본적인 자기만의 생각조차 함부로 갖지 못했다.이율은 어머니한테 후회하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본인도 후회를 했을 것이다. 단지 본인 스스로가 택한 선택이었기에 후회해 봤자 또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이율은 곽의정이 탄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돌려 아파트로 들어갔다.그 시각, soul 주얼리
강성연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곽의정 씨,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아요?”지윤이 고개를 저었다.“자세한 건 묻지 않았는데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곽의정 씨와 곽 회장이 회사에서 가끔 싸우기도 한답니다. 곽의정 씨가 여자라 참 안타깝다고 직원들이 수군거리기도 했고요.”곽의정이 여자라 안타깝다고?강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곽 회장이 곽의정을 후계자로 키우지 않는 건 단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장차 시집가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한평생 성운 테크에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윤한테 말했다.“곽의정 씨를 만나야겠어요. 약속 잡아주세요.”며칠 후.성운 테크.곽의정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손에 쥐고 곽 회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부서 내 직원들도 이 상황이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곽 회장의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곽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곽의정,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지금 무슨 짓인지 물으셨어요? 본인한테 물어보세요. 지난 몇 년간 ksapp 기획 성과는 제가 IT 부서 직원들을 이끌어서 이루어낸 거예요. 제 의견을 묻지 않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마음대로 제 부서를 옮길 수 있어요!”곽의정의 고함 소리가 사무실 밖까지 흘러나왔다. 밖에 앉아있던 직원들은 닫히지 않은 블라인드를 통해 곽 회장의 사무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내부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그들은 하나 둘 귓속말로 의논하기 시작했다.“회장님이 부사장님의 부서를 옮겼어요?”“부사장님은 회장님의 따님이시잖아요. 부사장님이 IT 팀원들을 이끌어서 성운 테크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데요. 그 공을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서 이동을 시키는 건 너무하셨어요.”경영진이면서, 부서 내에서 일도 잘하고 공로도 가장 큰 사람이면 뭐 하나. 아무리 큰 성과를 내도
곽의정은 물러서지 않았다.“아빠, 전 아빠의 그 이기심과 가부장적인 모습이 너무 싫어요. 엄마가 아빠와 이혼한 건 정말 백번 천 번 잘한 일이에요.”그녀가 사원증을 잡아뜯더니 바닥에 내던졌다.“여자라서 만만하게 보셨죠? 좋아요. 오늘부로 저 이 회사 사직할게요. 그리고 똑똑히 보여드릴게요. 여자인 내가 절대 남자한테 뒤지지 않는다는걸!”그녀는 곽 회장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갔다.그런데 밖으로 나가려고 막 고개를 든 그녀의 눈앞에 강성연의 모습이 보였다.곽의정이 순간 멈칫거리다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아버지 찾으러 오셨어요? 마침 안에 계세요.”강성연이 싱긋 미소 지었다.“전 당신을 만나러 왔는데요?”곽의정이 얼어붙었다.곽의정은 근처에 있는 한 평범한 음식점에 강성연을 데리고 왔다. 비록 고급 레스토랑만큼 우아하고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게였다. 곽의정이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오더니 커다란 잔에 가득 따랐다.“사모님께서 저더러 고르라고 하셔서 이곳으로 모셨는데 불편하시진 않으세요?”강성연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저 곽의정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까다롭지 않아요.”포장마차나 길거리 음식도 먹어봤던 그녀였다.곽의정이 잔을 들더니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강성연은 그녀가 원래 이렇게 호탕한 성격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술 한 잔을 다 비운 그녀가 빈 컵을 내려놓았다.“사모님 저한테 볼 일 있으세요?”“원래는 비서한테 의정 씨와 만날 약속을 잡아달라고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직접 오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어요.”강성연이 맥주병을 들고 자신의 잔에 따랐다.“오랜만에 이렇게 편한 곳에서 맥주를 마시네요. 오늘 곽의정 씨와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다 제 복이네요.”곽의정이 멈칫하더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성연이 잔에 담긴 맥주를 깔끔하게 비워내더니 얕은 탄성을 지른 후 씩 웃었다.“역시 맥주가 시원해요!”간단한 안줏거리 몇 개를 시킨 후 곽
강성연이 그녀를 올려다봤다.“결혼 문제라 뭐라 설명하기 어렵네요. 다들 각자의 고충이 있겠죠. 남자의 어려움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해하지만, 여자의 수고는 모든 남자들이 이해할 줄 아는 건 아니죠. 의정 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어떤 선택도 스스로 할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안 그래요?”곽의정이 잠깐 멍하니 있다가 눈을 내리뜨고 웃기 시작했다.“그러네요. 지금 이런 걸 생각해 봤자 아무 쓸모 없겠죠. 확실히 불필요한 걱정이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생각해 봐야겠어요. 아직 살아갈 날은 길고, 결혼 말고도 의미 있는 일은 한가득이니까요.”“정말로 성운 테크를 나갈 건가요?”강성연이 물었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리고 아빠한테 증명해 보일 거예요. 이 곽의정은 절대 남자한테 뒤지지 않는다는걸!”강성연은 싱긋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곽의정은 자기만의 주견이 있는 독립적인 여자였다. 이 점은 남여진 노부인과 아주 흡사했다. 그녀가 선택한 삶은 본인 스스로가 좋아하는 삶이었다.사람은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생활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랑 혹은 결혼을 선택할 거고,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이나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도의를 어기지 않고 인성의 밑바닥까지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찬양할 일이었다.돌아가는 길에서 강성연은 차 뒷좌석에 앉아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고 있었다. 맥주를 급하게 마신 탓인지 머리가 윙윙거렸다.그녀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가 지윤한테까지 느껴졌다.“아가씨 바로 집에 모셔다드릴게요.”강성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AM 그룹으로 가주세요.”그들이 앉은 차가 곧 AM 그룹 건물 아래에 도착했다. 강성연은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정부로 향했다. 프런트 직원들이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웬 그림자가 그녀들의 앞을 슥 스쳐 지나갔다. 강렬한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다. 두 사람은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가는 강성연을 확인하고 그대로
강성연의 표정이 굳어졌다.“당신 지금 나 놀려요?”그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우리 성연이가 급한 건 알겠는데 아직 퇴근 전이니까 조금만 더 참아.”강성연은 너무나 기가 막혀 얼굴이 다 빨개졌다.*수민 아파트.이율이 한창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연 이율은 트렁크를 끌고 문 앞에 서있는 곽의정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이게 무슨…”곽의정이 트렁크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다.“잠깐 신세 좀 지자.”이율이 문을 닫고 그녀를 돌아보았다.“어디 아파요? 그렇게 커다란 집을 두고 왜 굳이 이 작은 집에 와서 나랑 살겠다는 거예요?”“아빠랑 싸웠어.”곽의정이 팔짱을 꼈다.“따지고 보면 나도 네 언니인데. 너랑 사는 게 뭐 어때서?”이율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곽의정이 자기 아버지와 다퉜다는 거에 꽤나 놀라고 있었다.밥을 먹으면서 그녀는 곽의정이 회사 일로 아버지와 다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물었다.“그럼 이제 그 집으로는 안 들어갈 거예요?”곽의정이 응하고 답했다.“새 회사만 찾으면 바로 나갈게.”이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튿날 새벽. 곽의정이 한창 자고 있을 때 이율은 이미 일이나 있었다. 그녀는 곽의정을 위한 열쇠를 남겨두고 출근하러 나갔다.문뜩 그녀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는 이율에게 곽의정을 만나지 못했냐고 물었다. 이율이 답했다.“저희 집에 있어요.”“이율아 네가 의정이한테 잘 말해서 아빠랑 화해하고 그만 집에 돌아오게 해줘. 아빠도 다 그 애가 잘 되길 바라서 그러는 건데…”“엄마, 제가 말리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누가 말려도 소용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의정 언니도 본인만의 생각이 있어요.”이율이 어머니의 말을 끊었다.곽 부인은 자기 딸이 그렇게 말하자 결국 전화를 끊었다.이율은 고개를 수그리고 끊겨버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눈에 자신과 곽의정은 그저 한낱 철부지
윤티파니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현숙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티파니야, 네 마음이 내키지 않다는 걸 알아. 하지만 모두 지나간 일이고 사람은 앞을 보면서 살아야지. 아이도 생각해야 하잖아.”윤티파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한지욱은 아들을 데리고 나가 놀다가 점심에야 돌아왔다. 시우는 즐거운 얼굴로 장난감을 들고 강현숙에게 뛰어갔다.“할머니, 아빠가 장난감 사줬어요!”강현숙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기분 좋아?”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난감 비행기를 만졌다.“좋아요!”손자가 즐거워하니 강현숙도 별 말 하지 않았다.한지욱이 걸어왔다.“어머님, 티파니는요?”강현숙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대답했다.“방에 있다.”한지욱이 윤티파니 방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보니 윤티파니가 창문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핑크색 커튼이 그녀의 가녀린 몸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눈 한 번만 깜빡하면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한지욱은 순간 가슴이 쿵쿵 세차게 뛰었다. 그가 미친 듯이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윤티파니는 깜짝 놀랐다.“뭐 하는 거예요?”“난...... 난 당신이......”한지욱은 정신을 차린 후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더 꽉 껴안았다.“미안해요, 그저 순간 당신이 3년 전처럼 그럴까 봐 겁이 났어요.”윤티파니는 멍하니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녀는 한지욱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찌나 뜨거운지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녀의 눈물이 아니었다!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고 그의 얼굴을 만졌다.한지욱은 멍하니 있다가 몸을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창문에 서서 뭐 한 거예요?”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한지욱 씨, 아까...... 제가 뛰어내리는 줄 알았어요?”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윤티파니는 입술을 깨물고 얼굴에 남은 축축한 눈물자국을 느꼈다. 한지욱도 눈물을 흘리는 건가?그녀는 창문 앞으로
한지욱은 빙긋 웃었다.“어머님, 저흰 괜찮아요.”강현숙은 별말 없이 몸이 돌려 떠났다.윤티파니는 한지욱과 눈을 마주친 후 눈을 내리깔았다.“당신...... 정말 괜찮아요?”한지욱은 침을 꿀꺽 삼킨 후 시선을 돌렸다.“괜찮아요, 둥지를 다시 돌려놓을게요.”그는 둥지를 잘 놓은 후 몸을 돌려 윤티파니를 바라보았다. 윤티파니는 제자리에 서있었고 그는 천천히 걸어와 윤티파니 앞에 섰다.“티파니 씨, 걱정하지 마요. 전 다치지 않았어요.”그녀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자 한지욱은 당황했다.한지욱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울어요?”윤티파니도 자신이 왜 슬픈지 몰랐다. 아마 과거가 생각나서, 아니면 아픈 무언가를 건드려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한지욱은 고개를 떨구고 그녀의 눈물에 입을 맞췄다.윤티파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았을 때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한지욱은 눈을 내리뜨고 그녀를 한참 동안 보다가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윤티파니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간간이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진한 키스를 하다가 윤티파니가 그를 안는 순간 그는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한지욱은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그녀가 그를 바라보면서 묵인하는 듯하자 한지욱은 그녀의 얼굴을 만지면서 옅게 미소를 지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이마, 코끝, 입술에 입을 맞췄다.......창밖의 노을은 유난히 붉었다. 빨간 물감이 물든 단풍이 흔들리며 커튼에 부드러운 아우라를 그렸다.한지욱은 뒤에서 윤티파니를 그러안았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창밖을 바라보았다.“티파니 씨, 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지도, 욕심낼 용기도 없었다.“저와 결혼하지 않아도 평생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이 자리는 영원히 당신 거고 아들 한 명으로 충분해요.”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